춤
- 감독
- 나종배
- 제작년도
- 2013
<해피엔드> / © ㈜명필름 *** 현재 한국영화박물관에서는 기획 전시 ‘ 제목전(展) – 텍스트, 타이포그래피, 무빙 이미지 ’ 가 진행 중이다. 1919년 < 의리적 구토 >로 시작해 2025년 개봉작까지 8,400여 편의 한국영화를 다루는 이번 전시는 100년이 넘는 한국영화 역사를 ‘영화 제목’의 관점으로 살핀다. 제목은 관객에게 한 편의 영화를 가장 인상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설계된 문장(혹은 단어)이지만, 이를 통시적으로 관통해 보면 제목 하나하나에 당대의 시대정신이 녹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영화 제목은 한 편의 영화를 설명하는 도구인 동시에 영화가 태어난 시대의 정서를 품고 있는 문장이다. KMDb는 이번 전시와 연계해 두 편의 글을 공유한다. 1970~90년대 ‘저항’의 움직임 을 다룬 문주화 영화평론가에 이어, 이윤종 영화 연구자가 1980년대 한국영화계에 발생한 ‘에로티시즘’ 영화의 붐을 제목에서 읽어낸다. *** 한국영화에서 에로티시즘이 최초로 표출되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 중반부터다. 잉그마르 베르히만 등 유럽 모더니즘 감독들과 전후의 일본 신세대 감독들이 기성세대와는 다른 실험적 영화를 만들기 위해 시각적 에로티시즘을 부각하기 시작한 것이 50년대 중반부터인 것을 고려하면, 한국영화는 물질적 제작 여건이 상당히 열악했던 50년대부터 세계영화의 흐름에 발맞춰 나갔던 셈이다. 영화의 제목에서 에로티시즘이 강하게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70년대 초반부터이지만, 에로티시즘의 조류는 50년대 중반 한국영화 최초의 키스 신으로부터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50년대부터 90년대까지 이어지는 영화적 에로티시즘의 역사를 살펴보며 제목에서는 그것이 어떻게 드러나는지 살펴보자. 에로티시즘, 세계영화의 문법 앞서 언급했던 1950년대에 등장한 한국영화 최초의 키스 신은 윤인자 가 주연을 맡았던 < 운명의 손 >(한형모, 1954)의 한 장면이다. < 쉬리 >(강제규, 1999)와 유사한 내용의 스파이 스릴러물인 <운명의 손>에서 그녀는 북한군 첩보원 역을 맡아 남한의 방첩대원과 사랑에 빠져 그와의 비극적 결전 장면에서 아주 짧은 입맞춤을 나눈다. 공교롭게도 윤인자는 한국영화 최초의 욕조 신에도 등장하게 되는데, 이광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 그 여자의 일생 >(김한일, 1957)에서 그녀는 성악가를 지망하는 고학생으로서 온천장에 여행을 가서 욕조 안에서 수건으로 가슴을 가리고 앉아 있는 장면을 촬영한다. <운명의 손>의 키스 신은 뽀뽀에 가까운 데다 다소 성(聖)스러운 느낌마저 들어 에로틱하다고 보기 어렵지만 그럼에도 이를 선정적으로 생각하는 관객들이 상당히 많았다고 하며, <그 여자의 일생>의 어깨 노출 장면은 당대로서는 상당히 파격적인 연출이었던 만큼 윤인자는 50년대 최고의 섹시 배우로 등극하게 되었다. <운명의 손> 중 한국영화 최초 키스 신 60년대에는 도덕적 엄격함을 강조한 군부 정권의 강력한 검열로 인해 에로티시즘의 표현이 불가능했을 것 같지만, 세계영화의 조류를 따르려는 한국영화계의 강렬한 몸부림으로 인한 것인지, 뒷모습이지만 여성의 누드 장면이 최초로 등장해 감독이 검찰에 기소되고 벌금형이 부과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한다. 유현목 감독의 1965년작 < 춘몽 >이 그것으로 일본의 실험적 핑크영화인 <백일몽>(다케치 테쓰지, 1964)의 대본을 번안해 일본적인 화면을 유럽 모더니즘, 특히 독일 표현주의와 프랑스 상징주의가 결합된 무대로 변형해 연출한 것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서사보다는 영상 실험을 중시한 <춘몽>에는 여주인공이 제목처럼 ‘봄의 꿈’을 표현한 추상화와 같은 텅 빈 백화점에서 누드로 에스컬레이터를 타는 장면이 뒷모습으로 카메라에 잡히는데, 여배우는 실상 살색의 의상을 입고 있었다고 한다. 사실 미성년자 관람불가 영화는 60년대에 상당히 많아서 문예영화의 다수가 지금의 기대치로는 매우 수위가 낮은 정사 장면을 포함하고 있었다. 대표적으로 김승옥 소설가의 「무진기행」을 원작으로 하는 < 안개 >(김수용, 1967), 오영수와 차범석의 동명소설을 각각 원작으로 하는 < 갯마을 >(김수용, 1965)과 < 산불 >(김수용, 1967), 이어령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 장군의 수염 >(이성구, 1968) 등을 들 수 있다. 정진우 감독의 청춘영화인 < 초우 >(1966)와 < 초연 >(1966)도 유사한 흐름 속에 있었으나, <춘몽>에 이어 검열의 레이더망을 피하지 못한 비운의 영화는 < 벽속의 여자 >(박종호, 1969)였다. D. H. 로렌스의 영국 모더니즘 소설 『채털리 부인의 사랑』을 연상시키는 서사의 <벽속의 여자>는 성 불구인 남자친구와 혈기왕성한 다른 남자 사이에서 갈등하는 젊은 여성( 문희 )의 방황을 내세워 박종호 감독이 외설 혐의로 불구속 기소되는 불운을 맞이하기도 했다. <춘몽>, <벽속의 여자> / © 세기상사(주) 70년대에 접어들면 < 해변의 정사 >(신봉승, 1970, 필름 소실), < 속 벽속의 여자 >(박종호, 1970), < 그날밤 생긴 일 >(이영우, 1971), < 벽속의 남자 >(박종호, 1972), < 몸 전체로 사랑을 >(홍파, 1973) 등의 영화 제목이 눈에 띈다. 60년대의 마지막 해에 감독이 불구속 기소되긴 했으나 제법 괜찮은 흥행을 거둔 <벽속의 여자>의 속편과 더불어 유사한 제목의 남성 버전 영화가 제작되고, 다른 영화들도 이 영화처럼 삼각관계를 앞세운 연애물로 제작된 것이다. 그러나 70년대의 영화적 에로티시즘은 크게 두 가지 흐름으로 집약된다. 첫째, 작가주의 감독인 김기영 감독과 하명중 감독이 에로티시즘을 모티브로 한 영화들을 70년대에 꾸준히 만든 것이 하나이다. 김기영 감독은 1960년작 < 하녀 >에 이어 < 화녀 >(1971), < 충녀 >(1972), < 육체의 약속 >(1975), < 이어도 >(1977), <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 >(1978), < 수녀 >(1979), < 느미 >(1980)에 이르는 ‘여자’ 시리즈를 통해 여성의 성적 욕망을 사회적 욕망과 엮어서 펼쳐냈다. 하길종 은 미국 유학 후 화려하게 데뷔한 만큼 여러 논란(표절이 아님에도 이탈리아 영화 표절론 및 동성애 묘사 논란 등)에 휩싸이기도 했던 < 화분 >(1972)에 이어 < 수절 >(1973)과 < 한네의 승천 >(1977)에서도 다소 높은 수위의 정사 장면을 선보이는 시도를 했다. <육체의 약속>, <한네의 승천> / © ㈜동아수출공사, 동국대학교 둘째, 70년대 중반에 접어들며 가장 눈에 띄는 흐름은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가난과 외압에 의해 성매매업에 종사하게 되는 젊은 여성들의 고난과 불운을 다루는 ‘호스티스 영화’의 등장이다. 이장호 감독의 데뷔작인 < 별들의 고향 >(1974)에 이어 김호선 감독의 < 영자의 전성시대 >(1975)가 젊은 호스티스의 방황과 좌절을 그리며 침체를 겪던 70년대 충무로에 촉촉한 단비와도 같은 대흥행으로 가뭄을 해소시키자 대다수의 감독들이 호스티스물 제작에 뛰어들었다. 홍파 감독의 <몸 전체로 사랑을>도 여자친구와 호스티스 사이에서 갈등하던 남자를 그리고 있고 하길종 감독도 < 속 별들의 고향 >(1978)을 연출했던 것을 감안하면, 호스티스 영화의 시작은 이미 1973년부터 예고되어 상업영화와 작가주의 영화의 경계마저 허물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신중현의 동명 히트곡을 소재로 만들어진 뮤지컬 호스티스 영화 < 미인 >(이형표, 1975)을 포함하여, < 여자들만 사는 거리 >(김호선, 1976), < 나는 77번 아가씨 >(박호태, 1978), < 미스양의 모험 >(김응천, 1978), < O양의 아파트 >(변장호, 1978), < 꽃순이를 아시나요 >(정인엽, 1979), < 가시를 삼킨 장미 >(정진우, 1979), < 속 O양의 아파트 >(변장호, 1979), < 아침에 퇴근하는 여자 >(박용준, 1979), < 죽음보다 깊은 잠 >(김호선, 1979)등이 70년대 호스티스 영화의 계보에 있는 대표적 작품들이라 할 수 있다. 이들 호스티스 영화의 제목들은 여성의 노동과 욕망을 비유와 은유를 거쳐 우회하지 않고 매우 직접적으로 서술한다. <영자의 전성시대>, <미인>, <꽃순이를 아시나요> / © ㈜태흥영화, 김미연 한국적인 ‘에로’가 꽃피다 1980년대에 접어들면 에로티시즘의 주체이자 대상이 되는 여성들이 호스티스에서 중산층 이상의 여성들로 확대되며 다양한 장르물 속에서 에로티시즘이 구현되기 시작한다. 이 같은 에로방화 [1] 의 본격적인 출발점은 1982년 초에 개봉한 정인엽 감독의 < 애마부인 >으로, 이 영화의 제목은 70년대에 전 세계적으로 가장 흥행에 성공한 프랑스 영화이자 작품성 있는 에로물로 유명한 < 엠마뉴엘 Ⅰ >(쥐스트 자캥, 1974)을 연상시키기 위해 지어졌다는 것은 매우 유명하다. 다만 ‘말을 사랑하는 부인’이라는 애초의 의도와 상관없이 정부에서 문제삼은, ‘애마’의 어감이 이상하다는 이유로 ‘말 마(馬)’ 자가 삼베를 뜻하는 ‘마(麻)’로 바뀌었다는 슬픈 비화 또한 항상 영화를 따라다닌다. 일반적인 편견과 달리 <애마부인>은 중산층 가정이 잘 유지되기 위해서는 남편이 커리어에만 너무 매진하여 아내와 가정을 등한시해서는 안 된다는, 시대를 앞서간 포스트모던한 주제의 영화다. <애마부인>의 등장 이전부터 < 아낌없이 바쳤는데 >(박호태, 1980), < 화려한 경험 >(이상구, 1980), <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정진우, 1981), < 색깔있는 여자 >(김성수, 1981), <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 >(정진우, 1981), < 육체의 문 >(이기환, 1981), < 피막 >(이두용, 1981)등의 영화에서 멜로드라마, 시대극, 스릴러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계급과 삶의 방식을 지닌 여성들의 이야기가 그려지기 시작했다. <애마부인> / © 최재용 에로방화는 크게 현대극과 사극으로 나눌 수 있는데, 현대극은 <애마부인>을 포함하여 < 사랑의 노예 >(고영남, 1982), < 반노 >(이영실, 1982), < 자유처녀 >(김기영, 1982), < 나비품에서 울었다 >(임권택, 1983), < 안개는 여자처럼 속삭인다 >(정지영, 1983), < 김마리라는 부인 >(정인엽, 1983), < 엑스(X) >(하명중, 1983), < 오마담의 외출 >(김수형, 1983), < 적도의 꽃 >(배창호, 1983), < 무릎과 무릎 사이 >(이장호, 1984), < 깊고 푸른 밤 >(배창호, 1985), < 색깔있는 남자 >(김성수, 1985), < 달빛 멜로디 >(이황림, 1984), < 밤의 열기 속으로 >(장길수, 1985), < 육식동물 >(김기영, 1985), < 장사의 꿈 >(신승수, 1985), < 여왕벌 >(이원세, 1985), < 달빛 사냥꾼 >(신승수, 1986), < 두 여자의 집 >(곽지균, 1987), < 레테의 연가 >(장길수, 1987), < 안개기둥 >(박철수, 1986), < 매춘 >(유진선, 1988), < 성공시대 >(장선우, 1988), < 성야 >(신승수, 1988), < 아메리카 아메리카 >(장길수, 1988), < 그후로도 오랫동안 >(곽지균, 1989), < 늑대의 호기심이 비둘기를 훔쳤다 >(송영수, 1989), < 불의 나라 >(장길수, 1989), < 서울무지개 >(김호선, 1989), < 추억의 이름으로 >(유영진, 1989), < 물의 나라 >(유영진, 1990) 등이 당대를 대표하는 작품들이다. 이들 현대극은 급속하게 산업화된 한국 사회에서 이전과 달라진 입지를 가진 여성들이 변화된 연애와 결혼, 생계와 직업 세계에서 갈등을 겪으며 한국적 근대화의 빛과 어둠에 적응해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사극은 <피막>을 포함하여 < 여인잔혹사 물레야 물레야 >(이두용, 1984), < 땡볕 >(하명중, 1984), < 내시 >(이두용, 1986), < 변강쇠 >(엄종선, 1986), < 뽕 >(이두용, 1985), < 태 >(하명중, 1986), < 씨받이 >(임권택, 1986), < 사노 >(엄종선, 1987), < 감자 >(변장호, 1987), < 사방지 >(송경식, 1988), < 아다다 >(임권택, 1987), < 업 >(이두용, 1988) 등을 꼽을 수 있는데, 이들 대다수가 칸, 베를린, 베니스는 물론이고 아시아태평양 영화제나 북미권 영화제에 초청되거나 수상하며 영화사상 거의 최초로 한국영화를 세계 무대에서 널리 알리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에로사극은 전근대 시대를 배경으로 양반 가부장제에 빗대어 80년대의 신군부 독재 정권을 혹독하게 비판한다는 특징이 두드러지기도 한다. (상) <무릎과 무릎 사이>, <그후로도 오랫동안> / © ㈜태흥영화 (사진: 양기주) (하) <여인잔혹사 물레야 물레야>, <뽕> / © 정지훈, ㈜태흥영화 (사진: 양기주) 보다 여성적인 관점에서 1990년대의 가장 큰 특징은 이미 80년대부터 드러나기 시작한 에로티시즘과 페미니즘의 결합이 세 가지 흐름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첫째, 에로티시즘을 차용하면서도 80년대보다 더 강한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여성들이 가부장제하에서 겪는 억압과 고통, 저항 등을 그리는 영화들이 등장한다. <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김유진, 1990), < 물위를 걷는 여자 >(박철수, 1990), < 수탉 >(신승수, 1990), < 우묵배미의 사랑 >(장선우, 1990), <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장길수, 1989), < 경마장 가는 길 >(장선우, 1991), <낙타는 따로 울지 않는다>(이석기, 1991), <서울, 에비타>(박철수, 1991), < 아그네스를 위하여 >(유영진, 1991), < 은마는 오지 않는다 >(장길수, 1991), < 그대안의 블루 >(이현승, 1992), < 개같은 날의 오후 >(이민용, 1995), < 네온속으로 노을지다 >(이현승, 1995), <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오병철, 1995), <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홍상수, 1996), < 산부인과 >(박철수, 1997), < 올가미 >(김성홍, 1997), < 생과부 위자료 청구소송 >(강우석, 1998), < 처녀들의 저녁식사 >(임상수, 1998), < 송어 >(박종원, 1999) 등의 영화들이 대표적이다. 둘째, 에로티시즘이 로맨티시즘으로 전환되기 시작하여 로맨틱코미디의 조류가 형성되며 미성년자 관람불가 로코물이 당대에 큰 흥행을 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작품이 < 결혼이야기 >(김의석, 1992), < 미스터 맘마 >(강우석, 1992), < 가슴달린 남자 >(신승수, 1993), < 그 여자, 그 남자 >(김의석, 1993), < 사랑하고 싶은 여자 & 결혼하고 싶은 여자 >(유동훈, 1993), < 마누라 죽이기 >(강우석, 1994), < 닥터봉 >(이광훈, 1995), < 고스트 맘마 >(한지승, 1995), < 코르셋 >(정병각, 1996), < 넘버 3 >(송능한, 1997), < 미스터 콘돔 >(양윤호, 1997)등이다. 코미디는 아니지만 < 접속 >(장윤현, 1997)과 < 정사 >(이재용, 1998)도 에로물과 로맨스물의 경계를 흩뜨려 놓은 작품들로 당대에 평단과 관객 모두에게 큰 사랑을 받았던 미성년자 관람불가 영화들이다. 마지막으로, 대중영화임에도 포르노에 근접한 에로티시즘을 표방한 영화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했다는 것이 90년대의 큰 특징이기도 하다. 80년대 <애마부인>의 대흥행 이후 <애마> 시리즈로 나온 영화들을 포함하여 <매춘> 시리즈 및 과일 이름을 딴 < 산딸기 >(김수형, 1982), <뽕>, < 빨간 앵두 >(박호태, 1982) 시리즈가 90년대에도 꾸준히 만들어진다. 80년대에 맨 처음 흥행에 성공했던 이들 영화의 1편은 대중영화의 선에서 만들어졌고 한국 산업화의 어두운 면을 비판하는 작품들이었으나, 90년대까지 이어지는 후속 시리즈들은 소프트포르노에 가까운 성애물로 변질된다. 그리고 80년대 에로방화와는 에로티시즘의 수위가 다른 본격 성인용 대중영화들이 개봉해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거나 흥행에 크게 성공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작품들로 < 성애의 침묵 >(정인엽, 1992), <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양병간, 1993), < 아담이 눈뜰때 >(김호선, 1993), < 너에게 나를 보낸다 >(장선우, 1994), < 너희가 재즈를 믿느냐 >(오일환, 1996), < 모텔 선인장 >(박기용, 1997), < 쁘아종 >(박재호, 1997), < 창(노는계집 창) >(임권택, 1997), < 물위의 하룻밤 >(강정수, 1998), < 실락원 >(장길수, 1998), < 죽이는 이야기 >(여균동, 1997), < 해피엔드 >(정지우, 1999), < 노랑머리 >(김유민, 1999), < 거짓말 >(장선우, 1999)등이 있다. <성애의 침묵>에는 <엠마뉴엘> 시리즈로 유명한 네덜란드 여배우 실비아 크리스텔이 출연했고, <너에게 나를 보낸다> <너희가 재즈를 믿느냐>, <아담이 눈뜰 때>, <거짓말>은 외설론에 휩싸였던 장정일의 소설 [2] 을 원작으로 하고 있으며, <해피엔드>와 <거짓말>은 이전의 한국영화와는 차원이 다른, 새로운 시대의 여성 캐릭터와 정사 장면을 선보여 평단과 관객으로부터 많은 논란을 얻기도, 매우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해피엔드>, <거짓말> / © ㈜명필름, 신씨네 한국영화 속의 에로티시즘은 남성 관객의 눈요기를 위한, 여성의 성적 대상화에 치중했다는 문제가 없지는 않았지만, 여성을 시각화하고 부각하는 과정에서 여성을 중심으로 서사가 전개되며 점차 여성영화로 진화했다는 이중성을 지니고 있기도 했다. 50년대부터 80년대 중반까지의 한국영화 속에서 정치적·경제적·사회적 억압하에서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자신의 성적·사회적 욕망을 억누르는 피해자로 그려지던 여성들은 8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로 접어들며 <해피엔드>와 <거짓말>에 이르러서는 여성 해방에서 더 나아가 개인적 쾌락을 위해 사회적 일탈도 마다하지 않는 새로운 욕망의 주체로 변모되기 시작한다. 2000년대 후반 이후 한국영화에서 에로티시즘은 거의 완전히 소멸되기 시작하여 2020년대에는 로맨스와 멜로드라마마저도 찾기 어려운 실정이 되었다. 로맨스와 멜로드라마가 부재하다는 것은 여성 캐릭터가 설 자리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남성의 연애와 결혼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면 여성이 영화 속에 등장할 자리조차 없다는 2020년대 중반의 현실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때이다. *** [1] ‘에로방화’는 비디오 출시 전용의 소프트포르노 영화인 에로비디오와 이 시대 35mm 극장 개봉용 영화를 구분하기 위해 필자가 만들어낸 표현이다. ‘에로’라는 단어 때문에 편견이 생기기 쉽지만, 당대에는 에로라는 표현이 항상 사용되던 것이고, 80년대까지 한국영화를 ‘방화(邦畵)’라 불렀기 때문에 이 역사적 용어를 소환해 당대에 극장에서 개봉한 미성년자 관람불가의 대중영화를 ‘에로방화’라 지칭하기로 한다. [2] 앞선 3편의 영화는 장정일의 동명소설을, 영화 <거짓말>은 그의 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봐』(1996)를 원작으로 한다. 이윤종(영화 연구자) l 1980년대 한국 에로영화 연구에 이어 1980년대 이후 한국 스릴러 장르에 대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학술연구교수로 활동. 저서로 『에로방화의 은밀한 매력: 1980년대 한국 대중영화의 진보적 양면성』(영화진흥위원회, 2024), 논문으로 「젠더와 계급 갈등 위에 교차된 인종화: <버닝>의 벤 캐릭터에 대한 재고찰」(아시아영화연구, 2023) 및 「한국영화의 은자적 코스모폴리타니즘: 배창호의 <적도의 꽃>을 중심으로」(2024) 등 집필.
사진: KOBIS / © (주)영화사금월 고어한 영화를 좋아했다. 요즘에는 그런 종류의 작품을 보는 게 조금 피곤해졌다. 썰고, 베고, 찌르고, 뽑고 하는 장면을 보는 데는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해서다. 테스토스테론이 넘쳐나던 20대 시절에는 일부러 피투성이 영화를 찾아보고는 했다. 개인의 취향이 반영된 것도 있고 당시 분위기에 영향받은 바도 있었다. 일본 영화 전면 금지와 검열이 심해 웬만한 할리우드 공포 영화의 수입이 보류됐던 1990년대 중반부터 이들 영화를 몰래 찾아보는 움직임이 대학가를 중심으로 성행했다. 국내에서 뒤늦게야 개봉했던 < 스크림 >(웨스 크레이븐, 1996)과 < 황혼에서 새벽까지 >(로버트 로드리게즈, 1996) 등을 조악한 화질과 자막의 비디오로 돌려봤다. 금단의 세계를 경험한다는 쾌감, 남이 못 본 걸 먼저 접한다는 우월감이 더해져 더 강한 묘사의 영화들을 찾다 보니 < 고무인간의 최후 >(피터 잭슨, 1987) < 텍사스 전기톱 학살 >(토비 후퍼, 1974) 등으로 정도가 심해졌고, 2000년대 이후에는 영화제를 돌아다니며 < 이치 더 킬러 >(미이케 다카시, 2001) < 휴먼 센티피드 >(톰 식스, 2009) 등에 열광했다. 물론 고어한 영화만 본 건 아니고 검증받은 클래식도 관람했지만, 피 칠갑 작품들은 곧 내가 즐겨보는 장르가 되었다. 개인적인 선호가 있다 보니 잔인하고 직접적인 묘사도 창의적이면 미덕이라고 생각해 그걸 작품 평가의 척도 중 하나로 삼기도 했다. 박훈정 감독의 < 브이아이피 >(2016)는 그래서 내게는 별 다섯 만점에 세 개 반인 작품이었다. 사진: KOBIS / © (주)영화사금월 그때 20자로 평하길 ‘아이디어 하나로 흥미진진해지는 이야기’라고 했다. ‘북한의 고위층 자제 사이코패스 살인마가 남한에 넘어온다면’이라는 설정이 흥미로웠다. 납치하고, 고문하고, 살인하는 장면이 전면에 나섰고, 잔혹 행위의 여파를 개인의 일탈 수준을 넘어 남과 북과 미국의 역학 관계로 풀어가는 게 기존 장르물과 비교해 색달랐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둔감한 판단이었다. 고어한 영화도 남과 북이 분단된 한국에서 만들면 국제정치와 결합한 또 다른 하위 장르로 발달할 수 있다는 생각에, 여성을 피해자이자 성적 대상으로 비추는 관습에 내재된 문제를 충분히 헤아리지 못한 채 관성에 젖어 장르 친화적으로만 바라본 까닭이었다. 그에 관한 생각의 변화를 촉구한 작품이 <브이아이피>였다. 더 정확히는 이 영화가 공개된 후 벌어진 ‘여혐’과 ‘젠더 감수성’에 관한 논란이었다. 여성 신체 노출과 노골적인 살해 장면이 정말 필요했는지를 둘러싸고 의문이 제기됐고, 남성 중심적 힘의 논리가 지배적으로 작동하는 가운데 여성을 시각적 장치로 도구화한 혐의가 짙어, 그간 남성을 위한, 남성의 영화로 소비되어온 한국 장르 영화계 전반에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빗발쳤다. 선행됐어야 할 인식을 담아내지 못한 20자 평을 쓰고나서 뜨끔했던 기억이 난다. 관련해 모 일간지로부터 전화 인터뷰 요청을 받기도 했는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심정이었다. 영화일 뿐이라고 옹호하기에 영화가 사회적으로 미치는 파장이 컸고, 허구의 룰이 미장센 요소이기도 한 장르물의 논리로 설명하기에 <브이아이피>는 특이점이 있었다. 박훈정의 연출 필모그래피에서 감독의 세계에서 판을 치는 ‘폭력’은 문제 해결의 제1요소이되, 조직을 통해 인간의 아귀 악착과 같은 감정을 ‘은유’하고(< 낙원의 밤 >·< 신세계 >), 슈퍼파워를 내세워 만화적으로 ‘과장‘하고(< 폭군 >·< 마녀 >), 조선시대와 같은 ‘과거’로 돌아가는(< 대호 >·< 혈투 >) 데 적용되면서 현실과 다소 거리를 둔 분위기를 자아낼 여지가 다분했다. <브이아이피>의 경우 남·북·미의 힘의 관계에 더해, 무엇보다 남성의 폭력에 노출된 여성에 대한 묘사를 영화적 설정으로 가볍게 넘기기에는 현실의 실상이 겹치는 정도가 강했다. 이 모든 것을 장르로 풀다 보니 여성 혐오와 차별의 심각한 현실은 재미를 위한 자극적 요소로 소비되고, 감독이 이를 의도한 건 아니어도 관객이 받아들이는 데는 무리가 생긴다. 사진: KOBIS / © (주)영화사금월 박훈정 감독은 이 영화 개봉 당시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관련한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내가 보통의 다른 남자들보다 젠더 감수성이 부족하다는 점은 알고 있었지만 모자란 정도가 아니라 너무 무지했다는 생각이 든다.” 감독과는 그의 다른 연출작 GV를 진행하며 만난 적이 있다. 설명을 들어보니 영화적 취향과 그걸 생성한 과정이 나와 비슷했다. 세대가 같은 박훈정 감독 또한 금지된 영화를 향한 호기심으로 고어 관련 장르물을 찾아보았고, 이 경험이 창작자로서 작품의 세계관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신세계>의 피가 난무한 격투씬이나 각본에 참여한 < 악마를 보았다 >(김지운, 2010)의 신체 훼손 장면이랄지, 한때 즐겨봤던 영화로 형성된 개인적인 기호가 반영되어 있다. <브이아이피>에 등장하는 남자들, 좋게는 제멋대로, 실제는 단세포적이면서 동물, 아니 짐승같은 캐릭터들은 모두 익숙한 면모가 있다. 귀공자풍의 연쇄살인마 김광일( 이종석) 은 만화 『몬스터』의 요한, 그를 쫓는 경찰 채이도( 김명민 )는 기타노 다케시의 < 그 남자 흉폭하다 >(1989)와 < 하나비 >(1997) 등에 등장하는 폭력 경찰을 떠올리게 하는 데가 있다. 이를 가져와 재가공하기보다 감독이 설계한 세계에 맞춤한 결과로, 등장인물이 모두 성인임에도 유치한 구석이 있다. “X 되기 일보직전인 거 알지?”, “벌써 X 된 거 같은데요”와 같은 대사가 있고, 극중 범인 김광일 곁에 굳이 여자 경호원을 배치해 사건을 키우는 묘사에 관해서는 감독의 무신경으로 밖에 설명할 도리가 없다. 흔히 영화와 같은 콘텐츠를 두고 시대의 산물이란 표현을 쓰고는 한다. 그건 작품 자체뿐 아니라 이를 창작한 감독이 카메라 뒤에서 작품에 접근하는 태도도 포함한다. 단, 오해하지 마시기를! 작품과 창작자를 완전히 분리하는 것은 불가능해도 해당 창작물이 사람의 됨됨이까지 파악하는 결정적인 요소가 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박훈정 감독은 앞서 언급한 인터뷰 자리에서 “앞으로 영화를 하면서 이런 부분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좀 더 깊은 고민을 해야 할 것 같다”라며 반성의 의지를 나타냈고, 특히 <마녀>(2018) < 마녀 Part2. The Other One >(2022)에서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슈퍼히어로물을 선보이기도 했다. 물론 피가 난무하는 폭력씬이 등장해도 <브이아이피>에서 제기됐던 문제점들은 많이 개선한 형태였다. 각각의 작품에서 여성 병기로 등장하는 자윤( 김다미 )과 소녀( 신시아 )는 정체성 혼란을 겪으며 자신을 찾아가는데, <브이아이피>에서 기능적인 캐릭터에 가까웠던 남성들보다 이성적이고 입체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마녀>의 자윤, <마녀 Part2. The Other One>의 소녀 / © (주)영화사금월 시대는 요구하는 윤리와 감수성이 있고, 거기서 벗어날 때는 강한 저항에 부딪히거나 외면받기 마련이다. 연출자가 과거에 갇힌 영화적 감성으로 완성한 <브이아이피>는 시대착오의 작품이었다. 현재를 업데이트하지 않은 이 영화는 대중 정서와 괴리된 완성도로 박훈정의 작품 목록에서도 평가와 흥행 면에서 최악을 면하지 못했다. 혹자는 여성 현실을 외면한 묘사와 여성 혐오를 불러일으키는 영화는 금지해야 한다며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지만, 굳이 창작의 영역에 인위적인 금지의 조치를 가하지 않더라도 시대와 통(通)하지 못하는 영화는 자연스레 도태되기 마련이다. 그게 어디 영화에만 해당할까. 시장에서 영화평론가로 통하는 나도 여기서 벗어날 수 없다. 지금 <브이아이피>에 관해서 다시 20자로 평하라고 한다면 ‘뭐 볼 거 있냐, 가자. 보기 험할 거 같다.’라고 쓰지 않을까 싶다. 실은 극 중 채이도의 대사를 빌린 거다. 동료 간부의 장례식에 참석해서 한다는 소리가 “뭐 볼 거 있냐, 가자. 비 올 거 같다”였다. <브이아이피>의 여성에 관한 인식이 크게 다르지 않아 상징적으로 들려서다. 내가 기존에 쓴 이 영화의 20자 평을 접한 이들의 반응도 다시 작성한 단평의 뉘앙스와 다르지 않았을 테다. 고어 취향이라는 방구석 스크린의 틀에 갇혀 넓은 현실에 발 담그지 않은 채 평론가 타이틀을 허울 삼아 좁은 식견을 전문 지식이라 공개해 불편하게 했으니 말이다. 지금이라도 고해성사할 기회가 생겨 다행이다. 고어한 영화와 담쌓고 지내는 건 아니지만, 화제가 되는 작품은 찾아보기는 해도 이 장르를 보는 관점이 이전과 달라졌다. 이 장면이 영화의 콘셉트에 필요했는지, 특정 대상을 향한 혐오의 가능성을 두고 있는 건 아닌지를 점검하면서 재현의 윤리를 따져 묻게 되었다. 앞으로도 잘못 보는 경우가 있겠지만, 시대를 나침반 삼아 바르게 보려고 노력할 생각이다. 다시, 비평 과거에 봤던 영화가 요즘은 달라 보인다면, 관점은 언제부터, 어떻게, 어떤 이유로 달라진 걸까. 시간을 따라 서로 다른 형태와 색깔을 남긴 비평의 궤적을, 필자가 직접 뒤따라가 봅니다. 허남웅(영화평론가) l 《딴지일보》 영화팀, 《FILM 2.0》을 거쳐 영화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1990년대 중반, 미개봉 영화의 복사 비디오를 보면서 영화의 새로운 세계에 빠져들어 30년 가까이 허우적대고 있다. 구조되지 않아도 아직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데 이상하게 그 상태가 또 맘에 든다. 영화에 관한 관심이 아직 식지 않아서다. 그래서 여전히 영화에 관해 글을 쓰고 말을 하고 있다.
서울아트시네마 1층 구매표소 경기천년바탕체 R(저작권자: 경기도, 출처: 한국저작권위원회 ) (위 이미지 클릭 시 유튜브 영상으로 이동) 시네마테크 운동의 결실로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가 탄생하다 서울아트시네마 는 사단법인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가 운영하는 서울 유일의 민간 비영리 시네마테크로, 한국의 시네마테크 운동과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의 형성 과정 속에서 탄생했다. 시네필 문화가 번성하기 시작한 1990년대부터 2000년대로 넘어오는 시기, 불법 복제된 VHS를 구해 함께 보는 관행에서 벗어나 저작권자의 허가를 받아 정식으로 영화를 상영하자는 움직임이 나타났고, 이러한 노력의 결실로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가 만들어졌다. 서울에는 서울아트시네마가 문을 열었고, 전국 각지에도 협의회에 소속된 시네마테크 성격의 극장들이 운영되기 시작했다. 현재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 , 대전아트시네마 , 광주극장 등이 협의회 소속 상설 극장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청주의 씨네오딧세이와 제주 씨네아일랜드 등은 특별전과 다양한 기획을 통해 영화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협의회 초기부터 대표를 맡은 故 최정운 대표가 단체의 틀을 잡는 일에 힘썼고, 현재는 곽용수 대표가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의 대표를 맡고 있다. 서울아트시네마의 탄생과 이동의 역사 1990년대부터 비디오테크 활동을 활발히 이어가던 ‘문화학교 서울’은 2000년대로 접어들며 안정적이고 공식적인 영화 상영 공간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다. 빌린 공간에서 특별전 형식으로 시작된 활동은 상설 극장의 필요로 이어졌고, 여러 사람의 노력을 모아 2002년 소격동 아트선재센터 지하에 ‘서울아트시네마’라는 이름으로 처음 문을 열었다. 안정적인 재정 구조를 갖추기 어려운 민간 시네마테크의 특성상 서울아트시네마는 여러 공간을 옮겨 다니며 운영되었다. 2007년부터는 종로 낙원상가 옥상에 위치한 허리우드극장 으로 자리를 옮겨 180석 규모의 극장으로 운영되었다. 2개관으로 구성된 허리우드극장의 한 관을 서울아트시네마가 사용했고, 옆 관은 필름포럼 이 사용했다. 이후 필름포럼이 떠난 자리에는 노년층을 위한 영화관 ‘실버시네마’가 들어섰고, 위층에는 <사랑한다면 춤을 춰라> 뮤지컬 공연장이 운영되었다. 극장 시설의 노후화와 주변 입지 문제로 서울아트시네마는 2015년 4월 서울극장 11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서울극장에서 운영되던 시기에는 옆 관에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가 함께 자리하면서 서울극장 자체가 시네필들에게 중요한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영화 상영업 전반이 큰 타격을 입고 서울극장도 문을 닫게 되자, 서울아트시네마는 여러 후보지 가운데 과거 정동극장이 운영되었던 경향아트힐 건물로 옮겨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다. 서울아트시네마 외관 서울아트시네마가 자리를 옮길 때마다 많은 시네필들의 기억도 함께 쌓였다. 아트선재센터 주변의 고즈넉한 분위기, 낙원상가 옥상의 눈 내리던 밤, 서울극장 앞 포장마차의 풍경은 그 시절의 예술영화와 시네마테크에서 상영한 고전영화들과 함께 기억된다. 이를 증언하는 기록과 회고 역시 곳곳에 남아있다. 현재는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정동으로 올라오는 길과 미술관·박물관이 어우러진 지역의 문화적 풍요가 지금의 서울아트시네마에 새로운 분위기를 더하고 있다. 공간과 시설 서울아트시네마는 서울시 종로구 정동 경향신문사 경향아트힐 2층에 자리하고 있다. 1층에 있었던 매표소는 현재 사용하지 않고 흔적만 남아 있으며, 현재는 2층에 매표소와 라운지가 마련되어 있다. 라운지는 영화관 특유의 단정한 분위기를 위해 조도를 낮게 유지하고 있으며, 서울아트시네마의 역사를 보여주는 포스터와 책자들이 전시되어 있다. 매표소에서는 티켓 발권 외에도 책자 구입과 관객회원 및 후원회원 가입이 가능하다. 단관으로 운영되는 상영관은 230석 규모로, 독립예술전용관 가운데서도 비교적 큰 편에 속한다. 휠체어석은 객석 후미 좌우측에 총 4석이 마련되어 있으며, 휠체어 이용자는 2층으로 올라올 때 계단에 설치된 휠체어 리프트를 이용할 수 있다. 상영관은 과거 공연장으로 사용된 적이 있어 뒤편에 분장실 공간이 남아 있으며, 현재는 회의실과 게스트 대기 공간, 창고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사무실은 상영관과 떨어져 있지만 중앙 통로를 지나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와 서울아트시네마 로고가 있는 입구를 통해 연결된다. 상영관 상영 시설은 시네마테크라는 지향에 맞게 다양한 매체를 상영할 수 있도록 갖추어져 있다. DCP 프로젝터는 4K 사양이며, 그 외에도 35mm 영사기 2대, 16mm 영사기 1대, 자막 영사용 별도 프로젝터가 객석 후미에 마련되어 있다. 자주 사용되지는 않지만 HDCAM, DVCAM, Blu-ray, DVD, miniDV, VHS 등 다양한 매체를 상영할 수 있는 데크와 플레이어도 구비되어 있다. 지속가능한 근무와 극장 운영 서울아트시네마의 운영진은 각자의 역할이 분명하게 나뉘어 있으면서도 긴밀하게 협업하는 구조로 운영된다. 프로그램 디렉터, 프로그래머 2인, 영사기사 2인, 사무국장, 매표 및 회원 관리 2인, 홍보 담당, 회계 담당 비상근 직원, 자막팀장 등 총 10인이 상근으로 근무하고 있다. 이 밖에도 디자이너 1인이 극장 소속은 아니지만 전속 계약을 통해 홍보물 디자인 전반을 맡고 있다. 서울아트시네마는 오후 1시에 첫 상영을 시작해 오후 10시에 마지막 상영을 마치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상영 작품에 따라 유동적으로 운영된다. 개점 시간이 늦은 것은 영사기사와 운영진의 지속가능한 근무를 고려한 기준이 반영된 결과다. 2층 매표소 로비 티켓은 지금도 영수증 형태가 아닌 종이 티켓으로 발권되고 있어 이를 모으는 관객들도 있다. 온라인 예매는 ‘타이티 티켓’ 시스템을 통해 가능하다. 관람료는 일반 9천 원이며, 연회비 6만 원의 관객회원으로 가입하면 1년 동안 모든 영화를 5천 원에 관람할 수 있다. 현재 관객회원은 약 300명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 밖에도 10회 관람권을 8만 원에 판매하고 있으며, 청소년·65세 이상·장애인에게는 3천 원 할인 혜택이 적용된다. 상영 시작 15분 후 입장 금지, 음식물 반입 금지 등의 운영 원칙이 있으며, 노쇼 방지를 위해 시네토크가 포함된 회차는 당일 취소가 불가능하다. 또한 비영리 극장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광고를 상영하지 않는다.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와 ‘시네 바캉스’ 독립예술영화관 가운데서도 서울아트시네마는 독특한 프로그램 구성을 보여주지만, 상영작 선정의 기준은 의외로 단순하다. “좋은 영화를 상영한다”라는 것이다. 다만 다른 곳에서 이미 많이 상영되는 작품은 우선순위에서 제외된다. 요컨대 좋은 작품이면서도 다른 곳에서 쉽게 만날 수 없는 영화들을 우선적으로 소개하는 셈이다.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1년 내내 기획전이 이어지며, 고전영화와 동시대 예술영화를 고르게 상영하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많은 관객이 찾는 대표 프로그램이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와 ‘시네 바캉스’다. 2006년에 시작한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는 9명의 친구들과 함께 출발했다. 시네마테크라는 이름이 아직 낯설던 시절부터 그 필요성과 존재를 널리 알리고자 했던 캠페인의 성격이 강한 영화제로, 평론가와 영화감독, 배우들이 참여하며 꾸준한 사랑을 받아왔다. 현재까지도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가운데 가장 많은 관객이 찾는 영화제로 자리하고 있으며, 올해까지 18회를 이어오고 있다. 역대 기획전 포스터 전시 여름 휴가철에 맞춰 열리는 ‘시네 바캉스’ 역시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못지않게 많은 관객이 찾는 대표 프로그램으로, 고전영화와 동시대 영화를 아우르는 주제별 상영을 이어오고 있다. 이 밖에도 감독 회고전과 특정 지역, 영화 사조를 중심으로 한 다양한 기획이 계속되고 있다. 2025년에는 보이체크 하스, 유디트 엘레크, 구로사와 기요시 등의 감독 회고전을 준비했다. 영화 자체가 되는 영화관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연 3만 명 아래로 떨어졌던 관객 수는 조금씩 회복되고 있다. 2024년의 연간 총관객 수는 약 3만 6천 명이었다. 관객회원 대상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절반 이상이 20~30대로 나타났지만, 실제 현장에서 마주하는 관객층은 10대부터 노년층까지 폭넓다. 서울아트시네마는 한편으로 ‘특이한 관객이 많은 곳’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기도 하다. 상영 중 소음을 지적하는 장면 같은 에피소드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회자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운영진의 말에 따르면 실제 극장을 찾는 관객층은 매우 다양하다. 조용히 혼자 영화를 보는 관객도 있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영화를 즐기는 관객도 있으며, 오랜 시간 극장을 찾아온 연령대 높은 관객들 역시 꾸준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매표소 차단벽 홍보물 김보년 프로그래머는 이상적인 영화관을 두고 “개성이 없는 영화관”이라고 말한다. 특정한 공간의 인상보다 그곳에서 본 영화의 기억이 또렷하게 남는 극장이 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서울아트시네마는 좋은 영화를 가장 집중해서 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김성욱 프로그래머는 100년 뒤에도 영화관이라는 공간이 여전히 존재하고 서울아트시네마 역시 남아 있다면, 누군가가 첫 번째 영화를 보는 장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영화를 보는 체험의 본질이 ‘내가 없는 세계를 보는 경험’이라면, 서울아트시네마는 누군가의 인생 첫 영화의 기억이 남고, 그 기억이 훗날 다시 그리움으로 돌아오는 공간이기를 바라고 있다. 공간 및 운영 개요 1) 위치 :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길 3, 경향아트힐 2층 (경향신문사 건물)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에서 개관, 낙원동 허리우드 극장과 종로3가 서울극장을 거쳐 현재 위치로 이전 2) 설립일 : 2002년 5월 10일 3) 운영주체 :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대표 곽용수) 4) 공간 구성 - 경향아트힐 2층을 타 엔터테인먼트 공간과 나누어 사용 중 - 230석 규모 1개관 및 대기공간, 매표소, 사무실 등으로 구성되어 있음 5) 극장 규모 : 1개관 230석, 휠체어석 4석 6) 운영시간 및 정기휴무 - 첫 상영 오후 1시, 마지막 상영 종료 오후 10시 기준으로 상영 작품에 따라 유동적으로 운영 - 매주 월요일 정기 휴무 7) 입장료 및 할인 정책 - 일반 9,000원, 관객회원 5,000원(연회비 6만원), 10회권 8만원, 청소년/65세이상/장애인 할인 6,000원 - 현장 예매 및 TINY TICKET을 통한 온라인 예매 가능 8) 조직 구성 -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가 서울아트시네마를 운영하는 주체 - 서울아트시네마 조직은 팀으로 나뉘어 있지 않으나 크게 프로그램 파트, 영사 파트, 사무 및 운영 파트로 구분할 수 있음 9) 구성원 : 상근 10인, 비상근 1인, 외부전속 1인 - 프로그램 디렉터 1인 / 프로그래머 2인 / 사무국장 1인 / 영사기사 2인 / 매표 및 회원 관리 2인 / 홍보 1인 / 회계 1인 / 자막팀장 1인 (비상근) / 디자이너 1인 (외부 전속) 10) 주요 장비 - 35mm 영사기 2대 / 16mm 영사기 1대 / 4K DCP 프로젝터 / HDCAM / DVCAM / VHS / miniDV 상영용 데크/ (시네마테크 정체성에 따라 모든 매체를 상영할 수 있도록 함) 취재 일자: 2025년 6월 17일 글/인터뷰 진행: 김문경 사진: 허 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