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음
- 감독
- 한윤정
- 제작년도
- 2022
민아는 엄마의 안락사를 거부하고 집으로 데려온, 남들이 보기에 전형적인 효녀다. 그러나 실상 엄마와의 하루하루는 고통과 두려움의 연속이다. 고치로 변해가는 병에 걸린 엄마는 그녀에게 폭언을 일삼으며 정신적인 학대를 일삼는다. 그러나 그 사실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민아는 매일 쓰러져가는 아파트 한 켠의 벌레로 가득한 집안, 그곳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무시무시한 엄마에게 돌아간다. 결혼을 약속한 남자친구 철구에게도 엄마의 존재를 비밀에 부친 채 항상 주변을 확인하고서야 현관문을 연다. 깨진 거울 너머 민아가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엄마의 안락사를 거부하는 자신의 목소리와 자식이 엄마를 돌봐야 하지 않겠냐는 사람들의 말을 떠올리며 두통을 느끼는 장면은 거울처럼 망가져 회복할 수 없는 모녀 관계와 가족으로서의 무거운 의무감을 상징한다. 민아에게 끔찍한 것은 고치로 변하는 엄마의 모습이 아니라 부모라는 이유로 무조건 견뎌야 하는 엄마의 폭력적인 말들이다. 만나는 사람이 있다는 딸에게 엄마는 미쳤냐며 결혼이라도 할 생각이냐고 비웃는다. 엄마는 쉴 새 없이 딸의 가슴을 할퀴는 말들을 쏟아내며 자식의 편안한 잠조차 허용치 않는다. 그러다가도 돌연 태도를 바꿔 너도 날 버릴 거냐며 외로워 죽겠다고 하소연하는 엄마는 민아에게 벗어나고 싶지만 벗어날 수 없는 굴레다. 현실에 순응한 민아는 자신을 물어뜯는 엄마를 본능적으로 방어한 후에도 오히려 엄마에게 미안하다며 이상해지는 건 엄마가 아니라 자신이라고 자책한다. 집을 떠나 자신에게 오라는 철구의 제안에도 달리는 차 안에서 뛰어내려 다친 다리를 절뚝이며 엄마에게 향하는 것으로 답한다. 엄마로부터의 탈출구로 보이는 남자친구 철구도 민아를 이해하고 보듬기보다 집착과 소유의 대상으로 볼 뿐이다. 어느새 완전한 고치가 되어 목소리만 들려주던 엄마는 마침내 나방으로 변화해 끔찍한 모습을 드러낸다. 엄마의 여전히 날이 선 말들과 남자친구까지 위협하려는 행동은 민아가 지금까지 겨우 붙잡고 있던 이성의 끈을 놓게 만든다. 사람들에게 가족이란 관계는 어떤 의미를 지닐까? 한국영화아카데미 졸업작품인 여은아 감독의 < 고치 >는 가족이라는 이름이 주는 의무감, 그 틀 속에 갇혀 살아가는 인물들을 그려내고 있다. 재개발이 예정된 쓰러져가는 아파트를 배경으로 엄마, 민아, 철구 세 캐릭터의 관계를 그려내는 작품이 주는 충격은 강렬하다. 공포 만화의 대가 이토 준지의 작품을 떠올리게 하는 캐릭터들의 섬뜩한 묘사와 흑백의 색채가 주는 무미건조함은 무척이나 서늘하다. 더욱이 전통악기들로 만들어내는 예상치 못한 그로테스크한 음악은 영상과 어우러지며 작품에 긴장감을 주며 뚜렷한 개성을 부여한다.
한 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서 장편 작품을 보고 있었다. 피와 폭력, 욕설 등 표현의 수위가 제법 높은 작품이었는데 두 그룹의 가족 관객이 눈에 띄었다. 감독이 상영 전 가벼운 경고(?)를 했지만 작품이 중반에 이르도록 요지부동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한쪽의 아이들은 잠시 극장을 나간 듯했으나 이내 다시 돌아왔고, 다른 가족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결국 두 가족 모두 상영의 중간에 자리를 떠나긴 했지만 의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른이 보기에도 자극적인 내용이 담긴 작품임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이들의 입장을 제지하지 않은 주최 측이나 한참 동안 아이들과 영화를 감상한 부모들이 너무 무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나 보는 움직이는 그림이 잔인해 봤자 얼마나 잔인할까 싶었던 걸까. 이것이 현재 애니메이션을 바라보는 대중들의 시각을 보여주는 한 예가 아닐까 싶다. 애니메이션은 자유로운 소재와 이야기를 표현할 수 있는 영상의 한 장르로 어린이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러나 국내 TV, 극장에서 상영되는 애니메이션만 봐도 대부분 어린이를 타깃으로 하고 있다. 더군다나 극장용 애니메이션의 경우 할리우드 유명 스튜디오의 작품이 아니고서는 오후 시간에 보기조차 쉽지 않다. 그러나 정작 해외에서는 다양한 장르, 타깃층을 대상으로 한 한국 작가들의 장, 단편 애니메이션들이 호평을 받고 있다. 단편은 이미 2000년대부터 한국 작가들의 작품들이 주목을 받아 왔다. 올해만 해도 세계 5대 애니메이션 중 하나인 안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과 자그레브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서 정다희 감독의 < 의자 위의 남자 >와 정유미 감독의 < 연애놀이 >가 각각 대상을 수상하며 독창적 예술성을 지닌 작품으로 세계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장편 역시 이성강 감독의 < 마리 이야기 >와 성백엽 감독의 < 오세암 >이 안시에서 2002년, 2004년 대상을 거머쥔 바 있다. 최근에는 연상호 감독의 < 돼지의 왕 >, 안재훈 , 한혜진 감독의 < 소중한 날의 꿈 >, 이대희 감독의 < 파닥파닥 >, 장형윤 감독의 <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 > 등이 국산 장편 애니메이션의 스펙트럼을 넓히고 있다. 국산 애니메이션이 꾸준하게 그리고 묵묵히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단편은 영화제라는 특정한 공간에서만 즐길 수 있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고 장편은 < 블루시걸 > < 아마게돈 > < 원더풀 데이즈 > 등 과거의 예에서 알 수 있듯 화제성에 비해 부진한 흥행 성적을 기록했다. 이는 철저히 상업 논리에 따르는 국내 거대 배급사들이 아동을 타깃 삼지 않은 애니메이션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 돼지의 왕 >은 첫선을 보인 부산국제영화제에서 3관왕을 차지하며 매진 행렬을 기록하고 언론의 집중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극장 확보의 한계에 부딪히며 손익 분기점을 넘지 못했고, <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 >는 청소년, 여성 타깃의 감성적인 작품임에도 흥행을 위해 국내 시장의 애니메이션 주요 수요층인 가족 관객 중심의 홍보를 선택해야 했다. 유수의 영화제에서 수상한 해외 애니메이션들도 픽사나 드림웍스, 디즈니 등의 작품 외에는 관객들의 관심을 모으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다양한 장르를 자랑하는 일본 애니메이션도 수요가 일부 마니아에 국한돼 있는 형편이다. 반면 할리우드의 대형 스튜디오들은 <겨울왕국> 처럼 막대한 자본의 힘을 바탕으로 가족 관객을 타깃으로 한 뛰어난 퀄리티의 영상과 어른들까지 사로잡을 수 있는 매력적인 스토리텔링으로 자신의 브랜드를 확실히 각인시키며 전 세계 관객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물론 거대 자본을 바탕으로 한 디즈니, 픽사의 작품 퀄리티를 따라잡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전형성을 지닌 할리우드의 애니메이션과는 달리 더욱 폭넓은 관객층이 즐길 수 있는 힘 있는 스토리와 개성으로 자신만의 매력과 울림을 가지고 있는 국산 창작 작품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을 즐기고 그 진가를 느낄 수 있는 기회조차 제대로 주어지지 않고 있는 현실 앞에서 편견의 벽은 높기만 하다. 오히려 낮은 퀄리티와 비슷비슷한 내용의 아동 타깃의 애니메이션이 쏟아지고 있는 극장가에서 동급으로 취급되기에 십상이다. 이러한 현실에서도 국내 감독들은 변화를 위한 시도를 멈추지 않고 있다. 홍덕표 감독의 성인을 위한 국내 최초의 VOD 전용 애니메이션 < 발광하는 현대사 >, 현대 문학을 애니메이션으로 오롯이 옮겨낸 안재훈 감독의 < 메밀꽃, 운수 좋은 날, 그리고 봄봄 > 등 최근 선보이고 있는 작품을 통해 본 한국 애니메이션은 작품들의 실패를 딛고 다양성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지난 5월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 피부색깔=꿀색 >이 개봉했다. 벨기에 입양아인 감독, 융 헤넨(한국명 전정식)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다룬 작품은 자그레브, 안시, 아니마문디 등의 애니메이션페스티벌뿐 아니라 몬트리올 국제어린이영화제, 토리노영화제 등 전 세계 80개 영화제에 초청됐으며 23개의 상을 수상했다. 국내에는 2013년 부천국제학생애니메이션페스티벌의 개막작으로 선보이며 화제를 모은 바 있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위한 수단으로 그림을 택했고 만화를 통해 끊임없이 자신의 정체성을 탐구했으며 버려짐, 아시아 등을 다뤄왔다. < 피부색깔=꿀색 >의 동명 원작만화의 출판은 당연한 수순이었고 이의 영상화는 더 많은 관객들과의 소통 기회를 마련했다. 융은 부모와 형제들과 다른 피부색을 지닌 이방인이었고 부모의 관심을 잃고 자신의 존재가 잊혀질까 두려운 소년이었다. 책이 날카롭게 때로는 유머를 담아 솔직담백하게 꿀색 피부를 지닌 소년의 성장기를 그려내고 있다면 영상은 다소 다른 느낌을 전한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한국을 찾은 융의 실제 모습과 입양 후 유년시절의 기억을 오가며 그의 방황과 고민을 그려내지만 그 어조는 따뜻함을 지니고 있다. 특히 실제 이야기의 주인공, 융의 등장은 애니메이션으로는 담보할 수 없는 사실성을 부여함과 동시에 강렬한 인상을 안겨준다. 또한 애니메이션 특유의 상상력으로 주인공의 감정과 생각들을 자유롭게 표현해내고 있다. < 피부색깔=꿀색 >은 허구를 다루는 애니메이션과 사실을 다루는 다큐멘터리라는 공존하기 어려워 보이는 극과 극에 위치한 장르 간의 만남이 의외의 시너지를 발휘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한 예다. 두 장르 간의 교차가 주는 강력한 힘은 다른 여러 작품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크리스 랜드레스 감독의 < 라이언 >은 1960년대 촉망받던 천재 애니메이터로 <워킹>이란 단편으로 오스카상 후보에까지 올랐던 라이언 라킨의 삶을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의 형식으로 담아냈다. 알코올 중독으로 인해 예전의 빛나던 재능은 사라진 채 몬트리올 시내에서 구걸하며 살아가고 있는 라이언 라킨은 작품 속에 직접 나타나지 않는다. 대신 감독과 그의 실제 인터뷰가 초현실적으로 그려진, 그들의 캐릭터들을 통해 전달된다. 마음의 상처와 고통은 얼굴의 유실이나 훼손으로 겉으로 드러나고 감정적인 동요는 촉수나 머리카락의 움직임으로 극적으로 표현된다. 자신과 주변인의 목소리를 통해 회상되는 라이언의 삶은 독창적인 이미지와 결합함으로써 실사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전달한다. 때문에 더욱 사실적으로 느껴지며, 신선한 충격을 안겨준다. 하이로 에두아르도 카릴로, 오스카 앤드레이드 감독의 <리틀 보이스>는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내전으로 인해 불안 속에 떨고 있는 콜롬비아 아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작품은 이들의 인터뷰와 직접 그린 그림으로 만들어졌다. 아름다운 색으로 가득 찬 아이들의 세상은 평화로워 보이지만 내전은 이들의 삶에 그림자를 드리우기 시작한다. 복면을 한 사나이들에게 아빠가 끌려가고, 군인들의 유혹에 아이들까지 총을 들게 되며, 마을은 전투로 인해 쑥대밭이 된다. 순수함이 묻어나는 아이들의 눈과 음성으로 묘사되는 내전의 모습은 피와 총탄이 난무하지도 않고 반군과 군인들이 위압적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아이와 전쟁이라는 대비되는 소재의 충돌은 오히려 아이들이 느끼는 슬픔과 공포의 울림을 더욱 크게 해주고, 이런 상황을 만들어낸 어른들에게 더욱 분노하게 만든다. 어떤 상상이든 그려낼 수 있는 애니메이션은 픽션을 다루기에 최적화된 수단 중 하나일지 모른다. 반면 다큐멘터리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극적인 허구성 없이 보여준다는 점에서 상상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둘은 최고의 조합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사실의 행간 사이나 그 너머에 숨죽이고 있는 이야기들은 애니메이션의 도움을 받아 앞으로 나올 수 있으며 애니메이션은 사실과 만남으로써 허구의 틀에서 벗어나 진정성을 가질 수 있다. 다양한 방식의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