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알고 그때는 몰랐다
사진: KOBIS / © (주)영화사금월 고어한 영화를 좋아했다. 요즘에는 그런 종류의 작품을 보는 게 조금 피곤해졌다. 썰고, 베고, 찌르고, 뽑고 하는 장면을 보는 데는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해서다. 테스토스테론이 넘쳐나던 20대 시절에는 일부러 피투성이 영화를 찾아보고는 했다. 개인의 취향이 반영된 것도 있고 당시 분위기에 영향받은 바도 있었다. 일본 영화 전면 금지와 검열이 심해 웬만한 할리우드 공포 영화의 수입이 보류됐던 1990년대 중반부터 이들 영화를 몰래 찾아보는 움직임이 대학가를 중심으로 성행했다. 국내에서 뒤늦게야 개봉했던 < 스크림 >(웨스 크레이븐, 1996)과 < 황혼에서 새벽까지 >(로버트 로드리게즈, 1996) 등을 조악한 화질과 자막의 비디오로 돌려봤다. 금단의 세계를 경험한다는 쾌감, 남이 못 본 걸 먼저 접한다는 우월감이 더해져 더 강한 묘사의 영화들을 찾다 보니 < 고무인간의 최후 >(피터 잭슨, 1987) < 텍사스 전기톱 학살 >(토비 후퍼, 1974) 등으로 정도가 심해졌고, 2000년대 이후에는 영화제를 돌아다니며 < 이치 더 킬러 >(미이케 다카시, 2001) < 휴먼 센티피드 >(톰 식스, 2009) 등에 열광했다. 물론 고어한 영화만 본 건 아니고 검증받은 클래식도 관람했지만, 피 칠갑 작품들은 곧 내가 즐겨보는 장르가 되었다. 개인적인 선호가 있다 보니 잔인하고 직접적인 묘사도 창의적이면 미덕이라고 생각해 그걸 작품 평가의 척도 중 하나로 삼기도 했다. 박훈정 감독의 < 브이아이피 >(2016)는 그래서 내게는 별 다섯 만점에 세 개 반인 작품이었다. 사진: KOBIS / © (주)영화사금월 그때 20자로 평하길 ‘아이디어 하나로 흥미진진해지는 이야기’라고 했다. ‘북한의 고위층 자제 사이코패스 살인마가 남한에 넘어온다면’이라는 설정이 흥미로웠다. 납치하고, 고문하고, 살인하는 장면이 전면에 나섰고, 잔혹 행위의 여파를 개인의 일탈 수준을 넘어 남과 북과 미국의 역학 관계로 풀어가는 게 기존 장르물과 비교해 색달랐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둔감한 판단이었다. 고어한 영화도 남과 북이 분단된 한국에서 만들면 국제정치와 결합한 또 다른 하위 장르로 발달할 수 있다는 생각에, 여성을 피해자이자 성적 대상으로 비추는 관습에 내재된 문제를 충분히 헤아리지 못한 채 관성에 젖어 장르 친화적으로만 바라본 까닭이었다. 그에 관한 생각의 변화를 촉구한 작품이 <브이아이피>였다. 더 정확히는 이 영화가 공개된 후 벌어진 ‘여혐’과 ‘젠더 감수성’에 관한 논란이었다. 여성 신체 노출과 노골적인 살해 장면이 정말 필요했는지를 둘러싸고 의문이 제기됐고, 남성 중심적 힘의 논리가 지배적으로 작동하는 가운데 여성을 시각적 장치로 도구화한 혐의가 짙어, 그간 남성을 위한, 남성의 영화로 소비되어온 한국 장르 영화계 전반에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빗발쳤다. 선행됐어야 할 인식을 담아내지 못한 20자 평을 쓰고나서 뜨끔했던 기억이 난다. 관련해 모 일간지로부터 전화 인터뷰 요청을 받기도 했는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심정이었다. 영화일 뿐이라고 옹호하기에 영화가 사회적으로 미치는 파장이 컸고, 허구의 룰이 미장센 요소이기도 한 장르물의 논리로 설명하기에 <브이아이피>는 특이점이 있었다. 박훈정의 연출 필모그래피에서 감독의 세계에서 판을 치는 ‘폭력’은 문제 해결의 제1요소이되, 조직을 통해 인간의 아귀 악착과 같은 감정을 ‘은유’하고(< 낙원의 밤 >·< 신세계 >), 슈퍼파워를 내세워 만화적으로 ‘과장‘하고(< 폭군 >·< 마녀 >), 조선시대와 같은 ‘과거’로 돌아가는(< 대호 >·< 혈투 >) 데 적용되면서 현실과 다소 거리를 둔 분위기를 자아낼 여지가 다분했다. <브이아이피>의 경우 남·북·미의 힘의 관계에 더해, 무엇보다 남성의 폭력에 노출된 여성에 대한 묘사를 영화적 설정으로 가볍게 넘기기에는 현실의 실상이 겹치는 정도가 강했다. 이 모든 것을 장르로 풀다 보니 여성 혐오와 차별의 심각한 현실은 재미를 위한 자극적 요소로 소비되고, 감독이 이를 의도한 건 아니어도 관객이 받아들이는 데는 무리가 생긴다. 사진: KOBIS / © (주)영화사금월 박훈정 감독은 이 영화 개봉 당시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관련한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내가 보통의 다른 남자들보다 젠더 감수성이 부족하다는 점은 알고 있었지만 모자란 정도가 아니라 너무 무지했다는 생각이 든다.” 감독과는 그의 다른 연출작 GV를 진행하며 만난 적이 있다. 설명을 들어보니 영화적 취향과 그걸 생성한 과정이 나와 비슷했다. 세대가 같은 박훈정 감독 또한 금지된 영화를 향한 호기심으로 고어 관련 장르물을 찾아보았고, 이 경험이 창작자로서 작품의 세계관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신세계>의 피가 난무한 격투씬이나 각본에 참여한 < 악마를 보았다 >(김지운, 2010)의 신체 훼손 장면이랄지, 한때 즐겨봤던 영화로 형성된 개인적인 기호가 반영되어 있다. <브이아이피>에 등장하는 남자들, 좋게는 제멋대로, 실제는 단세포적이면서 동물, 아니 짐승같은 캐릭터들은 모두 익숙한 면모가 있다. 귀공자풍의 연쇄살인마 김광일( 이종석) 은 만화 『몬스터』의 요한, 그를 쫓는 경찰 채이도( 김명민 )는 기타노 다케시의 < 그 남자 흉폭하다 >(1989)와 < 하나비 >(1997) 등에 등장하는 폭력 경찰을 떠올리게 하는 데가 있다. 이를 가져와 재가공하기보다 감독이 설계한 세계에 맞춤한 결과로, 등장인물이 모두 성인임에도 유치한 구석이 있다. “X 되기 일보직전인 거 알지?”, “벌써 X 된 거 같은데요”와 같은 대사가 있고, 극중 범인 김광일 곁에 굳이 여자 경호원을 배치해 사건을 키우는 묘사에 관해서는 감독의 무신경으로 밖에 설명할 도리가 없다. 흔히 영화와 같은 콘텐츠를 두고 시대의 산물이란 표현을 쓰고는 한다. 그건 작품 자체뿐 아니라 이를 창작한 감독이 카메라 뒤에서 작품에 접근하는 태도도 포함한다. 단, 오해하지 마시기를! 작품과 창작자를 완전히 분리하는 것은 불가능해도 해당 창작물이 사람의 됨됨이까지 파악하는 결정적인 요소가 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박훈정 감독은 앞서 언급한 인터뷰 자리에서 “앞으로 영화를 하면서 이런 부분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좀 더 깊은 고민을 해야 할 것 같다”라며 반성의 의지를 나타냈고, 특히 <마녀>(2018) < 마녀 Part2. The Other One >(2022)에서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슈퍼히어로물을 선보이기도 했다. 물론 피가 난무하는 폭력씬이 등장해도 <브이아이피>에서 제기됐던 문제점들은 많이 개선한 형태였다. 각각의 작품에서 여성 병기로 등장하는 자윤( 김다미 )과 소녀( 신시아 )는 정체성 혼란을 겪으며 자신을 찾아가는데, <브이아이피>에서 기능적인 캐릭터에 가까웠던 남성들보다 이성적이고 입체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마녀>의 자윤, <마녀 Part2. The Other One>의 소녀 / © (주)영화사금월 시대는 요구하는 윤리와 감수성이 있고, 거기서 벗어날 때는 강한 저항에 부딪히거나 외면받기 마련이다. 연출자가 과거에 갇힌 영화적 감성으로 완성한 <브이아이피>는 시대착오의 작품이었다. 현재를 업데이트하지 않은 이 영화는 대중 정서와 괴리된 완성도로 박훈정의 작품 목록에서도 평가와 흥행 면에서 최악을 면하지 못했다. 혹자는 여성 현실을 외면한 묘사와 여성 혐오를 불러일으키는 영화는 금지해야 한다며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지만, 굳이 창작의 영역에 인위적인 금지의 조치를 가하지 않더라도 시대와 통(通)하지 못하는 영화는 자연스레 도태되기 마련이다. 그게 어디 영화에만 해당할까. 시장에서 영화평론가로 통하는 나도 여기서 벗어날 수 없다. 지금 <브이아이피>에 관해서 다시 20자로 평하라고 한다면 ‘뭐 볼 거 있냐, 가자. 보기 험할 거 같다.’라고 쓰지 않을까 싶다. 실은 극 중 채이도의 대사를 빌린 거다. 동료 간부의 장례식에 참석해서 한다는 소리가 “뭐 볼 거 있냐, 가자. 비 올 거 같다”였다. <브이아이피>의 여성에 관한 인식이 크게 다르지 않아 상징적으로 들려서다. 내가 기존에 쓴 이 영화의 20자 평을 접한 이들의 반응도 다시 작성한 단평의 뉘앙스와 다르지 않았을 테다. 고어 취향이라는 방구석 스크린의 틀에 갇혀 넓은 현실에 발 담그지 않은 채 평론가 타이틀을 허울 삼아 좁은 식견을 전문 지식이라 공개해 불편하게 했으니 말이다. 지금이라도 고해성사할 기회가 생겨 다행이다. 고어한 영화와 담쌓고 지내는 건 아니지만, 화제가 되는 작품은 찾아보기는 해도 이 장르를 보는 관점이 이전과 달라졌다. 이 장면이 영화의 콘셉트에 필요했는지, 특정 대상을 향한 혐오의 가능성을 두고 있는 건 아닌지를 점검하면서 재현의 윤리를 따져 묻게 되었다. 앞으로도 잘못 보는 경우가 있겠지만, 시대를 나침반 삼아 바르게 보려고 노력할 생각이다. 다시, 비평 과거에 봤던 영화가 요즘은 달라 보인다면, 관점은 언제부터, 어떻게, 어떤 이유로 달라진 걸까. 시간을 따라 서로 다른 형태와 색깔을 남긴 비평의 궤적을, 필자가 직접 뒤따라가 봅니다. 허남웅(영화평론가) l 《딴지일보》 영화팀, 《FILM 2.0》을 거쳐 영화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1990년대 중반, 미개봉 영화의 복사 비디오를 보면서 영화의 새로운 세계에 빠져들어 30년 가까이 허우적대고 있다. 구조되지 않아도 아직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데 이상하게 그 상태가 또 맘에 든다. 영화에 관한 관심이 아직 식지 않아서다. 그래서 여전히 영화에 관해 글을 쓰고 말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