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앨리
- 감독
- 김동령
- 제작년도
- 2008
한 평생 타인의 이야깃거리가 되는 삶이란 어떤 걸까? 그리고 나의 삶을 규정하는 무수한 명명과 논평들을 뚫고 나와 이야기의 주도권을 잡으려면 어떤 물질적 조건과 태도가 필요할까? 다큐멘터리 < 나와 부엉이 >(박경태, 2003), < 아메리칸 앨리 >(김동령, 2008), < 거미의 땅 >(김동령·박경태, 2012)을 통해 동두천 기지촌 여성의 삶의 서사화와 그 재현 미학을 지속적으로 고민해 온 김동령·박경태 감독의 최신작 <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 >(2019)는 바로 이 질문을 던진다.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의 주인공이자 영화 속 판타지 서사의 공동 창작자이기도 한 박인순은 소위 ‘양공주’로 칭해져온 ‘미군 위안부’였다. ‘미군 위안부’의 생애는 전쟁과 탈식민, 젠더와 섹슈얼리티, 계급과 지역 같은 한국사회의 주요 쟁점들을 교차하고, 저간의 소문과 험담, 의회와 법정의 증언록, 뉴스보도, 학술저작, 소설·연극·영화 같은 예술매체 등에서 명명되고 의미지어지고 해석되어 왔다. 그러는 동안 정작 당사자들은 각기 다른 서술자들의 관점과 입맛에 맞게 자신들의 삶이 맞춰 깎여나가고 조형되는 것을 목도해왔다. 이렇게 풀려나온 다수의 이야기들은 ‘미군 위안부’에 대한 정형화된 형상을 반복해온 측면이 있다.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는 그러한 이야기들의 한복판에서 살아남은 박인순이 마침내 자신이 원하는 장르와 형식으로 이야기를 서술해 나갈 방도를 찾도록 돕는다. 한평생 다른 이들의 이야기에 휘둘려온 박인순은 적어도 죽음만은 자신의 의지와 방식대로 선택하고자 한다. 사실 ‘미군 위안부’에게 있어 죽음조차도, 특히 비극적인 사건이 된 죽음들은 다른 쟁점을 선동하는 도구가 되거나 자극적인 이야깃거리가 되기 십상이었다. 박인순은 적어도 죽음의 방식만은 포기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이며 죽음의 메신저들과 대면한다. 영화는 박인순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전에 화면 사이즈와 내레이터를 바꿔가며 그녀에 대해 이야기 해온 화자들이 누구인지를 드러낸다. 그 화자들에는 김동령과 박경태 감독도 포함된다. 두 감독은 기지촌 여성들을 지원하는 시민단체 ‘두레방’에서 미술치료에 참가한 모습부터(<나와 부엉이>)부터 매일같이 황량한 산등성이와 동네골목을 휘젓고 다니며 미국에 남겨두고 온 딸에게 부치지 못한 편지를 낭독하는 풍경까지(<거미의 땅>) 박인순과 20년 가까이 함께 영화작업을 해왔다. 그렇기 때문에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는 자신들의 기존 작업 혹은 다큐멘터리에 대한 메타영화라고도 할 수 있다. 오프닝에서 박경태 감독은 스스로 다큐멘터리 감독을 연기하며 국가배상소송을 위해 실태조사를 하는 교수(변중희)와 영상촬영을 담당한 신진 미술작가를 박인순에게 소개해주기 위해 데려가고 엔딩에서는 산을 올라가는 박인순을 뒤따르는 카메라 뒤의 목소리로 두 감독이 등장하며 박인순이 서사를 함께 만들긴 했지만 이 영화 또한 두 감독의 프레임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도입부의 안내자 역할을 하는 박감독은 교수와 미술작가와 함께 차를 타고 마을로 들어가며 미군기지가 이전된 이후 수년 동안 마을이 재개발되면서 일어난 변화와 여전히 남아있는 것들-박인순과 그녀의 동료들, 이름도 적혀있지 않은 여자들의 무연고 비석, 산과 들판 등-에 대해 설명한다. ‘뺏벌’이라 불리는 그곳은 ‘배밭’에서 기원했다는 사료가 있지만 또한 여자들 사이에선 “한번 들어오면 빼도 박도 못하고, 죽어서도 나가지 못하는 곳”이란 의미로 통용되기도 했다. 셋은 마을 어귀에서 오래된 당산나무를 만나게 되고 그에 대해 이야기한다. 오랜 시간 뺏벌을 지켜봐 온 당산나무는 재개발에 뽑혀나가거나 굿이 금지되어 당산나무로서의 역할을 못하게 될 위기에 처해있다. 당산나무는 액자 속의 액자로, 이야기 속의 이야기로 들어가는 입구의 표지가 된다. 변교수는 법정증거로 제출할 ‘미군 위안부’의 피해기록을 박인순에게서 얻어내려 하지만 박인순의 구술은 일관성이 없고 시간대가 잘 들어맞지 않으며 이름도 명확하게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한 기록은 제도권에서 인정받기 힘들다. 교수는 기지촌 여성들의 피해를 보상받기 위해 노력하지만 제도권 내에서 일하며 사용가능한 이야기와 그렇지 않은 이야기를 가르고 걸러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전시를 준비하는 젊은 미술작가는 어떨까? 박인순의 이야기에 매료된 그는 이후 홀로 뺏벌을 방문한다. 그는 언어대신 사람들이 버리고 간 현장의 이미지들을 자신의 예술적 질료로 사용하려 한다. 미술작가는 폐허가 된 클럽의 사진을 찍고 버려진 컵, 미러볼, 낙서된 전단지 등의 소품을 전시에 사용할 요량으로 챙긴다. 그는 남아있는 것들에 매혹되지만 정작 그 공간과 소품들의 주인이기도 한 꽃분이의 유령이 나타나자 공포에 질려 도망친다. 미술작가는 그녀들의 이야기를 들으려하기보다는 이미지와 소품들을 맥락에서 떼어내 자신의 전시공간에 맞춰 놓으려 한다. 다큐멘터리 감독, 실태조사를 하는 교수, 기지촌 여성에 관심이 있는 미술작가는 모두 좋은 의도를 갖고 있지만, 자기들만의 틀에 박인순을 맞추려 한다. 여러 화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만드는 것에 공조해주던 박인순은 어느 것 하나 마음에 들지 않자 마침내 직접 스토리텔러로 나서게 된다. 이승에서 배회하는 유령들을 소멸시키고자 저승사자들이 나타나자 박인순도 그들도 함께 동네를 배회한다. 박인순은 어린 나이에 부모에게 버려져 자기의 이름과 나이도 모른 채 포주인 수양엄마에게 팔려왔다. 클럽에서 일하려면 ‘패스’라 불렸던 보건증이 필요했기 때문에 포주는 동네 죽은 여자의 신분을 사서 박인순에게 줬다. 그녀를 가리키는 이름과 나이 자체가 누군가의 이야기 짓기로 구성된 것이다. 화자의 존재 자체가 논픽션과 픽션의 경계를 허물어뜨리는 지표가 된다. 꽃분이를 비롯한 젊은 여자 유령들은 박인순의 젊은 시절인 동시에 죽은 그녀의 동료들이다. < E.T >, <드라큘라>, < 엑소시스트 >를 좋아한 박인순의 취향에 맞게 장르는 호러와 코믹 판타지를 오고간다. 박인순은 자기 죽음의 서사를 원하는 대로 써내려가고자 한다. 방해가 없는 것은 아니다. 감독, 교수, 미술작가가 사라지고 난 후에도 전지적 시점의 내레이터와 저승사자들은 그녀의 이야기에 끊임없이 끼어들어 그리스 비극의 코러스들처럼 논평을 해댄다. 거기에 꽃분이를 찾아온 미군까지 등장한다. 꽃분이와 미군이 ‘윤씨 종친 무덤’에서 함께 잠을 자면서 박인순이 그린 그림의 제목이기도 한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가 연극처럼 상연되기도 한다. 박인순은 로맨틱한 구원자로 자신을 포장하려는 미군의 목을 꽃분이와 함께 잘라 복수를 하고 그의 목을 끌고 직접 저승길로 향한다. 내레이터는 읇조린다. “저승으로 가는 아홉 고개를 넘기 위해 그들은 남편의 살과 뼈를 고아 감쪽같이 먹어치우고 머리만 끌고 가기로 했다. 잘린 머리는 저승의 문지기에게 뇌물로 바치기로 했다. 저승사자는 이 무모하고 자신만만한 여자들을 비웃었다. 하지만 나는 인순이와 꽃분이가 비웃음에 굴하지 않으며 아홉 고개를 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내레이터는 그 동네를 지켜보던 당산나무일 수도 있다. 기품 있는 옷을 지어 입은 박인순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씩씩하고 당당하게 활보하며 저승으로 향한다. 박인순은 시작은 그렇지 못했더라도 결말은 자신의 의지대로 맺고자 한다. 박인순의 이야기는 비참에서 비장으로("그런 이유로 나는 죽음을 비장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증언에서 판타지로, 잔여에서 초월로, 운명의 피해자에서 운명의 대결자로, 치유에서 복수로, 이야기 소재에서 이야기하는 자로, 진부하고 교환가능한 피해자의 이야기에서 단독자 영웅의 극적인 이야기로(“인순은 반복되는 지루한 이야기를 참을 수 없었다”) 이동한다. 그러는 동안 영화는 다큐멘터리와 극영화 그리고 미술, 연극, 영화, 연구조사 등의 미학형식을 오고 간다. 혼란스러운 비연대기적 기억은 환상성 속에서 예민한 실재적 감각으로 살아나며 재현 불가능한 것을 재현 가능하도록 만든다. 영화는 더 나아가 기존 페미니즘 미학에서 금기시되어왔던 것을 가시화하는 전략을 취한다. 페미니즘 미학은 잘 들리지 않고 주변화 되어온 존재 양식을 재현하기 위해 유령, 잔여, 지나간 역사, 재현불가능한 트라우마의 미학을 고안해 왔다. 하지만 이러한 미학적 형식은 반복되면서 때때로 매너리즘에 빠져 그 현존과 물질성이 의도치 않게 지워지기도 했다. 박인순은 여기서 스스로를 통제되지 않고 비규범적이며 제멋대로 구는(unruly) 자신의 신체성을 스펙터클로 내어준다. 카메라는 구석구석 꼼꼼히 씻어 내려가는 목욕하는 나체를 촬영한다. 그 몸은 적당히 살집과 주름이 있어 그 물질성을 묵직하게 감각하게 한다. 성판매를 하며 돈을 벌었던 몸이기도 하다. 박인순의 몸은 단순히 고통과 피해의 증거나 온갖 말들의 전장을 넘어서 팔을 크게 움직이며 동네를 휘젓고 성큼성큼 걸어 다니고, 그림을 그리고, 돈을 벌고, 목욕하는 몸이다. 그것은 더 이상 부인할 수 없는 신체적 현존이다. 유령들은 과거에 머물러 있지 않고 과거부터 현재까지 지속된 것 혹은 침전 중인 것이다. 그런 이유로 유령과 저승사자들도 어떤 효과도 없이 뻔뻔하게 보통 인간과 다를 바 없이 표현되고 구분 없이 돌아다닌다. 심지어 동네 여자들은 저승사자에게 쫓기는 옛 친구를 숨겨주기까지 한다. 이와 유사한 맥락에서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는 미군에게 끔찍하게 살해된 윤금이의 살인 현장 사진을 사용한다. 미국의 식민주의를 비판하고 분노를 야기하기 위한 수단으로 진보진영은 한때 윤금이 살인 현장 사진을 공론장에서 사용해왔다. 페미니스트들은 이 사진의 사용은 여성의 피해사실을 선정적 스펙터클로 전시하는 2차 가해라고 비판해왔다. 그것은 타당한 비판이었고 페미니스트 예술은 피해 사진을 스펙터클화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해왔다. 그러나 이 영화는 거꾸로 그 사진을 스크린에 가시화하며 기존의 관점에 도전한다. 여전히 정치적이고 미학적인 판단에 있어 혼란스러운 측면이 있음에도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에서 한국 페미니스트 예술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이 사진의 사용은 고통의 전시가 아닌 이미지 정보 과잉의 시대에 거꾸로 그 여성의 고통의 대면과 물질화를 시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결말에서 박인순은 마침내 죽음으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저승사자와 대적한다. 신체성의 감각이 첨예화되는 이 장면은 그로테스크와 어이없는 코믹함이 혼란스럽게 뒤섞인다. 촛불이 쭉 늘어선 동굴의 연극적인 미장센을 배경으로 “아무도 널 기억하지 못할 것”이라며 “죽어라”라고 명령하는 저승사자에게 박인순은 기합소리 뒤에 갑자기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인공적인 기이한 웃음소리를 낸다. 그것은 시원하게 터트리는 통쾌한 웃음도 아니도 그렇다고 소리 없는 비웃음도 아니다. 출처도 알 수 없고 누구의 것인지도 알기 어려운 웃음, 입에서 나오는 것인지도 의문인 웃음이다. 잌히히히, 앜하하—아앜알, 잌히히키키알앜흐으, 으흐크아하하크오호호. 그러자 화면 밖에서 다른 여자들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박인순과 윤금이와 그녀의 동료들이 웃고 운다. 그것은 신체들을 깨우는 오염성 짙은 통제할 수 없고 비규범적이며 제멋대로이고 즉흥적인 웃음이다. 으흐흑아하학, 아하하흑, 이이킥이익. 때로는 울음소리, 분노의 비명소리와 구분되지 않는다. 캐스린 로위는 『제멋대로인 여자: 젠더와 웃음의 장르』(1995)에서 뤼스 이리가레이와 엘렌 시수를 경유해 미하엘 바흐친이 그로테스크의 예시로 든 ‘망령 나서 웃고 있는 임신한 노파 조각상’을 재해석한다. 노파는 왜 웃었을까? 로위는 노파는 공공장소에서 자신의 몸을 “부적절하게” 노출시켜 “그들 자신을 스스로 스펙터클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라는 오래된 금기를 파괴한다고 말한다. 그 웃음은 소수 집단의 기존 권위와 체제를 향한 분노이다. 그 웃음은 기존의 권위와 체제를 위반하며 공간을 자기들의 방식으로 점유하고 신체들을 재배치한다. 그것은 천진난만한 때 묻지 않은 웃음이나 남자들에게 반응해주는 수동적인 웃음과는 다르다. 그녀들의 웃음은 “카니발적인 사회적 실천”이며 자기를 향한 응시를 함께 웃을 수 없는 상대방에게 돌려버리는 공격의 웃음이다. 그로테스크한 웃음으로 체제들을 무너트린 박인순에 대해 내레이터는 말한다. “여자는 혼자 영화관에 가는 것을 좋아했다. 어둠속에서는 누구도 그녀를 알아보고 창녀라고 손가락질하지 않아 좋았다. 모두가 거대한 환영을 바라보기 시작하면 자신도 사람들 중 일부가 된 것 같아 그제야 편안히 쉴 수 있었다.” 그렇게 그녀는 스스로를 이야기이자 스펙터클로 만들며 사각의 프레임 속으로 들어가 영화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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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re or Less - <모어>(2021), 2022.12.09. 20. 이름을 지우고 살아남기 - <안나-감독판>(2022), 2023.01.09. 21. 우리에겐 따뜻한 국물과 유머가 필요하다 - <수프와 이데올로기>(2021), 2023.02.07. 22. 아직 끝나지 않은 - <미망인>(1955), 2023.03.10.
한 달 전이었다. 겨우 한 달 전의 일이다. 마감 때문에 저녁을 못 먹고 늦게까지 일한 날이었다. 속이 쓰렸다. 늦은 밤,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향하는 어두운 길을 걷고 있었다. 지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아 전화한다며 짐짓 건조한 말투였지만 떨림이 가득했다. 음색만으로 겁이 났다. “일란이 많이 아파. 위암이래.” 용산참사를 다룬 < 두 개의 문 >, 그리고 후속작인 < 공동정범 >을 만든 김일란 감독의 소식이었다. 상황에 대한 설명이 계속됐지만 그다음 말은 들리지 않았다. 화가 났다. 목구멍이 먹먹해지고 빈속이 뒤집어졌다. ‘왜?!’란 말만 되뇌었다. 어두운 길이 현실적이지 않게 캄캄했다. 그러다 문득 지난겨울이 떠올랐다. 촛불이 가득 찬 광화문 거리, 집회가 매주 이어지던 어느 주말이었다. 모여 있던 미디어 활동가와 독립다큐멘터리 감독들이 집회 행진을 촬영하러 흩어졌다. 캔커피로 언 손을 녹이는 데 상황실을 맡고 있던 김일란 감독이 “한주도 안 쉬었어. 진짜 힘들다”라며 툭 진심을 꺼내 놨다. 웬만해선 힘들다는 이야기를 안 하는 사람이 그런 말을 하니 당황스러웠지만 그게 우리 일이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일을 나누지 못해 미안하기만 했다. 미디어 활동가들과 독립다큐멘터리 감독들은 오랫동안 한국사회에서 주류 매체가 외면했던 거리의 목소리를 담아냈다. 작년 겨울에도 늘 그랬던 것처럼 자기 ‘역할’을 다 하며 거리를 지켰다. 그 자리에 박종필 감독도 있었다. 김일란 감독 소식을 들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일요일 오후였다. 전화가 왔다. 세월호 관련 다큐멘터리를 배급하다 블랙리스트에 올라 곤욕을 치룬 시네마달의 대표 김일권 피디였다. 세월호가 인양된 후부터 목포에 내려가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과 함께 촬영 중이던 박종필 감독의 소식을 전했다. 7월 초부터 연락이 안 돼 다들 걱정하고 있던 박종필 감독을 만났단 말과 함께 그가 간암이라고 했다. 그리고 알고 있어야 할 사람들에게 전화 중인데 다른 이에게는 알리지 말라고. 박 감독이 원치 않는다고. 당부했다. 세월호 촬영 중에 아프면 사람들이 세월호 때문에 아픈 거라 할 테니 그럼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에게 미안해서 안 된다고. 병세로 변해가는 자신의 낯선 몸을 마주하면서도 다른 사람을 염려하고 배려한다. 박종필 감독은 내겐 큰 선배이자 질투의 대상이었다. 그의 다큐멘터리 속 주인공은 유난히 멋졌다. 그런 주인공을 만날 수 있다는 게 샘났다. 하지만 그가 자신의 주인공을 피사체로만 여기지 않고 그들과 삶을 나눴고 그로 인해 그의 주인공이 더 멋져 보일 수 있단 것은 나중에 알았다. 20년 동안 박종필 감독은 99년 < IMF 한국, 그 1년의 기록: 실직 노숙자 >를 시작으로 무수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했고 홈리스운동과 장애인이동권운동을 함께했다. 최근에는 416연대 미디어위원회 활동과 퇴진행동 미디어팀에서 활동했다. 독립다큐멘터리만을 상영하는 영화제인 인디다큐페스티발을 어려운 재정 상황에서도 같이 꾸렸다. 그는 영화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원칙주의자여서 종종 주변을 답답하게 만들기도 했지만 그 원칙들에 선뜻 동의가 돼 구박하면서도 함께했다. 존재 자체가 고마운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결국 세상을 떠났다. 사회장으로 치러진 장례는 박종필 감독 덕분에 덜 외로웠던 사람들이 내내 함께 했다. 다행히 가는 길 외롭지 않았다. 두 감독의 일은 대부분의 독립영화 감독들에게 자신의 일처럼 충격을 줬다. 그들 대부분이 제작비와 생활비를 위해 쉬지 않고 일하며 자신의 건강을 돌보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만나면 건강검진은 하고 있는 지 묻게 된다. 하지만 건강검진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일이란 걸 잘 안다. 7년 전 생활고에 생을 마감한 숲속 홍길동이라 불렸던 이상현 미디어 활동가가 있다. 이상현은 장기투쟁사업장을 누비며 외로운 노동자들과 함께 했다. 회사의 폭력을 기록하고 경찰의 탄압을 기록했다. 그런 그가 생을 마감할 때는 단순히 생활고 때문이 아니었을 것이다. 나에게 미래가 있을까 하는 질문에 대답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떠나고 그가 지켰던 투쟁사업장들이 나섰다. 그와 그의 카메라 덕분에 경찰에게 덜 맞았고 덜 외로웠다며 마음을 모았다. 기륭전자 조합원들이 주축이 돼 ‘현장을 지키는 카메라에게 힘을’(이하 현카)이란 지원제도를 만들었다. 기륭전자 조합원들은 10년 넘게 비정규직 투쟁을 했다. 그 현장에도 이상현 영상 활동가가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박종필 ’인 김천석 미디어 활동가도 있었다. ‘현카’는 제목 그대로 현장을 지키는 카메라에게 힘을 주기 위한 지원제도다. 여느 지원제도와는 달리 활동에 지원해주는 제도다. 지원의 성과로 영화가 나오지 않아도 된다. 생활비로 써도 되는 지원금이다.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십시일반 모아준 후원금으로 일 년에 한번 지원한다. 영상미디어센터 미디액트의 현물지원도 있지만 한 팀이 받을 수 있는 지원금은 많아야 200만원이 전부다. 지원금으로 밀린 월세를 낸 감독도 있고 새롭게 들어가는 작업의 장비를 장만한 감독도 있다. 적은 지원금이지만 그들에게는 작업을 계속하라는 메시지로 활동을 계속하라는 메시지로 읽힌다. 올해는 6팀에게 지원을 했다. 개인의 마음이 모인 후원금이라 적은 금액은 아니지만 지원해야 할 곳은 많고 지원금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매번 드는 생각은 개인의 선의로만 우리의 삶이 유지돼야 할까 하는 질문이다. 우리도 이 사회의 구성원이고 시스템 속의 존재들이다. 하지만 시스템은 너무 멀고 혹은 우릴 외면한다. 가까운 사람들의 아픔이 내게로 온전히 전해지면서 버거웠지만 또한 무뎌져서 흐릿했던 지난 십 년의 시간이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이미 임계점을 넘어선 상황을 그저 버티고만 있었다. 가장 가까운 시스템은 영화진흥위원회다. 언젠가부터 영화를 문화가 아닌 상품으로만 여기는 영화진흥위원회는 독립영화를 골방의 몇몇을 위한 영화로 치부했다. 독립영화제작지원사업의 명칭을 교묘히 변경하며 독립영화의 자리를 협소하게 만들고 관련 인프라를 파괴해 관객을 만날 수 없게 만들었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정책 방향의 변화를 분석한 「무엇을 위한 진흥인가? 영화진흥사업의 목적과 비전 그리고 흐름」(김지현, 독립영화 정책연대, 중앙대학교 전임연구원)를 보면 독립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그동안 어떤 환경에서 고군분투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영화산업과 영상문화의 조화로운 발전’을 한국영화진흥종합계획의 비전으로 삼았던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문구를 찾아볼 수 없다. 최근 세부사업을 보면 ‘투자자본 안정화/투자출자사업’이란 사업에 전체 예산의 30%를 사용하고 있다. 문화는 빠지고 오직 산업으로서 영화가 있는 것이다. 정작 창작자들을 위한 지원은 8.6%가 전부다. 처음 이 글을 쓸 때는 독립다큐멘터리의 공공성에 대해 강조하고 싶었다. 독립다큐멘터리가 이 사회를 위해 하는 일에 대해 언급하고 싶었다. 그렇기에 독립다큐멘터리에 더 많은 지원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었다. 하지만 예술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고 그것을 진흥해야 하는 영화진흥위원회가 산업만을 중심에 놓고 사업을 펼치고 있는 현실에서 또 다른 오독을 만들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새롭게 제정된 <문화기본법>을 언급하는 것이 좋겠다. “제4조(국민의 권리) 모든 국민은 성별, 종교, 인종, 세대, 지역, 사회적 신분, 경제적 지위나 신체적 조건 등에 관계없이 문화 표현과 활동에서 차별을 받지 아니하고 자유롭게 문화를 창조하고 문화 활동에 참여하며 문화를 향유할 권리(이하 ‘문화권’이라 한다)를 가진다.” 독립영화를 한다는 것이 특별해서가 아니다. 공공제로서 독립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인간으로서 가지는 아주 보편적인 권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기본적인 권리를 행하면서도 더 이상 아프지 않고 더 이상 억압받지 않아야 한다. 아프지 않고 억압받지 않으며 작업하고 싶다. P.S. 태준식 감독의 칼럼 ‘또 다른 박종필들’(한겨레 시론 8월 1일 치)와 김동령 감독의 칼럼 ‘또 다른 박종필들 2’(한겨레 칼럼 8월 7일 치)에 이어서 제목을 ‘또 다른 박종필들 3’으로 쓴다. + 상단 사진은 오마이뉴스 기사의 사진을 활용하였습니다. ⓒ 최윤석
아마도 밤마다 화려한 네온사인이 번쩍였을, 한 때 ‘리틀 시카고’로 불렸던 그 곳은 가난에 떠밀려온 한국 여인들의 마지막 피난처였다. 폐허처럼 을씨년스럽게 변해버린 ‘리틀 시카고’는 이제 ‘아메리칸 앨리’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필리핀 등지로부터 떠밀려온 이주 여인들의 터전. 김동령 감독은 바로 그 기지촌 골목의 구석구석, 마치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그 곳에서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는 여인들의 삶을 찍는다. 율리아, 마리아, 나스챠, 레베카, 에덜린, 리디아, 그리고 K는 각기 다른 사연을 품고 그 곳에 흘러오거나 남겨진 여인들이다. 카메라는 이 여인들의 일상 속에 조용히 자리 잡는다. 몇몇 장면에서 여인들은 카메라를 쳐다보며 자신의 요동치는 내면을 고백하기도 하지만, 영화가 이들의 삶에 대해 자신의 견해나 시선을 첨가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들의 드라마틱한 사연들은 그저 무심한 자막으로 전해질 뿐이다. 영화는 그 어떤 신파도 경계한다. 동정이나 연민어린 접근도, 그렇다고 사회구조에 대한 면밀한 분석도 거부한다. 다만, 모두가 떠나고,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그 곳에 지금도 여전히 누군가의 삶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줘야 한다고 믿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여인들의 구구절절한 사연들보다 인상적인 건, 이들을 둘러싼 삶의 구체적인 풍경들이다. 다 쓰러져가는 공간 안에 흩어진 삶의 도구들, 이를테면 초라한 빨래들, 낡은 냄비, 소주가 담긴 술병, 벽에 걸린 시계, 싱싱한 야채들, 되찾을 수 없는 꿈처럼 한쪽 구석에 놓인 곰 인형들, 바닥에 널브러진 약봉지, 그리고 지나간 영화가 반복해서 나오는 오래된 텔레비전과 추억의 가요가 흐르는 오래된 라디오..... 거기에 삶과 죽음이 있고,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깊은 회환과 슬픔, 외로움과 분노가 있다. 또한 바로 그 풍경에 카메라가 개입할 수 없고 다만 바라볼 수밖에 없는 삶이 존재하며, 영화는 그걸 최대한 존중한다. 이 유령 같은 도시, 착취와 폭력에 얼룩진 여인들의 삶을 그 순간만큼은 어떤 잣대로도 재단하지 않고자 애쓰는 카메라의 마음 같은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이 여인들의 망각된 죽음 앞에서만큼은 감정적인 흔들림을 참지 못하는 것 같다. 카메라가 동두천의 골목을 떠나 어느 언덕에 방치된, 잡초가 무성한 무덤들, 이름이 아닌 번호가 새겨진 익명의 죽음들 앞을 부유할 때, 분명 그 곳에 존재했으나 죽어서도 기억되지 못하는 자들의 비통함이 영화 속으로 스며든다. 이제 이 여인들은 어디로 가야할까. 전지구적 자본주의는 가난한 여인들에게 전지구적인 착취의 굴레를 안기고 이들의 삶이 뿌리내릴 장소를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도 삶을 단단히 붙잡고 있는 여인들에게서 우리는 위안을 얻어야할까. 이들이 그곳을 벗어나는 길은 죽음밖에 없다고 무기력하게 체념해야 할까. 잔혹하고 비정한 세상을 사는 < 아메리칸 앨리 >의 카메라는 쓸쓸하고 냉정하게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