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cubic]김준기 공공미술 이야기 - 빛 97
- 제작년도
- 2008
신사의 봄은 역설적이게도 벚꽃이 만발한 완연한 봄기운으로 아름답기까지 하다. 거기에 고령의 어머님을 휠체어에 모시고 한 여인이 천천히 들어선다. 바람에 떨어지는 벚꽃 잎이 술잔 위에 떨어진다. 장면은 어느새 그 잔을 들고 둘러앉아 노래를 부르며 목숨을 거는 조종사들의 복종의식으로 바뀐다. 그들이 부르는 노래는 군가 ‘동기의 사쿠라’로 천황을 위해 목숨을 바쳐 나라를 구하는 특공대의 생을 벚꽃으로 비유한 노래다. 1. 너와 나는 동기의 사쿠라. 같이 훈련소(군사 학교)의 정원에 핀 꽃. 그렇다면 지는 것은 각오하자. 멋지게 지자 나라를 위해. 2. 너와 나는 동기의 사쿠라. 같이 훈련소의 정원에 핀 꽃. 혈육 나눈 사이는 아니지만 왠지 마음이 맞았지. 3. 너와 나는 동기의 사쿠라. 같이 항공대의 정원에 핀 꽃. 바라봅니다 노을 진 남쪽 하늘을. 아직도 돌아오지 않는 1 번 비행기를 기다리며... 4. 너와 나는 동기의 사쿠라. 같이 항공대의 정원에 핀 꽃. 그만큼 맹세한 그 날을 기다리지 못하고 어째서 죽어 떨어져야 하는지 5. 너와 나는 동기의 사쿠라. 그처럼 흩날릴지라도. 꽃의 도시, 야스쿠니 신사의 봄날. 그 가지에 피어 다시 만나자. 야스쿠니 신사는 1869년(메이지 2년), 군 희생자의 넋을 달래기 위해 설립한 초혼사가 그 전신으로 일본 천황을 위해 싸우다 목숨을 잃은 사람들을 신으로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일본 제국주의 침략의 상징적 공간이다. 한일 간 역사인식은 참으로도 그 출발부터가 다르다. 일제강점기의 강압적인 통치와 수탈에 이어서 2차 대전(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에 의해 운영된 위안부가 그렇고 강제징용이 그랬다. 김준기 감독은 위안부 문제를 다룬 애니메이션 <소녀이야기>를 제작 국내외적으로 피해여성의 육성 녹취록을 바탕으로 실상을 널리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두 번째 역사고발 애니메이션 <환> 은 실화에 픽션을 더해 보다 예술적으로 표현하고자 노력한 작품이다. 천황을 위한 죽음을 통해 신사에 ‘가미’ 즉, 신(神)으로 모셔진다는 사상은 일본 전통신앙에 국수주의와 군국주의 지배 사상이 결합하여 왜곡된다. 보잘것없는 민초가 위대한 전쟁의 영웅들과 함께 나란히 묻혀 숭배받는다는 것은 현생을 뛰어넘는 영생불사 신의 환생인 것이다. 가미카제 [kamikaze, 神風(신풍)]는 신이 되는 의식으로 기능하게 되고 여기서 개인의 인간성과 주체성은 말살되어 비참하게 산화하게 된다. 실제로 가미카제용 비행기는 착륙장치와 탈출장치가 없이 폭탄만 가득 싣고 목표지점에 겨우 갈만큼의 기름만 주고 나는 방법만 익힌 어린 조종사들이 강제로 태워졌다는 증언 속에 징용조선인이 육탄방어와 공격에 대부분 희생되었을 것으로 본다. 주인공 또한 당시 가족을 지키고자 강제로 조종석에 앉혀져 다음 생에서나마 조국의 가족과 함께하고자 하였을 것이리라... 야스쿠니신사와 일본항모 갑판 위에서 치러지는 출격 전 복종의식은 그들에게 개인에서 신이 되기 위한 경계를 넘는 숭고한 의식이지만 조선인으로 참전한 주인공에겐 망국의 식민지 노예나 다름없는 처지에 참담함은 이루 말로 표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의 제국주의 전쟁에 어쩔 수 없이 끌려가 희생당한 참전 조선인들의 넋이 야스쿠니 신사에 봉인된 체 70여 년이 넘게 매일 출격하는 악몽에서 그들을 자유롭게 해야 한다고 이 작품은 오늘날 우리들에게 애타게 호소하고 있다. 그네들이 애국심과 전우애로 목숨을 바쳐 사쿠라 가지에 다시 피어나길 염원하였듯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되어 오늘날도 끝나지 않고 계속 반복되는 순환의 전쟁터에서 산화한 징용 조선인의 넋이라도 구해오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익히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을 사실적인 이미지로 우리 앞에 강렬히 재현하되 감성적인 터치를 하고자 애쓴 스토리 설정은 마지막에 도달해 주인공의 넋마저 욱일기의 방어벽에 막혀 어머니와 부인과 만나지 못하며 더욱 간절하게 한다. 주인공에 좀 더 감정이입이 되기 위한 설명과 이야기가 부족한 점을 빼고는 민감한 역사적 소재를 예술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으며 단편이지만 스케일적인 면에서나 영상적 완성도 면에서 매우 훌륭한 작품이라고 본다. 이미 이탈리아에서 개최된 제17회 퓨처필름영화제에서 관객상을 받는 등 해외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단편이라 영화제나 특별 상영회에서나 만나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인터뷰가 중심이 된 다큐멘터리들은 많다. 인터뷰는 제작자와 등장인물이 서로 대화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다. 작품 속에서 대화가 온전히 다 드러나는 경우도 있고, 제작자의 목소리가 질문만 하는 경우, 제작자의 목소리가 배제되고 등장인물의 목소리만 들리는 경우가 있다. 어떤 것을 선택하든지 혹은 보여지든지 관객들은 등장인물과 제작자의 모습을 살필 수 있다. 다만, 제작자의 목소리나 모습이 등장하지 않는 경우에는 등장인물을 통해 제작자의 감정이나 태도를 짐작할 수 있게 된다. 김준기 감독의 < 소녀이야기 >, 태준식 감독의 <미안해요, 함께 할게요>는 등장인물의 목소리만 나온다. < 소녀이야기 >는 일본군 위안부로 아픈 삶을 살았던, 정서운 할머니의 이야기이고, <미안해요, 함께 할게요>는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상처를 나누려고 하는 정신과 의사 정혜신의 이야기다. <소녀이야기>는 정서운 할머니의 생전 육성을 바탕으로 과거의 역사를 애니메이션으로 재현했다. 공장에서 일하면 아버지의 옥고를 풀 수 있다는 말만 듣고 떠난 길이 일본군을 상대해야 하는 일인 줄은 몰랐다. 정서운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그녀가 겪은 비극적 사건을 현실로 다시 끄집어 낸다. 애니메이션으로 재현된 것은 그녀의 인터뷰에 근거한 ‘현실’이고, 이것은 현실을 기록하는 또 다른 표현이 된다. 관객은 인터뷰의 생생함과 애니메이션의 동화적 사이에서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지금 일어나고 있는 문제와 부딪히게 된다. 여기에 위안부 문제를 안고 먼저 세상을 떠난 그녀의 인터뷰는, 현재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지니는 역사적 책임감에 안타까움을 더하게 한다. <미안해요, 함께 할께요>는 정신과 의사 정혜신의 아픔과 미안함을 듣는다. 정혜신은 죽음의 긴장감이 없는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을 만나고, 그들의 고통 속으로 같이 했던 시간을 말한다. 이 과정에서 그녀가 이야기 하지 못한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정보가 제시된다. 그리고 다시 광화문 앞에 선 정혜신, 그녀의 인터뷰는 그녀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쌍용차 노동자들의 문제를 공감하고자 하는 이들의 목소리이다. 마지막 장면에 서 있는 다양한 연령대 사람들의 메시지는 공감하자는 일종의 제안이고, 극단적 고립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움직임이다. 다큐멘터리는 현실을 다루지만, 그 안에 일어난 사건과 인물은 언제나 과거의 기록들이다. 시간은 흘러가고 있고, 보여진 것들은 이미 과거의 것들이기 때문이다. 과거에 일어났던 일이 현실로 다가오게 만드는 힘 중에 하나가 인터뷰다. 인터뷰를 통해 관객은 ‘이런 일이 있었구나’ ‘정말 그렇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관객은 그 인터뷰를 신뢰한다. 단지 그 말을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이나 등장인물이 과거를 기억하는 현실의 태도는 현재이고,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 문제들 속에서 다큐멘터리가 발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두 작품은 그렇게 과거가 아니라 현재를 말하고 있고, 그녀들의 인터뷰를 통해 제작자들이 자신의 발언을 하고 있다.
독립애니메이션 최대의 축제인 인디애니페스트(9.20~9.25)가 올해도 인상적인 작품들에게 상을 안겨주면서 축제의 시간을 끝냈다. KIAFA 특별상 독립애니메이션 협회의 집행위원들이 주는 이 상은 다른 부분이 보편적이지 않더라도 하나의 강력한 장점을 가지고 있는 작품에게 수여된다. 수상작은 김왕걸 감독의 < 집 >. 이 작품은 연필 드로잉으로만 그려진 페이퍼 애니메이션이다. 감독은 다른 것을 신경쓰지 않고 한국사회에 집이 주는 계급 구조만을 집중 조명하였다. 치솟는 전세와 작아지는 사람들의 여유와 마음. 대한민국은 집의 공화국이며 집이 계급이다. 주제에 집중하는 능력은 단연최고였고 현실적으로 한국에 살고 있는 우리는 이 작품에 깊이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초록이상 < 마당을 나온 암탉 >의 오성윤 감독의 후원으로 만들어진 상이다. 그래서 상이름도 주인공의 이름을 딴 초록이 상. 초록이 상 수상자는 < 연인의 방 >의 전용석 감독이다. 이 작품은 스탑 모션 애니메이션으로 한정된 장소를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물론 집이 기울어지는 아이디어는 새롭지는 않다. 유명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벨런스>와 박지연 감독의 < 도시에서 그녀가 피할 수 없는 것들 >에도 이미 나오는 아이디어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균형이 주제라기 보다 기울어가는 남자의 마음을 기울어가는 집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런한 현실적인 연애정서를 스탑모션으로 그것도 현실적이고 재미있는 대사로 표현한 것은 이 작품의 강점이다. 영화아카데미 실습작품으로 만들어진 이 작품은 짧은 시간 안에 좋은 컨셉으로 승부하는 감독의 재능을 보여준다. 새벽비행상 성혜진 감독의 < 너 때문에 >에는 어떤 의미에서 예스러운 작품이다. 작품에 묻어나는 정서도 지금의 삼사십대가 기억하는 풍경, 그리고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놀던 남매의 감정을 잘 잡아내고 있다. 그런데 감독이 여고생 같은 모습이기 때문에 더 놀라웠다. 손으로 일일이 문질러서 만들어낸 부드러운 아트웍은 흡사 페인트온 글라스와 같이 자연스러운 장면 변화의 느낌을 준다. 오랜만에 나타난 전통의 강호 계원 조형예술대학교의 작품이다. 심사위원 특별상 < 수영장의 고양이들 >. 이 작품은 작년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졸업 작품들 중 가장 호평을 받았던 작품이다. 단색이지만 섬세하게 배열된 색의 조화와 캐릭터의 디자인들이 인상적이다. 델리 스파이스의 노래 ‘고양이와 새의 관한 진실’과 같이 죽의 고양이에게서 죽음과 삶에 대한 철학적 심상을 표현하였다. 독립보행상 < 연애 놀이 > 정유미 . 전작 < 나의 작의 인형 상자 >, < 먼지 아이 >로 이미 많은 영화제에서 수상한 정유미 감독은 최근 가장 주목받는 감독 중의 한명이다. 그녀의 특징은 포스트 모던 하다는 것. 작화와 컷아웃 형식이 결합된 움직임은 분절되고, 절제된 사운드는 효과음을 빼고는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내용 또한 일반적인 영화의 스토리 텔링과 전혀 다르다. 영화는 다큐를 보듯, 현상을 관찰하듯 감독이 관찰자처럼 인물을 냉정하게 바라본다. 전작과 같이 각 장면들은 반복와 차이를 통해 인물의 내면을 드러낸다. 흑백의 극사실주의 묘사가 결합된 이 작품은 연애를 ‘서로의 반응을 통해 일어나는 놀이’로 보고 인물의 감정을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인디의 별 인디의 별은 < 오목어 >의 김진만 감독. 이 작품으로 김진만 감독은 관객상과 대상을 동시에 수상하였다. 전작에 비해 눈에 띄게 작품이 재미있어 졌다. 톡특한 목소리연기를 한 연기자가 누구인지 궁금해서 물어 보았더니 모든 연기는 본인이 했다고 한다. 김진만은 한국에서 보기 드문 장인정신을 유지하는 작가이다. 그의 작업은 혼자서 오랜기간 촬영을 거쳐서 완성된다. 스탑 모션은 중간 움직임을 수정할 수 없고 한 컷이 잘못되면 그 컷을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야 한다. 애니메이션은 기본적으로 노동의 산물. 이렇게 섬세하고 꾸준하게 좋은 스탑모션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감독이 있다는 것은 한국 애니메이션의 행운이다. 게다가 점점 재미있어서져서 웃기기까지 하다. 그의 대상 수상은 너무나도 당연해 보인다. 독립 작가들, 특히 10년이 전부터 작품을 만들던 박현경, 김준기 감독의 신작은 반갑고 그리고 꾸준히 작품을 만드는 정민영, 오수형, 양선우 감독 그리고 김예영, 김영근, 강민지 감독 등의 작품을 보면 다양한 형태로 작업을 유지하고 있는 이들의 폭이 조금씩이지만 늘고 있다는 사실이 무척 다행이다. 초창기 인디애니 페스트는 실사 영화제에서 소외된 애니메이션 작가들의 공동체를 만들고자 노력하였고 또한 아시아의 작가들과의 교류도 점차 늘어가게 되었다. 이런 역량을 유지하면서 점차 관객을 늘리는 형태가 된다면 정말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