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티 프리티 씽
- 감독
- 스테판 프리어스
- 제작년도
- 2002
- 출연
- 오드리 토투, 치웨텔 에지오포, 세르지 로페즈, 소피 오코네도
극장에서 일한다고 하면, 많은 이들이 “영화 많이 보겠다”며 부러워한다. 우리 극장처럼 기획전과 특별전을 주로 하고 상징성이 있는 극장의 경우, 그런 영화들을 남들보다 더 쉽게 접할 수 있을 거라는 부러움을 받기도 한다. 무리도 아니다. 나도 처음 입사할 땐 적어도 이 극장에서 상영하는 영화들만큼은 많이 볼 수 있겠구나 기대했다. 영화 일을 하는 사람들은 도리어 너무 바빠서 영화를 보기 힘들다는 사실을 뼛속 깊이 알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물론 극장에서 일하는 이들은 영화사나 영화제, 영화 제작 현장의 사람들과 처지가 약간 다르다. 우리 회사는 스태프들이 영화를 보는 데에 적지 않은 편의를 제공하기도 한다. 사무실에서 몇십 걸음만 걸으면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기약이 없는 영화들을 상영하고 있다. 꼭 우리 극장만이 아니라도, 우리가 세 들어 있는 서울극장에서는 블록버스터부터 예술영화까지 온갖 개봉작들을 상영한다. 함께 세 들어 있는 사이좋은 이웃 인디스페이스에서는 멀티플렉스가 찬밥 취급하는 보물 같은 독립영화들을 전문적으로 상영한다. 그러니 이 극장에서 이 지리적인 위치를 잘만 활용하면, 그리고 내가 열정을 발휘한다면 서울 시내에서 상영하고 있는 영화들 중 80% 이상을 볼 수 있다. 실제로 나는 여타의 ‘평범한’ 관객들보다 많은 편수의 영화를 본다. 영화가 업이고 영화글을 쓰기도 하니 당연하다. 그럼에도 일 년에 보는 영화 편수는 해가 갈수록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다. ‘내가 발휘하기만 하면’ 되는 그 노력과 열정의 크기가 문제다. 내 노력과 열정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노력과 열정만으로 메꿔지지 않는, 아니 메꿀 수 없는 조건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내가 일하는 직장만의 특수한 문제가 아니다. 한국에서 생계를 위해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안고 있는 공통적인 문제다. 먼저 시간과 체력의 문제. 몇 년 전 선거에서 나왔던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구호가 새삼 떠오른다. 선거 슬로건으로 이런 구호가 나오고 사람들에게 그토록 회자되었던 건, 많은 이들에게 ‘저녁이 있는 삶’이란 현실에 존재한다고는 하나 경험한 적은 없는 유니콘 같은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유럽의 회사나 기관들과 이메일을 주고받을 일이 많은 내 경우 원래 업무가 오후와 저녁 시간에 몰리는 특수한 사정이 있다. 대신 나는 다음 날 늦게 출근할 수 있다. 주말에 출근하면 주중 대체 휴무를 보장받고, 남자든 여자든 한 달에 하루 보건 휴가를 쓸 수 있다. 세상에 그런 꿈의 직장이 다 있냐고 놀라겠지만 있기는 있다. 다만 월급이 적을 뿐이다. 우리 극장은 비영리재단이고 비상업적인 극장이니까. 그런데 일반적인 노동자들이라고 사정이 많이 다를까. 그들은 아마 나보다 월급을 많이 받을 것이다. 대신 야근과 잔업을 당연하게 요구받고, 정작 당연한 ‘칼 퇴근’은 회사의 특별한 ‘시혜 내지 배려’의 틀 안에서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그렇게 야근과 잔업에 시달리면서도 나와 비슷하거나 나보다 더 적은 월급을 받는 이들도 숱할 것이다. 야근한 다음 날 늦은 출근이 용인되는 사람, 주말에 근무한 대신 주중에 대체 휴무를 보장받는 사람들의 숫자는 또 얼마나 될까. 휴일 수당도 야근 수당도 제대로 못 받는 사람들도 허다하지 않은가. 두 시간 동안 낯설고 좁고 어두운 곳에서 다수의 사람들과 함께 앉아 꼼짝 못 하고 영화를 본다는 것은 의외로 많은 집중력과 체력을 요한다. 나이가 들고 몸이 점차 노쇠해질수록 영화 관람이 요구하는 체력과 집중력이 얼마나 큰지 몸으로 실감하게 된다. 그뿐인가, 영화 한 편을 보기 위해서는 영화의 러닝타임만큼의 시간뿐 아니라 극장으로, 다시 집으로 이동하는 시간, 극장에서 표를 사고 대기하는 시간도 필요하다. 하지만 2015년 통계 기준, 한국은 OECD 가입국 중 노동시간 최장 시간 2위를 자랑한다. OECD 국가 평균을 기준으로 했을 때 한국의 취업자들은 하루 8시간 기준으로 43일 더 일하는 반면 실질임금은 80% 수준이라고 한다. 영화를 볼 시간이 물리적으로도 부족하거니와, 어쩌다 시간이 난다 해도 축적된 만성 피로로 영화와 점차 멀어지는 게 지금 한국의 노동자들의 상황이다. 영화가 그나마 상대적으로 적은 돈으로 누릴 수 있는 여가와 문화생활, 자그마한 즐거움이 아니라 점점 부담스러운 사치재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티켓값은 어찌나 자주 오르는지. 두 번째, 소수 영화들의 스크린 독과점 현상. 10년 전에 비해 극장 수와 스크린 수는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이런 곳에 극장이 생긴다니 싶은 곳에도 대기업의 멀티플렉스가 들어선다. 번화가가 아닌 동네에 생긴 작은 극장도 최소 네 개 이상의 스크린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런 곳에서 상영되는 영화편수는? 어쩌다 조금 짬이 나서 동네에서 영화를 보려 하면 흥행 1, 2위라는 영화들만 볼 수 있을 뿐이다. 이런 대규모 배급을 하는 영화들, 즉 ‘와이드 릴리즈’를 하는 영화들은 지하철 배차 간격만큼의 빈도로 상영되곤 한다. 그러나 조금 다른 영화, 소위 ‘예술 영화’라 분류되는 영화가 개봉한다고 해서 상영관과 시간을 확인해 보면 영화를 보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알 수가 없는 경우가 많다. 하루 딱 한 번, 대낮 혹은 새벽에만 상영하는 일도 부지기수다. 개봉일을 놓치고 한두 주가 지난 후라면 더욱 영화 보기가 힘들어진다. 영화 한 편을 보기 위해서는 연차를 내야 하거나 밤늦게 영화를 본 뒤 택시를 타고 귀가해야 하거나. 올해 초에 소위 ‘천만 감독’인 국내 유명 감독이 저예산으로 찍었다는 어느 한국 영화를 볼 때도 나는 늦은 밤 시간에 영화를 보고 집에 가기 위해 택시를 타야 했다. 어느 새 영화 비용에는 툭하면 오르는 티켓값에 택시비를 당연히 더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그나마 택시를 탈 각오를 하고 영화를 보러 가는 것도 체력이 받쳐줄 때, 일이 그나마 한가할 때의 얘기지만. 그나마 다행히 집에서 가까운 곳에 멀티플렉스의 아트하우스가 있는 경우는 어떨까? 내 경우 작년까지 살던 집에서는 걸어서 15분쯤의 거리에 아트하우스가 있었다. 이사를 온 지금도 버스로 20분 정도의 거리다. 하지만 나는 이 극장을 그리 자주 찾지 않는다. 다른 극장들에 비해서는 물론이고 그 극장의 다른 상영관에 비해서도 시설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천장은 낮고 출입구는 상영관 앞쪽, 스크린 바로 옆에 하나만 있다. 엔딩 자막이 올라가기 시작하고 사람들이 퇴장을 시작하면, 아무리 자막이 올라가는 동안 내가 영화의 여운을 곱씹고 싶어도, 아무리 일찍 퇴장을 하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되지 않으려 해도, 필연적으로 스크린을 가리며 나갈 수밖에 없다. 이 극장만이 아니다. 예술영화를 상시적으로 상영한다는 다른 극장에서도, 이런 영화들은 가장 좌석이 적은 상영관에 배정되고 이런 상영관은 대부분 스크린이 매우 작은 데다, 스크린과 좌석 간 최소 거리도 제대로 확보돼 있지 않다. 스크린 크기 때문에 앞좌석에 앉기라도 하면, 영화 내내 스크린에 난 구멍들을 함께 보거나 고개를 무리하게 위로 쳐들고 봐야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건, 이런 영화들일수록 다른 영화들에 비해 화면의 아름다움이 비상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같은 돈을 주고, 아니 택시비까지 지불하면서도 이런 영화는 더 열악한 곳에서 더 불편한 자세로 봐야 한다. 영화가 좋아 영화 일을 시작한 지 20년이 다 되어간다. 그 사이 영화 산업의 양상도, 관람 환경도 급격하게 바뀌었다. 이제 우리나라는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가 촬영을 하러 오는 곳, 세계적인 스타들이 홍보 투어를 할 때 꼭 들르는 곳이 되었다. 남의 나라 얘기인 줄만 알았던 소위 ‘세계적인 영화제’에 한국 영화가 초청받는 일도 이젠 흔한 일이 되었고, 국가 권력이 노골적이고 직접적으로 검열을 하는 일도 외견상으로는 없어졌다. 속사정이야 어떻든 봉준호, 박찬욱 같은 감독들이 최고 스타인 데다 그들의 영화가 대흥행을 한다며 해외의 거장 감독들이 부러워하는 곳이기도 하다. 동네 곳곳에 영화관이 있고 전 세계의 온갖 영화들이 친절하게 한글 자막을 단 채 개봉을 하며, 철마다 열리는 영화제도 많고 역사도 깊어져 가고 있다. 한국영상자료원의 시네마테크KOFA 혹은 우리 극장에서, 이전에는 책에서 제목으로만 접했던 영화들을 35mm로, 혹은 디지털 매체로 손쉽게 관람할 수 있게 되었다. 인구 5천 만이 안 되는 나라에서 일 년에 두 편씩, 꼬박꼬박 소위 ‘천만 영화’가 나온다. 반면 어떤 영화들은, 각별한 노력을 거쳐야만 겨우 볼 수 있거나 아예 극장에서 보기 힘들다. 조금 엄살을 보태자면 ‘대기업이 운영하는 멀티플렉스들이 허락한 영화들이나 볼 수 있는 시대’라고나 할까. 어느 분야나 남들이 덜 찾는 항목에 취미나 기호가 있다면 시간과 돈과 발품과 여타의 노력을 들여야 하는 게 사실이라지만, 동네마다 극장이 널려 있고 이렇게나 많은 영화들이 개봉하는 나라에서, 어떤 영화들에는 몸을 축내가면서 지나치게 많은 시간과 돈과 특별한 노력을 들여야 한다. 이렇게 영화가 흔한 곳에서, 영화가 값비싼 사치재가 돼가고 있다.
영화의 주인공 매튜 반다이크는 미국인으로 리비아 내전에 참가해 싸운 유명인사다. 혁명군의 복장으로 남의 나라의 민주화를 위해 싸우다 감옥에 갇히기도 했던 이 백인 남자의 모습은 세계 뉴스를 통해 보도되었다. 영화는 일차적으로는 그의 여정을 담고 있다. 매튜 반다이크라는 남자가 자아를 찾고 진정한 성인으로 거듭나기 위한 여행을 떠나 리비아 혁명에 가담하게 되는 모험은 그 자체로 흥미진진한 이야기이다. 카메라를 향한 일기체의 설명, 자신의 무용담에 대한 인증샷 등, 셀프 여행기의 전형적이고 익숙한 형식으로 우리는 그가 여행을 하고 친구를 만나고 혁명군이 되는 모습을 본다. 하지만 그가 찍은 푸티지를 영화로 완성시킨 마샬 커리 감독은 그의 혹독한 성장기이자 치열한 투쟁의 기록 영상에서 그 이상의 것을 본다. 누구든 쉽게 영화를 만들 수 있게 되었고 액티비즘 다큐멘터리의 현장성 있는 거친 카메라는 영상을 찍은 이의 기록에 진실성을 부여하는 하나의 스타일이 되었다. 세계의 혁명은 이제 수많은 카메라로 기록된다. 휴대와 조작이 간편한 카메라를 일컫는 용어인 < 포인트 앤 슛 >을 제목으로 한 영화는 포인트 앤 슛 카메라의 보급이 만들어낸 현상에 대한 영화다. 영화는 매튜가 카메라 앞에서 자기소개를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자신이 가진 호신용 무기와 방탄조끼를 보여주는 심약해 보이는 금발의 백인 남자의 모습은 앞으로 보게 될 혁명군 매튜의 여정을 드라마틱하게 만들어주는 동시에 작정하고 카메라와 함께 내전 중의 리비아로 날아간 이 사람을 좀 더 분석적인 태도로 바라보게 만든다. 감독은 매튜 반다이크의 인터뷰를 촬영하여 그것을 축으로 매튜의 푸티지를 편집했다. 인터뷰 도중 나타나는 계속 손을 씻는 그의 강박신경증은 감독이 택한 의미심장한 인물 묘사의 각도를 보여준다. 뉴스에서 보도한 매튜는 두건을 쓴 민주투사의 모습이었다. 자신이 찍은 영상 안에서 매튜는 그의 리비아행 뒤에는 정치적 동기에 앞서 여행 중 만난 친구들의 안전을 걱정하는 마음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이 혁명군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고 위험한 투쟁을 함께한 과정이 어땠는지를 보여준다. 미국에서 뉴스로 접한 리비아 사태는 그에게 어려움에 처한 친구의 소식이었고 그것이 그를 ‘남의 나라’의 민주화 투쟁에 자신의 일처럼 뛰어들게 만든다. 친구가 없던 그는 혁명의 현장성을 자신과 그들의 관계 맺는 모습을 중심으로 기록한다. 그리고 그 영상으로 완성한 마샬 커리의 영화는 어린 시절 어드벤쳐 영화의 주인공을 보고 꿈꾸었던 모험가 영화감독이라는 그의 소년적인 여정의 동기, 이제는 매우 정치적이 된 매튜 안에 계속 남아있는 심약한 강박증 환자의 모습, 그리고 그의 ‘비현실적인’ 행보가 가까운 사람들에게 적잖이 당혹스러운 것이었다는 것까지 보여준다. 한 청년의 성장기이자 치열한 혁명의 기록이었던 푸티지는 이제 그 기록의 행위 자체와 주체를 바라보는 메타텍스트가 된다. 영화의 시작 부분과 말미에는 모니터를 통해 리비아에서의 자신의 모습을 보는 매튜의 모습이 보인다. 이는 영화가 담고자 한 우리 시대에 팽배한 매체의 매개행위, 그리고 그를 통해 형성된 자아 인식의 형태를 암시하고 있다. 그의 여정 전체는 성인 남자(manhood)가 되기 위한 훈련이었다. 지금 그는 전 세계가 인정하는 민주투사이자 영화감독이다. 그의 이 새로운 정체성은 정확히 그가 꿈꾸던 것이자 그가 전에 갖지 못했던 지극히 남성적이고 영웅적인 것이다. 영화의 맨 마지막 장면인 “그래서 진정한 남자가 되기 위한 이 훈련이 성공적이었나?”라는 감독의 목소리와 매튜의 반응은 이 시대의 ‘포인트 앤 슛’ 문화가 만들어낸 매개된 정체성의 허와 실에 대한 감독의 질문이다.
다큐멘터리 역사에서 어느 시점 이후 ‘프로파간다’라는 단어는 나치 선전을 위해 만든 레니 리펜슈탈의 다큐멘터리와 연결되며 뭔가 불순한 것, 예술과는 같이 갈 수 없는 가치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현실을 기록, 편집하는 과정 전체가 작가의 의도이기에 모든 다큐멘터리는 기본적으로 프로파간다라고 이야기되기도 한다. 현실을 더 직접적으로 반영하는 다큐멘터리의 특성상 프로파간다의 논란은 많은 작품에 따라다녔고 이는 대부분 부정적인 의미에서 ‘프로파간다냐 아니냐’의 논란인 경우가 많았다. 근래 기술의 발달로 영상의 제작, 배급 방식이 변화하면 인터넷을 통한 배포를 목적으로 한 수많은 영상이 만들어진다. 이들 영상은 신속하고 간결한 정보전달을 통한 최고의 효과를 요구하는 인터넷 유저의 특성을 그대로 반영한다. 최근 유튜브를 통해 공개되어 화제를 모았던 <백년전쟁>과 그에 반박하는 <생명의 길>을 비롯한 일군의 영상은 이러한 바뀐 매체의 특성이 다시 ‘프로파간다’를 전면에 표방하는 형태의 영상을 탄생시키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켄 로치의 2012년 다큐멘터리 < 1945년의 시대정신 >은 극영화를 통해 노동계급을 대변해왔던 감독이 작정하고 만든 프로파간다이다. 인터넷 배포를 목적으로 한 영화는 아니지만 많은 부분 유튜브 프로파간다의 형식을 연상시키는 스타일을 사용하고 있다. 이 이야기를 하기에 이 시대 매체의 환경, 사회적 환경, 특히 받아들이는 관객의 태도에 걸맞은 화법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1945년 노동당 승리에 대한 기억과 회상’이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작품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에서 총선을 통해 정권을 잡은 애틀리 내각에 의해 실현되는 듯했던 이상적인 사회를 되돌아본다. 1차 대전 이후의 가난이 뼈저리게 기억에 남아있었던 사람들은 그 고통을 절대 다시 겪을 수 없었기에 국민 모두의 복지를 약속하는 노동당에 투표했다. 당시 노동당은 ‘전후의 빈곤은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부가 소수에게 집중되어서 오는 당연한 결과이다.’라고 말하며 모든 국민의 기본적 생활의 질을 약속한다. 공약이었던 주택문제 해결은 단순히 살 집의 보급이 아니라 쾌적한 주변 환경, 편리한 교통, 아름다운 배치에 문화 향유권까지 약속하고 있었고 그 약속은 실현되었다. 그때를 살았던 노인들은 당시 접했던 사회주의의 개념을 경쟁 없이 모두 함께 잘 살기 위해 일하는 사회로 경이와 함께 회상한다. 공공 임대주택 입주통지서를 보물처럼 평생 지니고 산 아버지의 기억을 안은 백발의 할머니, 돈 걱정에 아픈 아이들을 모두 보여주지 않으려는 어머니에게 이제 모두 공짜라고 이야기하던 날을 평생 잊지 못하는 노의사는 그 시절이 꿈이 아니었다고 증언하려 카메라 앞에 앉았다. 이들은 자본주의밖에 경험해보지 못한 지금 세대에겐 꿈 같은 얘기일 뿐인 세상을 봤다. 그 후 1979년 대처가 나타나 공기업을 민영화하며 이 꿈 같은 사회를 망쳐놓는 과정, 그 후 달라진 노동의 개념이 실제로 일터에서 어떤 일을 가져왔는지도 이들은 봤다. 켄 로치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에 대한 관념적 설명 없이 예의 명쾌한 직설 화법으로 두 체제가 사람들의 삶에 미친 영향을 극명하게 대비시켜 보여줌으로써 자본주의가 개인의 삶을 보호해줄 수 없다고 관객에게 설파한다. 흑백의 아카이브 영상과 아름다운 음악으로 그때 그 시절은 무성영화같이 아련하고 시종일관 인터뷰 내용과 관련 영상을 매우 직접 연결하여 편집하는 단순하고 전통적인 뉴스 영상의 스타일을 취한다. 아련한 흑백영화였던 첫 화면의 종전을 축하하는 젊은이들 모습은 영화의 끝에 컬러로 다시 나타나 지금까지 들었던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옛날 얘기가 꿈이 아니라 현실이고 다시 실현 가능하다고 못 박는다. 1945년부터 30여 년간 지속된 그 시절이 정말 영화에서 그려진 것 같은 꿈 같은 사회주의의 실현이었는지와 같은 논쟁을 감독은 스타일에서 이미 거부하고 있다. 다큐멘터리의 윤리와 진정성은 형식이 아니라 그것을 사용한 의도와 그것이 발휘하는 가치에서 찾아야 한다고 볼 때, 의도된 주관적 기억의 미화와 편파성도 영화의 타겟인 젊은 세대들의 이해 방식과 지금의 현실에는 오히려 균형 잡힌 것일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노련한 감독의 의도된 촌스러움 안에 숨은 그만의 미학적 언어는 영화를 수많은 유튜브 영화와 차별화시킨다. 공기업 민영화가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게 된 지금, 민영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여실히 보여주며 우리에게도 경종을 울릴 수 있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