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의 여자
- 감독
- 권우정
- 제작년도
- 2009
- 출연
- 소희주, 남성민, 남상진, 남기쁨, 강선희, 권순남, 故 김정호, 김민환, 김승환, 변은주, 김창수, 김하린, 김한범, 강춘자, 김춘식, 김영미, 나점화, 박미정, 박병해, 박선미, 성영애, 이정옥, 이향숙, 전현옥, 김남영, 김미숙, 류성연, 이외순, 이춘선, 이효남, 한미나, 김연숙, 박신희, 박점옥, 이영심, 황쌍희
< 워낭소리 >가 돌풍을 넘어 태풍에 가까웠던 흥행 이후, 많은 사람들이 독립영화의 사정이 나아진 것 아니냐는 말을 하곤 한다. 예전엔 일년에 한편을 구경도 하기 힘들었지만 근래에는 한 두 편씩은 심심찮게 볼 수 있으니 그렇단다.(일반 관객들은 그저 건물 외벽에 걸리는 이미지만 보고도 ‘개봉’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속사정을 조금만 알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지난해 추석 즈음 개봉했던 다큐멘터리 < 땅의 여자 >는 우리지역 ‘진주’에 살고 있는 주인공이 등장해 화제를 모았기에 멀티플렉스에서도 무난하게 상영 하겠거니 생각했다. 그러나 정작 개봉일은 1주일. 그것도 하루 한 번 오후 4시에 교차상영으로. 물론 그 시간이 황금시간대인 관객도 존재 하겠으나 대다수의 관객들은 극장을 찾기 위한 비용을 벌기 위해 집중하고 있을 시간이 아닌가. 세상에. 나와 그들의 이웃이자 같은 울타리 속의 건강한 여성의 삶을 지역민이 함께 톺아보는 일이 낭만적이라는 생각은 단지, 활동가의 시선일 뿐이었던 것이다. 지역이 이렇게나 열악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주변에서 독립영화를 보는 사람이 하나 둘 늘고 있는 추세다. 그 방법도 제법 다양한데, 몇몇 지역의 케이블 방송을 통해 다양한 독립영화를 접하기도 하고, 포털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독립영화와 만나기도 했다. 무엇보다 독립영화 전용 다운로드 사이트와 P2P사이트를 통해 독립영화를 다운로드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 얼마나 환상적인 상황인가. 영화를 집안에서 보는 시대야 이미 몇 해 전부터 있어왔던 일이라 별로 놀랄 것도 아니라지만 독립영화 역사상 이렇게까지 관객과 가까워진 적은 없지 않았을까. 너무도 반갑고 환상적인 상황이다. 관객의 입장에서 나 또한 두 손 들고 환영한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관객’의 입장에서다. 지역의 독립영화 상영활동가가 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지난 2년 동안 경남에서 연간 50회 내외의 공동체상영을 진행해왔다. 산골 동네의 마을회관에서부터 어린이집, 대학교, 공원 등 이곳저곳에서 3,000여 명의 사람들을 만났다. 상업영화는 만들어 줄 수 없는 그런 감동을 직접 경험하고 독립영화 상영활동가로서의 일에 자부심을 가지며 더욱 더 매진하겠다는 욕심도 들게 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점점 상황이 변하고 있다. 핑계가 잔득 얹힌 투정을 부려보자면, 사실 그동안 진행 해 온 공동체 상영을 올해도 진행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클릭 몇 번이면 내가 보고 싶었던, 극장에서는 볼 수 없었던 독립영화를 손쉽게 다운받을 수 있지 않은가. 그렇게 다운 받은 파일을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싶은 사람을 초대해 한 반에 둘러 앉아 보면 되지 뭣 하러 수고스럽게(비용은 더욱 수고스럽게)힘을 써가며 공동체상영을 하겠냐는 거다. 물론, 다운로드 받은 영화를 함께 볼 때는 적법한 절차를 거쳐야 함이 마땅하나,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영화를 보지 않는가. 아니 어쩌면 인간으로서 좋은 것을 함께 나누고자 하는 그 마음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독립영화를 사랑하고 독립영화와 함께 하루를 보내고 있는 사람으로서 독립영화도 기술의 발전에 따라 함께 진일보 하는 것은 너무도 반갑고 다행스럽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 함께 울고 웃던, 낭만으로 가득한 예전의 시간은 점점 사라지게 될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도 동시에 품게 된다. 기술의 발전이, 내 방에서 만날 수 있는 독립영화가 반갑지만은 않은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미 진행되어 온 이 상황을 거스를 수도 없다. 분명 독립영화 나름의 버텨내기 위한 방법일테고, 조금 더 멀리 그리고 수월하게 관객과 만날 수 있는 기회이기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에서 활동하는 ‘나’같은 상영활동가들의 설자리가 점점 줄어들지 않을까 내심 겁도 난다. 독립영화를 집에서 볼 수 있게 만든 이 엄청난 기술이 관객과 독립영화의 거리를 더욱 가까워지게 만들었다면, 상영활동가와 지역민과의 거리는 점점 멀어지게 만들진 않을까 조금, 우려스럽다.
여름이 오기 직전, 김선 감독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 자가당착:시대정신과 현실참여 >의 에필로그 촬영을 도와달라고 했다. 김선 감독은 주말을 이용해 청계천과 4대강 공사장 인근에서 촬영할 참이라면서 카메라를 대신 들어달라고 부탁했다. 카메라 한번 만져본 적 없는데, 이 무슨 황당 시츄에이션? 알고 보니 김선 감독이 ‘손’이 모자란 건 아니었다. 촬영하다 기자재를 압수당할지 모른다, 기자가 카메라를 들고 있으면 함부로 뺐지 못할 것 아니냐. 김선 감독의 생각은 그러했다. 돕고 싶었으나 방법이 좀 마음에 걸렸다. 취재를 하지 않는데, 기자라고 무작정 우길 순 없었다. 그래서 역제안을 했다. 동영상 취재기자를 대동해서 현장에 가겠다. 나중에 촬영한 소스를 주면 되지 않느냐. 운 좋게도(?) 김선 감독과 몇 번 연락을 나누는 동안 4대강 사업을 둘러싼 반대 여론이 점화했다. <씨네21> 내부에서도 4대강 관련 독립영화들을 묶어 취재해보자는 의견이 나왔고, 이는 실제 특집 기사 취재로 이어졌다. 이틀 동안 촬영현장에서 벌어진 웃어넘기기 쉽지 않은 상황들에 대해선 잡지에 미주알고주알 썼으니 다시 말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다만 취재수첩을 들고 있기도 뭣할 정도로 급박했던 6월의 어느 주말에 대한 기억은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남을 것 같다. 한국수자원공사 직원들과 경찰들, 그리고 선관위까지 원치않게 엑스트라로 총출동한 진기한 풍경을 또 언제 볼 수 있을 것인가. 돌이켜 보면, 잔상이 꽤 오래 남아있는 현장들은 대개 독립영화가 선사한 선물이었다. 영화 촬영 현장을 지켜보는 동안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다큐멘터리 < 우리학교 >의 배경이었던 ‘혹가이도조선초중고급학교’를 방문했던 몇 년 전을 떠올리곤 한다. 김명준 감독, 고영재 프로듀서와 함께 우리학교를 찾았다가 헹가래 인사까지 해주던 아이들의 웃음을 잊을수가 없다. “우리학교에 다시 또 놀러오세요!”한국으로 돌아오는 날, 한 꼬마아이가 3층 교실에서 던진 쪽지는 지금도 고이 갖고 있다. 글 쓰는 일이 지겨울 때면, 지금도 꾹꾹 눌러쓴 짧은 편지를 꺼내보곤 한다. 마을 사람들이 농기구 제쳐두고 대본과 콘티를 달달 외던 이지상 감독의 < 몽실언니 >, 지리산 자락에 숨겨진 이현상 비트에 올라 절부터 하고 취재를 시작했던 조성봉 감독의 <진달래 산천>도 빼놓을 수 없는 귀한 경험들이다. 정해진 날짜에, 1백 명이 넘는 대규모 취재진을 불러, 이벤트 식의 기자회견을 진행하는 상업영화에선 맛볼 수도 기대할 수도 없는 쾌감이다. 게다가 요즘 들어 상업영화는 마케팅 효과가 크지 않다는 이유로 점점 현장 공개를 꺼려하는 상황이다. 독립영화 촬영현장의 매력은 숨기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본 대로 쓰고, 들은 대로 쓰면 된다. 발로 쓴 기사가 머리로 짜낸 기사보다 더 낫다고 흔히 말한다. 독립영화 현장에 가면 굳이 머리를 쓸 필요 없다. 발만 열심히 구르면 된다. 이 영화를 어떻게 포장해야 한다는 마케팅 컨셉에 따라 기자들까지 움직이는 상업영화의 전략과는 판이하다. 정해진 동선이 없기에, 굳은 더듬이도 조금은 더 놀릴 수 있는 듯 하다. 게으른 기자인 내가 독립영화 현장을 편애하는 이유다. 이 글을 쓴 직후 < 땅의 여자 >들을 직접 만나러 창녕에 간다. 설레고, 또 궁금하다.
선희는 말한다. “어머니 제가 국회의원 출마하기로 했습니다.” 시어머니가 답한다. “농사는 누가 짓고.” 어머니의 말을 들은 당뇨로 고생하고 있는 남편이 거든다. “농사는 한 해 안 지어도 돼. 내가 다 지으면 돼.” 권우정 감독의 < 땅의 여자 >는 경남 지역에서 농사를 짓고, 농민 운동에도 참여하는 세 여성의 인생을 보여준다. 강선희, 소휘주, 변은주는 대학에서 만났다. 그 시절의 회고를 들어보면, 그녀들은 농민 운동에 대한 꿈과 소망이 있었다. 하지만, 농촌으로 시집을 온 후 경험해야 하는 것은 농촌의 진짜 현실이었다. 현실은 절망감을 주기도 했다. 영화 속에서 아주 상세하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보수적이라 할 수 있는 농촌의 분위기 속에서 그들의 희망은 처음부터 자리를 찾을 수는 없었다. 아이를 키우고, 가사일을 돌보며, 농사일까지 잘한다는 것은 어머니 세대에나 가능한 일이다. 그들은 어머니처럼 일을 할 수 없다며 결혼 조건을 내걸었다. 하지만, 그녀들에게는 어머니 세대와는 다른 여성의 삶이 있었다. 꿈꾸던 것과 동일하지는 않지만 자신들이 선택한 땅의 가치, 땅 위에 살아가는 공동체의 가치를 추구해 나갔다. 시어머니와 함께 홍콩까지 나아가 FTA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는 것은 보통의 한국 가족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경험일 것이다. 그것은 땅 위에서의 신뢰, 땅에서의 믿음을 구현할 때만 가능한 땅 위의 공동체적 경험이며, 그녀들을 가정의 신화 밖으로 나오게 만드는 주요한 동력이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들은 농촌 밖에서 비판하거나 항변했던 농촌 여성이 아니라 땅 위에 함께 거주하며 삶을 추구했던 아름다운 얼굴이 된다. 이러한 모습은 선거에 출마하겠다던 선희에게 반대 의견을 피력하던 시어머니를 동참하게 만든다. 서로 다른 삶의 궤적을 그려왔지만 땅위에서 그들은 하나가 된다. 한 편의 영화나 다큐멘터리 속에서 매우 격정적인 사건을 구경하기를 갈망하지만 이 작품에는 매순간 선택을 둘러싼 작은 사건이 있다. 그것은 때를 놓치게 되면 망칠 수밖에 없는 ‘농사일’의 특성 때문이기도 하고, 주위의 시선을 의식해야 하는 가사일의 피로감 때문이기도 하며, 여러 사람들이 모인 농민회의 활동 덕분이기도 하다. 이러한 갈등과 선택의 순간들은 보다 나은 삶을 향한 인간적인 소망들을 피력하면서, 그녀들의 선택을 보여주고 있다. 중요한 것은 선택의 과정에서 그녀들은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진다는 것이다. < 땅의 여자 >를 보며 감동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바로 이러한 모습을 대할 때이다. 당당한 그녀들의 선택과 책임을 마주하게 되는 때는 피로한 삶 속에서 인생이 추구해야 할 가치를 엿보게 한다. 그녀들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행복을 가장 적극적으로 찾아가는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행복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찾아가는 것이므로. 나아가 직접 얻어내야 하는 것이므로. 이들의 삶은 인간의 보편적인 행복에 대한 권리를 꿈꾸게 만든다. 아스팔트가 아니라 그녀들이 딛고 있는 땅 위에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