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간도2 - 혼돈의 시대
- 감독
- 유위강, 맥조휘
- 제작년도
- 2003
- 출연
- 여문락, 진관희, 증지위, 황추생, 유가령, 오진우, 정수문, 두문택, 나계현, 호군
‘홍콩 누아르’라는 이름으로 홍콩 장르영화가 아시아 극장가를 호령하던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그 영화들의 밑바닥에는 ‘1997년 홍콩 반환’이라는 당시로서는 불안한 미래를 향한 근심이 자리해 있었다. 체제의 변화라는 거대한 물결 앞에서 한편으로는 동시대 홍콩영화의 보편 정서를 과잉 해석하는 하나의 틀이 만들어졌다고도 할 수 있다. 그만큼 그것은 아시아에서 가장 고도 자본화된 홍콩 영화산업이 공산 중국을 바라보며 느낄 수밖에 없는 근원적인 공포가, 영화의 속살에도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반영된 것일 게다. 바로 그때로부터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당시의 전망은 맞으면서도 틀렸다. 홍콩영화는 1997년을 전후로 화려한 전성기를 뒤로 한 채 긴 침체기에 들어갔고, 중국 본토의 자본과 함께 새로운 돌파구를 찾은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처럼 홍콩 반환은 홍콩영화계에 있어 긍정과 부정 모두를 껴안은 양날의 검으로 존재한다. 바로 그런 점으로 인해, 이번 홍콩영화제는 지나간 20년과 다가올 20년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중요한 기회다. 홍콩의 중국 반환 20주년을 기념해 7월 26일(수)부터 8월 8일(화)까지 열리는 한국영상자료원의 특별전 ‘영화와 공간: 홍콩’은 Create Hong Kong, 홍콩국제영화제협회와 공동으로 주최하는 ‘창조적 비전: 홍콩 영화 1997-2017’ 섹션과 한국영상자료원의 시네마테크KOFA에서만 특별히 상영하는 ‘KOFA 특별 상영’ 섹션으로 나뉘어 총 17편으로 풍성하게 꾸려졌다. ‘창조적 비전: 홍콩영화 1997-2017’은 홍콩, 중국을 제외하고는 아시아에서 한국영상자료원이 유일하게 개최하는 글로벌 프로젝트이며 런던, 베를린, 밴쿠버 등 주요 10개 도시에서 진행 중이다. 지난 20년간 큰 변화를 겪은 홍콩영화계의 현재가 바로 여기 있다. 그리고 여전히 홍콩영화가 흥미진진한 세계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될 것이다. < 매드 월드 > 포스터 “홍콩은 미쳐가고 있다”는 영화 속 황 선생(증지위)의 말처럼, 웡 춘 감독과 플로렌스 챈 작가의 < 매드 월드 一念無明 >(2016)는 바로 그 홍콩 서민의 참담한 현재를 담담하고도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자칫 무미건조한 이야기로 보일 수 있는 이 작품이 올해 4월 초 <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 >이 홍콩 박스오피스 1위를 질주할 때 4위에 기록됐다는 사실은 당대 홍콩영화계의 희망적인 시그널이라 할 수 있다. 더불어 올해 홍콩 금상장영화제에서 남우조연상(증지위), 여우조연상(금연령)을 비롯해 신인감독상(웡 춘)을 수상했다는 사실 또한 고무적인 일이다. 이야기는 이렇다. 황 선생(증지위)의 집에 장남 퉁(여문락)이 들어온다. 퉁은 정신병원에 있다가 이제 막 나온 참이다. 조울증으로 인해 친구들 사이에서 ‘미스터 사이코’라 불리던 그는 어머니(금연령), 아내 제니(방호민)와 함께 살았다. 그와 아내는 부지런히 일해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었지만, 치매에 걸린 어머니로 인해 팍팍한 생활을 벗어날 수 없었다. 어머니와 아들은 하루도 싸우지 않는 날이 없었다. 어머니가 세상을 뜨면서 고통은 끝날 줄 알았건만,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인해 퉁은 정신병원으로 가게 됐던 것. 그리하여 오랫동안 떨어져 살던 아버지와 해후하게 됐지만 이미 망가져 버린 삶은 별달리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어머니가 아플 때 대체 어디 있었던 거냐”며 아버지를 비난해 보지만, 평생 트럭운전을 하며 가난하게 살았던 아버지 또한 말 못 할 사연이 있다. 그리고 그들과 뚝 떨어져 미국에서 잘살고 있는 차남 춘은 가족의 연락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여전히 서먹서먹한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세상을 등진 남편 퉁 대신 빚을 갚느라 영혼까지 피폐해진 아내까지, 그들은 그렇게 어떻게든 홍콩에서 살아가야 한다. 굳이 계보를 짚어 보자면, < 매드 월드 >의 웡춘 감독은 홍콩 사회파 영화의 대가라 할 수 있는 허안화 감독을 잇는 것으로 보인다. 혹은 역시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를 통해 산업화의 격랑을 관통하는 당대 홍콩 사회를 그려낸 < 부자정 >(1981)의 방육평 감독, 일찌감치 홍콩과 중국 본토 사이의 문화적 괴리감을 그려냈던 <사수유년>(1984)의 엄호 감독도 떠오르게 한다. <매드 월드>라는 영어 제목부터 이른바 ‘닭장 아파트’로 유명한 홍콩 하층민의 피폐한 삶을 정면으로 다룬다. 그 아파트 공간 내부의 아버지와 아들을 부감으로 잡아낸 영화 포스터는 무척 인상적이다. 변변한 창도 없는 좁은 방 안에 이층 침대가 있고, 공동으로 화장실과 욕실을 이용하며, 부엌이 없는 구조라 대부분 포장 음식을 사와 끼니를 해결한다. 이웃 주민들 또한 종종 이상한 행동을 보이는 퉁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본다. 공간은 관계마저 악화시킨다. 그에 비하면 이번 영화제 상영작이기도 한 허안화의 < 천수위의 낮과 밤 >(2008)에 등장하는 홍콩의 재개발 지역인 천수위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는 차라리 호화롭게 느껴진다. 그처럼 반환 이후 홍콩의 삶은 과연 이전보다 더 나아졌다 말할 수 있을까. < 담배연기 속에 피는 사랑 > (펑하오샹, 2010) < 심플 라이프 > (허안화, 2011) < 미드나잇 애프터 > (프루트 챈, 2014) < 매드 월드 >는 최근 두드러지는 홍콩 감독들의 ‘로컬 시네마’ 경향을 보다 첨예하게 드러낸다. 성룡을 비롯해 서극, 진가신 감독 등이 본토 자본과의 결합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한편으로(물론 변화하는 현실에 적응한 이들의 행보를 긍정과 부정의 이분법으로 볼 것은 절대 아니다) 허안화, 이동승을 비롯해 이번 영화제에 각각 상영되는 < 메이드 인 홍콩 >(1997), < 담배연기 속에 피는 사랑 >(2010)을 만든 프루트 챈과 펑하오샹처럼 보다 홍콩의 현실에 천착하는 작품을 내놓는 감독들이 있다. 역시 이번 영화제 상영작인 허안화의 < 심플 라이프 >(2011)가 보여주는 홍콩 요양병원의 풍경은 그 어떤 영화 속 홍콩의 모습보다 쓸쓸하다. 프루트 챈의 < 미드나잇 애프터 >(2014)는 닭장 아파트만큼이나 홍콩을 대표하는 교통수단인 미니버스를 정체성이 희미해져 가고 있는 홍콩의 축소판처럼 묘사했고, 펑하오샹의 <애버딘>(2014)은 실제 홍콩 해안지역인 애버딘을 중심으로 삼대(三代)의 이야기를 그려냈다. 이들을 포함해 <매드 월드>는 바로 ‘그럼에도 우리는 홍콩에서 영원히 살아갈 것’이라는 선언처럼 보인다. 그런 가운데 웡 춘 감독은 어머니의 죽음을 둘러싼 비밀을 스릴러적 구조로 치밀하게 축조하면서, 보다 장르영화적인 재미도 놓치지 않는다. 하지만 <매드 월드>의 ‘월드’를 꽉 채운 것은 바로 배우들의 잊히지 않는 표정이다. 에드워드 양의 < 하나 그리고 둘 >(2000)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였던 금연령의 존재감은 물론, 오래전 (역시 이번 영화제 상영작인) < 무간도 >(2002)에서 파트너를 이뤘던 증지위와 여문락이 무려 15년의 세월이 흘러 아버지와 아들로 만났다는 점이 깊은 감동을 준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아파트에서 다리가 불편한 아버지를 그 못지않게 온전치 못한 아들이 업고 한 계단씩 걸음을 옮길 때, 홍콩 반환 전이든 후든 홍콩영화를 향한 나의 애정 또한 변하지 않을 것임을 직감했다.
「씨네21」 편집장을 맡게 된 지가 어느덧 1년이 되었다. 이즈음 ‘나는 「씨네21」 편집장이다’라는 거창한 제목의 원고를 수락하게 된 것은 순전히 한국영상자료원과 그 전략기획팀 유성관님의 부탁 때문이다. 모든 컨텐츠가 인터넷의 디지털 파일로 유통되는 시대에 여전히 ‘필름’을 발굴하고 수집하고 보관하는 한국영상자료원과, 고집스레 매주 정해진 제작 일정에 맞춰 종이 잡지를 20년째 발행해오고 있는 「씨네21」의 고독한 운명이 서로 닮아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년 말, 한국영상자료원과 「씨네21」은 ‘「씨네21」 보유 영화 및 영화인 사진 자료 기증 협약식’을 가졌다. 「씨네21」 창간호(1995년 5월)부터 500호(2005년 5월)까지 10년간 찍은 사진 약 30만 점을 영상자료원에 기증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라고 슬쩍 광고 멘트도 곁들어 본다. ‘파일’을 다루는 ‘클릭’의 시대에 ‘물질’의 촉감은 여전히 매혹적이다. 그 물질을 다루는 사람들끼리 연대해야 한다는 요구 때문이다. 어쩌다 보니 종이 영화잡지 시장에 가장 오래 발을 담그고 있는 영화 기자가 됐다. 2000년부터 이제는 없어진 월간지 「키노」에서 3년, 역시 이제는 없어진 주간지 「필름2.0」에서 4년을 일했고, 여전히 버티고 있는 주간지 「씨네21」에서 새해 들어 10년째 일하게 된다. 그래서 오래전 「씨네21」에 들어왔을 때 한 감독은 “이제 네가 「씨네21」만 망하게 하면 임무 완성”이라며 “폐간의 그랜드슬램을 달성하라”는 말도 안 되는 < 무간도 > 스러운 주문을 하기도 했다. 웃자고 한 얘기지만, 종이 잡지의 거대한 쇠퇴의 중심부에서 겪은 일들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연일 대책회의를 가졌고 비상 태스크포스팀 운영에도 몸담아 봤다. 하지만 그 거대한 물길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월간, 주간지 다 합쳐서 한때 7개의 영화잡지가 경쟁하던 때가 불과 몇 년 전의 일이다. 이제 영화 전문지라고 해서 딱히 인터뷰 시간을 더 주는 것도 아니고, 섭외가 손쉬운 것도 아니다. 그래도 영화를 영화로 다루는 영화 전문지가 끝까지 버텨줘야 한다는 마음 하나로 여기까지 온 것 같다. 부정하려 해도 종이 잡지를 사서 읽는 사람들의 수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기하급수적으로 줄었다’고 표현했지만, 이제는 그런 표현이 가능할 정도로 사람들의 수 자체가 많지 않다. 30만 명이 넘는 팔로워와 ‘페친’은 유료 독자와 별개로 존재한다. 물론 그 수치 또한 대단하긴 한 것이다. 그나마 「씨네21」은 이른바 ‘충성 독자’라 불리는 고정 정기독자층이 탄탄한 편이지만, 사실상 잡지의 많은 글들이 여러 포털 사이트로 업데이트되는 상황에서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여러 다른 일간 신문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이미 인터넷으로 많은 기사를 무료로 보는 시대에 유료 독자로 남아준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제는 ‘연예’ 면으로 완전히 흡수되어버린 듯한 ‘영화’ 기사에 있어서도, 원래 오용이나 남용을 뜻하는 이른바 ‘어뷰징’ 기사의 폐해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언론사가 의도적으로 검색을 통한 클릭 수를 늘리고 인기검색어로까지 올리기 위해, 별다를 바 없는 내용의 기사들을 제목만 바꿔 무차별적으로 전송하는 행태를 말한다. 분명히 「씨네21」과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인터뷰한 영화인 기사임에도 황당하게 뽑아낸 그 제목들을 보자면, ‘우리가 인터뷰한 사람은 딴 사람인가?’라는 의문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포털 검색의 조회 수 경쟁 속에 ‘실검’은 있지만 ‘진실’은 없다. 대중이 어떤 기사를 원해서 선택하기보다, 그냥 기사들을 무차별적으로 떠먹여 주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리하여 배가 부르면 좋겠지만 늘 소화불량을 동반한다는 것이 불편한 진실이다. 자, 핵심은 「씨네21」도 그 안에서 경쟁해야 한다는 냉정한 현실이다. 이른바 영화 전문지의 존재 근거라 할 수 있는 덕후와 시네필도 만족시켜야 하고, 가십에 가까운 대중적인 최신 뉴스도 일목요연하게 담아내야 한다. 그러면서 언제나 변함없는 주된 관심사, ‘바로 지금의 한국영화’를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것을 보는 이들이 이제는 유료 독자보다 인터넷이나 모바일(심지어 이제는 PC화면으로 기사를 보는 것도 낡은 행위라 치부되고 있다)로 접하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 또한 거부할 수 없는 현실이다. 어쨌거나 순수한 시네필과 영화 기자를 꿈꾸는 사람, 혹은 미래의 영화인을 꿈꾸는 사람이라는 얼핏 이상한 교집합으로 묶인 이들과 함께 운명공동체를 이루고 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그들끼리 서로 격려하고 응원했으면 좋겠다. 온라인이건 오프라인이건 그들이 소극적인 독자로 남아있지 않아야 한다는 바람이다. 우리끼리는 농담처럼 ‘꺼진 좋아요도 다시 보자’고 말하기도 한다. 그렇게 애정 고백을 해야 한다. 거창하게 말하자면, 그래야 디지털 시대 엔터테인먼트 카테고리의 뒤주에 갇혀버릴 운명에 처한 지금의 영화를 구할 수 있다.
오랜만에 칼럼을 쓴다. 그런데 정작 영화가 생각난다. 언제나 이 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안 된다며 이런 저런 정책제안을 무수히 해왔고 그러다보니 이제 뭔가를 주장하는 데는 아주 익숙해져 버렸다. 그래서인지 막상 칼럼을 쓰려니 또 뭔가 주장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어 아예 머릿속이 먹먹해져 버렸다. 그러다 보니 제 버릇 개 못 주 듯 자연스럽게 한 편의 영화가 떠오르고 말았다. 그래서 오늘은 편안하게 몸과 마음을 내려놓고 그냥 떠오르는 영화 한 편에 글 가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칼럼을 써 보려 한다. 거짓말처럼 8년 전 만우절에 우리 곁을 떠나버린 장국영, 아주 친숙한 배우이자 엔터테이너였던 그의 갑작스런 죽음이 더우면 더운 대로 추우면 추운 대로 그 고독감에 더해 스멀스멀하게 우리의 마음을 적신다. 오늘은 서두에 밝혔듯이 갑자기 떠오른 이 영화 < 아비정전 >에 대해 아니 그 보다는 그 기억과 추억에 편승해 주인공 ‘아비’를 다시 보자는 뜻으로 ‘우견아비’라는 말을 건네 보고자 한다. 우리에게 ‘발 없는 새’로 기억되는 아비를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시간을 가져보자는 말이다. 국내개봉 당시 처참한 성적을 기록했지만, 왕가위와 장국영의 팬들은 이 영화를 최고의 영화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가 주연한 좋은 작품이 많지만, ''''아비정전''''의 영화 속 독백(‘세상에 발 없는 새가 있다더군. 늘 날아다니다가 지치면 바람 속에서 쉰 대. 평생 딱 한번 땅에 내려앉는데 그건 바로 죽을 때지'''')만큼 장국영의 삶과 인생을 잘 표현한 말은 없기 때문이다. 그의 비극적이고도 미스터리한 죽음과 화려했던 배우인생이 교차되면서 그 비극적 신비감은 더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미스 홍콩으로 화려하게 은막에 등장해 세계적인 여배우로 성장한 장만옥과 < 명장 >, < 삼국지 > < 무간도 > 등으로 건재함을 과시한 유덕화, < 색계 >로 중년의 매력을 선보인 양조위, 오랜 동안 양조위의 연인에서 마침내 배우자로 변신한 유가령, 중국연예계의 4대 천왕 중 한 명으로 노래와 연기를 병행하며 끊임없는 활약을 펼친 장학우, 이들 최고의 배우들의 옆에 는 없지만 언제나 그 존재감이 지워지지 않는 아비(장국영), 이들 모두를 만나려면 < 아비정전 >이라는 영화 속으로 시간여행을 떠나야 한다. 나는 오래 전 이 영화를 보면서 왠지 모를 스산함, 사랑과 미래에 대한 망막함 등으로 잠을 뒤척이며 눈물을 흘린 기억이 있다. 낯 설은 슬픔에 대한 기억이라고 할 만한 이 오래된 기억은 그 익숙한 주제곡에 실려 세상을 떠도는 듯하다. 인생이 영화처럼 그렇게 짧게 스쳐가는 것은 아닐 텐데 수리진(장만옥)의 심정처럼 아비(장국영)와 우리는 1분밖에 함께 있지 않았던 것일까라는 생각이 이르면 심리적 시간과 물리적 시간의 차이가 이렇게 큰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수리진이 그랬던 것처럼 영원히 잊지 못할 1분의 추억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듯싶다. 이제 현실로 돌아와 보자. 우리는 영원히 잊지 못할 1분의 추억이 있을까? 무려 21년이 지났지만 그 세련됨과 서정적 감수성을 여전히 간직한 이 느낌을 요즘의 영화 아니, 우리 독립영화에서 찾을 순 없는 것일까? 사회적 아픔을 노래하지 않아도 좋고 판타지한 서정을 노래하지 않아도 좋다. 다만 이 짧고도 강렬한 기운을 담아줄 영화는 없을까? 21세기에는 모든 것이 소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소통을 논한다. 이제 힘은 어떠한 권위나 카리스마에서 나오는 시대가 아니다. 타인을 이해하고 진정으로 소통할 때 힘과 권위가 생긴다. 상황이 이러하니 영화야말로 호재를 만난 셈이다. 더군다나 메시지가 뚜렷한 독립영화야말로 물 만난 고기가 아닌가 말이다. 그러나 우리의 독립영화는 그 양적 질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오래 기억되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다. 보다 보편적인 감수성에 닿아 있지 못한 것은 아닐까, 영화적 지식의 나열이나 사회의식의 경쟁적 폭로가 아니라 그냥 스멀스멀 스며드는 그런 영화가 있으면 안 되는 걸까라는 의문이 든 것도 이 때문이다. 이 갑갑한 세상살이에 지친 모든 이들에게 따뜻하게 내미는 그 손이 독립영화가 되면 어떨까? 문득 그들의 1분이 그리워지는 것도 같은 연유이다. 창작자와 수용자 그 누구에게도 아깝지 않을 1분, 그 1분의 기억으로 빛날 독립영화를 그리며 그를 추억한다. * 아비정전 - 국내 개봉 당시 버림받았던 왕가위 감독의 저주받은 걸작이며 어머니를 찾아 떠나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