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이 날다
- 감독
- 민병훈, 잠쉐드 우스마노프
- 제작년도
- 1999
- 출연
- 무하마드 존 쇼디, 마스투라 오틱, 파크리딘 파크히딘, 타고이 무로드 로직
서울독립영화제 개막식에 다녀왔다. '12번의 사회를 보는 동안 검은 머리 청년에서 반백이 됐다'는 권해효 씨도, '소통할 수 있는 영화가 됐으면 좋겠다'는 개막작 <거대한 대화>의 박세호 감독도 반가웠지만, 내 눈길을 잡아끈 건 단연 김의석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이었다. 잘 알려졌다시피, 서울독립영화제는 2년 간 영진위로부터 지원이 끊긴 채 영화제를 치러야 했다. 개막전에 만난 조영각 집행위원장은 '어느 면에선 비참하고 힘들더라'고 했다. 법적인 검토를 받아도 문제가 없었지만 영진위 내부의 과도한 평가가 원인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지원 중단에 항의하고 시정을 요구하는 것이 '창피했다'고도 했다. 사실 돈이란 게 그렇다. 아끼면 아끼는 대로 꾸리고 지탱해나갈 순 있지만 규모의 축소보다 심리적 위축과 스트레스가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하는 것 아니겠나. 그러한 위기를 조영각 집행위원장은 '심기일전하면서 후원도 많아졌고, 영화제를 지지하는 흐름을 새롭게 인식하게'됐단다. 지원 중단이란 경제적 타격을 심기일전의 계기로 삼았다고 말하는 모습에서 어떤 단단함이 느껴졌다. 개막식 무대에선 김의석 위원장이 영화제 식구들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전한 이유도 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서독제 전후로 독립영화와 안팎의 몇몇 영화인들과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때가 때이니만큼 대화의 끝은 2012년 한 해를 돌아보고 결산하는 쪽으로 흘러가기 마련이었다. 그 중 역시나 ''기자정신''을 발동시키는 화두들은 ''지원''과 ''배급환경''이었다. 어느 영화감독은 2008년 장편독립영화를 촬영하던 당시보다 ''지원''을 받기가 몇 배는 힘들어졌다고 토로했다. 그만큼 외적으로 비춰지기로는 독립영화의 개봉 편수가 늘어난 것 같지만 그 수치와는 별개로 현장에서 영화를 만들기는 더 어려워졌다는 설명이었다. 최근 신작을 개봉시킨 다른 감독은 독립영화의 배급과 상영환경이 점점 ''게토화''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멀티플렉스 위주로 상영환경이 돌아가다 보니 작은 영화들은 설 곳을 잃어가고 있는 것은 물론 발품을 파는 적극적인 관객들 아니고서는 독립영화를 만날 수조차 없게 됐다는 한탄이었다. 불과 5년 전 수 만 명의 관객들과 행복한 만남을 가졌던 그 감독은 더 열악해진 배급환경에 대한 체감지수가 더 높은 것처럼 보였다. 개인적으로 창작과 완성까지와 연결되는 지원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배급환경''이라고 믿는 쪽이다. 아무리 좋은 작품이라도 영화제라는 축제의 공간에서 상영되고 마는 것 만큼이나 슬픈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인디스페이스와 인디플러스가 버팀목으로서 자리를 잡고 있지만, 최근 벌어지고 있는 멀티플렉스들의 횡포와 생색내기는 극에 달한 것이 아닌가 싶다. 예컨대 민병훈 감독의 < 터치 > 논란은 곪은 대로 곪은 이 배급환경과 극장상황에 대한 창작자들의 뼈아픈 심정을 대변하는 것일 터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4개 부문을 수상하고 선댄스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 지슬 >의 오멸 감독이 지방 독립영화협회들과 대안상영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새로운 시도라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어쩌면 당할 수밖에 없는 멀티플렉스의 횡포를 미리 피하는 것 같은 느낌도 들어 서글퍼진다. 그런 점에서 지난 9일 민주통합당에서 발의한 ''피에타법''의 향방에 주목을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영화발전 기금으로 저예산 독립예술 상영관의 설립 및 운영을 지원하고 영화진흥 기본계획에 ''저예산 독립·예술영화의 육성 및 지원''을 포함하도록 하는 것이 주요 골자다. 과연 이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느냐도 관건이지만 ''슈퍼갑''으로 부상한 극장들의 협조가 수반되지 않는다면 실효성을 거둘지도 의심이 된다. 대선이 코앞이다. 이래저래 독립영화인들을 힘들게 했던 현 정권의 유통기한도 만료를 맞았다. 부디 내년엔 이 ''배급환경''에 대해 진지한 논의와 실천적이니 법안을 내놓는 정권이 탄생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피에타법''이 그 출발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최근 한 편의 독립영화가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로부터 또 다시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았다. 곡사의 영화 < 자가당착: 시대정신과 현실참여 >(이하 자가당착)가 바로 그 주인공. 왜 이 영화는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았을까? 영등위의 사유는 이렇다. ‘과도한 신체훼손과 폭력성, 잔혹함이며 국민정서상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해친다’는 것이다. 사실 이 영화는 이미 작년에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은 바 있는데 그 때의 사유는 이렇다. ‘대사 및 주제에 있어 특별계층에 대한 경멸적 또는 모욕적 표현을 사용하고 개인의 존엄을 해치는 표현 수위가 극심하다’는 것. 그렇다면 <자가당착>이라는 영화는 과연 인간의 존엄을 해치는 영화일까? 어느 정도의 폭력성과 잔혹함이어야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은 것일까. 그리고 왜 같은 영화에 다른 해석의 결정이 내려지는 것일까. 사실 영등위의 등급심의 문제는 매해 거론되는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애매모호한 판단기준으로 심의 결정을 강요받고 있다. 또한 제한상영관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우리나라의 경우 이미 ''''''''제한상영가'''''''' 자체가 비민주적인 처사임은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특히, 정치적, 사회적 이슈, 그리고 표현의 새로운 영역을 계속적으로 확장하고 있는 독립영화의 경우 이미 계속해서 ''''''''검열''''''''당하고 있는 것과 같다. 비단, < 자가당착 > 뿐 아니라 올해 초 개봉된 < 줄탁동시 >의 경우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고 몇 장면의 편집을 거친 후에야 개봉이 되지 않았던가. < 자가당착 >은 이미 전주국제영화제와 인디포럼, 서울독립영화제 그리고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초청 상영되어 관객에게 선보였었다. 경찰의 마스코트인 포돌이를 주인공으로 정치인 박근혜, 현직 대통령 이명박을 자유롭게 풍자, 비판한 작품으로 영등위의 제한상영가 판정은 정치적 심의로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영등위의 첫 번째 제한상영가 판정에는 ''''''''특별계층에 대한 경멸적 표현''''''''을 문제 삼은 반면, 두 번째 제한상영가 판정의 이유가 ''''''''폭력성과 잔혹함''''''''인 걸 보면 영등위 심의의 판단 기준이 얼마나 주관적인 것인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1999년 < 둘 하나 섹스 >가 등급보류에 반발, 헌법재판소로부터 위헌판정을 이끌어 낸 이래 2002년 < 죽어도 좋아 >는 제한상영가 등급의 모순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사회적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최근에도 여려 편의 영화가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고, 편집, 수정을 거친 후에야 상영될 수 있었다. 곡사의 < 고갈 >(이유: 과도한 선정성), < 악마를 보았다 >(감독 김지운 / 이유: 인간의 존엄과 가치 훼손), < 트로피컬 >(감독 이상우 / 이유: 사회통념상 비윤리적 폭력성), < 아버지는 개다 >(감독 이상우 / 이유: 폭력성, 선정성), < 불륜의 시대(바라나시) >(감독 전규환 / 이유: 사회통념 및 국민정서상 받아들이기 무리) 등이 영등위의 판단에 의해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은 바 있다. 그리고 문제는 제한상영가 뿐만은 아니다. 김조광수 감독의 < 친구사이? >는 선정성과 모방위험의 이유를 들어 동성애에 대한 심각한 차별적 관점을 드러낸 바 있고, 별다른 노출신이나 폭력신이 없는 < 반두비 >(감독 신동일 )의 경우,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여고생이 불법 스포츠마사지업소에서 일한다는 내용이 선정적으로 묘사됐다고 판단, 청소년들의 영화 볼 권리를 박탈한 바 있다. 최근 민병훈 감독의 < 터치 >는 선정성, 폭력성, 약물, 모방위험 등을 이유로 청소년관람불가 판정을 받았다. 영상물등급위원회에서 제시한 제한상영가의 기준은 이렇다. ''''''''선정선, 폭력성, 사회적 행위 등의 표현이 과도하여 인간의 보편적 존엄, 사회적 가치, 선량한 풍속 또는 국민 정서를 현저하게 해할 우려가 있어 상영 및 광고, 선전에 일정한 제한이 필요한 영화''''''''. 그러나 언제까지 영등위가 영화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관객의 볼 권리를 제한할 것인가. 영등위, 제발 강요하지 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