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원
- 감독
- 김영준
- 제작년도
- 2017
- 출연
- 이소금, 박성진, 허다연, 이정민
Behind the Book : 저자에게 아직 남아있는 이야기 한 사람의 질문이 늘어나고 깊어진 끝에 수백 쪽이 되어, 세상 밖으로 나오기까지. 마침내 책 한 권으로 독자에게 닿은 저자가, 치열하고도 가치 있던 여정을 들려줍니다. 삶을 살다 보면 뜻하지 않은 길에 우연히 접어드는 일이 있다. 뜻하지 않은 길이기에 우선 두려움이 앞서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막다른 길에 무엇이 기다릴지 혹은 누구를 만나게 될지를 상상하며 설렘의 감정에 빠져들기도 한다. 필자가 연구를 시작하게 된 상황과 정확히 같다. 학계에서 잘 다루지 않는 일제강점기 전화의 역사를 주제로 박사학위 논문을 집필한 후, 잇따라 통신 테크놀로지에 기반한 미디어인 유선방송의 역사를 정리하거나 신문용지 또는 신문배달원, 옥외광고, 노래방, 통신교육 등 ‘간과된 미디어’의 역사에 관심을 두고 연구해 오던 차에, 그리 친하지 않은 선배 연구자로부터 뜻밖의 제안을 받게 되었다. 그간 주로 도서관이나 헌책방을 뒤져가며 수집한 국내 자료와 일본 자료를 가지고 연구해 오던 필자에게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의 아카이브 자료를 가지고 함께 연구하자는 제안이었다. 두려움과 설렘이 교차되는 순간이었다. 무엇보다 두려움이 앞섰던 이유는 간단하다. 한 번도 본격적으로 시도해보지 않은 아카이브 연구이기 때문이었다. 두려움이 앞섰지만, 주로 일국사적(一國史的) 관점에 서 있었던 시야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컸다. 또 아카이브 연구에 대한 경험은 일천했으나 역사 연구의 원리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에 두려움은 진정되었다. 사실 역사 연구의 원리는 간단하다.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도 언급한 바 있지만 ‘이야기를 짜는 일’은 ‘베를 짜는 일’에 그 연원을 둘 만큼 기본적으로 ‘엮는 일’이다. 즉, 수집한 사료를 읽고 정리하고 분류해서 일정한 관점에 따라 (실로 엮듯이) 엮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이 기대를 어긋나게 하듯, 이후 수십만 장의 미국 공문서들이 공포스럽게도 필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주한 미공보원의 영화 공보 활동과 주한 원조기관의 활동에 대한 주제를 구상한 계기는 그간 유선방송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필자의 잠재의식에서 묻혀 있던 의구심이었다. 4.19 혁명 직후 국내 유선라디오 방송사 설립 붐이 있던 시기에, 부족한 전선을 메우기 위해 미국 원조기관의 지원을 통해 미8군의 군용선을 사용했다는 기록을 처음 접했을 때, 필자에게 든 의구심은 한국의 미디어들이 성장하는 데 있어 미국의 영향이 크지 않을까 하는 점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집필 과정에서 미국문서를 통해 사실적으로 확인해 보니, 1950~60년대에 걸쳐 미디어 분야에 있어서 미국의 영향은 매우 컸다. 여기서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한국 미디어에 대한 미국의 지원이 미국의 세계 공보 전략의 일환으로 이뤄졌을 뿐만 아니라, 매우 체계적인 커뮤니케이션 개발 철학에 의해 수행되었고, 그 핵심에는 자본주의적 심성의 전수가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1956년 3월 2일 당시 주한 미공보원의 문화원과 한국 문화원 현황 (사진: Meetings of Cultural Center Directors, March 2, 1956(RG 306, W-347, John P. McKnight, USIS-Korea → USIA-Washington, Box 134) 처음 경험해 보는 아카이브 연구이자 미디어 분야의 한미관계를 주제로 한 연구였지만, 책을 집필한 이후에도 여전히 남는 질문이 있다. 과연 냉전기 미국이 우리에게 남긴 유산은 무엇인가? 과거 한국의 미국화에 대한 우려 섞인 논평들도 있었고 그러한 문제의식에 따라 역사 연구가 진행되기도 했다. 나름의 적실성 있는 지적과 성과이지만, 사실 집필을 마친 후에도 여전히 이 질문은 해소되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주된 이유는 아마도 필자가 미처 사실에 기반하여 명확히 해명하지 못한 역사적 사실 때문일 것이다. 일부 규명되긴 했으나 주한 미공보원이 제작해서 배급·상영했던 수많은 영화의 내용과 한국인들의 반응에 대한 사실적 해명은 물론이고, 미국이 이식하려고 했던 자본주의적·개발주의적 심성이 한국 정부 관료와 일상인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에 대한 해명 또한 필요하다. 1961년 국립영화제작소의 영화촬영반 차량 (사진: “ 국립영화제작소 ”, 국가기록원) 집필 이후에도 수많은 과제가 여전히 남아있는 상황이지만, 우연에 의해 시작되었던 연구 여정의 끝은 개인적으로 의도하지 않았던 큰 깨달음이었다. 집필 중에도 한국 국가기록원의 아카이브 자료를 이용한 한일 간 전파월경(spill-over)에 대한 연구를 통해 일국사적 관점에서 탈피하게 된 것은 의도한 것이었지만, 학술공동체의 소중함을 절실히 깨닫게 될 줄은 짐작도 못했다. 선배 연구자의 후학을 배려한 마음에서 집필이 시작될 수 있었다는 사실은 물론이고, 저서를 발행하는 과정과 발행 이후에 출판사와 학계 선후배가 전해주는 따뜻한 격려는 새삼스레 학술공동체의 가치를 일깨워주는 계기였다. 돈이 지배하는 세상, 이제 수많은 어려움이 동반되는 아카이브 연구에 임하는 것이 스스로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에 역사 연구에 입문하기를 꺼리는 세태 속에서, 필자가 겪었던 체험이 혹여 이 글을 읽고 있을 젊은 연구자나 독자에게 작은 희망을 선사해 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어느 후배가 필자의 저서에 대해 남긴 말이 있다. 필자가 동참한 일련의 시리즈 연구서가 간행된 것으로 보면서, “냉전기 한국 미디어 문화에 대한 집단 연구로 인해 이제 냉전기 한국 미디어사 연구는 어느 정도 종결되었고, 앞으로 새로운 시작점이 시작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이었다. 이 말을 단순히 후배의 호의 어린 평가라고 치부해 버릴 수 없는 이유는, 현 시점에서 미국 넷플릭스의 공습으로 인해 국내 콘텐츠 산업 안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세계화 초기였던 1980년대 초반의 상황도 지금과 유사했다. 1950년대 말부터 한국인들의 안방극장 중 한 자리를 차지고 있던 AFKN-TV가 1983년 위성중계를 결정하자, 당시 한국사회에는 ‘미국 대중문화의 침투’를 ‘문화 제국주의’라 칭하며 우려했다. 지금 국내 콘텐츠 산업의 담당자들 또한 ‘문화 제국주의’를 운운하고 있다.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국면 속의 미국을 다시 만나야 할 시간이다. 윤상길(언론정보학 연구자) l 미디어의 인프라적 측면에 초점을 두고 다양한 미디어 역사 연구를 해왔으며, 최근에는 1980~9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적 국면에 초점을 두고 연구하고 있다. 주요 저작으로는 『19세기 동아시아 통신 네트워크와 국제 정치』(2019, 동북아역사재단)가 있다.
2000년대 초반은 여러모로 참 재미있는 시기였다. 세계 종말도 Y2K도 없었다. (있었어도 나 같은 서민은 모를 정도로 능력자분들이 잘 처리해 주셨다.) 그렇게 맞이한 밀레니엄에서 사람들은 뭔가 해방 비슷한 기분을 느꼈던 것 같다. (2000년 이후의 삶에 대해 별생각이 없었을지도 모르고) 사회 전반에 걸쳐 이전과는 다른 문화현상들이 나타났고, 이전부터 근근이 이어지던 서브컬쳐들이 폭발하기 시작한 것도 이 때다. 영화계에서도 그런 모습은 다르지 않았는데 과격한 상상력과 놀라운 실행력이 결합된 재미난 작품들도 많았다. 그런 경향의 일부였던 < 씨어터 >와 < 재능있는 소년 이준섭 > < 엄마의 사랑은 끝이 없어라 >를 본 코너에서 소개하기도 했었다. 오늘 소개할 작품은 이들 젊은이들의 재기가 꽃피우던 시기에 완전히 반대 방향에서 과거를 현재로 끌어오려 고독하게 16mm 카메라를 다찌마리로 수놓았던 어느 노감독의 마지막 영화에 대한 것이다. 2003년 8월 21일 주간지 ‘일요 서울’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 “퀵서비스 배달원의 애환을 그린 영화 < 퀵맨 >이 최근 극장에서 개봉 돼 화제다.” 이 문장에는 몇 가지 오류가 있다. 첫째, < 퀵맨 >은 퀵서비스맨이 주인공이긴 하지만 그 직업이랑은 전혀 상관이 없는 이야기다. 둘째, 개봉됐다는 언급은 있지만 정확한 근거를 찾을 수가 없다. KMDb에는 개봉 날짜 및 관람객 수 표기란이 아예 비어있고 네이버 영화에는 2002년 개봉이라고 적혀있다. 그러나 위의 기사는 2003년 기사... 도시 전설이 보통 이런 식으로 탄생하곤 한다. 게다가 ‘화제’였는지도 불분명하다. 정말 <퀵맨>은 화제였는가?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그 ‘화제’는 일반 관객이 아니라 영화 관계자들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 이 영화는 1967년 < 새벽길 >로 영화인생을 시작해 1996년 < 알바트로스 > (그렇다 차인표 , 이휘재 의 국방부 퀘스트였던 그 영화다.)까지 쉼 없이 달리던 그가, 6년의 공백 끝에 발표한 영화기 때문이다. 이혁수 라는 이름은 뭐랄까. 임권택 도 남기남 도 아니지만 상당한 다작에(KMDb 등록 감독작이 51편이다) 나름대로 인정받는 흥행작, 장르의 걸작도 필모에 몇 편 포함되어있는 (그 중 42번째 영화이고 86년에 연출한 < 여곡성 >은 지금도 자주 회자되는 한국 공포영화의 클래식이다.) 감독이다. 그는 결코 거장도, 연타석 안타의 흥행 마술사도 아니었지만 영화인으로서 오랜 시간 갈고닦은 연출력을 통해 장르 영화의 구조를 튼실하게 구축할 줄 아는 감독이었던 것 같다. 그의 필모에는 권격 영화, 호러 영화, 사회 고발, 코미디 등 여러 장르가 어지럽게 펼쳐져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액션영화 연출에 탁월한 재능을 발휘해 한 때는 흥행사로 불리기도 했다. ‘삐용삐용 B무비’의 다른 필진인 주성철 기자가 소개했던 < 애권 >에 언급되었던 ‘웃겨서 죽여버리는 권법’이 등장하는 < 소권 >이 이혁수 감독의 작품이며 이 작품은 장르 팬들의 애정을 받는 영화다. < 퀵맨 >은 그런 이혁수 감독이 2000년대에 들어 연출한 유일한 영화다. 영화가 제작된 2002년 당시는 디지털이 막 시작되던 시기였고(한국 디지털 에로영화의 춘추전국시대가 바로 이 시기였다. 클릭 엔터테인먼트와 봉만대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하던 시기.) 한국 영화계에 ‘새로움’이라는 화두가 실제로 눈에 펼쳐지기 시작하는 때였다. 그러나 이혁수 감독은 <퀵맨>을 16mm 필름으로 찍고, 등장인물은 퀵서비스 기사와 사악한 기업의 부사장이지만 영화의 골격은 무협영화를 그대로 따라가는 권격 영화로 만들었다. 거기에 더해, 놀라운 반전까지. 모델인 승희는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뛰어난 미모 덕에 급상승 중이다. 그러나 업체 관계자들과의 술자리, 에이전시의 무리한 요구에 염증이 난 승희는 일을 그만두고 본인의 전공을 살려 미술학원 강사로 돌아간다. 한편, 코리아유통의 오 회장은 ‘코브라’라고 불리는 암살자에게 살해 당한다. 그는 사망 전 유언 동영상을 남겨 자신이 어릴 때 버렸던 유일한 혈육 ‘오승희’를 찾아 자신의 전 재산을 상속해 주기를 당부한다. 이 유언을 본 고문 변호사 문 변호사와 부사장 태욱은 ‘오승희’의 사진 한 장을 그 가지고 그녀를 추적한다. 하지만 그들의 의도는 다르다. 문 변호사는 오 회장의 유언을 받들기 위해 그녀를 찾지만, 태욱은 그녀를 제거하기 위함이다. 오 회장을 ‘코브라’에게 사주해 살해한 것이 태욱이기 때문이다. 회장을 살해하고 기업을 통째로 먹으려던 태욱에게 몰랐던 승희의 존재가 매우 성가신 것이었다. 태욱은 기어코 승희를 찾아내고야 만다. 위기에 빠진 승희는 우연히 만난 퀵서비스 기사 성민의 도움을 받게 되고 이 둘은 사랑에 빠진다. 적어놓은 줄거리만 보면, 적당한 액션 영화가 될 가능성이 있는 시나리오다. 실제로 이런 식의 이야기기가 예로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만들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이야기를 주무르는 자의 ‘감각’과 추구하는 ‘방향’이 영화의 모양을 결정한다. 만약 이 글을 보는 당신이 < 퀵맨 >을 어디에서든 검색한다면 많은 정보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몇 안 되는 포스팅에서 이 영화가 ‘괴작’이라고 불리는 것을 분명히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이 영화는, 어느 시대에나 통할 법할 이야기를 현재시제의 상황으로 변형시킨 뒤, 감독 본인이 가장 잘했던 시절의 연출을 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예를 들면, 이 영화의 마지막은 암살의 실행자 ‘코브라’와의 결전이 아니다. (진짜로 멋지게 찍힌) 성민 최후의 결투는, 영화 내내 이태리제 소파에 앉아 암살자에게 지시를 내리던 부사장 태욱과 이루어진다. 이것은 마치 한 명씩 적들을 격파하며 올라가는 옛 무협영화의 공식이다. 게다가 성민이 위기에 빠지자 수많은 오토바이가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등장해 벌이는 깡패와 퀵서비스맨의 패싸움 장면은 마치 위험에 처한 사형을 구출하기 위해 단체로 출동한 ‘퀵서비스 문파’의 형제들을 보는 듯하다. 그렇듯, 이 영화는 진지하다. 하지만 언제나 문제가 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진지함이 웃음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이혁수 감독의 장기인 다찌마리 액션 장면을 떼어놓고 본다면 대사 하나하나, 상황 두 개 세 개가 황당하다. 이런 장면이 있다. 성민과 승희의 이야기가 진행되던 도중, 갑자기(정말 아무런 두서가 없이) 호스트바가 나타난다. 지금까지 보지 못한 처음 본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한 여자 손님이 선수(호스트바 남성 접대부를 지칭하는 말)가 마음에 안 든다며 꼬장을 부린다. 그러자 마담이 오늘 처음 온 친구라며 장발의 청년을 소개하고 이 둘은 잠자리까지 가게 된다. 둘의 욕정이 무르익고 있는 상황에(여기까지 한 5분 걸린다) 갑자기 성민이 등장한다. 다짜고짜 신참 선수를 때리기 시작하는 성민. 장면이 바뀌어 한강둔치로 예측되는 곳에서 성민은 계속 구타하며 말한다. '달수야 임마! 사내놈이 할 짓이 없어서 고추장사를 해!? 내가 널 친동생같이 생각하는 걸 모르는 거야?' 그러자 달수는 말한다. '형 그럼 어떻게 해! 취직도 안 되고 돈은 필요하고... 훌쩍훌쩍' '그래도 어떻게 고추 장사를 하느냔 말이야! 나는 널 이제 안 볼 거야!' 아무 말 없는 달수. 돌아가는 성민. 그러자 달수는 성민의 뒷모습에 대고 말한다. '형... 내가 잘못했어. 이제 고추 장사 안 할게.' 그러자 성민은 환하게 웃으며 달수에게 다가가 말한다. '그래. 잘 생각했어. 정정당당하게 돈을 벌어야지. 앞으로는 형과 함께 퀵서비스를 하는 거야! 하하하' 그리고 달수는 퀵맨의 일원이 된다. 그리고 소개에 할애된 시간이 무색하게 영화가 끝날 때까지 아무것도 안 한다. 이런 장면도 재미있지만, 여주인공 승희의 사정은 감탄이 나올 정도라 소개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결과적으로, 모델 오승희는 코리아유통의 인물들이 찾던 승희가 아니었다. 진짜 승희는 그녀의 이모부인 박 선생(레전드 박동룡 선생님께서 맡아주셨다.)이 영국으로 유학을 보냈었던 것이다. 결국 문 변호사는 그녀를 찾아내고 한국으로 입국을 시키면서 태욱은 멘탈이 붕괴된다. 그렇다면 자신이 쫓고 있던 오승희는 누구란 말인가? 물론 이 배역은 전혜윤 배우의 1인 2역이다. 그런데 영화를 보던 관객은 이럴 줄 알았다고 생각하게 된다. 왜냐하면, 이들이 영화 시작할 때 오승희를 찾기 위해 들고 있던 사진에는 얼굴에 점이 하나 찍혀있었기 때문이다! 모델 오승희에게는 점이 없다! 이 점을 영화 초반엔 극 중 아무도 언급하지 않는다. 관객들이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을 때, 조금은 미안한 생각이 들었는지 태욱의 부하 중 하나가 “사진엔 점이 있는데 이 여자는 점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자 태욱은 “요즘 성형수술을 많이 해서 점 하나 빼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라며 대충 넘어가는 장면이 잠깐 나오긴 한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처리 되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괜히 ‘아유유...’ 하는 기분이 들어 괜히 몸이 조금 오그라든다. 결국 진짜 승희가 등장하는 후반부에 가서는 지금이야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는 ‘<아내의 유혹>적 리얼리즘’이 이미 시도되었었다는 것에 충격을 받고 만다.(‘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공자님의 말씀. 막장의 세계에서도 이 진리는 통한다.) 그러니까 전직 모델 오승희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에 엮여 온갖 고초를 다 겪게 되었던 것이다. 불쌍한 사람. 그래도 성민이라는 듬직한 사랑을 만났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하지만 인연이란 것은 꼭 그런 고생은 안 해도 만날 수 있는 것일 텐데 여하간 불쌍하다는 생각 외에는 그녀에겐 아무런 생각이 안 드는 것이다. 닮은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었어... 이런저런 산만한 부분들이 있지만, 액션에 관해서는 절대로 웃기거나 하지 않다. 오히려 격투 씬 때문에 앞서 말한 황당함들 조차 잊을 수 있을 정도라면 조금 오바스러운 이야기일까? 특히 공장에서 펼쳐지는 내분으로 인한 코브라와 깡패들의 일대 다수 싸움, 마지막 개천에서 부사장 태욱과 성민의 결전은 왕년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시원한 다찌마리였다. 이혁수 감독님은 마지막 작품이라고 생각하시고 본인의 내공을 풀어낸 연출이 아니었나 싶다. 이제 ‘액션 영화’라는 말은 있지만 ‘권법’이나 ‘권격’ 이라는 말은 거의 사장된 듯 싶다. 정말, 정말 마지막 권격 영화라고 불러도 좋을 만한 < 퀵맨 >은 그 만듦새가 완벽하지는 않지만 노감독의 작별인사로는 충분하지 않았나 싶다. 이제 더 이상 사랑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정의를 위해 세상을 등지는 쾌남의 시대는 없다. 세계는 그런 사람을 (예전에도 그렇긴 했지만 지금은 더더욱) 완전한 멍청이로 보이게 재구성되었다. 영화 속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은 정의의 주먹은 현실에서 더욱 더 멀어져 만화 속에서 스크린으로 이주한 캐릭터들만이 구사할 수 있는 것이 된 것 같다. 나는 이혁수 감독의 <퀵맨>을 보면서 다시 이런 영화가 나올 수 있고 관객들이 좋아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정의는 단순하고, 영웅은 원래 바보다. PS : 영화의 주연인 윤세웅 (KMDb에는 ‘윤호’로 기재)씨는 배우 ‘ 윤양하 ’ 씨의 아들이라고 한다. 영화는 많지 않은 수의 출연을 했지만 현재까지 성우로 맹활약 중이다. 전혜윤 윤호 송금식 감독: 이혁수 각본: 윤석훈 , 안진원
휘적휘적 걷던 사내가 경찰서로 들어간다. 그는 지금 실종신고를 하는 참이다. 신고를 하는 와중에도 계속 경찰서 바깥을 흘긋거린다. 심드렁하게 신고를 접수받는 경찰의 질문에 답하는 목소리에, 커다란 키에도 불구하고 경찰을 향해 앞으로 숙인 그의 어깨에 망설임과 두려움이 드리워 있다. 실종신고라면서 그가 전하는 정보들은 하나같이 정확하지가 않다. 그는 지금, 자기 자신의 실종신고를 하는 참이다. 그는 기억을 잃어버렸다. 며칠 전 발바닥에 깊숙이 박힌 전구의 유리 조각을 빼내던 순간 ‘깨어났’다. ‘기억상실증’은 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손쉬운 갈등 국면을 위해 남용되는 소재지만, 이 짧은 단편에서는 이것 자체가 전제로 주어진다. 게다가 그가 깨어난 곳은 자기 외엔 아무도 없는 집 안이다.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아는 것에서부터 어렵고 긴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를 안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 목욕 가운 차림으로 깨어났으니 이 집이 그의 집인 것은 분명한데, 그가 누구인지 찾을 수 있는 단서는 거의 없다. 문밖, 겹겹이 포개어져 있는 아파트는 견고한 벽과 문으로 구획돼 있어 앞집에서 사람 소리는 나지만 그들에게 자신의 정체를 물을 수는 없다. 묻는대도 만족할 만한 답을 얻지는 못할 것이다. 심지어 그가 집 안에서 접한 단서조차도 오히려 혼란과 잘못된 정보만 준다. 집으로 그를 찾는 전화가 걸려와 그의 어머니에 대해 말할 때 그가 뛸 듯이 기뻐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전화는 곧 보이스피싱임이 드러난다. 이 영화에 드물게 코미디의 웃음을 주는 부분이지만, 이 남자가 집이라는 자신만의 공간에서 오히려 잘못된 정보를 얻을 수 있음을 경고하는 신호이기도 하다. 택배 배달원이 건네준 상자 덕분에 자신의 이름을 겨우 알게 되지만, 영화의 에필로그에서야 비로소 드러나는바, 그 이름은 그의 이름이 아니다. 집은 그의 확장된 자아이다. 꽤 넓고 깔끔한 이 아파트엔 그가 생존을 위해 필요로 하는 것들이 거의 갖추어져 있다. 심지어 서랍에 현금도 있다. 그러나, 자신의 존재를 잃어버린 이에게 오히려 고립을 강화하는 공간이다. 자신을 오인하게 만드는 공간이다. 그에게는 이러한 것들이 아니라 단 한 사람, 그가 누구인지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가 이 세상에 혼자가 아닌, 누군가와 연결돼 있다는 믿음과 확신을 줄 수 있는 사람. 넓고 안락하지만 황량하기도 한 이 아파트 안에서, 그는 누구인지조차 모를 ‘그녀’에게 편지를 쓴다. 그가 이 편지를 전달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다소 극단적이다. 그는 자신에게 아는 척을 해주었던 편의점 직원에게 눈물을 펑펑 흘리며 “나를 알지 않느냐”고 연신 물었고, 편지에는 “나를 잊지 말아요”라고 썼다. 그에게 유일한 친근함을 보여주었던 편의점 그녀가 ‘그녀’일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어느새 ‘그녀여야 한다’는 믿음이 된 듯하다. 잃어버린 자신의 존재가 누군가에게, 단 한 사람만이라도 타인에게 기억되기를 바라는 그 절실한 마음,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쏟으며 거리를 헤맬 수밖에 없었던 그의 고독이, 그녀의 부정 앞에서 결국 무너져 내린다. 편의점의 그녀는 정말로 그와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었을까. 아니, 그와 정말로 알거나 가까운 사이이긴 했던 것일까. 따스한 햇볕 아래 꽃을 들고 걷다 그와 원치 않은 방식으로 마주친 여인은 또 누구일까. 에필로그에 등장한 그의 아내에겐 또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일까. 만약 근래 언론에 난 기사대로 된다면, 수수께끼만 남긴 채 끝이 난 이 영화 속 인물들의 자세한 사연과 뒷얘기를 어쩌면 스크린에서 다시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곧 장편으로 옮겨질 예정이며 제작과 주연배우가 결정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