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광복60년 프로젝트 - 8.15의 기억
- 제작년도
- 2005
옛 영화는 자주, 영화 자체의 재미라기보다는 그 영화가 지니는 문화사적 맥락의 정보들 때문에 보게 된다. 특히 타 장르와의 교섭이 활발한 작품들, 대중영화로서 당대 유행하고 있던 주류적 흐름에 충실한 작품들은 더 그러하다. 1967년 이규웅 감독의 < 치맛바람 >도 그런 작품이다. 솔직히 말해 이 영화는 수작이 아니다. 사극을 주로 연출해왔던 이규웅 감독이 만든, 정말 몇 편 안 되는 현대물 코미디이다. 그래서인지 코미디 연출의 생명이라 할 수 있는 리듬감과 속도감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고, 연기로부터 소품, 카메라 워크에 이르기까지 희극적 과장이 들쭉날쭉하여 균형이 어그러져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이 당시 드라마와 쇼에 사운을 걸고 있던 상업적 민방 동양방송(TBC)의 인기 텔레비전드라마의 리메이크이고, 1960년대 후반의 수많은 코미디영화들의 흐름 속에 놓여있음을 생각하면, 매우 다양한 문화사적 맥락을 읽어낼 흥미로운 작품임을 깨닫게 된다.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까지, 방송드라마는 영화의 가장 중요한 원작 공급처였다. 일찍이 해방 직후 연속극의 시작점에 놓인 < 똘똘이의 모험 >(1946)이 영화화된 것부터 시작하여, 연속극의 안정적 편성의 시작인 < 청실홍실 >(1956)부터는 인기 연속극은 으레 영화화되는 수순을 밟았고, < 로맨스 빠빠 >, < 박서방 >, < 빨간 마후라 >, < 남과 북 > 등 1960년대의 수작 영화 중 적지 않은 작품이 드라마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대부분 라디오드라마였다. 1964년 동양방송의 개국과 함께 녹화가 가능해져 텔레비전 연속극이 발전하고 있었고, 따라서 1960년대 중후반부터는 텔레비전드라마의 영화 리메이크가 간간이 나타나는데, 텔레비전드라마의 리메이크영화는 그리 성공적인 작품이 많지 않다. 아무래도 영상물을 또 다른 영상물로 옮기는 이러한 리메이크는, 창작자와 관객 모두에게 새로운 상상력을 발휘하기 힘들게 했기 때문이리라. 이 작품의 원작인 드라마 < 치맛바람 >은 1967년 동양방송 주말연속극의 또 다른 이름인 ‘유호극장’의 작품이다. 극작가의 이름을 내걸고 같은 시간대에 한 작가가 계속 집필한 사례는 한국방송사에서 전무후무하다. 그 정도로 당시 유호는 매우 인기 있는 작가였고, <치맛바람>은 1965년부터 시작된 유호극장의 한창 시절 작품이다. 유호는 희극에 능한 작가이며, 특히 도시 중간계층에 속하는 평범하고 속물적인 인물들이 벌이는 희극적 사건을 삽화적으로 펼쳐놓는 것을 좋아한다. < 치맛바람 > 역시 그러하다. 가난한 월급쟁이 ‘장’은, 아내, 아버지, 대졸 실업자와 여대생 동생, 중학생 아들까지 먹여 살리느라 취미는커녕 담배마저 끊는다. 견디다 못한 아내 ‘진’이 계를 들어 돈을 벌고자 하는 데에서 사건이 시작된다. 돈 주무르는 수완이 능란한 계주 ‘풍’을 비롯한 계꾼 여자들은 한복 치마를 펄럭이며 몰려다닌다. 집단화된 여자들은 목소리가 커지고 집단행동으로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도 하는 것에 비해, 오히려 남자들은 이들 앞에서 부끄러워하고 쩔쩔 맨다. 바깥으로 나돌며 돈을 만지는 드센 여자들을 비판적으로 다룬 영화는 이미 1950년대부터 흔했다. 이 겉멋 든 여자들은 남자 머리꼭지에 올라선 것처럼 굴지만, 결국 이들에게 몰려드는 남자들과의 관계, 혹은 금전 관계의 실패로 극적 처벌의 결말을 맞게 된다. 이런 보수적 시각은 오래 유지되지만, 1960년대 후반에 놓인 이 작품은 1950년대의 작품들과 다소 차이를 보인다. 치맛바람 일으키는 계군들은, 1950년대의 < 자유부인 >이나 < 여사장 >처럼 미국 여배우처럼 차려입은 멋진 여자들이 아니라, 그냥 한복 입은 중산층 아줌마들이다. 또한 이 여자들에게 ‘껄떡대는’ 남자들 또한 돈 많은 사장님만이 아니라, ‘진’의 시아버지나 룸펜 시동생처럼 장삼이사들을 포함하고 있다. 즉 1950년대에 눈 뜨기 시작한 물욕과 성욕의 적극적 구현은, 1960년대 후반에 이르면 대도시의 보통사람들 누구에게나 나타나는 보편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여지게 된 것이다. 한편, 치맛바람이 극적 처벌을 받긴 하지만, 아내가 나서서 계라도 하며 살아나가는 도시 서민의 생활방식 자체가 부정되지는 않는다는 것도 주목할 만한 점이다. 1960년대에 가정의 경영권은 이미 주부에게 넘어왔고, 주부는 시아버지부터 시동생의 소소한 지출까지 간섭하면서 재태크에 눈을 돌리는 경제적 주체가 되어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의 원작인 드라마 동영상이나 대본이 남아있지 않아 영화와의 차이를 정교하게 비교할 수는 없으나, 원작과 상대적으로 가까운 오리지널 대본과 비교해 보면 영화화 개작의 방향을 짐작할 수 있다. 삽화의 수를 줄이고, 성적 농담과 노출, 슬랩스틱코미디 스타일의 과장된 연기를 크게 강화했다. 즉 당시에 인기를 모으고 있던, 서영춘 등 코미디언의 개인기를 중심으로 젠더 선입견에 기대어 웃음을 유발하는 코미디영화의 관행을 받아들인 것이다. 가정과 골목길에서 벌어지는 일상적인 희극적 상황을 그려내는 데에 치중한 유호 의 텔레비전드라마의 경향이, < 남자 식모 > 같은 영화가 주를 이룬 코미디 영화의 경향으로 흡수되어 조정된 양상인 것이다. 비교적 원작에 가까웠을 오리지널 시나리오에 없는 장면, ‘진’이 사업상 만난 무 사장과 요정에서 춤추는 장면이 삽입되고, 뚝섬유원지에서 수영복 바람으로 춤추는 장면이 반복되며, 특히 뚱뚱한 여자 코미디언 오천평 과 서영춘과의 엎치락뒤치락 장면을 길게 배치하는 등, 내용이 많이 추가된 것은 그 때문이다. 이렇게 자극의 수위를 놓여놓았으니, 결말 역시 좀 더 과격하거나 억지스러워질 수밖에 없는데, ‘장’의 계몽적인 일장연설로 계꾼들이 개심하는 결말도 오리지널 시나리오에는 없다. 이규웅 이 낯선 장르 코미디를 만나 이 작품은 다소 어설펐지만, 이후 그가 코믹한 사극인 < 공주 며느리 >, < 꼬마 신랑 > 등을 연출하는 데에 이 작품은 중요한 다리가 되었을 것이다. 젊은 미모의 여배우임에도 불구하고 희극적 캐릭터를 귀엽게 잘 소화해낸 남정임 은, 이후 이규웅의 코믹한 사극의 주인공을 도맡았다. 소심한 남편 ‘장’을 맡은 허장강 의 계산된 정교한 연기, 고령에도 불구하고 뚝섬유원지의 록밴드 앞에서 엉터리 영어로 팝송을 부르며 판을 제압하는 아버지 김희갑 의 놀라운 감각, 남정임 과 1950년대 아프레걸을 도맡았던 이빈화 의 과감한 비키니, 그리고 유호 작품에서 허랑방탕한 삼촌(시동생) 역을 단골로 맡았던 김순철 의 대체 불가능한 시동생 연기 등은 이 영화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볼거리이다.
어린 시절 32색 크레파스를 가진 친구가 부러웠던 적이 있다. 내가 가진 12색 크레파스에는 하나밖에 없는 살색 크레파스가 그 친구에겐 무려 3종류나 있었고, 그 때는 그 친구가 나보다 그림을 잘 그리는 이유가 오직 32색 크레파스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머리가 굵어지고 더 이상 크레파스 색깔을 ‘살’색이라고 부르지 않을 만큼 사리분별을 하게 된 이후에도 가끔씩 궁금해진다. 누가 먼저 그 색깔을 살색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일까. 융 헤닌 감독의 < 피부색:꿀 >을 보고 한동안 잊고 있었던 그때의 질문이 다시 떠올랐다. < 피부색:꿀 >은 융 헤닌 감독 본인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한 입양 소년의 성장담이다. 고아원에서 지내다 벨기에로 입양된 소년 전정식은 보통의 양부모 밑에서 평범하게 자란다. 동양인 입양아의 피부색을 ‘꿀’색이라고 부르는 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은 입양아들의 사연을 특별하게 취급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도식적인 드라마라면 입양아가 겪는 고난과 양부모의 괄시, 혹독한 환경에서의 성장기를 다루겠지만 소년 융의 삶은 평범했다. 그는 평범하게 괴롭고, 평범하게 외롭고, 평범하게 반항한다. 양부모는 융을 특별히 차별하지도 않고 융도 특별히 엇나가지 않는다. 하지만 안온해 보이는 일상 속에 입양아로서 느끼는 상실감이 곳곳에 묻어 있다. 흔히 ‘보통’, ‘평범’이라는 말은 평화롭고 별일 없이 잘 산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곤 하는데, 이는 이야기가 만들어낸 착각에 불과하다. 실상 보통사람들의 평범한 생활은 웃고, 울고, 싸우고, 상처 입고, 헤어지고, 화해하는 먹먹함으로 가득 차 있다. < 피부색:꿀 >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범이란 단어로 덮고 살아가는 진짜 감정에 귀를 기울인다. 특별하고 드라마틱한 사연이 아니라 수십만 입양아들이 실제로 겪었을 법한 심적인 갈등을 담담하게 담아내는 것이다. 융 헤넨 감독은 우리가 이야기를 통해 이해하고 멋대로 상상한 모습이 아닌 입양아의 민낯, 진짜 사연을 보여준다. 때문에 장면마다 공감했을 때의 울림 또한 각별하다. 일견 다큐에 어울릴 법한 소재처럼 보이지만 < 피부색:꿀 >의 이야기는 애니메이션으로 표현되었기에 더욱 빛을 발한다. 진짜 삶, 진짜 고민, 진짜 이야기가 지닌 무게. 차분하게 가라앉은 어둠은 투명한 수채화풍의 배경과 둥글고 포근한 인물묘사를 만나 동화처럼 호소력 있게 가슴 속에 파고든다. 덕분에 어두울 수 있는 이야기가 따뜻하게 다가와 보는 이에게 훈훈한 웃음마저 안긴다. 우리가 반드시 보고 제대로 알아야 할 진지한 이야기를 가장 효과적인 방식으로 전달한다는 점에서 애니메이션의 힘을 십분 활용한 수작이라 할 수 있다. 살색을 꿀색으로 부를 수 있는 동심. 상대의 모습을 온전히 이해하려는 진심. 그 위에 유럽인이면서 아시아인, 한국인이면서 유럽인인 작가 융 헤넨, 소년 전정식이 서 있다.
어떤 의미에서 1980년대의 한국영화는 < 바람 불어 좋은 날 >(1980)과 < 꼬방동네 사람들 >(1982)로 시작해 < 우묵배미의 사랑 >(1990)으로 끝난다. 1980년대는 민중의 삶이 대중영화 안에 존재했던 마지막 시기였다. 민중이 제기했던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 없이 1990년대는 시작됐고, 급조된 사회 변화가 한국영화에 시답잖은 영향을 끼친 결과였다. 그나마 1980년대를 낭만적으로 회고하던 대중문화가 섣불리 1990년대로 돌아선 지금, 나는 1980년대의 영화를 꼼꼼하게 되돌아볼 필요성을 느낀다. 거기에는 버리지 말아야 했으나 버려버린 시간의 흔적이 생각보다 차지게 배어 있다. 하나하나 꺼내볼 때면 남다른 기분을 주는 1980년대 한국영화 가운데 이장호 의 < 과부춤 >이 있다. 흥행에 실패해 변두리 상영관에서 동시상영의 운명을 맞던 즈음, <과부춤>과 나는 만났다. 영사실에서 실수를 했는지 의심했을 정도로 괴상한 영화였다. 첫 기억은 그랬다. < 과부춤 >은 이동철의 원작소설 <오과부>를 각색한 작품이다. 당시 이장호 는 이동철의 < 어둠의 자식들 >을 3부작으로 만들기로 화천공사와 계약한 상태였는데, 복잡한 시대상황 탓에 영화 작업 또한 어지럽게 진행되던 터였다. <어둠의 자식들>의 1부(1981)는 흥행에 성공했으나, 검열기관은 <어둠의 자식들>의 2부를 애초부터 허용하지 않았다. 속편 격인 내용을 자유롭게 바꾸어 나온 영화가 < 바보선언 >(1983)인데, 문제는 흥행 실패를 우려한 영화사에 의해 <바보선언>의 필름이 1년 넘게 창고에서 썩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런 형편에 <바보선언>보다 뒤에 만들어진 <과부춤>이 극장에 먼저 걸렸다. 그러나 1984년 설 연휴에 개봉된 이 영화는 흥행에 참패하고 만다. 1970년대 흥행감독으로 이름을 날렸던 이장호 는 1980년대 들어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 < 바람 불어 좋은 날 >로 근사하게 출발했으나, 관객은 그의 영화를 사랑했던 만큼 어떨 때는 철저한 무관심으로 대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장호가 슬럼프의 시기에 발표해 상업적으로 실패한 작품 중 몇 편은 이후 그의 걸작으로 남게 된다. 흥미로운 점이 아닐 수 없다. < 과부춤 >과 <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1987)가 그런 작품이고, 나중에 개봉돼 흥행에 성공했으나 한동안 버려졌던 < 바보선언 >도 마찬가지의 경우다. 이장호의 실험정신이 깊이 반영된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세 작품은 하나로 묶인다. 요즘 영화와 비교해 실험이라 부르기에 부족한 부분이 많고, 형식과 내용이 적절하게 섞이지 못했다는 비판도 있지만, 최소한 세 영화가 시대를 앞서 갔다는 점은 부정하기 힘들다. < 과부춤 >은 몇 장의 사진과 현실의 이미지를 교차하며 시작한다. ‘한국에서 개최된 1980년 미스 유니버스, 스포츠 경기에 몰린 관중들, 외국인 관광객, 강남 아파트의 청사진’과 ‘산동네를 오르는 여인, 거리의 손수레 상인, 집 없는 아이들, 노동 중인 일용직 근로자’를 앞뒤로 배치한 도입부는 이장호 의 선명한 선언에 다름 아니다. 1970년대 후반부터 민중의 삶에 관심을 가지다 깨달음을 얻었던 이장호는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은 영화를 찍고 싶었다. 그 시작이 < 바람 불어 좋은 날 >이었으며, <과부춤>은 < 어둠의 자식들 >과 < 바보선언 >을 절충한 영화에 해당한다. 밑바닥 삶을 사는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은 <어둠의 자식들>에서, 전례에 드문 과감한 형식은 <바보선언>에서 각기 따왔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거침없는 형식미다. 자질구레한 설명을 요하는 장면이나 일상을 담은 장면은 저속촬영을 통해 자유자재의 속도로 내달렸고, 필름의 속도와 별개로 인물의 음성을 재잘대는 하이 톤으로 변조했다. 흡사 이야기를 압축한 듯이 빠른 속도감을 느끼도록 만든 것인데, 단연 두드러진 효과는 무성영화에서나 봄 직한 슬랩스틱의 맛이다. 예상하지 못한 부분에서 튀어나오는 슬랩스틱은 상식에서 벗어난 코믹한 상황이 현실의 비극과 만나 빚는 아이러니를 표현하는 데 그만이며, 리얼리즘 영화를 추구한다던 이장호 가 난데없이 구사한 형식미는 그 순간에 답을 구한다. 엄격하게 분리되어 있지는 않으나 < 과부춤 >은 3개의 부분으로 구성된 영화다. 말숙이 주인공인 1부, 말숙의 올케가 등장하는 2부, 에필로그로서의 3부는 결국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된다. 하지만 이장호 는 세 부분의 이야기를 구속해 통일감을 기하기보다 각각 개성 넘치는 성격을 부여해 헐거운 느낌을 살렸다. 일례로, 말숙이 재일교포 미망인으로 거듭 태어나는 장면은 일본풍의 음악과 단순한 실내를 배경으로 모던하게 표현됐다. 현실과 유리된 분위기에서 조작된 허상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부분이다. 이밖에 올케의 집에 세 든 조씨가 창을 한다는 점을 착안해 짧은 판소리 장면을 두 번 삽입했고, 말숙의 오빠가 교통사고로 죽는 장면과 올케의 흑백 악몽 장면을 오가며 극의 긴장감을 더했다. 민중을 주인공으로 삼은 1980년대 영화의 한 아이콘인 김영동의 음악은 영화의 여러 형식 사이로 넘나든다. 그의 장기인 모던한 국악은 물론, 국악과 재즈를 결합한 실험적 사운드는 일품이다. 실험적인 양식이 먼저 눈에 띄는 영화지만, < 과부춤 >의 주제는 1980년대의 시대정신에 있다. <과부춤>의 진정한 가치는, 절박한 1980년대의 중심에서 뽑아낸 표정이 오롯이 살아 있다는 데서 찾아야 한다. 한방살림을 하는 가정에서 중년의 남편과 아내가 아들과 딸 몰래 힘겹게 몸을 섞는 장면은 눈물과 웃음을 동시에 끌어낸다. 미래를 낙관하지 못하는 청년은 실의에 빠져 지내고, 어린 소녀들은 살림에 보태려고 공장에서 야근도 마다치 않고 일한다. 그런가 하면 하층민을 등쳐먹는 사기꾼들이 도처에 널려 있고, 여공이 재봉틀을 돌리는 시간에 술집과 나이트클럽은 손님으로 넘쳐난다. 1980년을 끝으로 스크린에서 사라진 풍경 중 가장 소중한 것은 ‘노동의 시간’이다. 심각한 착취 구조 아래에서도, 민중은 육체적 노동을 통해 삶을 지탱했다. 같은 현장에서 일하지 않더라도 몸을 부려 밥벌이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연대의 의식이 존재했다. 그것은 또한, <과부춤> 같은 영화가 1980년대를 끝으로 스크린에서 사라진 이유이기도 하다. 19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부의 축적은 소수의 계층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1980년대가 도래하면서 사정은 달라진다. 부동산과 주식 시장의 폭발은 저마다 눈에 불을 켜고 부를 축적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한국사회에서 1억은 도달하기 힘든 부를 뜻하는 심리적 경계였다. 그런데 1990년대가 열리기 전부터 부동산시장과 주식시장은 가파른 속도로 성장했고, 개인이 억을 향유하는 게 가능해졌다. 집 한 채 장만하는 게 꿈이었던 서민들은 어느새 부동산 거래로 거금을 쉽게 벌어들일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으며, 198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주식 거래에 관심조차 없었던 보통사람들이 주식시장에 뛰어들었다. 1980년대의 신군부 정권이 개인의 의식에 물들인 천박함은 생각보다 거대했다. 자기 잇속을 차리기에 급급한 자의 머릿속에는, 함께 노동하는 자들의 연대의식 같은 게 끼어들 틈이 없다. 이제 우리는 사라지고 나만 소중하게 여기는 시대가 성큼 닥쳐온 것이다. 민중의 개념이 다수의 중산층 의식에 자리를 내주고만 현재, < 과부춤 >이 우리의 이야기가 아닌 타자의 이야기로 추락하는 건 필연이다. < 바람 불어 좋은 날 >을 보고 영화를 만들겠다고 결심했다는 장선우는 < 우묵배미의 사랑 >에서 자신의 본령을 분명히 밝힌다. <우묵배미의 사랑>의 한 장면은 1980년대의 끝자락을 예리하게 집어낸다. 주인공 배일도 부부는 허름한 용달차에 몸과 짐을 싣고 이사를 떠나는데, 용달차는 하필 강남을 통과한다. 거대한 아파트촌, 확 트인 대로, 코엑스 건물과 올림픽대교가 위용을 뽐내지만, 서울 변두리에서 경기도 촌동네로 이사 가는 그들은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그것은 그들이 꿈에서도 누릴 수 없는 완벽하게 다른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 장면은, 우리의 시대와 우리의 세계가 1980년대와 함께 종말을 고했다고 말한다. 이동철이 쓴 <오과부>는 따로 살면서도 연대의 의식 아래 공동체를 꾸리는 다섯 과부에 관한 이야기다. 누가 썼는지 알 수 없으나, <오과부>라는 제목 밑으로 ‘우리 이웃들의 삶을 솔직하게 기록함으로써 부끄러움을 진솔한 감동으로 바꿔놓은 이야기’라는 해제가 붙어 있다. 영화 < 과부춤 >의 클라이맥스는, 이장호 가 해제 중 ‘우리’라는 말에 주목한 끝에 획득한 보물이다. 에필로그의 뒷부분, 골목에 쓰러진 임산부가 다급하게 도움을 요청한다. 행복한 얼굴의 사람들은 자기 삶을 꾸리느라 그녀를 눈앞에 두고도 보지 못한다. 실의에 빠져 아이를 업고 오던 말숙이 마침내 그녀를 발견하고 일으켜 세운다. 내가 사랑하는 장면은 그 다음이다. 여인은 과부들의 도움으로 아이를 출산하고, 과부들이 그녀 곁에서 각자의 표정을 짓는다. 행복함과 아름다움의 결정체인 이 장면은 예수의 탄생을 축복하는 동방박사의 방문을 기억하게 한다. 도시빈민 선교활동을 하는 사람들(이동철도 그 중 한 명이었다)을 만나면서 이장호는 많은 종교적 위안을 받았으면서도, 정작 그의 영화에서 현실 기독교의 모습은 아름답게 그려지지 않았다. 이장호가 기독교에 대해 품었던 생각이 무의식적으로 표출된 게 <과부춤>의 출산 장면이 아닌가 싶다. < 과부춤 >은 산동네를 찬찬히 돌아보면서 끝을 맺는다. 눈이 내리고, 산동네는 하얗게 눈을 뒤집어쓴다. 한쪽 끝에는 포크레인이 개발을 재촉하며 섰지만, 끝없이 펼쳐진 산동네와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우리는 안다, 가난한 자들이 연대했던 그 자리에 지금은 아파트가 들어섰음을. <과부춤>은 다가올 시대가 어떻게 미쳐 돌아갈지 정확하게 간파한 작품이다.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세상이 걸어갈 것을 아는 젊은 작가 이장호 는, 말숙에게 건네는 사기꾼 과부의 말을 빌려 세상에 경고했다. “앞만 봐, 세상을 보란 듯이 속여 보자구” 그러나 세상은 경고를 충고로 받아들였다. 아무도 뒤돌아보지 않았으며, 세상에는 속여서라도 잘 살고 싶은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과부춤>을 다시 보며 쓰라림을 느꼈다. <과부춤>은 뜨거운 영화다. 반대로 요즘 한국영화들은 차갑다. 작금의 젊은 작가들에게 뜨거운 마음이 없다고 탓할 일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