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의 시대
- 감독
- 마틴 스코세이지
- 제작년도
- 1993
- 출연
- 다니엘 데이 루이스 , 위노나 라이더, 미셸 파이퍼, 미리암 마고리스, 로버트 숀 레오나드, 마틴 스코세이지, 리차드 그랜트, 조나단 프라이스, 제랄딘 채플린, 알렉시스 스미스, 메리 베스 허트, 알렉 맥코웬, 시안 필립스, 마이클 고, 스튜어트 윌슨, 캐롤린 파리나, 트레이시 엘리스, 브라이언 데이비스, 패트리시아 더녹, 도메니카 카메론 스코세세
아마도 한국에서는 처음 있는 대대적인 마틴 스콜세지 회고전을 환영하며, 팬으로서 기쁜 마음으로 그의 실패작 두 편을 추천하고자 한다. 이 말에는 어떤 아이러니도 없다. A4 한 장 분량의 소개 글에서 새삼 < 비열한 거리 > < 택시 드라이버 > < 성난 황소 > < 코미디의 왕 > < 좋은 친구들 > < 순수의 시대 >를 언급하는 것은 민망한 지면 낭비다. 그보다는 이럴 때가 아니고서야 언제 극장에서 볼 기회가 있을까 싶은 작품, 본다고 한들 누가 뭐 얼마나 얘기할까 싶은 작품, 그러나 널리 알려진 수작들과 마찬가지로 스콜세지를 이해하는 데에 빛을 던져줄 만한 작품 들을 이야기하고 싶다. < 뉴욕, 뉴욕 >은 < 택시 드라이버 >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탄 후 세상 무서울 것 없이 오만해진 스콜세지가 매우 방만하게 만든 뮤지컬이다. 스콜세지는 제대로 된 각본 없이 많은 것을 즉흥에 의지해 계속 카메라를 돌렸는데, 처음 편집본에서는 두 주인공이 만나는 첫 장면의 길이만 한 시간에 달할 지경이었다. 그런 방만한 만듦새에다 로버트 드 니로가 재능 있는 트럼펫 연주자로 나와 역시 재능 있는 가수를 연기한 라이자 미넬리를 왜 저러나 싶을 정도로 괴롭히는 진절머리 나는 이야기인데 흥행할 리가 있나. 영화는 대폭 삭제되었고, 실패를 맛보았다. 그러나 지미 도일의 패악질을 어떻게든 참아낼 수만 있다면, < 뉴욕, 뉴욕 >은 그렇게 실속 없는 영화는 아니다. 영화광 스콜세지는 여기에서 고전기 할리우드의 뮤지컬에 헌사를 바친다. 여기 나오는 뉴욕은 스콜세지가 나고 자란 비열한 거리가 아니라, 그가 어린 시절 TV로 보고 꿈꾸었을 인공적인 세트 속의 형형색색 아름다운 가짜 뉴욕이다. 예술가로서의 자존심 때문에 연인을 학대하는 남자 예술가의 이야기는 4~50년대의 뮤지컬 <내 꿈은 당신의 것My Dream Is Yours>(1949)이나 <스타 탄생A Star Is Born>(1954)에서 가져왔다. 어쩌면 라이자 미넬리를 주연으로 삼은 것도 한편으로는 고전기 뮤지컬의 대표 감독 빈센트 미넬리와 스타 주디 갈랜드에게 바치는 간접적인 헌사였을지 모른다. 특히 대미를 장식하는 ‘해피 엔딩’ 장면은 50년대 이후로는 다시는 볼 수 없을 것만 같았던 MGM 뮤지컬의 화려함을 한껏 뽐낸다. <악대차The Band Wagon>(1953) <파리의 미국인An American in Paris>(1951) <사랑은 비를 타고Singin’ In The Rain>(1952) 같은 옛 뮤지컬의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관객이라면 눈물을 글썽일 만하다. 두 주인공의 권력 균형이 좀 더 맞았더라면, 지미 도일이 그토록 자연재해 같은 인간만 아니었더라면 더욱더 보기 좋은 영화가 되었을 텐데. 그래도 스포일러를 무릅쓰고 말하자면 스콜세지는 지미 도일 같은 인간에게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모른 척 덮은 채 ‘해피 엔딩’으로 갈등을 무마할 정도로 몰염치한 창작자는 아니다. 조금만 참아주시기를. < 비상근무 >는 어떤 면에서는 < 뉴욕, 뉴욕 >과 정반대의 상황에 놓인 작품이다. 90년대 초 뉴욕의 야간 근무 구급요원을 다룬 이 영화에서, 스콜세지는 다시 한 번 < 택시 드라이버 >의 세계로 돌아간다. 뉴욕의 밤은 불타는 지옥이고, 니콜라스 케이지가 연기한 주인공 프랭크 피어스는 그 안에서 구원을 찾아 헤맨다. 단, <택시 드라이버>의 트래비스 비클이 피로 도시를 정화하고자 하는 복수의 천사라면, 프랭크는 피 흘리는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며 한 명이라도 살리고 싶어하는 성자다. 일종의 과대망상과 강박관념에 빠졌다는 점은 마찬가지일지 몰라도, 그는 스콜세지 영화의 남자 주인공치고는/니콜라스 케이지가 연기한 것치고는 놀랄 만큼 제정신이다. 여기에 로버트 리처드슨이 촬영한 뉴욕은 마이클 채프먼이 촬영한 <택시 드라이버>의 뉴욕과 마찬가지로 빨갛고 파랗고 노란빛이 어둠 속에 번지면서 화려한 추상미를 자랑한다. 거의 무게 없이 허공을 활강하듯 춤추는 카메라와 빠른 편집으로 대표되는 90년대 스콜세지의 스타일도 눈을 홀릴 만하다. 스콜세지의 음악 선곡 실력이야, 가장 좋지 않은 영화에서도 빛을 발하는 부분이고. 요컨대 < 비상근무 >는 이번 상영작 중 가장 마음 편하게 볼 수 있는 작품이다. 큰 불편 없이 주인공에게 이입할 수 있으며, 눈과 귀를 만족시킬 자극도 충분하다. 그런데 왜일까, < 택시 드라이버 >의 심란함이 빠져나가자 스콜세지의 정수가 사라졌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어쩌면 스콜세지의 정수는, < 좋은 친구들 >에서처럼, 끔찍하지만 누리고 싶은 권력의 세계 앞에 느끼는 매혹과 혐오 모두를 솔직하게 드러내는 그 불온한 균형 감각에 있는 것이 아닐까? <비상근무>에서처럼 안전한 거리를 확보한 채 바라보는 지옥의 풍경은 오히려 관찰자를 게으르고 위선적인 구경꾼으로 만드는 것은 아닐까? <비상근무>는 부재를 통해 거꾸로 스콜세지 영화의 힘이 지닌 성질을 검토하도록 이끈다. 따라서 로버트 드 니로를 비롯한 스콜세지 세계 남정네들의 갖은 난동을 보고 이런 건 정말 싫다고 질색하신 분들께 충심으로 권한다.
애초 작성한 리스트에는 23편의 영화가 포함되어 있었으나, 10편만 선정해 달라는 요청에 따라 여러 편의 영화를 제외해야 했다. 2014년의 영화로 선택한 < 보이후드 >의 리뷰에 앞서 전체 리스트를 수정 공개함을 알려 드린다. 이용철 영화평론가의 23편 2014년의 영화 보이후드 Boyhood , 리처드 링클레이터, 2014 다섯 편의 장르영화 나를 찾아줘 Gone Girl , 데이비드 핀처, 2014 더 홈스맨 The Homesman , 토미 리 존스, 2014 다크 밸리 Das Finstere Tal , 안드레아스 프로차스카, 2014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 The Wolf of Wall Street , 마틴 스콜세지, 2013 콜드 인 줄라이 Cold in July , 짐 미클, 2014 로버트 패틴슨이 나온 두 편의 영화 더 로버 The Rover , 데이비드 미쇼드, 2014 맵 투 더 스타 Maps to the Stars ,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2014 다섯 편의 아트하우스 더 원더스 Le meraviglie , 알리체 로바허, 2014 도원경 Jauja , 리산드로 알론조, 2014 실스 마리아 Clouds of Sils Maria , 올리비에 아싸야스, 2014 언어와의 작별 Adieu au langage , 장 뤽 고다르, 2014 에덴 Eden , 미아 한센 로브, 2014 두 편의 다큐멘터리 야만의 땅 Pays Barbare , 예르반트 지아니키안/안젤라 리치 루키, 2013 위로공단 , 임흥순 , 2014 두 편의 한국 드라마 절경 , 남근학 , 2014 한여름의 판타지아 , 장건재 , 2014 여섯 편의, 보고 싶었으나 보지 못한 영화 호스 머니 Cavalo Dinheiro , 페드로 코스타, 2014 사랑스러운 자매 Die Geliebten Schwestern , 도미닉 그라프, 2014 프랑스 공주 La Princesa de Francia , 마티아스 피녜이로, 2014 아프리오리 Mula sa kung ano ang noon , 라브 디아즈, 2014 신이 되기는 힘들다 Trudno Byt Bogom , 알렉세이 게르만, 2014 위플래쉬 Whiplash , 데미언 차젤, 2014 (링클레이터는 < 스쿨 오브 락 >의 개봉 후에 아역 배우들에게 편지를 썼다고 한다. 영화지 「사이트 앤 사운드」와의 인터뷰 도중 그 편지에 관한 질문을 받고 그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멋진 시간을 함께 보냈음을 상기시키는 한편으로, 아이들에게 배우의 길을 걸어가라고 부추기고 싶지는 않았다. 그들의 인생에서 보낸 하나의 좋은 챕터가 곧 가장 좋은 시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영화는 당신 곁에 머무는데, 나는 그게 시간의 흐름 속에서 긍정적인 순간들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언제나, 그게 완성된 것이 아닌 경험을 위한 것이라 여긴다. 부모의 이혼으로 메이슨과 누나 사만다는 엄마와 함께 산다. 아빠는 멀리 알래스카에서 일한다고 했다. 뒤늦게 학업을 시작한 엄마는 공부와 아이들 뒷바라지를 위해 친정이 있는 휴스턴으로 이사 가기로 결정한다. 때마침 아빠도 근처로 거처를 옮긴 차였다. 이후 12년 동안의 시간 흐름을 담은 < 보이후드 >는 제목 그대로 메이슨의 소년기이자 누나 사만다의 소녀 시절 이야기이고 엄마와 아빠의 이혼의 기록이다. 촬영은 실제로 2002년부터 2013년까지 진행되었으며, 그 사실만으로도 <보이후드>는 충분히 감탄을 불러낼 만하다. 링클레이터는 이미 ‘비포 연작’을 통해 (동일한 배우가 연기하는) 인물과 그들의 관계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어떻게 변화하는지 잘 보여주었던 감독이다. 그리고 < 스쿨 오브 락 >(2003)이나 < 배드 뉴스 베어즈 >(2005) 같은 장르영화를 만들 때면 어김없이 어린 아이들과 어울려 놀았던 사람이다. 그에게 <보이후드>가 뜬금없는 작업이 아니란 이야기다. 기실 영화가 12년 정도의 시간 흐름을 담았다고 해서 무조건 열광할 일은 아니다. 예를 들어, 마이클 앱티드는 1964년부터 지금까지 50년이 지나도록 ‘업(Up) 연작’을 계속 연출하고 있다. 소년의 성장을 20년 넘게 극화한 프랑수아 트뤼포의 ‘앙투안 두아넬 연작’은 또 어떤가. 그래서 <보이후드>에서 우선 관심이 갔던 것도, 시간 속에서 인물을 포착하는 감독의 태도였다. TV 프로그램의 한 코너로 시작된 ‘업 연작’은 매번 유명한 문구 - ‘7살 때까지 아이를 맡겨 달라. 그러면 인간을 보여주겠다’ - 로 문을 연다. 이 문구를 살짝 바꾸면 곧 < 보이후드 >의 모토가 된다. ‘7살짜리 꼬마를 맡겨 달라. 그러면 소년 시절을 보여주겠다.’ <보이후드>를 본 평자들은 누구나 ‘업 연작’의 영향을 이야기하며, 링클레이터 또한 인터뷰에서 앱티드의 영화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처지였음을 내비친 적이 있다. 2012년의 <56 업>까지 매 7년마다 한 편씩의 영화로 발표된 ‘업 연작’은 현실의 인물에서 ‘가족, 친구, 애정, 교육, 계급, 타자, 빈부, 정치, 기회, 종교, 도덕, 꿈’을 읽어내 영국의 미래를 논하고자 했던 작품이다. 사회의 축소판이자 거대한 실험장으로 발전한 ‘업 시리즈’의 감동은 삶의 예측 불가능성에서 나온다. 신비롭게 자유자재로 흘러가는 삶의 전개 방향이야말로 다큐멘터리로서 ‘업 시리즈’가 드러낸 진정한 가치인 것이다. <보이후드>의 주인공 엘라 콜트레인은 촬영이 시작되기 전에는 평범한 6살 아이였으며 영화가 만들어지는 12년 사이에도 배우로서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보이후드>는 콜트레인과 직업 배우들이 서로 소통하며 찍은 반 다큐의 느낌을 준다. 링클레이터는 매해 소년에게 일어난 변화를 영화에 반영했음은 물론 콜트레인이 직접 소년기의 대사를 풀어낼 수 있도록 이끌었다고 한다. ‘업 연작’이 시간의 경과 위로 사회와 문화의 지도를 그리려 한 작품이라면, <보이후드>는 한 소년의 얼굴 그리기에 더 치중한 작품이다. 긴 세월에 걸쳐 콜트레인이라는 배우와 메이슨이라는 인물이 은연중에 작가처럼 참여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소년의 성장을 연대순으로 접근했다는 점에서 < 보이후드 >는 ‘앙투안 두아넬 연작’과 비교될 수밖에 없다. 트뤼포는 앙투안 역할을 맡을 배우로 어린 장 피에르 레오를 선택했고, 감독과 배우와 인물이 어우러진 다섯 편의 영화 - < 400번의 구타 >(1959), < 앙투안과 콜레트 >(1962), < 훔친 키스 >(1968), < 부부의 거처 >(1970), < 사랑의 도피 >(1979) - 가 긴 시간에 걸쳐 완성되었다. 그런데 트뤼포 자신이 말했듯이 ‘앙투안 두아넬 연작’은 고전적이고 낭만적인 드라마이며, 그러한 성격은 <보이후드>의 자연스럽고 사실적인 지향점과 어느 정도 상치되는 부분이다. 꼭 그 점이 아니어도 나는 <보이후드>와 비교되어야 할 작품이 ‘앙투안 두아넬 연작’이 아니라 장 외스타슈의 < 나의 작은 연인들 >(1974)이라고 생각한다. 주인공 소년 다니엘의 딱한 형편은 <보이후드>의 메이슨과 별반 다르지 않다. 다니엘은 할머니와 살다 어머니를 따라 프랑스 남부로 이사 가게 된 소년이며, <나의 작은 연인들>도 소년 다니엘이 성장해 어른의 문턱에 이르기까지를 다룬다. 단, 외스타슈가 인물을 다루는 방식은 링클레이터의 그것과 많이 다르다. 몇 년의 시간이 흐르는 가운데, (<보이후드>와 상반되게) <나의 작은 연인들>은 극 중 소년의 외모가 별로 변하지 않은 상태를 지속시키며 외부의 세계와 단절된 인상을 강화한다. ‘앙투안 두아넬 연작’과 마찬가지로 감독의 개인적 경험이 반영된 <나의 작은 연인들>을 굳이 불러내 비교하려는 이유는 따로 있다. 영화의 후반부에 나오는 짧은 장면 때문이다. 다니엘은 한 소녀와 노변 풀밭에 누워 있다. 곧 어른이 돼 순수의 시대와 작별을 고할 소년은 문득 하늘을 바라본다. 그의 눈에서 금방 눈물이라도 흐를 것 같다. 이 장면은 <보이후드>의 첫 쇼트 - 여섯 살 메이슨이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 와 긴밀하게 연결된다. 흡사 링클레이터는 고통스럽고 아픈 소년 시절을 보낸 다이넬의 시간을 돌려 메이슨이라는 소년의 이야기를 다른 태도로 새롭게 쓰려는 듯하다. 그는 감상에 빠지지 않도록 애쓴다. 자신을 포함해 당신들도 소년 시절의 통증을 겪었음을 알고 있는 까닭에, 극에 뛰어들어 아파하는 척하지도 않는다. 링클레이터 영화의 특징은 ‘단순한 자연미’다. 장르 영화를 찍을 때도 그렇지만, 그것이 더 잘 드러나는 경우는 그만의 소품을 찍을 때다. < 비포 미드나잇 >(2013)이 몇 개의 장면으로 구성되었는지 확인해보라. 영어에 ‘Don’t make a scene(야단법석을 떨지 마라)’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의미는 달라도 링클레이터 영화에 딱 어울리는 표현이다. 매년 사나흘 동안 제작진과 배우들이 모여 15분 분량의 촬영을 거듭한 < 보이후드 >에는 사건이라 부를 만한 게 일어나지 않는다. 상업영화로서 너무 심심해 보일까 걱정해야 할 판이다. 어느 날 어느 십 대 소년의 집을 방문해서 목격한 장면을 손질하지 않고 내놓는 것, 그 이상을 영화는 욕심 내지 않는다. 지금 장면이 어떤 해에 벌어진 일인지 구분해 밝히지 않기에, 흐르는 음악과 열중하는 게임과 구경 간 스포츠 경기와 정치적 이슈에 대한 이야기 등으로 대충 어느 정도 지점의 상황인지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심지어 어떤 장면에서는 배우가 카메라를 보는 실수를 하는데도 숨기지 않아 자연스러운 맛을 강조하기도 한다. 부모를 비롯한 인물들의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소년이 겪을 성싶은 일들이 그저 그렇게 일어났다 사라지는 게 다인 것 같은데 <보이후드>는 시간의 에센스를 놓쳤다는 인상을 주지 않는다. 그건 소년의 얼굴 덕분이다. 그냥 몸이 커지고 머리 스타일이 바뀌는 게 다가 아니다. 시간이 흘러가고 세상이 변화하면서 흘린 흔적은 차곡차곡 쌓여 메이슨의 얼굴에 자국을 남긴다. 16살 생일을 맞는 해에 메이슨의 얼굴은 밉다. 이전까지 오랫동안 사랑스러운 모습을 유지했던 콜트레인은 무슨 일인지 잔뜩 우울한 표정과 지저분한 얼굴로 메이슨이란 인물을 연기한다. 사춘기여서 그랬을 터인데, 링클레이터는 일부러 예쁘게 분장하지 않았고, 콜트레인도 통과 중인 시기가 입혀준 표정을 거짓 마스크로 가리지 않는다. 링클레이터는 < 보이후드 >를 찍는 과정이 결과물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나는 영화를 보면서 어떻게 끝을 맺을지 궁금했다. 상영시간이 165분인 영화가 대체 얼마나 감동적인 장면에서 막을 내릴까. 평범한 영화였다면 메이슨이 차를 몰고 집을 떠나는 장면에서 끝났을 것이다. <보이후드>로 인해 유명해진 인디그룹 ‘패밀리 오브 더 이어’가 부른 <히어로>가 배경음악으로 흐른다. ‘나는 당신이 바라는 큰사람이 될 마음이 없어요. 나는 여기저기서 사람들과 싸우고 싶어요. 나를 놓아줘요’라는 가사가 엄마의 품을 떠나는 장면과 썩 어울려 이 정도면 엔딩으로 훌륭하다 싶었다. 끝없이 뻗은 텍사스의 도로를 보며 누구나 감동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다시 말하거니와 링클레이터는 그런 감상을 빚을 생각이 없다. 다시 영화의 처음으로 돌아가자. 소년은 잔디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며, 배경음악으로 ‘콜드플레이’의 <옐로>가 흐른다. 노래의 가사는 ‘별을 바라봐, 별은 너와 너의 행동을 모두 보고 있어’이다. 소년이 무엇을 보는지 모르는 나는 대낮인데 설마 별을 보는 건 아니겠지, 라고 생각했다. 또는 내 생각과 달리 소년이 자신만의 별을 그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소년이 보는 것은 화면 바깥에 놓인 무엇이었다. 곧 누군가 소년을 부르고 소년은 극 중 현실로 돌아온다. 이어 12년의 시간을 산다. 내성적인 소년은 사진을 사랑하는 청년으로 자라 대학교에 입학한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 이제 소년은 하늘이 아닌 자기 앞을 정면으로 바라본다. 조금 슬픈 얼굴의 여섯 살 소년은 엷은 미소를 띤 열여덟 살 청년으로 컸다. 변하지 않은 것 하나, 첫 장면처럼 마지막 장면에서도 메이슨은 화면 바깥을 응시한다. 청년이 된 메이슨이 바라보는 것은 무엇일까? 어떤 사람은 또 다른 메이슨에 해당하는 자신을 바라본다고 말할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앞에 펼쳐진 미래를 기대하는 게 아니겠냐고 말할 것이다. 그게 무엇이 되었든 <보이후드>는 시간을 과거에 흘러간 어떤 것이라는 개념으로 소비하지 않는다. 시간은 언제나, 살아가야 할 매 순간이자 현실이라고 <보이후드>는 말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나의 소년기를 향수로 기억하는 게 아니라 나의 소년기 혹은 삶의 한순간을 다시 한 번 더 살고 있었던 거다. 메이슨의 알싸한 성장통이 나의 것인 양 내 몸이 반응한 이유는 거기에 있었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에 대한 논의는 그동안 ‘한국성’ 자체를 탐구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왔다. 그는 자신의 영화에서 한국의 역사, 종교, 예술에 대해 줄기차게 질문했고, 한국의 정체성을 탐구해왔으며 그래서 가장 한국적인 감독이라고 회자되어왔다. 그가 한국적인 것이란 무엇인가와 한국인이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천착해서 빚어낸 한국의 본래성과 정체성은 동학혁명과 분단의 역사, 불교라는 종교, 그리고 판소리와 한국화라는 예술을 제 속성으로 하고 있다. 특히 1980년대부터 임권택 감독은 < 태백산맥 >, < 개벽 >, < 만다라 >, < 아제아제 바라아제 >, < 서편제 >, < 춘향뎐 > 등을 통해 ‘한국성’을 본격적으로 탐구해왔다. 특히 외국 비평가들과 지식인들은 1980년대 이후 임권택 감독의 일련의 영화에 열광했고, 국내 학자나 평자들 또한 이 시기의 임권택 영화에 가장 많은 관심을 보여왔다. 그의 영화는 국경 밖에서는 이국적인 문화에 대한 관심과 색다른 취향을 자극했고, 국경 안에서 그의 영화는 점점 더 인터내셔널해지는 시대에 필연적으로 요청되는 내셔널의 장벽을 굳건하게 마련해주고 있다는 점 때문에 환영을 받았다. 따라서 임권택 감독의 영화가 한국영화 역사에서 갖고 있는 존재감은 만만치 않다. 그의 영화는 한국영화의 역사를 민족주의, 인본주의, 사실주의의 틀거리로 읽게 해주는 원형 텍스트와 같기 때문이다. 그의 영화로 인해 한국영화의 역사는 다른 국가, 특히 식민지와 전쟁의 경험을 지닌 국가의 영화사와 ‘다르게’ 기술할 수 있는 튼실한 지반을 갖게 된 것이다. 약 100편에 달하는 그의 영화를 따라 읽으면 한국영화의 역사가 보인다는 말이 과장이 아닐 것이다. 근래 들어 ‘ 임권택 영화’는 이러한 큰 그림 속에서 읽히는 데에서 나아가 장르영화의 맥락에서 활발하게 재발견되고 있다. 이 맥락에서 다시 읽히는 그의 영화는 주로 그가 먹고살기 위해 만들었다는 그의 초기 영화와 영화법 및 정책에 편승해서 만들었다는 습작 영화들이다. 초기의 그의 영화는 전쟁영화와 액션영화 장르에 집중되어 있었고, 1970년대에 접어들면서 그는 새마을 영화와 반공영화 등 한국에 독자적인 시대 장르인 국가 프로파간다 영화를 만든 바 있다. 이 시기 그의 영화의 특징을 꼽자면 ‘도식성’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감독으로 생존하려는 그의 몸부림과 국가 이데올로기에 철저하게 순응해서 그 생존을 연장하려는 그의 의지가 만들어낸 특징이라고 봐야 할 듯하다. 이렇듯이 임권택 감독의 영화라는 텍스트는 가장 한국적인 감독이자 가장 세계적인 감독으로 국경 밖에 알려진 예술영화 계열과, 국가 이데올로기를 알리는 프로파간다 영화를 포함해서 철저하게 오락과 순응을 지향한 대중영화 계열로 양분된다. 그의 영화에 대한 대부분의 작가주의 독해들은 후자의 계열에서 전자의 계열로, 국경 안에서 국경 밖으로 나아가는 연대기적 수순을 따라 그의 영화를 읽고 있다. 아무런 생각 없이 오락영화를 만들다가 작가 개인의 자각과 각성에 의해서 비로소 세계에 어필할 수 있는 한국적 예술영화를 만들게 되었다면서 그의 영화의 어긋나는 지점을 서둘러 봉합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은 이 두 계열 안에서 혹은 이 두 계열 간의 모든 함수가 깨지는 곳에 놓인 그의 영화를 간과하기 쉽다. 그곳에 놓인 영화에는 그가 의도적으로 만들려고 하는 그래서 허구적인 ‘한국성’ ‘한국인다움’ ‘한국의 정체성’이 불안정해지고 분열을 일으킨다. 프로파간다 영화와 장르영화의 도식성 또한 사라진 그 자리에 들어앉은 것은 종교나 예술도 아니고, 과거도 아니며 장르도 아닌 차가운 ‘현실’이다. 시대의 불안정한 대기를 그대로 마시고 어떠한 미사여구 없이 그대로 내뱉는 것, 그곳에서 흥행을 위하고, 세계적인 감독의 명성을 위하고, 국가를 위해 취했던 모든 목적성을 상실한 ‘무목적성의 목적’을 띤 그의 영화가 출현한다. < 길소뜸 >(1985)이 그 무목적성의 목적에 가장 부합하는 영화라면 < 왕십리 >(1976)는 이 계열의 임권택 감독 영화 중에서 가장 알려지지 않은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 두 편의 영화는 임권택 감독이 소위 ‘아줌마’ 라고 폄하되는 한국의 중년여성을 ‘근기(根氣)’의 주체로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비슷한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두 편의 영화에서 공통되게 드러나는 ‘여성의 배신’은 현실에 대해 품을 법한 억지스러운 환상과 희망을 도려내는 메스와도 같은 구실을 하고 있다. < 왕십리 >는 < 길소뜸 >과 비교해보자면 대중영화의 통속성과 장르영화의 도식성이 많이 묻어 있는 작품이다. 주인공인 준태( 신성일 )는 깡패이며 준태가 찾은 새로운 연인인 윤애( 전영선 )는 호스테스라는 점에서 당대의 호스테스물과 액션영화 장르에 나오는 인물의 전형성을 따르고 있다. 또한 잦은 플래시 백과 15년 정도의 긴 스토리 시간 등을 갖고 있다는 점 또한 당시 영화의 지배적인 형식을 벗어나 있지 못한 게 사실이다. 준태는 죽은 아버지의 유산을 양어머니를 비롯한 아버지의 재혼 가족에게 모두 넘기고 고향 왕십리를 등진 채 일본으로 건너가 야쿠자 생활을 한다. 14년 만에 고향으로 다시 돌아온 준태는 과거의 고향을 기억하려고 애를 쓴다. 자신의 기억을 이어서 정체성을 찾으려 하는 준태는 14년 전에 헤어진 연인인 정희(김영애)를 찾아 헤맨다. 과거를 등지고 현재 시제로 완벽하게 전환되는 중반부에 정희는 말없는 대상에서 말하는 주체로, 피해자에서 사기꾼으로 자신의 정체를 드러낸다. 결국 정희는 준태에게 ‘내게 주어진 생활을 열심히 살아가는 것, 그것 자체가 진실이 아닐까’ 라는 말을 남긴 채 준태의 지갑을 훔친 후 택시 안에서 오열한다. 한편 호스테스인 윤애는 선을 보기 위해 고향인 시골로 내려간다. 정희가 은유하는 과거의 ‘순수의 시대’는 사라졌고, 윤애는 현재의 삶의 조건을 바꾸기 위해 떠난다. 남은 건 과거에 지체되어 현실을 부인하고 있는 준태뿐이다. 경제개발계획이 발표된 시기에 왕십리를 떠나 유신헌법으로 인한 독재가 극에 달할 즈음에 돌아온 준태의 ‘잃어버린 14년’과 당구장 아저씨( 최불암 )와의 마지막 장면은 정치적 알레고리로 이 영화를 읽게 만들지만, 동시에 이 영화는 당대의 모든 목적 지향적인 경향들, 인텔리가 중심이 영상시대의 예술영화 지향성과 국가 주도의 프로파간다적 지향들, 스크린 쿼터를 채우는 영화들의 오락 지향성을 그야말로 내려놓은 영화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러면서 영화는 묻는다. 순수했던 과거와 피폐해진 현재 사이에서 정지되어 있는 1976년 한국에서 도대체 무엇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지를 말이다. 임권택 감독의 국경 안과 국경 밖의 영화 그 사이에는 시대의 불안정한 대기가 그렇게 퍼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