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표풍운
- 감독
- 양정녹
- 제작년도
- 1993
- 출연
- 왕위, 탕란화
< 나만 없는 집 >의 첫 시놉시스가 나온 것은 영화가 완성되기 3년 전인 2014년이었다. 당시 나는 어떤 이야기가 단편 영화로 적합하고 매력적일 것인지에 대한 감이 전혀 없어서,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무작정 기록으로 남겨두고 있었다. <나만 없는 집>은 그렇게 쌓인 여러 글 중에서 내 어린 시절을 반영한 유일한 작품이었다. 나는 이야기를 만들 때 늘 구조를 먼저 세워놓고 시작을 하는데, < 나만 없는 집 >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시놉시스를 구상하던 2014년에는 작법 입문서로 유명한 사이드 필드의 「시나리오란 무엇인가」를 참고했고, ‘걸스카우트를 하고 싶은 어린 소녀가 가족에 의해서 반대를 겪는다’라는 중심 아이디어를 세 개의 장, 두 개의 구성점(plot point)에 맞춰 구체적인 사건으로 풀었다. 몇 차례 수정 끝에 완성한 시놉시스는 한동안 컴퓨터 폴더에 고이 저장되어 있었다. 그리고 2년 후인 2016년, ‘대구 다양성영화 제작지원 사업’의 공고가 떴고, 고민 끝에 <나만 없는 집>의 시놉시스를 다시 꺼냈다. 제작지원 사업에 내자고 결심은 한 것은 마감일이 고작 5일밖에 남지 않던 때였다. 어떻게든 시나리오를 완성해야 했는데, 그 당시 나는 크리스토퍼 보글로의 「신화, 영웅 그리고 시나리오 쓰기」라는 책으로 좀 더 심화된 이야기 구조법을 공부하고 있었고, 그것을 토대로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이미 이전에 구조적인 고민을 충분히 했던 터라 초고는 예상보다 빠르게 완성할 수 있었다. 제작지원 사업에 선정된 후에도 시나리오의 수정 작업은 제1순위였다. 전작인 < 은하 비디오 >와 < 나만 없는 집 >의 프로듀서 및 조연출 역할을 해준 오성호 PD는 나의 첫 영화 현장인 < 소나기 >의 감독이자 영화 스승이기도 했는데, 그는 늘 강박적으로 시나리오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나는 오성호 PD에게 끊임없이 시달리며(?) 한 씬, 한 씬 꼼꼼히 점검해나갔다. 각 씬의 목표를 정확하게 정의하면서, 목표에 맞지 않는 대사나 지문 등은 삭제하고 좀 더 강조가 필요한 부분은 반복하거나 변주했다. ‘걸스카우트에 가입하고 싶은 소녀의 이야기’에 부합하기 위해서, 되도록 봄에 가까운 계절에 찍고 싶었지만, 개인 사정상 바로 작업을 진행할 수 없었다. 결국 8월 중순에 크랭크인을 하기로 하고, 프리 프로덕션 기간을 약 7주로 계획했다. 하지만 프로듀서, 촬영감독 외에 스태핑을 완료하지 못한 채 프리 프로덕션 기간이 다가오면서 불안감은 커져갔다. 게다가 이전에 제대로 된 영화를 만든 건 고작 1편에 불과했고, 내 경험과 실력에 비해 < 나만 없는 집 >은 시대극, 아역 배우, 단체 장면 등 촬영 난이도가 무척 높은 편이었다. 로케이션, 미술, 캐스팅, 연기연출, 콘티 등 어느 것 하나 소홀하고 싶지 않았다. 문제는 시간이었다. 촬영 전까지 할 일은 절망적으로 많았고, 손은 턱없이 부족했다. 촬영 예정일에 맞추기 위해, 각 업무의 최소한의 마감일만을 정해둔 채, 매일매일 TO-DO 리스트를 만들었다. 나와 오성호 PD는 스태핑 전까지 서로의 손발이 되어 업무를 분담했고, 정말 전투적으로 영화를 준비했다. 머리가 멍해질 정도로 쉴 틈이 거의 없었다. 세영의 집 < 나만 없는 집 > 프리 프로덕션의 시작은 주요 무대가 될 세영의 집을 찾는 것이었다. 하루는 예전에 살던 동네를 찾아갔었다. 비가 오던 날이었는데, 신기하게도 어릴 때 살던 연립주택이 그대로 있었고, 특유의 분위기에 가슴이 벅찼다. 하지만 감상에 젖어있던 내 마음과 달리, 집주인은 수차례 제안을 거절했다. 결국 그곳은 추억으로만 남겨둔 채, 대구 전역에 있는 오래된 아파트를 다시 조사하러 다녔다. 그리고 엉뚱하게도 현재 살고 있는 집과 매우 가까운, 재개발 예정인 빈 아파트를 섭외하게 되었다. 완전히 비어있던 만큼 미술이 용이한 곳이었지만, 그만큼 할 일이 많았다. 손걸레와 스팀 청소기 등을 동원해 온 집 안을 쓸고 닦았고, 대구 외곽에 있던 이삿짐센터에서 버리는 가구들을 실어 날랐다. 전작인 < 은하 비디오 > 때도 그랬지만, < 나만 없는 집 > 또한 로케이션과 미술이 거의 막노동 수준이었다. 1998년을 시대적 배경으로 하는 만큼, 그냥 둘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었다. 학교의 책걸상을 교체하고, 중고나라 사이트를 수시로 들락거렸고, 옛날 문방구에서 각종 보물들을 찾으러 다녔다. 길을 다니다 버려진 고가구를 발견하면 나도 모르게 눈이 갔고, 결국 주워오곤 했다. 걸스카우트 입단식 의상도 문제였다. 현재 걸스카우트 유니폼은 초록색이지만, 1998년도 당시에는 갈색이 주요 색상이었다. 전국에 있는 걸스카우트 연맹에 메일을 보내고 전화도 걸어봤지만, 갈색 유니폼은 단 한 벌도 남아 있지 않다는 답변만 돌아왔고, 직접 찾아간 대구 연맹에만 두 벌의 옷이 남아 있었다. 다행히 대구 연맹 쪽은 꽤 호의적이었고, 옷을 대여해줌과 동시에 음악, 율동 등을 알려주시기도 하셨다. 이후 대여받은 옷과 최대한 유사한 천을 구해, 30벌가량의 걸스카우트 유니폼을 의뢰, 제작했다. 한편, 프리 프로덕션 이전부터 가장 고민해왔던 아역 배우의 캐스팅은, 대구-부산-서울 3개의 도시에서 아역 전문 엔터테인먼트 및 학원에 찾아가, 오디션으로 진행했다. 주로 시나리오 속 인물의 대한 이해와 유사 경험을 묻는 질문을 했고, 즉흥 연기 또한 부탁했다. 단시간에 한 명의 배우를 제대로 파악한다는 것이 사실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아이들에게 오디션의 기억이 조금이나마 상처로 남지 않도록, 나를 포함한 스태프 모두가 참여한 아이 한 명, 한 명에게 집중했다. 그렇게 치열했던 캐스팅 과정 끝에, 매우 운이 좋게도 < 나만 없는 집 >을 이끌어 줄 좋은 배우들을 만날 수 있었다. ‘세영’ 역의 김민서 ‘세영’ 역의 김민서 양을 캐스팅하면서 가장 큰 걱정거리는 역시 사투리였다. 서울 토박이인 민서에게 캐스팅 결정을 통보하기 전까지, 시나리오를 표준어로 수정해서 진행할지, 아니면 민서에게 대구 사투리를 가르칠 것인지를 끝까지 고민했었다. 결국 답이 나오지 않아 민서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상담했고, 어머니께서는 민서가 이전에 전라도 사투리를 암기해서 연기를 해봤다고 말씀해주셨다. 대사를 통으로 암기하면, 현장에서 즉흥적인 연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내면의 갈등이 있었지만, 사실 대구 사투리를 포기하고 싶지 않다는 욕망이 훨씬 더 컸다. 그 날 나는, 민서에게 캐스팅 결정 통보와 함께, 남은 프리 프로덕션 기간 동안의 연기연습과 사투리의 중요성을 말하고, 또 말했다. 연기 연습은 약 5주에 걸쳐 진행되었다. 민서와는 사투리 때문에 거의 매일 통화를 했고, 일주일에 한 번은 민서가 어머니와 함께 대구에 내려와 이틀 동안 언니, 엄마, 아빠, 친구 역의 배우들과 번갈아가며 연습을 했다. 연습 방식은 대사 리딩을 시작으로, 실제 촬영 타이밍을 고려한 동선과 동작을 연습하고, 대사를 더 풍성하게 만들기 위해 배우들과 함께 상의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아역 배우들과 함께 작업을 하면, 반드시 그들의 부모와 엮일 수밖에 없다. 사실 나는 그런 면에서 굉장히 운이 좋았다. 무엇보다 아이들의 부모님들은 적극적으로 나서주실 때와 뒤에서 기다려주실 때를 정확히 눈치채주셨다. 아이들은 혼자서도 충분히 잘 견디다가도, 눈앞에 자신의 부모가 보이면, 갑자기 그들에게 기대려 하고 스스로 하려는 의지가 약해지곤 한다. 그런데 이번 현장에서는 부모님이 아이들을 강하게 책려하다가 홀연히 사라지셨고, 되레 나에게 “잘한다, 잘한다” 하시며 응원과 위로를 보내주셨다. 정신없이 하루, 하루를 보내다 보니, 어느덧 스태핑과 함께 여러 프리 프로덕션 업무도 완료되어갔고, 마지막으로 숏 구성과 콘티 작업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아직 숏 구성에 자신이 없던 내가 믿을만한 것이라곤 레퍼런스뿐이었다. < 나만 없는 집 >의 콘셉트와 유사한 레퍼런스 영화들을 반복해서 보면서, 그를 기반으로 기초적인 숏 구성을 했다. 이후 카메라 렌즈 앱을 이용해서, 실제 로케이션에서 수백 장의 사진을 찍으며 숏을 구체화시켰다. 그렇게 모은 자료를 토대로 미술 스태프와 함께 그림으로 콘티를 정리했고, 완성된 콘티는 촬영 직전에 촬영 팀과 마지막 점검 작업에서 유용하게 활용됐다. 원래 프로덕션은 7회 차로 예정되어 있었다. 사실 35분의 러닝타임을 예상한, 20페이지 분량의 시나리오로는 7회 차는 꽤 적절한 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2분 이상의 롱테이크 숏들이 꽤 포진되어 있는 데다, 평상시 테이크를 많이 간다고 악명 높은(?) 연출 스타일에서 이번엔 얼마나 내 자신과 합의할 수 있을지 나도 짐작할 수 없었다. 촬영은 시작되었고, 난 이번에도 악마가 되어, 양보 없이 배우와 스태프들을 수없이 괴롭히며 영화를 찍었다. 그리고 최종 회차는 1회 차가 늘어난 총 8회 차로 마무리했다. 자매 유난히 뜨거웠던 8월, 찜통 같은 더위에 배우와 스태프를 몰아놓고, 지치는 몸과 마음을 제대로 달래주지도 못하고, 그렇게 촬영을 강행했다. 평소 가장 심한 말이라고 해봤자 ‘바보’ 정도였던 민서와 지후는, 악에 받친 자매를 연기하느라, 마지막엔 부둥켜안고 엉엉 울고 말았다. 어머니 역을 해주신 이미정 선배님은 유당불내증이 있었음에도, 촬영에 차질이 생길까봐 끝까지 그 사실을 숨기기까지 하셨다. 김용현 촬영 감독님을 비롯한 촬영 팀은 한 장면이 끝날 때마다, 묵묵히, 가장 먼저 다음 촬영을 준비하며, 부족한 나를 항상 배려해주셨고, 부처 다음으로 인성이 가장 뛰어나다는 전상진 동시녹음기사는 무거운 붐대를 들고서 믿음직하게 자리를 지켜주었다. 그리고 나에게 가장 많은 괴롭힘을 당한 오성호 PD는, 나의 부족함으로 늘 동분서주했고, 건널목 장면을 찍은 날엔 종아리에 햇볕 화상을 입어 한동안 제대로 걷지를 못했다. 북적거렸던 촬영 현장이 끝나고 나니, 남은 건 그동안 주워 모았던 가구들과 두 장의 외장하드, 밀려드는 공포심이었다. 일단 촬영 현장을 정리하고서, 급하게 서울로 향했다. < 은하 비디오 > 때부터 함께 작업해 온, ‘이음편집실’의 원창재 편집기사님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우선 나는 기사님과 촬영 소스에 대해 염려되는 부분, 편집 방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기사님이 콘티와 시나리오를 중심으로 만들어 주신 1차 가편을 토대로, 약 3개월에 걸쳐 세밀하게 수정 작업을 진행했다. 특히 예상보다 훨씬 더 짧은 시간 안에 찍어야 했던 걸스카우트 율동 장면과 특별히 정해진 콘티 없이 촬영한 선영과 세영의 싸움 장면이 가장 큰 걱정거리였는데, 다행히 기사님이 잘 봉합해주셨다. 그렇게 시나리오에 충실하게 편집을 끝내고 나니, 이야기는 매끄럽게 잘 이어졌지만, 씬과 씬의 리듬감이 조금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한눈에 볼 수 있게 시나리오를 펼쳐 구성점을 다시 파악했고, 리듬감이 조금 더 빠르거나 느리면 좋을 부분을 확인해 최종적으로 수정, 편집을 마무리했다. ‘대구 다양성영화 제작지원 사업’의 마지막 단계는, 그해 지원을 받은 작품을 모아 관객을 초청해 상영하는 것이었다. 상영 시기는 12월로 정해졌고, 나는 그 전까지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후반작업에 박차를 가했다. 완성된 편집본을 들고 색보정, 믹싱, 음악 작업을 거의 동시에 진행했다. 형준석 색보정기사님은,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채 변덕만 부리는 나를 끝까지 받아주셨다. 믹싱의 경우, 개화만발의 양정우 실장님과 홍랑기 믹싱기사님과 함께 작업했는데, 여름에 어울리는 앰비언스와 드라마가 강조되는 효과음을 적절히 삽입해 작품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주셨다. 또한, 류재학 음악감독님은 아이들의 정서를 잘 살려주며 울림이 있는 멋진 엔딩곡을 완성해주셨고, 마지막으로 이 모든 작업을, 동시녹음기사이기도 했던 전상진 군이 훌륭하게 엮어주었다. 길고 치열했던, 영화 제작의 과정에서 정말 많은 분들에게 민폐를 끼쳤다. 게다가 여기에 언급된 분보다 언급되지 않은 분들이 더 많다. 비록 이 영화는 ‘자기 치유’라는, 오롯이 사적이고 이기적인 이유로 시작하게 됐지만, 그런 수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고서야 비로소 완성할 수 있었다. 이제는 < 나만 없는 집 >이, 나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에게 위로가 되고, 공감이 되는 영화이기를 바란다.
제주 4.3. 사건을 다루고 있는 두 편의 영화 < 지슬 >(2012)과 < 비념 >(2012)이 화제를 몰고 있다. 올레길 개발과 저가 항공 노선의 활성화, 도시로부터의 탈출과도 같은 제주로의 이주, 자본과 국가의 개발 논리 앞에 날것으로 놓인 `세계 7대 자연경관`. 타자화된 공간으로서 제주도에 대한 이런 (육지에서의) 유행들 속에서 제주 4.3 사건의 소환이 또 다른 타자화나 역사를 통한 억지스러운 통합을 불러오는 건 아닌지 염려스러웠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두 편의 영화는 대표적인 관광지이자 외부와 같은 내부로서 최근 육지인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제주를 이국적인 상품이 아닌 온전한 존재로 드러내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 역력한 수작들이다. <지슬>에 대한 평론가 김혜리의 말처럼 이 두 작품은 '관광지와 무덤 사이'라는 간극을 놀랍도록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는데, 어쩌면 육지인인 `우리`에게 제주는 그 간극 자체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한국인의 문화적 상상력 속에 적극적으로 등장하게 된 제주에 대해 생각할 때에 < 지슬 >을 감독한 오멸 감독의 작품 리스트를 떠올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그가 꾸준히 제주에 대한 작업들을 해왔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 어이그, 저 귓것 >(2009)은 제주의 뮤지션이라고 할 만한 양정원의 음악과 제주라는 공간, 그리고 그 공간을 살아가는 `귓것(귀신/바보)`들의 삶을 그의 독특한 영화언어 안에 담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서울에서 사고를 당한 용필( 양정원 분)은 목에 깁스를 한 채 빈손으로 고향 제주로 돌아온다. 어머니의 산소가 흉측하게 파헤쳐져 있는 것을 발견한 용필은 제주의 바람이 제주의 돌 위로 몰아치는 언덕 위에서 목 놓아 운다. 그의 고통스러운 절규를 휘감아 도는 웅장한 배경음악 덕분에 관객들은 그의 공허와 슬픔 속으로 함께 빠져 들어간다. 동네 삼촌(어르신)이 나타나 '남의 묘 앞에서 뭐 하는 짓이냐'고 묻기 전까진 말이다. 순간적 침묵, 엄습하는 어처구니없음, 그리고 다시 시작되는 토속적인 느낌의 통통 튀는 배경음악. 이렇게 < 어이그, 저 귓것 >은 영화가 집중하고 있는 `우리들의 귓것 같은 삶`이라는 주제를 오프닝 시퀀스의 짧은 지속 안에서 잘 보여준다. 우리는 < 지슬 >에서 만났던 오감으로 가득 찬 스크린을 이 영화에서도 경험할 수 있다. 무엇보다 그의 영화에서 유머는 일종의 미학인데, 이런 명백한 개성이 오멸 감독의 (역사의 무게를 넘어선) 또 다른 소품을 기다리게 되는 이유다. 오멸 감독의 영화를 볼 때마다 '딸을 낳으면 돼지를 잡아 잔치를 하고 사내를 낳으면 엉덩이를 발로 찬다'는 제주의 속담이 떠오른다. 낄낄거리다가도 어느 순간 숙연해지는 것은 제주의 생명과 삶을 유지해 온 여성들에 대해 그가 지닌 존경 탓일 것이다. `귓것 같은 삶`에서 세속적 생산성과 대비되는 새로운 가치를 찾고 싶은 필자의 개인적 욕망에도 불구하고 쉽게 그럴 수 없는 것은, 그가 귓것들의 유유자적한 삶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으로서 제주 여성의 노동을 놓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 영화아카데미 심화과정에서 내놓은 4번째 장편 영화들 중에 한 편인 < 밀월도 가는 길 >은 참 복잡한 영화다. 신춘문예에 당선된 동조는 고향 인천에 찾아온다. 그리고 웜홀의 존재를 믿던 특이한 친구 기정을 떠올린다. SF소설을 무척이나 좋아하던 기정은 왕따였다. 그의 유일한 친구인 동조는 웜홀에 대한 집착이 점점 커지는 기정이 버겁다. 그리고 어떤 계기로 인해 그 둘은 나란히 학교폭력의 피해자가 된다. 이후 사라진 기정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지만 그를 다시 만나기는 쉽지가 않다. 동조는 이미 비어있는 기정의 예전 집을 찾아가 그를 모티브로 쓴 소설로 탄 상장과 상금을 조용히 올려놓고 떠난다. 마치 뒤늦은 속죄를 하듯이. 라고 내용을 요약해 보지만, 사실 요약하기가 쉽지 않은 영화다. 이 영화는 감독의 욕심이 굉장히 많다. 현실, 비현실, 현재, 과거를 오가는 복잡한 이야기, 멋진 앵글을 만들려는 노력이 빚어낸 사진엽서에 나올 것 같은 장면들이 그렇다. 하지만 과욕이다. 이야기는 벌려놓은 판을 수습도 잘 안되고, 카메라는 정작 중요한 것들을 놓친 채 부유한다. 민망한 유머는 덤이다. 잘 만들었다고는 보기 힘든 영화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영화가 끝나고 난 뒤, 그저 `망작`이라는 이름표를 붙여 실패한 데뷔작으로 치부하기는 불편한 기분이 든다. 잘 납득은 안 가지만, 이 영화의 어떤 부분에 나는 동기화 되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그 이유는 한 시퀀스에 있었다. 동조와 기정이 일진 패거리들에 잡혀 지독한 폭력에 시달리는 끔찍한 장면. 이 장면의 잔혹함만 떼고 본다면 아마 학원폭력을 다룬 여러 영화들과 비교를 해도 높은 순위에 자리할 정도다. 이 장면은 마치 폭주기관차 같다. 구타, 피는 물론이고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아주 질 나쁜 린치까지도 이어진다. 가해자, 피해자는 물론 침묵하는 비겁자가 모두 한 공간에 존재한다. 감독은 그것을 똑바로 보라는 듯 망설임 없이 까발려 스크린에 뿌린다. 마치 이 시퀀스를 위해 존재하는 영화인 듯 파워풀하게 보여지는 폭력에서 나는 스스로를 본다. 나는 어디에 서 있었나? 그간 한국 독립 영화 진영에서는 학교 폭력을 다루는 인상적인 작품도 적지 않았다. < 밀월도 가는 길 >은 학교 폭력을 다룬 많은 영화 사이에서 수작의 카테고리에 묶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양정호 감독이 보여준 파워풀한 연출은 지금껏 나오지 않은 다른 종류의 영화가 가능할 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갖게 한다. 데뷔작이라는 타이틀은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진다. 어떤 감독이든 평생 단 한번만 주어지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밀월도 가는 길>을 뛰어난 시작이라고 보기는 어려울지 모른다. 그러나 다른 길로 갈 수 있는 가능성은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그의 다음 작품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