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선
- 감독
- 오정훈, 이안숙
- 제작년도
- 2000
스포츠의 역동성을 들려주는 음악과 함께 스키 활강 장면이 빠르게 전개된다. 이윽고, ‘Nolympics’ 타이틀의 등장은 게임 분위기를 연상하게 한다. ‘Nolympics’은 ‘놀림픽’으로 바뀌어 등장하고, 그 위로 웃음소리가 들린다. 이 작품의 첫 번째 타이틀 시퀀스는 영화의 전체적 분위기를 짐작하기에 탁월한 선택이다. 온라인 게임처럼 현실과 동떨어진 세계를 만들어내는 올림픽과 그것을 둘러싼 ‘재현’된 이미지는 조롱할 수밖에 없는 것들이라는 점 때문이다. 이 첫 번째 시퀀스와 더불어 마지막 시퀀스를 보는 것은 더욱 흥미롭다. 마지막 장면, 다시 동계올림픽 스키 활강 장면이다. 이 장면이 시작되자마자 ‘No!’라는 타이틀이 뜬다. 이 타이틀을 치고 나오는 ‘Olympics’. 이 둘이 하나가 되어 ‘Nolympics’이 되고 ‘놀림픽’으로 바뀐다. 그리고 마지막에 ‘인터뷰 프로젝트 놀림픽’이라는 이 작품의 온전한 이름을 얻는다. < 인터뷰 프로젝트-놀림픽 >은 “놀림픽이 무엇일까” 라는 질문에서 놀림픽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는 작품이다. 다시 쉽게 말하자면, 올림픽을 반대하는 목소리들을 재기발랄하게 보여주는 인터뷰 중심의 다큐멘터리이다. 미영, 곽재혁 두 명의 감독은 한국에서 2018년 열리는 평창동계올림픽에 관한 자신들의 의견을 담는다. 그러나 처음부터 평창/동계올림픽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감독의 시작은 가리왕산이다. 자연의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런데 그곳을 파괴하면서까지 올림픽을 열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다른 국가-밴쿠버 올림픽은 어떠했는지? 비용이나 사회적, 문화적 가치가 있는지? 진정 올림픽이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질문해 나간다. 아니, 질문이라기보다는 논지를 확장해 나간다고 보는 것이 더욱 정확할 것이다. 작품의 구성은 단순하고 간단한 질문에서 점점 깊은 질문으로 빠져들어 간다. 가리왕산에서 시작한 질문은 올림픽이 담고 있는 폭력적 구조와 자본주의 사회의 문제로 가지 넓혀진다. 인터뷰를 통한 인식의 확장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이 작품의 세밀함은 여기에 머물지 않는다. 캐나다와 한국을 가로지르는 인터뷰, 인터뷰에 근거한 화면과 자막의 사용은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 듯하다. 실제 어떤 사운드는 익숙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따왔다. 가장 쉽고 명쾌하게 목소리들을 살리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인식의 확장을 넓혀가는 것이 하나의 구성전략이라면, 표현전략은 명쾌한 제시를 통한 풍자라고 할 수 있겠다. 올림픽의 실체에 가장 풍부하게 접근할 수 있는 작품이다. 그것도 42분이라는 시간 속에서.
2007년 8월 GM대우에 비정규직 노동조합이 만들어졌다. 이 비정규직 노동조합의 복직 투쟁과정과 현재(2014년)까지의 긴 시간을 기록한 작품이 있다. 김수목 감독의 < 니가 필요해 >이다. 감독과 비정규직 노동자들 사이의 거리는 매우 가깝다. 감독은 노동자들 바로 옆에서 웃으며 즐거운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심각한 토론 한 가운데 묵묵히 긴장을 기록하기도 한다. 또 어느 순간에는 노동자들 스스로 촬영한 화면을 자연스럽게 연결해나간다. 감독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분신이자, 보이지 않는 또 하나의 (비정규직) 노동자처럼 보인다. 1인칭 내레이션 역시 어떤 때는 관찰자로 어떤 때는 동일한 경험을 겪는 노동자로서 사건을 기술하고 감정을 내보인다. 이렇게 감독은 등장인물과 공동의 시간을 구축한다. 사건의 흐름은 연대기적 순서를 따른다. 2007년부터 2014년에 이르기까지 길고 어려운 싸움을 해온 노동자들의 모습을 담는다. 그렇다고 사건의 연쇄적 변화를 따라가는 것 같지는 않다. 초점은 비정규직의 현실이다. 다시 말하면 버티기도 힘든 비정규직 노동자의 지위와 심리적 불안정성을 중심으로 두고 있다. 긴박한 사건의 전개를 통해 긴장과 호기심으로 서사를 만들어나간다기보다는 사건 자체에서 발생하는 ‘비정규직의 불안’과 ‘내몰림’ ‘버텨야 하는 힘겨움’을 드러낸다. 그래서 그런지 사건에 대한 정보가 충분히 제시되고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이 까닭은 아마 감독이 상세한 정보보다 ‘불안한 비정규직의 현재’를 더 중요하게 선택하고 있음에 있지 않을까.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비정규직 현실의 무게감이었으리라. 이 작품에 등장하는 노동자들은 대부분 30대 젊은 청년들로 보인다. 감독과 동갑내기로 소개되는 여성노동자도 있다. 200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청년 실업이 늘어가는 만큼 비정규직에서의 청년들의 모습을 보는 것은 흔한 일인지도 모른다. < 니가 필요해 >는 비정규직 노동자로서 살아가는 청년들의 솔직한 모습을 만나게 한다. 노동운동의 대의보다 지금 이 순간 치열하게 살아가는 노동자가 중요하고, 같은 고통을 겪는 동지들이 애틋하다. 이 작품은 노동운동의 지금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자본이 어떻게 비정규직을 짓누르며 양산하고 있는지, 정규직이 비정규직의 자리를 막아서고, 지역운동 혹은 전체 노동의 판단이 실제 당사자들의 운동을 어떻게 가로막는지를 바라보게 한다. 여기서 감독이 주목하고 있는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은 노동자가 왜 싸워야 하는지, 그리고 노동자가 노동자를 어떻게 만나고 있는지를 보는 것이다. 한 노동자는 이렇게 말한다. “힘이 없다고 가만히 있는 것도 불쾌하다.” 다른 노동자는 이렇게 말한다. “힘들면 힘들다고 말했었어야지.” 언제 빼앗길 줄 모르는 자리, 혼자만의 복직이 가져오는 왕따의 외로움. 집단 내 폭행, 자본의 끊임없는 탄압, 묵묵히 버티고 버티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이들에게 감독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이들의 삶을 함께하고 지켜보고 싶다.’ < 니가 필요해 >는 그들과 함께 보내는 다큐멘터리 감독의 약속이다. 늘 변함없는 친구처럼.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을 건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아버지를 따라가지만 공기업 민영화의 선두주자 KT의 역사를 끄집어낸다. 아니, 신자유주의 시대에 노동자가 어떻게 퇴출되어 가는지를 차분하면서도 씁쓸하게 담아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진우 감독의 < 전봇대, 당신 >이다. 한 남자가 길을 걷는 것으로 시작하는 이 작품은 기본적으로 아버지의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는 시간 축을 따라간다. 연대기적 구성 축을 중심으로 하지만, 순차적인 전개를 따른다기보다는 현재의 시점과 과거의 설명이 교차하는 방식을 선택한다. 전체적으로 차분하게 하나씩 하나씩 설명하는 식이 인상적이다. 빠른 전개를 통해 사건을 강조하거나 인물이나 상황에 대해 몰입을 할 만한데, 다소 다른 선택이다. 사건들은 각 단락마다 정보를 제공하거나 상황을 충실히 보여주는 방식을 보여준다. 이렇게 따라가다 보면 아버지의 모습이나 감독의 성격이 직간접적으로 전해지게 된다. 감독의 아버지는 한국의 대표적인 통신회사인 KT 노동자였다. 지금은 정년퇴직했지만, 유능한 사원이자 노동자로서 신입사원들에게 KT의 가치와 업무에 대한 첫 교육을 담당했던 사내교수였다. 우체국 업무와 통신 업무를 병행했던 체신부 시절부터 시작하여, 한국전기통신공사 그리고 민영화된 KT의 노동자로서 오랫동안 근무했다. 그러나 마지막 근무는 지역근무에다 단순업무 배정, 퇴출 압력을 버티는 시간이었다. 반면에 낙하산 인사와 임원 비리, 민영화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지는 않았다. 아버지의 회사 이력에 덧붙여 가족의 변화가 사이사이 전개된다. 조용하고 차분한 이야기 전개 속에서 KT의 주주 총회와 인력퇴출 프로그램에 관한 시퀀스는 아버지를 뒤따르던 카메라에게 약간의 파동을 일으킨다. 아버지와 아들이 마지막으로 닿는 장소는 아버지의 추억 속에 강하게 남아있던 연수원이다. 이 장면은 현재 아버지와 아들의 상태를 드러내는 여백의 공간을 만들어낸다. 1인칭 시점의 < 전봇대, 당신 >은 어쩌면 두 가지 전략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하나는 KT를 통해 민영화의 폐해와 구조조정의 실체를 드러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아버지로서 살아가는 것에 대한 애잔함 혹은 이해이지 않을까. 아마 감독은 이 두 가지 모두에게 아쉬움을 갖고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아버지를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과 감정을 낮고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점은 눈여겨볼 만하며, 공기업이 민영화되어 어떻게 달라졌는지는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는 시사적이다. 무엇보다 과하지 않게 이야기를 끌고 가는 호흡이 관객들을 숨차게 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