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공우
- 감독
- 이노우에 우메츠구
- 제작년도
- 1970
- 출연
- 양팡, 리려려, 테레사 하핑, 구양사비, 앨리스 오인칭, 구오만나, 리붕비, 위자운, 딩 사이, 차우카라이, 베티 팅 페이
나는 고등학생 때부터 이두용 감독의 팬이었다. 어쩌다 시간 때우기 용으로, 이를테면 프로야구 중계가 우천으로 취소된 토요일 오후에 땜빵용으로 TV에서 방영된 한국영화들 가운데 이두용의 영화가 있었다. < 오빠가 있다 >와 같은 정체가 괴이한 액션 멜로영화도 내 마음을 홀리곤 했다. 지리멸렬한 스토리였으나 액션이 시작되면 거두절미 박력 있게 이어지는 화면 리듬이 경이적이었다. 역시 TV에서 본 < 최후의 증인 >과 같은 영화는 말할 것도 없었다. 극장에서 본 < 피막 >이나 < 물레야 물레야 >도 압권이었다. 나는 이두용의 신작을 1980년대 내내 기다렸다. 최재성 , 조용원 이 주연한 < 고속도로 >와 강수연 이 주연한 < 업 >을 보고 실망했다. 한 감독의 경력이 그렇게 허무하게 고꾸라진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 내시 >는 나를 감동시킨 마지막 이두용 영화였다. 국도극장에서 개봉한 이후 난 2번관 3번관을 쫓아다니며 이 영화를 일곱 번 관람했다. 거듭 볼 때마다 새로운 게 눈에 들어왔고 내 생애 처음 긴 평론을 쓴 영화도 이 영화였다. 신상옥의 영화를 리메이크한 <내시>는 사랑하는 여자를 되찾기 위해 내시 신분으로 위장해 궁으로 들어간 한 양반 출신 사내 서정호의 이야기다. 그와 정분을 나눴던 여자 자옥은 세도가인 아버지의 정략에 따라 궁에 들어가 후궁으로 간택된 후 이제 함께 얘기도 할 수 없는 신분이 되어 있다. 비련의 러브스토리가 핵심이지만 영화는 이것보다 곁가지 플롯이 더 흥미를 끄는 형태로 전개된다. 남궁원 이 연기하는 내시감은 서정호와 자옥을 연기하는 안성기 , 이미숙 남녀 주연배우 못지않게 플롯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역할인데 그가 봉사하는 왕실권력의 비정함과 타락이 영화의 주제이기도 하다. 서정호와 자옥 두 남녀 주인공은 종종 플롯의 흐름에서 사라진다. 그런데도 아무 지장이 없다. 이를테면 이런 장면이다. 한 궁녀가 임신하자 궁궐이 발칵 뒤집히고 내시감은 성 기능이 되살아난 내시를 찾아내기 위해 모든 내시들을 집합시켜 하의를 벗기고 검사를 한다. 관객은 이 상황에서 안성기 가 연기하는 주인공 서정호의 정체가 혹 밝혀지지 않을까 불안감을 느낀다. 내시들의 하체 검사가 끝나갈 무렵 서정호와 다른 한 명의 내시가 다른 곳에서 붙잡혀 끌려 나온다. 그 두 내시는 검사를 받지 않기 위해 저항하는데 강제로 서정호와 함께 끌려온 내시의 바지를 벗긴 어의가 그의 되살아난 성기를 확인한다. 호위 내시감이 가차 없이 그의 몸을 칼로 내려친다. 놀라운 것은 그 다음 화면이다. 보통 이런 상황이라면 주인공인 서정호의 반응화면을 잡기 마련이다. 안성기는 당대 최고의 스타였고 이 영화의 주인공이었다. 그리고 이 장면의 서스펜스는 서정호의 정체가 발각되느냐 여부에 있었다. 서정호의 반응화면은 나오지 않는다. 가차 없이 이두용 은 내시들이 하의를 추어 입는 멀리서 롱 숏으로 잡으며 이 장면을 끝낸다. 느닷없이 종결되는 그 호흡도 굉장하거니와 주인공의 존재를 잊은 듯 무심한 것도 인상적이었다. 이 장면 연출의 초점은 내시감이 봉사하는 왕실권력의 잔인함에 주어진다. 뼈를 깔끔하게 발라낸 생선살을 먹는 것과 같은 간편하고 유연한 커트감각의 맛이 이 장면에 있었다. < 뽕 >이나 < 물레야 물레야 >에서도 그랬지만 이두용은 줌렌즈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면서 공간을 신축적으로 다룬다. 왕 앞에서 궁녀들이 공연을 하는 장면에서 궁녀들의 무리 가운데 유독 미모가 돋보이는 자옥의 클로즈업으로 시작한 화면이 쑥 빠지면 부채춤을 추는 다른 궁녀들이 둥그런 원을 그리며 있는 것이 보이고 카메라가 오른쪽으로 이동하면서 쑥 들어가면 또 다른 궁녀들의 무리가 잡히는 식이다. 번거롭게 달리나 크레인을 쓰지 않고도 카메라가 능란하게 돌아다닌다. 카메라의 존재감이 두드러지는 것도 아니다. 카메라는 이야기의 운반수단으로 겸손하게 숨어서 화면에 박력과 긴장을 불어넣는다. 텅 빈 화면에 누군가의 발이 슥 들어오고 그가 멀어져 갈 때까지 죽 지켜보는 것과 같은 극적인 앵글도 곧잘 나오지만 전체적인 화면들의 균형감은 잘 맞는다. 겨울공화국의 시대에 이 영화는 궁궐 내부에서 벌어지는 추문과 피비린내 나는 살육을 담았다. 영화의 말미, 동료의 죽음을 본 내시감은 칼을 들고 싸움에 나서며 감옥에 갇힌 서정호를 구해주고 도망치라고 충고한다. 서정호는 말을 듣지 않는다. 두 사람은 몰려드는 내시들과 병사들을 벤다. 크고 육중한 덩치를 지닌 내시감 역할의 남궁원 이 “물러들 가라. 아니면 내시라도 벨테다”고 손을 휘젓고 몸을 앞으로 내디디면 상대편 병사들이 우르르 뒤로 물러난다. 구로사와 아키라 영화에서 곧잘 과장되는 움직임의 상응과 대비가 이 영화에서도 우람하게 이뤄진다. 내시감과 서정호가 싸울 때 왕과 자옥은 왕의 침실에서 정사를 나눈다. 격렬한 크로스커팅으로 성과 폭력이 클라이맥스에 전시된다. 영화는 곳곳에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는 새벽 궁궐의 롱 숏으로 끝난다. 전성기를 구가하던 때 이두용 이 보여준 박력의 스타일은 한국영화사에서 유일무이하다. < 내시 >는 그것을 마지막으로 증명한 작품이었다.
금요일 저녁, 집으로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고등학교 동창을 만난다. 그는 캐리어를 끌고 전철의 맨 마지막 칸으로 들어서는 나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와 손을 내미는 새까만 정장 차림의 덩치 큰 아저씨다. 순간 내 눈엔 땀으로 번들거리는 그의 훤한 이마 위로 네온사인처럼 떠오르는 낯익은 이름 석 자가 보이지만, 그는 내 손을 붙잡더니, ''정말 미안한데 너 이름이 뭐지?''라고 한다. -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 농담이고, 백승빈. 그러자 친구는 시익 하고 웃는데 순간 옛날의 그 익살맞은 얼굴과 느릿느릿한 목소리가 순식간에 오버랩 되면서 소름이 쫙 돋는다. 반면에 스물넷에 결혼해서 지금은 세 아이의 아빠에 큰 아이가 초등학생이라는 얘긴 딱히 와 닿지 않는다. 그래서 난 ''웃기시네!'' 라면서 그의 툭 튀어나온 배를 거의 칠 뻔 한다. 그는 예전에도 지금의 이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어머니들이 보시면, ‘그 친구 참 듬직하니 보기 좋네.’ 라고 입을 모을 법한 푸근한 덩치와 붓다 같이 속을 알 수 없는 관조적인 인상에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를 머금은, 커다랗고 고상한 석조건물 같은 아이였다. 복장 검사 때 바리깡에 앞머리를 밀려 빡구가 되어도, 월별 모의고사 성적표에 빨간 그래프가 땅바닥에 꽂혀도, 야자 시간에 짤짤이 하다가 걸려서 싸대기를 쳐맞더라도, 그의 얼굴은 여전하고 고요한 미소를 잃는 법이 없었다. 어떠한 자극도 그의 잔잔한 마음에 파장을 일으키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골프 용품 관련 회사에서 일한지 거의 십년이 다 되어간다는 그는 내가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를 만든다는 사실을 마치 엊그제 옥상에서 유에프오를 봤다는 이야기를 듣는 사람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신기해하며 듣는다. 그러자 스마트폰을 꺼내 내가 만든 영화의 제목을 또박또박 메모하더니 인터넷에서 다운 받아 볼 수 있냐고 묻는데 뭔가 수줍은 나는 더듬더듬 얼버무린다. 성공하면 골프 한번 쳐야지? 명함 속 영어이름이 ‘데니스’인 그가 내게 소맥 한잔을 함께 말아서 건네는 사람의 목소리로 말하고는 시익, 웃는다. 그 난데없는 술 한 잔에 갑자기 얼굴이 화끈거리는 기분이 드는 나는, 언젠가 내가 골프를 치게 된다면 반드시 너를 통해서 치겠노라는 식으로 주정한다. 귀엽게. - 두류역에서 내리지? 이제 나는 그의 스마트폰에 내 전화번호를 찍어주고, 내 이름 한 번 더 또박또박 말해준다. 세르게이... 아니고, 백승빈. 나는 그제서야 잘 가, 하며 그의 툭 튀어나온 배를 톡 하고 치는 미션을 완수하고, 작정하고 집 나온 사람의 짐 같은 캐리어를 질질 끌면서 열차에서 내린다. 내 등 뒤로 한참 머무는 그의 눈길이 느껴지는 나는 열차의 창문 너머를 한 번 더 돌아본다. 거인의 것처럼 우람하게 크고 두꺼운 손바닥을 들어 보이는 데니스가 거기에서 웃고 있다. 그러자 다시 십년도 훨씬 전에 그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러면서 내가 왜 데니스의 석가모니 미소를 좋아했는지에 대한 어렴풋한 이유를 짐작해보는 것이다. 이를테면, 반 아이들에게 왕따를 당하는 외롭고 수줍은 이 아이는 무법자들의 전쟁 같은 점심시간에 몰래 학교정원 한 구석, 울창한 이파리의 나무 밑으로 피신해 와서 혼자 삼각김밥을 먹으며 배를 채우고 있다. 때 마침 옆에 와서 앉는, 거인의 손을 가진 덩치 큰 친구. 삼단 찬합으로 된 자기 도시락을 하나씩 풀면서 묻는다. - 유부초밥 많은데 같이 먹을래? 여기서는 그 친구도 학교아이들의 먹이사슬 피라미드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 볼 수 없는 언더그라운드 캐릭터지만, 함부로 얕잡아 볼 수 없는 덩치로 인해 왕따의 과녁을 간신히 피해간 케이스일 것이다. - 니가 만든 거야? 외롭고 수줍은 이 아이는 왠지 바보 같지만, 필요한 질문을 한다. - 응, 간단해, 어렵지 않다. 그때부터 외롭고 수줍은 아이는 친구의 얼굴에 새겨진 문신 같았던, 고요하고 여유로운 미소의 정체를 파악하게 된다. 그러니까 뭘 물어도, 괜찮다. 그건 간단하고 어렵지 않다고 대답할 것 같은 스마일. 바리깡에 밀린 앞머리 탓에 빡구처럼 보여도, 모의고사에서 전교 사백 오십등을 하더라도, 싸대기를 맞아서 울긋불긋 돌아가는 색깔의 얼굴 위로 늘 괜찮다고 웃는 내 친구 데니스. 물론 여기서 삼각김밥을 가슴에 품고 교실에서 도망나온 왕따아이와 그 옆에 삼단찬합 도시락을 놓고 앉아 유부초밥을 나눠먹은 덩치 큰 친구 간의 에피소드가 실제로 있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것은... 현재 골프 용품 관련 회사에 다니고 있는 삼십대 중반의 아저씨인 데니스란 내 친구가, 과거에나 지금에나 복잡한 고민을 사서 하면서 얼마 전엔 대상포진 같은 몹쓸 병에나 걸려 멘붕했던 내게, ‘괜찮아.’ 라며 톡 튀어나온 배 한 번 툭 치고 또 먼저 미래로 휘익, 갔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한 예시다. 그러니까 이 모든 이야기의 요지는, 누군가에겐 그토록 쉬워 보였던 영화 만들기 놀이가 내겐 전혀 그렇지 않아서 지치고 화딱지 났던 최근, 본가에 내려와 있으면서, 지난해 명절 귀향길에 만났던 데니스가 갑자기 생각나 그의 명함을 찾아봤지만 웬일인지 보이지 않았다는 것 정도? 근처에 있으면 소맥이나 한잔 해, 문자하려고 분명히 지갑에 넣어두었는데... 머리를 부여잡고 부들부들 떨다보니 내가 그를 정말 만나긴 만났던 것일까에 생각이 미치기 시작하면서 이 이야기는 요즘 나를 가장 사로잡고 있는 유령이야기가 되기 시작했다. 그가 유령이었건 아니었건 간에, 이렇게 나는 붓다 미소를 가득 지은 채 데니스에게 정말 의외로 간단하고 어렵지 않은 땡큐 노트를 쓴다. 영화작업도 그런 식으로 해야 필모도 ‘열심히 살았구나’식으로 길어질테고, 길 가다가 우연히 만나는 학교 동창의 유령들도 지금보다는 더 반갑게 만날 수 있을텐데 말이지.
혼자 살던 집에 두 식구가 새로 들어온 게 벌써 재작년 일이다. 남자친구가 무턱대고 주워온 고양이 두 녀석. 남자아이는 콩이, 여자아이는 뚱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삼십대 중반을 넘기도록 집에서 동물 한번 키워본 적이 없고 고양이의 ‘고’자도 모르고 오히려 고양이에 대한 막연한 편견만 가지고 있던 나는 졸지에 두 아이의 엄마, 그것도 초보엄마가 되어 좌충우돌을 겪었다. 더욱이 아이들이 길에서 한 달을 살았던 만큼 건강상태나 발육이 그리 좋지 않았고, 특히 콩이는 ‘너무 못 먹어서’ 앙상한 몸에 회충과 설사로 고생하며 위험한 시기도 겪었다. 그리고 벌써 2년. 이제 다음 주에 2살이 되는 콩이와 뚱이는 동네 길고양이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우람한 체격을 지닌 이른바 ‘돼냥이’로 자랐다. 이제 나도 나름 고양이에 대한 지식이 늘어 트위터에서 돌발상황에 당황해하는 서툰 초보엄마들에게 잘난 척하며 조언을 줄 수 있게 되었고, 늦게까지 술을 먹다가 혹은 출장을 갔다가도 아이들이 눈앞에 어른거려 귀가를 서두르고, 집 앞 골목을 다니는 길고양이들이 눈에 밟혀 대문 앞에 이따금 사료를 놓아주는 전형적인 ‘캣맘’이 되었다. 바뀐 것들이 또 있다. 사실 아이들을 키우기 전에는, 고양이 키우는 사람들의 삶을 블로그를 통해 슬쩍 들여다 볼 때마다 그들이 너무 과민하고 때로 히스테리컬하다고 생각했다. 소소한 것에 지나치게 분노나 감격을 표현하는 것도 유난스러웠고, 때로는 ‘살아있는 동물’을 상대로 “좀 비싼 취미를 누리는 듯한”, 나아가 그걸 기어코 과시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아이들을 기르는 데에 필수적으로 필요한 사료나 모래 외에도 온갖 고양이 장난감, 혹은 캣타워 같은 것들을 ‘지른’ 인증사진을 올리며 호들갑을 떨거나 유난히 비싼 사료와 비싼 모래를 샀다고, 혹은 ‘생식’을 먹인다며 정성을 쏟는 모습이 요란스레 느껴졌고, 나아가 “내 아이에겐 최고만을!”을 외치는 광고 속 극성 엄마들의 모습을 떠올렸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아이들을 키우면서, 그런 식의 유난과 과민함이 실은 고양이를 향한 편견과 학대가 만연한 현실에서 유래한 일종의 자기방어에 가깝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전에는 몰랐던 동물 학대, 특히 고양이 학대의 실상을, 아이들을 키우면서 알게 되면서 고양이를 키우고 아낀다는 것이 일종의 ‘소수자 정서’에서 유래한 것임을 느끼게 된 것이다. 당장 가까운 지인만 해도 고양이를 키운다니까 즉각적으로 “고양이는 요물인데...”라 반응하는 걸 보면서 얼마나 놀랐던가. 아이들은 내게 기쁨과 즐거움과 위안만 주지 않았다. 과연 ‘영물’과 ‘요물’의 단어 뉘앙스의 차이는 뭘까 생각하고, 동네 식당의 주인 아주머니가 손님이 먹고 남긴 음식을 길고양이들에게 주는 걸 보며 감격하고, 동물학대 사건을 좀 더 예민하게 받아들이며 관심을 갖게 되고, 육식에 대해 고민하게 되고, 그러나 육식성인 아이들을 보며 자연의 먹이사슬을 받아들이게 되고, 동물과 관련된 이슈에 대해 보다 깊이 생각하게 되고, 개고기와 동물권을 둘러싼 논쟁을 보며 자료들을 찾아보게 되고... 아이들은 내가 모르고 있던, 혹은 내가 애써 외면하고 있던 묵직한 생각거리들을 바로 눈앞에 산처럼 쌓아주었다. 그리고 내 삶에서의 변화와 입장 정리, 그리고 실천을 요구받는 상황에 왔다. 독립영화가 내 삶의 한 부분을 차지하게 된 것도, 뚱이와 콩이가 내 인생의 일부가 된 것과 그리 다르지 않다. 창간호부터 99권을 꼬박 모았던 <키노>에서 처음 독립영화를 접하고 한독협과 인디포럼의 존재를, ‘서영집’과 ‘노뉴단’과 김동원 감독을 알게 됐지만, 오랫동안 독립영화는 내게 “그런 게 있다”는 정도의 존재였고 굳이 찾아가 접하기엔 어쩐지 두려운 대상이었다. 여러 ‘고전’ 독립영화들을 제목만 알았을 뿐 실제로 보지 못한 영화가 대부분었고, 내게 독립영화는 오랫동안 ‘정치적 주제에 너무 많이 집중하며 지나치게 선동을 주 목적으로 하거나, 지나치게 진지하거나, 지나치게 관념적인'' 영화였다. 하지만 독립영화에 좀더 가까이 가 무작정 영화를 보기 시작했을 때, 내가 갖고 있던 편견이 얼마나 빙산의 일각만을 보는 왜곡된 시선에 불과했는지 알게 됐고, 독립영화가 일반적인 상업영화와는 또 다른 차원의 거대한 세계라는 걸 깨닫게 됐다. 독립영화를 통해 이루어진 ‘발견’은 새로운 기쁨과 새로운 미학의 탐구 가능성을 안겨주었고, 이는 영화를 보는 눈과 영화를 향한 내 사고의 차원을 한 뼘 더 넓혀주며 새로운 영화를 상상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러나 나는 새로운 걱정과 근심까지 받아안게 되었다. 독립영화를 둘러싼 환경과 지난한 문제들, 그리고 정책과 시장에 대한 고민들, 그리고 영화가 사회와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한 성찰과 통찰 같은 문제들 말이다. 이를테면 내가 가장 딜레마로 생각하며 고민하는 것들엔 이런 것들이 있다. 적은 돈으로 영화를 만들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무보수로, 혹은 적은 돈으로 일할 수밖에 없는 스탭들은 또 다른 형태로 서로 노동을 착취하고 착취당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 자본에 대한 일정한 경계와 때로 독립을 주장하며 만들어지는 독립영화가 사람들과 널리 교감하기 위해 역설적으로 시장에서 어필해야 하는 상황, 혹은 시장에서 성공했을 때 겪게 되는 또 다른 문제들, 기존 자본에 기댈 수 없기 때문에 결국 다양한 형태의 국가 및 공적 보조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해 다시 국가나 공공기관의 간섭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 등등. 만들어진 영화를 그저 보는 입장에서도 고민하게 되는 이런 것들을, 일선에서 직접 독립영화를 만들고 제작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뼈저리게 느끼며 매일매일 고민할까. 사실 인디포럼도 한독협도 그리고 인디스토리와 시네마 달과 같은 독립영화 전문 배급사도, 독립영화전용관과 디지털 영화 제작의 붐도 이러한 고민의 산물이었다. 공동체 상영도, 독립영화 전문 온라인 배급사도, 블로그와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이용한 마케팅도, 모두 당대 독립영화와 시대를 붙잡고 고민과 토론을 거듭한 끝에 거머쥔 산물이다. 그렇게 찾은 것들을 시도하며 얻은 성공과 실패의 경험, 새로이 안게 된 고민으로 또다시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내고 있는 것이 지금의 독립영화다. 최근 들어 새로이 시도되고 있는 ‘공공제작’ 혹은 ‘사회적 제작’의 형식도, 어렵사리 극장개봉을 한 독립영화 감독과 배우들이 혹독하리만치 빡빡한 일정의 GV를 자청하며 계속해서 직접 관객을 만나는 것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영화의 위상이 예전만 같지 않고 영화를 둘러싼 환경이 급박하게 변하는 한편 자본은 두드러지게 양극화로 편제되고 있다. 충무로에서 재미없는 영화들만 그야말로 ‘양산’되고 있는 이때, 독립영화는 그 어느 때보다 눈부신 비약과 도약을 선보이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더 큰 싸움을 준비하며 더욱 고단하고 암울한 상황, 그리고 새로운 차원의 고민을 맞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전히 내가 독립영화를 보고 독립영화를 지지하며 독립영화를 둘러싼 고민에 함께 하고자 하는 것은, 이런 상황에서도 여전히 치열하게 독립영화를 고민하고 독립영화를 만들며 싸우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자로서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이 얼마나 되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그러나 글 쓰는 이로서 느끼는 의무감 역시 새로운 차원의 것이 된 것도 사실이다. 어쨌든 이를 위해 최근 나는 한독협 비평분과에 회원으로 가입했다. 앞으로 내가 쓰는 글이 더 이상 ‘주변인’ 혹은 ‘관객’으로서 한발 물러서 있는 글이 아니라, 함께 싸우고 함께 고민하며 함께 나아가는 과정의 글이 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