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위기종 저어새를 지키는 사람들
- 제작년도
- 2009
© 디깅룸 2026년 4월 12일, 나는 파주에 있는 한 출판 물류 창고를 찾았다. 고(故) 임재철 선생님의 제자들과 함께 이모션북스의 재고를 차에 실어 충무로의 옛 사무실로 옮기기 위해서였다. 충무로로 간 우리가 마주한 사무실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4층 건물이었고, 우리는 계단에 줄지어 서서 책과 유품을 옥상까지 손에서 손으로 올렸다. 4월인데도 날이 제법 더웠다. 존경하던 평론가의 책을 나르는 일은 영광스러웠지만, 책을 받아 올릴 때마다 이 책들은 왜 이렇게 무거운가 싶었다. 선생님은 존경스러운데 책은 자꾸 원망스러웠다. 내 옆에서 책을 나르던 사람은 처음 보는 사람이었지만 통성명을 할 겨를도 없었다. 오후 늦게 유품 정리가 끝나고 식당에 둘러앉았을 때에야 함께 일했던 분들과 인사를 나눴다. 나와 같은 라인에서 책을 옮기던 분은 자신을 1인 출판사 디깅룸을 운영하는 백지윤 편집자라고 소개했다. 백지윤 편집자가 고다르에 관한 책을 냈다고 하자, 나는 반가운 마음에 외쳤다. “아, 『고다르×고다르』 내셨구나!” 식탁의 사람들이 당황하며 정정해 주었다. “그게 아니라 『고다르처럼 보기』예요, 일남 님…” 나는 성격이 급하고 조심성이 없다. 아는 책 이름이 나왔다 싶으면 확인도 하기 전에 입부터 연다. ‘아, 이분은 나를 절대 신뢰 못 하시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두 달 뒤, 백지윤 편집자가 우리 팟캐스트 ‘영화 카페, 카페 크리틱’ 녹음이 끝난 자리에 찾아왔다. 디깅룸에서 새로 낸 크리스틴 스몰우드의 『샹탈 아케르만, 갇힌 여인』(2026)을 들고서였다. 함께 밥을 먹고 커피를 마셨다. 그는 그날 자리에 없던 윤아랑 평론가에게 전해 달라며 한 권을 내게 맡겼다. 그 책은 이 글을 쓰는 9월 27일 현재까지도 내 손에 있다. 아마 그는 평생 나를 신뢰하지 못할 것이다. < 호프 >(나홍진, 2026)가 개봉한 지 두 달이 넘었다. 그때 주고받은 카톡과 메일을 다시 읽으며 이 글을 쓰고 있는데, 지금도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는지 잘 모르겠다. 영화 한 편을 보고 왜 이렇게까지들 했을까. 내가 보던 트위터 타임라인에는 <호프> 이야기가 연신 올라왔고, 블로그에는 긴 글들이 쌓였다. 개봉 전부터 영화가 어떻게 나올지 떠들던 사람들은 영화를 보고도 할 말이 남아 있었다. 나도 블로그에 글을 쓰고, 트위터에서 떠들고, 카톡으로 같은 이야기를 또 했다. 같이 영화를 보며 떠들 사람을 찾겠다고 오픈채팅방을 팠더니 하루 만에 50명이 들어왔다. 임재철 선생님 프로필 사진을 달고 들어와 새 사람이 들어올 때마다 욕을 하는 정체불명의 인물도 있었다. 나는 가족과도 영화를 보러 다니기 시작했고, 영화에 몸을 던지기 위해 회사를 그만둘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 물론 그러지 않아서 천만다행이었다. 그즈음 이광호 평론가는 나를 주변의 극장 관계자에게 소개해 주며 리액션 상영회를 구체적으로 의논해 보자고 제안했다. 이상했다. <호프>라는 영화 한 편 때문에 이렇게 사람들과 서슴없이 연결될 수 있다는 사실이. 극장에서는 홍보 일정을 고려하면 새로 행사를 열기에는 시기가 조금 늦었다는 답을 보내왔다. 나는 그 입장을 이해했지만, 이 영화가 시장에서 그리 달가운 존재는 아닌 모양이라는 생각에 조금 슬퍼지기도 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이렇게 단시간에 사람들이 연결되는 풍경을 기이하다고 느낀 건 나만이 아니었던 것 같다. 트위터에는 이때 나온 글과 트윗을 모아 책으로 냈으면 좋겠다는 게시글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나는 그 글들을 보면서 혼잣말을 하곤 했다. “아이고, 이보세요. 책이 그렇게 쉽게 나옵니까?” 그러던 7월 27일, 회사 점심시간에 백지윤 편집자에게 메일을 받았다. 함께 <호프>에 관한 책을 만들자는 제안이었다. 가제는 ‘호프 호들갑’ 혹은 ‘호프 지키기’. 백지윤 편집자는 8월 10일까지 원고를 받아 그달 안에 책을 내겠다고 했다. 선인세와 이후 판매에 따른 인세 정산 조건도 적혀 있었다. 내 블로그 글을 보고 연락했다며, 지금 <호프>를 보고 몸에 남은 것을 자유롭게 써 보자고 했다. ‘이 사람 미쳤네.’ 첫 번째로 든 생각이었다. 백지윤 편집자가 보내온 <호프> 관련 도서 출간 제안 메일 선인세 금액을 보고는 한 번 더 그 생각을 했다. 이 출판사는 정말 이 금액으로 우리를 설득할 수 있다고 생각한 걸까? 그렇다면 대단한 야심을 품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때 <라디오스타>에서 김흥국이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내 기억으로는 이렇다. 김흥국이 정준호 와 축구를 하던 중이었다. 정준호가 손가락 다섯 개를 펴 보이며 물었다고 한다. [1] “형, 요새 행사 좀 있어?” 김흥국은 오랜만에 들어온 행사 생각에 축구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김흥국이 되물었다. “와, 진짜 다섯 개 가 맞아?” 정준호가 답했다. “아, 알았어. 맞다니까.” 그런데 쉬는 시간에 정준호가 김흥국에게 이렇게 말하더란다. “형, 많이 약해졌네. 진짜 50 에 되는 거야?” 김흥국은 500인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러니까 그때 나는 김흥국들을 찾아야 했다. 손가락 다섯 개만 보고도 단위를 묻기 전에 가슴부터 뛰는 사람들, 돈 이야기보다 <호프> 이야기에 먼저 몸이 반응하는 사람들 말이다. 다행히 나는 그런 사람들을 몇 알고 있었다. 나는 메일을 받은 지 십여 분 뒤에 답장을 보냈다. 반가운 제안이라며 그날 바로 필진을 꾸리겠다고 했다. 섭외할 사람들을 떠올리며 허풍도 떨었다. 그때 내 말을 기억대로 옮기면 이렇다. “이 사람들 아무도 거절 안 할 겁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살이 떨렸다. ‘거절당하면 어떡하지?’ 그날 오후는 지금 돌이켜봐도 기억이 잘 안 난다. 가장 수락할 것 같던 이광호 평론가가 제일 먼저 수락했다. 필진을 모으면서 윤아랑 평론가와는 우리끼리 아는 사람들로만 채우지 말고 잘 모르는 사람에게도 제안해 보자는 이야기를 나눴다. 그때 나는 김해솔 시인을 떠올렸다. 트위터에서 그가 <호프>를 보고 미쳐 있는 걸 보고 이분에게 글을 부탁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특히 이 책이 단순한 비평 모음집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고, 그 부분을 채워 줄 사람이라고 느꼈다. 여기서만 밝히지만, 그날 퇴근길 지하철역에서 실제로 김해솔 시인을 마주쳤다. 그전까지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는데 말이다. 《월간차지》의 신포도와 유유민은 이광호 평론가가 연결해 주었다. 두 사람이 참여하겠다는 답을 전해 듣고도 나는 그들이 실제로 누구인지 몰랐다. 이렇게 재치 있는 글을 쓰는 사람들이 왜 갑자기 등장한 걸까, 하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이광호 평론가가 그들의 정체를 알려 주자 나는 연달아 답장을 보냈다. “오, 맙소사…” “대스타들이시네…” 이런 일이 만 하루 만에 벌어지다 보니 내게는 온 세상이 <호프>일 수밖에 없었다. © ㈜포지드필름스,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한상희 평론가의 글도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사실 나는 그가 <호프>를 보고 무엇이라고 말할지 하루 종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이 영화에 관해 떠들 때마다 머릿속 한편에는, <호프>가 대체 영화로서 어떻게 성립하고 있는지를 가장 정확하게 설명해 줄 사람은 상희 씨일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래서 그가 영화를 본 뒤 블로그에 글을 올렸을 때 정말 반가웠다. 내가 좋아해서 반복하고 있던 말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왜 이 이상한 영화가 영화가 되는지를 말해 줄 사람이 나타난 기분이었다. 자연스럽게 이 책에도 그의 글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배은열의 경우에는 조금 달랐다. 그가 <호프>를 보고 신정원 감독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좋았다.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이 온갖 영화와 감독을 떠올리고 있었지만, 거기서 신정원이라는 이름이 나오는 순간에는 유난히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호프>를 외국 장르영화의 맥락 속에서만 이야기하지 않고, 우리가 좋아했던 한국 장르영화의 이상한 계보 한가운데에 슬쩍 밀어 넣어 보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이 영화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그렇게 말해 줄 수 있는 글이라면 꼭 책에 남기고 싶었다. 금동현 평론가는 8월 10일까지 원고를 쓰기는 도저히 무리라며, 포지드필름스 쪽 인터뷰가 성사된다면 진행자로 들어오겠다고 했다. 윤아랑 평론가는 직접 필진으로 참여하는 대신 정미파를 추천했다. 나도 정미파의 글을 꼭 싣고 싶었다. 정미파를 처음 만난 건 내가 <호프>를 본 날, 키니마에서 열린 ‘시네마 지옥’ 행사에서였다. 우리는 만나자마자 그 자리에서 틀어 주는 영화는 안 보고 게임 피파 시리즈 이야기와 <호프> 이야기만 했다. 그날의 대화를 기억나는 대로 옮기자면, 30분에 한 번꼴로 둘 중 누군가가 같은 말을 했다. ‘시네마 지옥’ 행사 중 “호프는 정말 대단한 것 같아.” 아직 〈호프〉를 보기 전이었던 한상희 연구자가 우리에게 물었다. “아니, 대체 호프가 뭐길래 그런 소리를 계속 하는 거야?” 그러면서도 한상희 연구자는 정미파가 나홍진 에 관해 풀어놓는 이야기가 무척 재미있다며, 그 이야기를 꼭 비평으로 써 보면 좋겠다고 했다. 그 말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정미파가 비평가로 데뷔할 책으로 이보다 잘 어울리는 책이 있을까 싶었다. 박동수 평론가에게는 <호프>의 차기작을 상상해 보는 대담을 원고로 싣자고 제안했다. 대담 상대에게도 그날 바로 인스타그램 DM과 섭외 메일을 보냈다. 그날 저녁, 나는 아홉 명의 명단을 백지윤 편집자에게 보냈다. 금동현, 김해솔, 박동수, 배은열, 신포도, 유유민, 이광호, 정미파, 한상희. 점심시간에 메일을 읽고 저녁에 명단을 보낼 줄은 나도 몰랐다. 명단에 이름을 올린 사람들은 모두 흔쾌히 함께하겠다고 해 주었다. 이름들을 모아 놓고 보니 근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이 책이 시장에 나온다면 사람들을 절대 실망시키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 책을 일종의 <호프> 동인지로 만들어 줄 만큼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이 영화가 대체 어떻게 영화로 성립하는지를 설명해 줄 사람도 있었다. <호프>를 다른 영화들의 계보 속에 놓아 볼 사람도 있었고, 내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방향에서 들이받을 사람도 있었다. 모두가 같은 말을 하는 책이 아니어서 좋았다. 다음 날부터 백지윤 편집자가 필진 일동에게 정식 제안 메일을 보냈다. “저도 말이 안 되는 일정이라는 걸 알지만, 아마 모두가 같은 심정이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답장은 곧바로 이어졌다. 김해솔 시인은 벌써부터 신이 난다고 했고, 유유민은 이번 기획은 스피드가 생명이라며 윤문도 하지 않은 메모를 그대로 보내왔다. 나는 같은 날 포지드필름스에 인터뷰 협조 메일을 보냈고, 대담 역시 정식으로 제안했다. 7월 29일 아침, 백지윤 편집자가 카톡을 보내왔다. “<호프>가 외세의 침략을 받기 시작한 아침입니다…” <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 >(디스틴 크리튼, 2026) 개봉일이었다. 예매율이 꺾이기 시작했으니 오늘부터 책 소식을 조금이라도 풀어야 한다고 했다. 곧 책 제목도 보내왔다. 『호프 끝장』. 표지는 이미 만들어져 있었다. 그 역시 미쳐 있던 게 분명했다. 사람을 모으고 방향을 잡는 일은 내가 할 수 있었지만, 원고를 조율하고 계약서 같은 행정 절차를 꼼꼼히 살피기에 나는 부족했다. 그래서 동료 윤아랑 평론가에게 도움을 청했고, 그는 흔쾌히 공동 기획자로 함께해 주겠다고 했다. 윤아랑 평론가는 계약서를 밤새 읽고 분석해 필진들에게 메일을 보냈다. 나는 그 메일의 마지막 문장을 지금도 좋아한다. “여기서 이런 프로젝트에 휘말리듯 참여하게 될 줄 알았던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겁니다.” 물론 일이 계획대로만 흘러가지는 않았다. 대담을 제안받은 분은 며칠을 고민한 끝에, 지금은 이런 일을 진행할 여력도 위치도 아닌 것 같다는 성의 있는 답장을 보내왔다. 포지드필름스로부터도 아직 답장이 없다. 하긴 연락받은 쪽에서는 ‘이 미친 사람들은 왜 이러지’ 싶었을 것이다. 영화 한 편 보고 갑자기 책을 만들겠다며 연락해 왔으니. 외부와 연결하려 했던 두 기획이 하나씩 멀어지자 오히려 분명해졌다. 기왕 시작한 거, 우리 손으로 끝내야 했다. 그러는 사이 원고가 오기 시작했다. 정미파는 60매를 보내왔고, 배은열의 수정고는 올 때마다 파일 이름이 길어져 결국 ‘수정수정수정수정수정’이 되었다. 8월 7일, 알라딘 북펀드가 열렸다. 나는 바이럴 마케팅 회사 우수 직원 출신이라고 떠벌리며 시간차로 게시물을 올렸다. 마케팅의 생명은 호들갑이다. 백지윤 편집자는 그날 오전 단톡방에 이렇게 썼다. “오늘 200 뚫으면 발 뻗고 자겠습니다…” 윤아랑 평론가도 한마디 보탰다. “200 뚫으면 에어컨 켜고 자겠습니다…” 기적처럼 그날 오후 모금액이 200만 원을 넘겼다. 백지윤 편집자는 저녁에 <호프>를 한 번 더 보고 빅맥 라지 세트를 먹었다고 한다. 이 얼마나 감동적인가. 『호프 끝장』 필진 단체 채팅방 8월 11일, 금동현 평론가의 원고가 도착했다. 이 책을 팬진(fanzine)으로 이해했다며 장난을 쳐 봤다는 원고를 읽고 기획진은 박수를 쳤다. 다음 날까지 나머지 원고도 모였다. 대담과 제작진 인터뷰가 무산되는 바람에 급히 원고를 부탁해야 했던 박동수, 금동현 평론가도 훌륭한 글로 답해 주었다. 그날 밤 나는 단톡방에 썼다. 책을 만들기로 했을 때와 펀딩을 열었을 때의 불안이 싹 씻긴다고. 기한이 워낙 빠듯해 원고를 고쳐 달라고 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윤아랑 평론가는 정미파와 함께 원고를 다듬느라 고군분투했다고 전해진다. 나는 대부분의 원고를 받은 그대로 넘겼지만 유유민에게만은 한 가지를 부탁했다. 처음 받은 원고가 조금 방어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 책은 무언가를 방어하기보다 일단 들이받는 쪽으로 가고 있으니, 비판받더라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더 과감하게 고쳐 달라고 했다. 다음 날 도착한 수정고는 근사하게 방공호를 벗어던지고 있었다. 8월 13일, 백지윤 편집자가 조판 PDF를 보내왔다. 각자 보내온 글이 170쪽짜리 책의 모습으로 묶여 있었다. 그날 윤아랑 평론가가 말했다. “이렇게 하고 싶은 거 막 하는 기회가 살면서 얼마나 더 있겠어요.” 나도 답했다. “저도 혼자서는 이걸 뭔가 절대 못 했을 것 같아요. 꿈도 못 꿨고.” 그 말을 들으며 문득 이 작업의 이상한 점을 생각했다. 돈도 넉넉하지 않았고 시간은 더더욱 없었다. 누가 시킨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이 일을 하지 않을 이유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 아니면 못 한다는 생각이 우리를 움직이고 있었다. 같은 시기, 목포국도1호선독립영화제에서 단편영화 심사를 하던 기간에는 정종호 감독과 <호프>에 관한 찬반 토론도 했다. 책의 출간 소식이 나오자 정종호 감독이 사악하게도 행사 이름을 ‘호프 끝장 토론회’로 지어 버렸다. 정말 별의별 일이 다 생기는구나 싶어 웃음이 났다. 나는 이날 <호프>를 방어하는 쪽이었다. 아무 준비도 하지 않았는데 사람들의 비판을 듣다 보니 할 말이 술술 나왔다. 그날 김영광 평론가의 말을 내 기억대로 옮기면 이렇다. “<호프>는 게임으로 치면 계속 파티원을 부르는 영화예요.” 그 말을 듣고 보니 나도 잠시 함께할 파티원을 불러 모아 책을 만들고 있는 것 같았다. 앞으로 평론가로 활동하면서도 이런 파티의 개념을 계속 생각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토론이 끝날 무렵, 처음부터 조용히 듣고 계셨던 김홍준 감독님이 갑작스레 나서셨다. 잘 들었다며 말을 건네시더니, 이 책을 꼭 번역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이건 또 무슨 일인가. 한국영화사에는 한국영화의 운명을 건 작품들이 간간이 등장하는데, 그 역사성도 분석해 주었으면 한다는 부탁도 덧붙이셨다. 이런 일들을 겪고 있으니 이 책에 관한 어떤 의심이나 비관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8월 18일, 백지윤 편집자가 제작처에 파일을 넘겼다. 8월 23일 밤, 펀딩은 200%를 달성하고 410부가 선판매되며 마무리되었다. 우리 입장에서는 대성공이었다. 8월 26일, 책이 물류창고에 들어왔다. <호프> 개봉 47일 만이었다. 9월 2일 아침, 백지윤 편집자가 단톡방에 캡처를 올렸다. 알라딘 종합 베스트 17위, 예술 부문 1위. 북펀드를 열 때 우리가 잡은 목표 금액은 200만 원이었다. 그날 오후 5시에는 대중문화 실시간 2위, 6시 21분에는 실시간 1위가 되었다. 알라딘 종합 베스트 17위, 예술·대중문화 부문 1위 기록 화면 책은 ‘와, 사람들이 저걸 읽나 봐’ 하는 분위기가 먼저 만들어져야 한다. 9월 9일에는 하루에만 120부가 나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백지윤 편집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책이 제 기능을 발휘하는 모습을 두 눈으로 목격하는 건 편집자 생활 처음이라, 참 묘합니다.” 며칠 뒤 다른 영화의 제작기를 쓰러 경주에 갔을 때였다. 촬영장 스태프가 물었다. “어떻게 <호프>로 책이 나와요?” 나는 웃으며 이 책이 알라딘 종합 베스트 17위라고 이야기했다. 주위에 있던 스태프 모두가 그 사실을 믿지 못했다. 9월 중순, 이번 주면 끝이겠거니 했는데 『호프 끝장』의 순위가 또 올랐다. 진짜 좀비 같은 책이구나 싶었다. 이광호 평론가는 학급문고를 만든다는 느낌으로 참여했는데 이렇게 인기 있을 줄은 몰랐다고 했다. 나는 극장에 갈 때마다 영화가 끝나고 의아한 표정을 짓는 사람들을 자주 본다. 지금 내가 본 게 뭐지, 하는 표정. 그때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무엇일까. 이야기다. 『호프 끝장』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이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선물 같은 책이 되기를 바랐지만, 내가 기획한 것은 그 너머에 있었다. 영화가 극장에 걸려 있는데 비평은 반년 뒤에야 도착하는 방식 말고도 다른 방식이 있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어떤 영화가 개봉하고 시장이 아직 그 가치를 판단하지 못한 채 머뭇거리고 있을 때, 바로 그 옆 진열대에 비평을 올려놓을 수 있다면 그 비평은 충분히 읽힐 수 있다. 그러려면 속도가 필요했다. 그리고 이번에 알게 된 건, 그 속도가 단순히 서두른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그 속도는 신뢰에서 나왔다. 내가 이 일을 하기 전까지 쌓아 온 관계와, 누군가가 보내 준 원고를 믿는 마음과, 누군가가 자기 역할을 해줄 거라는 기대에서 나왔다. 혼자였다면 절대 불가능했을 속도였다. 앞으로도 나는 이런 작업을 계속하고 싶다. 백지윤 편집자는 《기획회의》에 실은 「운명페이」에서, 4월 12일 충무로에서 받은 환대가 없었다면 7월에 내게 출간을 제안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썼다. 그날 나는 이름도 모르는 사람과 책 상자를 나르며 눈치를 보고 있었고, 이모션북스의 책들은 왜 이렇게 무거운가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는 자기 책 이름도 제대로 몰라보는 사람을, 책을 전해 주기로 해 놓고 석 달째 안 준 사람을 믿고 이 책을 만든 것이다. [2] 백지윤 편집자는 자신을 제작자 정도로 생각해 달라고 했다. 그러나 이 책을 윤아랑과 함께 기획한 나로서는, 평생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친구를 만난 기분이다. 아무래도 샹탈 아케르만 책은 이번 달 안에 윤아랑 평론가에게 전해 주어야겠다. *** [1] MBC <황금어장—라디오스타> 2010년 7월 28일 방송분에서 김흥국이 소개한 일화를 필자의 기억에 따라 재구성했다. [2] 백지윤, 「운명페이」, 《기획회의》, 2026. ※ <호프> 스틸 외 사진: 필자 제공 Behind the Book : 저자에게 아직 남아있는 이야기 한 사람의 질문이 늘어나고 깊어진 끝에 수백 쪽이 되어, 세상 밖으로 나오기까지. 마침내 책 한 권으로 독자에게 닿은 저자가, 치열하고도 가치 있던 여정을 들려줍니다. 조일남(영화평론가) l 영화를 두고 놀기를 좋아하고, 그 놀이가 남기는 것에 대해 쓴다. 아내와 두 강아지와 함께 파주에 살고 있다. 팟캐스트 ‘영화 카페, 카페 크리틱’ 진행. 『호프 끝장』(2026) 공동 기획 및 서문, 『영화 카페, 카페 크리틱』(2023) 공저. 머니그라피 인스타그램 매거진에 영화 칼럼 연재 중.
© ㈜포지드필름스,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 호프 >(나홍진, 2026)는 우리가 알던 비평의 한계를 절감하게 했다. 비평 글 각각의 탁월함을 따지는 것이 아니다. 비평의 작동 방식이 <호프>를 둘러싼 말들을 특정한 장에 끌어당기지 못했다는 의미다. 이것은 제도적 패배다. <호프>는 제2의 < 디 워 >(심형래, 2007)가 아니었다. 영화를 즐겨 보는 이들 사이에선 <디 워> 정도의 화제가 된 것만 같았고, <호프>를 두고 수많은 말이 오고 갔음을 누구나 느꼈다. 하지만 <호프> 주위엔 논객이라 할 만한 매개가 없었다. 2007년의 <디 워> 사태는 진중권 평론가를 비롯한 일련의 기성 평론가 진영과 포털 사이트에 모인 대중의 갈등 양상으로 번졌었다. 양극단에 다중 다수의 논객이 생겼다. 국가주의, 민족주의, 할리우드를 향한 사대주의 등 여러 사회적 담론이 부풀었다. <호프>엔 말만 있고 뼈가 없었다. 상술한 논객, 달리 말해 중심 지대가 된 논지가 부재했다. 이것은 <호프> 스스로가 원한 결과이기도 하다. 다수의 공식 석상에서 밝혔듯 나홍진 감독은 앞만 보고 즐기는 영화를 택했다. 장재현 감독이 < 파묘 >(2024) 개봉쯤 밝혔던 태도와도 비슷하다. 극장 엔터테이닝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는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의 대중영화 감독들은 다 같이 ‘보기만 해도 재밌는’ 영화를 꿈꿨다. <호프>도 그렇듯 보인다. 1980년대를 가리키는 다소간의 이미지가 영화에 내포되었기는 하나 이것은 기호가 되지 않는 기표에 가까웠다. 칸영화제 경쟁 부문 상영 이후 《씨네21》 김소미 기자가 설명한 것처럼, [1] <호프>는 작중 ‘서브 텍스트’를 최대한 장난스럽게 소거해 가는 영화였다. <호프> 개봉 이후 영화를 지지하는 이들이든 반대하는 이들이든, 1980년대라는 맥거핀에 관해선 딱히 이야기하지 않았다. “이야기하지 않았다”기보단 그러질 “못했다.” 다시, <디 워>의 사례처럼 어떠한 담론의 실재라도 만들었냐의 차원에서 비평은 <호프>를 이기지 못했다. 전술했듯이 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영화에 관해 이야기하는 거의 모든 매체와 창구, 플랫폼이 <호프>로 휩싸이긴 했다. 말 그대로 휩싸였다. 그저 분위기에 휩싸인 듯 보였다. 매체부터. 《씨네21》은 <호프>의 작가, 장르, 서사 등에 관해 비평했다. 이어서 《카이에 뒤 시네마(Cahiers du Cinéma)》의 얄 사다트 평론가, 정희진 여성학 연구자, 박해천 디자인 연구자의 글을 실었다. 글 하나하나의 가치를 따지려는 것은 아니며, <호프>라는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선 그럴 필요도 없다. 다만 <호프>에 대해 생산됐던 말들이 순환적으로 돌고 도는 허무의 궤에 빠졌단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좋은 비평일지라도 대중들의 거친 찬동이나 거센 반발을 그러모으진 못했다. 비평이 꼭 대중과 영합해야만 한다는 고루함의 태도는 아니다. 다만 적어도 <호프>에 대해서는, 한여름의 텐트폴 영화에 있어서는 제 몫을 했어야 만족스러웠을 듯하다. 대신 <호프>를 두고는 비평적 담론에 대한 논의보단 평론가 개인의 인격과 이력에 대한 대중의 비난이 잇따르기까지 했다. 국내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이동진 평론가의 말조차 그랬다. [2] <디 워> 마지막의 ‘아리랑’이 그리워질 지경이다. 다시 말하지만, 개별 비평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더 큰 사태다. 질량 없는 부피, 맥락 없는 요소, 총체 없는 부분. 얄 사다트 평론가는 “미국에서 흔히 쓰는 ‘larger than life’라는 표현은, 어쩌면 위대한 블록버스터가 불러일으키는 감각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말인지도 모른다.” [3] 라며 <호프>를 상찬했다. 역설적으로 이 말은 한국에서 <호프>를 두고 발생한 일련의 현상에 빗대어진다. 니콜라스 레이가 <실물보다 큰> 그림자를 보여줬듯이 <호프>에 대한 비평은 그것의 실재보다 큰 음영으로만 존재했다. <호프>에 대한 말은 흐릿했고, <호프>에 대한 말들에 반응하는 말들이 더 뚜렷했다. 아무런 생각도 안 해야 하는데 이유는 간단하다. 듀나 평론가의 말처럼 “<호프>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영화가 아무 생각을 안 할 때” [4] 이기 때문이다. <호프>는 그 내부의 원리에 천착할수록 힘을 잃는 덩어리다. 이 작품이 어느 IPTV를 통해 수입된 이름 모를 감독의 영화였다면 많아야 수백 명 정도가 기억하는 B급 영화로 기억에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호프>는 한국 영화산업의 중심에 있는 700억 원(추정)짜리 대작이다. ‘컬트’가 될 수 없다. 세상에 수백억 원을 들여 수백만 명이 봤으며 북미와 유럽에 배급된 컬트영화란 성립하지 않는다. 존재론적인 모순. <호프>는 작아야 하지만, 너무 커졌다. 역도 성립한다. 더 커야 하지만, 너무 작아져 버렸다. 모순은 더해진다. <호프>는 칸 경쟁부문에 진출하여 국내 평자들에게 모종의 비평적 요구를 선보인 ‘작가주의적’ 작품으로 소비됐다. 한국영화의 정체성을 하나의 토큰처럼 사용한 유럽 영화계의 전략이었을까. 여하간 결과적으로, 대중에게 나홍진은 봉준호 , 박찬욱 이후 한국영화를 견인할 것만 같은 인물로 여겨졌다. 이러한 상황에 <호프>를 두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면, 그것 역시 매체와 평단의 방기다. 그야말로 진퇴양난. 말해도 문제, 말하지 않아도 문제. 하지만 마땅한 방법론 따위 없는 듯한 절벽. 필자는 이에 관해서 ‘한국식 작가주의의 패배’라는 요지의 단상을 남겼다. [5] 영화보다 큰 곳이 아니라 감독의 세계관에 들어가 비평하던, 즉 봉준호, 박찬욱, 홍상수 의 영화를 작가 개인의 것으로 탐색하던 2000~2020년대의 작가주의 비평으론 <호프>에 대적할 수 없단 것이다. <호프>와의 싸움은 애초부터 패배의 운명, 허무의 감각을 타고났다. © ㈜포지드필름스,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호프>의 내적 가치는 딱히 없다. 이 가치 없음의 가치에 관해 구구절절한 글을 쓴 적도 있다. [6] <호프>에 부여된 비평의 질료란 영화 바깥에서 발견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호프>는 한국영화이기에, 그 어떤 틀로도 규정되지 않는 아웃라이어이기에, 장르적으로도 영화사적으로도 작가주의적으로도 큰 가치가 없는 부수이기에, 한국영화가 꾸준히 배태해 온 다성적 모방의 성취에 극도로 기대고 있기에, 대신 내부적으로는 자체적 맥락을 일절 가미하지 않았기에 유의미” [7] 하다. 간단히 말해 <호프>에 대한 이야기는 어쩔 수 없이 영화 매체의 테두리를 오고 가는 원심력의 원리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 작품과 작가를 탐하기보단, 비평이 생성되고 유통되는 제도의 지형도를 더 면밀히 살펴야 했다. 그러나 우리의 비평 제도와 비평적 틀은 ‘바깥’을 이야기하는 힘을 잃어왔다. 구심력을 택해왔다. 임재철 평론가는 1999년 《필름 컬처》 1호의 권두에서 이 사태를 예견했다. “현재 한국의 영화 비평은 글쓰기가 응당 가져야 할 제도와의 긴장감을 전적으로 상실하고 있다. 비평 자체가 마치 자신이 제도의 일부분인 것처럼 -심지어 아무런 대중적 영향력이 없는 경우에도- 착각하는 경우도 왕왕 목격하게 된다. 물론 여기서 우리는 비평의 자족성을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비평이 영화 창작 주체 그리고 나아가서는 영화 제도의 구성원들과 긴밀한 관련을 맺고 있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상식이다. 하지만 그것이 생산적인 관계가 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거리가 반드시 필요하다. 소통은 위상의 차이를 전제로 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거칠게 볼 때 한국식 작가주의란 감독들을 신봉하고, 그들의 미시 세계를 해제해야 한다는 1990년대 전후 국내의 시네필리아적 계보에서 연장했다. 그런데 <호프>에서 나홍진의 작가성 같은 것은 이 거대한 콘텐츠 놀음의 아주 작은 일부일 뿐이었고, <호프> 비평에 제대로 맞물릴 수 없었다. 비평은 작품과 제도, 그 어느 곳과도 적절한 거리감을 유지하지 못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많은 이가 문제의식을 느꼈다. 문제라고 인식하지 못했더라도 일종의 갈증 같은 것을 느낀 듯하다. 『호프 끝장』 [8] 이라는 제목으로 8월 31일 출판 예정인 하나의 평론 선집은 이에 관한 리액션으로 보인다. “오히려 이 책의 소재는 <호프>를 둘러싼 모든 긍정과 부정의 반응이며, 이 책은 반응을 생산하는 모든 이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기획되었다.”라는 책 소개 글이 단서다. 이야기를 더 나누자는 제스처이며, 유의미한 시도인 듯하다. 다만 이러한 기획조차 <호프>의 허무를 완연히 이기긴 힘들 것이라 슬그머니 비관해 본다. 아직 책의 내용을 상세히 읽진 못했지만, 기획 배경과 사전 공개된 한 꼭지의 다음 내용에 미루어 보았을 때 그렇다. “그렇기에 <호프>는 신정원 과 < 차우 >를 다시 불러내며 ‘한국의 시네필들이여, 단결하라’고 외친다.” [9] 두 가지의 의문이 드리운다. 첫째, 『호프 끝장』이 택한 책의 물성은 <호프>란 허무를 모종의 틀에 가두기 위한 방책인가. 그렇다면 이것은 <호프>의 범석( 황정민 )과 주민들이 외계 종족을 보고 느낀 공포의 감정과 유사한 반응일 테다. (이 글에서 필자는 이제야 <호프> 안쪽의 이야기를 꺼냈다. 이 글 역시 <호프>의 허무를 이기지 못한 사례의 하나란 이야기다) 정체 모를 언어가 눈과 귀를 파고들 때, 우리의 본능은 자연스레 공포를 느낀다. 도망가거나 공격한다. 『호프 끝장』은 후자인 듯하다. ‘끝장’이라는 제약의 언어를 통해 <호프>를 둘러싼 말들의 확산을 한 주머니에 가두려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낯선 괴물을 포박하여 감금하듯이 비평가들은 이것에 대한 ‘끝장’을 원하는 듯 보인다. 손아귀에 넣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호프>의 크기는 웬만한 주머니의 용적량을 넘어섰다. 둘째, 왜 한국의 ‘시네필’들이 <차우>로 단결해야 하는 것일까. 궁금증의 시작은 꽤 개인적이다. 필자 역시 저 부름에 사전적으로 응답한 이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7월 6일 <호프>의 언론배급시사회 직후 필자는 개인 SNS에 <호프>의 뚜렷한 레퍼런스가 <차우>임을 언급했다. [10] <차우>를 아는 이라면 대개 그랬을 것이다. 한국영화 르네상스를 겪었던 세대에게, <차우>와 신정원 감독은 현재 우리가 잃어버린 충무로의 자기반영적 패스티시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호프>는 이런저런 장르적 요철을 뿌리 삼아 발진한 대중영화이기에 <차우>의 호명엔 어느 정도 당위성이 생긴다. 틀린 말이란 의도가 아니다. <호프>와 <차우> © ㈜포지드필름스,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 © ㈜영화사 수작, 빅하우스(주)벤티지홀딩스 (사진: Daum ) 여기서 짚고 싶은 점은 <호프>가 <차우>의 적자라든지 하는 비평적 주제의 옳고 그름이 아니다. “<차우>를 아는 이라면 대개 그랬을 것”이라 말하는 필자의 태도야말로 이 속 간지러운 의문의 원흉이다. 김신 평론가는 KMDb의 ‘비평, 안녕하십니까’에서 동시대 한국 시네필들의 폐쇄성 또는 군집성을 지적한 적 있다. “다수의 시네필 집단은 종종 영화와 비평에 관한 정보를 얻는 몇 가지 디지털 채널을 일종의 단일 신경망처럼 공유하는 초개체 생물 군집처럼 보일 때” [11] 가 있다는 것이다. 적확하다. <호프>에 대한 <차우>의 연상은 어느 순간부터 동시대 평자들에게 하나의 집단적 기억으로 각인됐다. ‘시네필들의 단결’은 이미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끈끈하다. 그럼에도 재차 집합 구호를 외치는 일은, 지금의 ‘시네필 단결’이 대중적으로 유효한 테제를 남기지 못한 채 사그라들었다는 허무감의 역설적 발로일 것이다. <호프>와 <차우>의 비교 논지는 작금 시네필리아적 행위의 특질을 드러내는 행위이기도 하다. 김병규 영화평론가는 동시대 시네필리아들이 20세기(한국이라면 2010년대 이전까지 포괄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의 기억에 짓눌려 비명을 지른다고 썼다. “어쩌면 동시대 영화는 더 이상 유효한 효과를 일으키지 못하고 눌어붙은 세계를 다시 조형하는 시네필리아의 작업이 된 것” [12] 이다. 요즈음 대개의 시네필리아는 과거의 유산을 파먹는 일에 흥미를 느낀다. <호프>를 보며 한국 장르영화의 계보를 따지거나 <차우>를 떠올린다. 이럴수록 작품 내부를 향한 비평에 더해, 그 작동 방식과 환경까지를 분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투보다 전쟁. <호프>에 필요한 일이었다. 그래도 일단 주민들을 모을게요 『호프 끝장』은 <호프>를 끝장내지 못할 것이다. “비평계 공론장이 점차 고립된 상황, 그리고 그게 고립된 원인이 비평계 내부에 있다고 말하며 또 다른 고립이 생성되는 상황의 원인을 몇몇 평자들의 책임”(김신) [13] 으로 돌리려는 의도가 아니다. 너무나 많은 환경 변화가 수반됐다. 여기서 그 변화와 일일이 대적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럴 힘도 없다. 작금의 상황에 놓인 그 어떤 비평적 주체도 <호프>를 둘러싼 제도의 불명확성을 다잡진 못한다. 좁디좁은 비평계란 ‘군체’가 700억 원짜리 <호프>를 이기지는 못한다. 마찬가지로 <호프>는 약 59조 원짜리 X(2022년 일론 머스크의 트위터 인수 금액)를 이기지 못한다. <디 워> 사태를 재연할 역량은 소수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다수가 다수의 말을 쏟아 내는 쪽이 훨씬 큰 경제력을 생산한다. 이 시장 논리의 당연함은 거의 장르적일 정도로 세계에 고착됐다. 어쩌면 “호프 끝장”이란 제목은 이 한계를 미리 알고 선제적으로 자조한 결과물일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일단 주민들을 모아 대응하겠다는 성애( 정호연 )의 말처럼, 할 일은 해야겠다는 종류의 동력이었을까. 마음이 이상하다고 요령부득 뇌까리기만 하는 범석처럼 무력해질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덧붙여 필자 나름의 극복 방식도 제언해 보고 싶다. <호프>에 대한 비평의 (뒤늦은) 승리 방식이란 두 가지로 고려된다. 첫째, <호프>의 자결을 기다린다. 상업영화의 자결이란 개봉 상영의 끝, 그로 인한 대중들의 무관심이다. <호프>는 거대 외화들의 공습 시점에 맞춰 이미 피를 흘리는 중이다. 둘째, 시간의 흐름이다. < 환송대 >(1962)에 관한 크리스 마커 자신의 말, “사랑은 시간에 대한 유일한 승리”를 변주하자면 “시간은 <호프>에 대한 비평의 유일한 승리”일 것이다. 하나로 뭉치지 않은 채 맥락 없이 흐트러져버린 비평의 조각들을 하나하나 모으기 위해선 훨씬 더 긴 시대의 틈이 필요하다. 쓰고 보니 두 방식 모두 ‘하릴없는 기다림’의 다른 말이다. 범석이 왜 무력해졌는지 잘 알겠다. <호프>에 대한 말들을 모으고, 그것들의 쓸모없어짐을 이야기했다. 그렇지만 성애처럼 낙관으로 억지 부리듯이, 의도적으로 최대한 많은 문장을 모으려 했다. 결론적으론 이 글 역시 무수한 실패의 종이 쪼가리 중 하나가 될 것이다. <호프>의 안쪽처럼 난삽한 구성이 되더라도 일부러 그러려 했다. 여하간 그 과정에서 《씨네21》, 《필름 컬처》와 같은 오래된 영화 전문지부터, 《쿨투라》라는 문화지, 독립출판물, X나 인스타그램 같은 SNS, 블로그, KMDb 영화글 등의 여러 창구를 통과했다. 지금 영화에 관해 (필자처럼 나름 고관여로) 말하고 쓰는 이들의 경로 역시 이와 비슷할 것이다. 크게 다르지 않은 곳에 모일 테다. 하여 이런 상상도 해본다. ‘성애가 주민들을 한곳에 모은다면, 외계인들은 외려 더 손쉽게 인간들을 절멸시킬 수 있지 않을까?’란 무서움. © ㈜포지드필름스,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사족 끝으로 정직하게, 이 글의 원료는 필자의 사적 회한이자, 자의식 과잉의 내적 독백이었다. 설령 아무도 듣지 않았더라도, 왜 <호프>가 아무것도 아니란 말을 하지 못했을까. 빙빙 돌려 그 허무의 가치를 어떻게든 격상하려 한 것일까. ‘<호프>에 관해’ 무언가 말할 수 있겠다는 지각은, ‘<호프>를’ 말할 수 있겠단 사실과 같지 않은데 말이다. 정치에 대한 영화와 정치적 영화를 갈랐던 고다르의 말처럼, 저 둘은 엄연히 다르다. 태초부터 <호프>에 ‘관해’ 말할 수밖에 없음을 깨달았어야 했다. 《씨네21》 지면에 별점 4개를 주었다는 일의 책임감이었을까. 그렇다면 영화에 대한 감상을 작가적 기호(記號)에 대한 탐구가 아니라, 개인의 기호(嗜好)로 유희할 순 없는 것일까. (사실 그러기는 싫다) “타인의 취향에 대한 호기심과 자신의 취향을 정당화하려는 의지의 동반사멸” [14] 이 팽배한 이 시대에, 모든 비평은 에세이가 될 수밖에 없을까.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란다) 하여 이 글처럼 우리는 계속 영화에 ‘관한’ 무언가에 더 크게 반응해야만 하는 것일까. 이 모든 물음은 마베이요의 빛나는 심장처럼 아무 의미 없는 허세에 가까울까. 어쨌거나 한 명의 관객이자 평자로서는 <호프>의 허무가 아쉬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대체, <호프>를 두고 무슨 말이 남았나? 아니, 애초에 왜 말했나? *** [1] “ [특집] 백주 스릴러에서 무엇을 볼 것인가 - 칸 경쟁부문 <호프> 첫 시사 리뷰 ”, 《씨네21》 1558호, 2026. 5. 29. [2] “ 이 세상은 아직 ”. 이동진 영화평론가가 개인 블로그에 <호프> 별점에 대한 일종의 후기를 남겼다. 2026. 7. 20. [3] “ [기획] 가속이 향하는 곳, 얄 사다트 평론가가 본 <호프> ”, 《씨네21》 1568호, 2026. 8. 6. [4] “ [특집] <호프>의 외계인은 왜 백인의 얼굴을 하고 있는가 – 외계인의 이미지를 중심으로 장르 읽기 ”, 《씨네21》 1566호, 2026. 7. 24. [5] “ 사회는 영화보다 크다. 네 가지 관점으로 보는 2026년➊ 한국식 작가주의의 한계를 마주한 2026년 ”, 《씨네21》 1570호, 2026. 8. 21. [6] “ [영화] 〈호프〉는 한국영화이기에 유의미하다. ” 《쿨투라》 2026년 8월호, 2026. 7. 29. [7] 4)와 동일. [8] 『호프 끝장』 알라딘 북펀드 웹페이지 . [9] 『호프 끝장』의 출판사 ‘디깅룸’의 X(구 트위터) 게시글 . [10] https://www.instagram.com/p/Dacd6WLj8aH/?igsh=M285cnVvcmZ5cXF1 [11] 김신. “ 사진적 이미지에서 확률론적 이미지로: 2020년대 전후 시네필 커뮤니티와 영화 속 대화에 관한 단상 ”, 2024. 11. 21. [12] “ [비평] 우리 모두 곤경에 처해 있다, 김병규 평론가의 <여행과 나날>과 <슈퍼 해피 포에버> ”, 《씨네21》 1540호, 2026. 1. 21. [13] 10과 동일. [14] 이광호. “ 1인칭 사이 1인칭: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박종원, 1992) ”, 2024. 5. 21. 이우빈(영화기자) l 《씨네21》 기자. 친구가 없어 영화관에 가고 집에선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본 1997년생. 최근엔 저널리즘 비평이 대체 무엇인지 열심히 고민 중.
<영자의 전성시대>(1975) 중 영자( 염복순 ) / © 태흥영화 (사진: 양기주) *** 현재 한국영화박물관에서는 기획 전시 ‘ 제목전(展) – 텍스트, 타이포그래피, 무빙 이미지 ’ 가 진행 중이다. 1919년 < 의리적 구토 >로 시작해 2025년 개봉작까지 8,400여 편의 한국영화를 다루는 이번 전시는 100년이 넘는 한국영화 역사를 ‘영화 제목’의 관점으로 살핀다. 제목은 관객에게 한 편의 영화를 가장 인상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설계된 문장(혹은 단어)이지만, 이를 통시적으로 관통해 보면 제목 하나하나에 당대의 시대정신이 녹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영화 제목은 한 편의 영화를 설명하는 도구인 동시에, 영화가 태어난 시대의 정서를 품고 있는 문장이다. KMDb는 이번 전시와 연계해 두 편의 글을 공유한다. 먼저, 1970~90년대의 시대정신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저항’의 움직임 을 문주화 영화평론가가 당대 한국영화와 그들의 제목을 통해 들여다본다. *** 나는 내 앞에 있으면 좋을 사람에게 말을 거네 ─한번만 다시 생각해 봐요 더러운 걸레 같은 내 혀로 있으면 좋을 그 사람의 젖은 머리를 닦네 - 김혜순, 「비에 갇힌 불쌍한 사랑 기계들」(1997)의 일부 얼마 전 접했던 어느 다큐멘터리 영화를 떠올린다. 영화는 무연고자들의 장례를 치르는 것을 업으로 삼은 한 남자의 일상을 기록하고 있었다. 가족도, 친구도, 그 누구도 찾아오지 않는 황량한 빈소에서 남자는 우두커니 선 채로 세상을 막 등진 망자를 향한 기도문을 읊는다. 기도문을 들을 리 없는 무연고 사망자의 대답 없는 관 주변으로, 살아생전 그와 만난 적 없는 사람들만이 어색한 작별 인사를 나눈다. 이 세상에 슬프지 않은 장례식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무연고자의 장례를 기록한 그 영화에서 나는 생경한 슬픔을 감각한다. 그것은 ‘제대로 슬퍼할 수 없음에 대한 슬픔’이었다. 때로는 영정 사진마저 없는 그들의 겸손한 장례식 장면에서, 제대로 울 수 없는 나는 울 수 있을 만한 이유를 서둘러 찾아보려 했다. 우리가 그들의 삶에 너무 늦게 도착했다는 뻔뻔한 비통함이 가장 손쉽게 댈 수 있는 이유가 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들이 죽지 않았다면, 가령 그들이 가족과 친구들, 혹은 어느 공동체의 일원이었다면 우리와 만날 필요조차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미 떠난 자와 늦게 도착한 자를 구태여 한 프레임 안에 욱여넣은 그 영화는 무엇을 하려 했던 것일까. 뒤늦은 속죄를 행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면, 어긋난 두 시간 축을 가로지르는 영화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서두가 길었다. 1970년대부터 90년대까지 공개된 한국영화의 제목을 살펴보는 나의 심정은 흡사 영화 속 장례지도사와 유사한 것이었음을 밝힌다. 살아보지 못한 시대의 저항 정신을 어떻게 읽어낼 것인가. 특히 내가 태어나기도 전인 1970년부터 80년대 중반까지의 영화들은 경험해 보지 못한 시간을 헤아려 본다는 점에서 머나먼 미래를 자신 있게 예견하는 SF영화들과 진배없는 것이었다. 이미 발행된 숱한 비평과 연구 자료들을 읽으면서 나는 그 시간을 안다고 믿고 싶었지만 언제나 극복할 수 없는 간격을 느끼곤 했다. 차이가 있다면 SF영화에서 인류는 주로 불굴의 의지와 빼어난 기지로 절명의 위기를 벗어나는 모험가로 그려지는 것에 비해, 1970년부터 1999년까지의 한국영화에서 인물들은 대체로 좌절한 얼굴의 일그러진 클로즈업 속에 머물고 있었다는 것이다. 희극인의 이름인 줄로만 알았던 ‘영자’는 사실은 비극을 표상하던 이름이었다(< 영자의 전성시대 >). 무슨 일이 일어났던가. 분명한 점은 70년대를 점화시킨 것이 큰 불길이라는 것이다. 70년대에 진입하기 직전인 1969년, 미국은 아폴로 11호를 쏘아 올린다. 사람을 태운 우주선은 거대한 불을 내뿜으며 달 착륙에 성공한다. 닐 암스트롱, 아니 미국인은 인류의 영웅이 되었다. 다음 해인 1970년, 한국에선 부조리한 근무 환경을 견디지 못한 어느 노동자가 자신의 몸에 휘발유를 끼얹고 불을 붙인다. 수중에 돈이 없던 그는 제대로 된 응급 처치도 받지 못한 채 죽음에 이른다. 훗날 그의 이름은 한국의 비상식적인 노동 환경의 개선을 촉구하는 하나의 명령어가 된다. 조세희 작가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1978년 출간되고, 박광수 감독의 <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이 1995년 개봉하였다. 영화에서 ‘전태일’을 정면으로 재현하기까지 25년이 걸린 셈이다. 영화는 재현을 통해 25년이라는 사건과 재현 사이에 존재하는 시간의 간격을 극복하려 한다. 그 시절의 영화들은 픽션과 논픽션을 넘나들며 국가가 내건 거대한 캠페인 혹은 정치적 매니페스토에서 이탈된 사람들의 이름들을 스크린으로 불러들인다. 경험하지 못한 시간을 재현을 통해 되살리고 각인하는 행위, 이를테면 무연고자들의 위패를 찾아주는 것처럼 영화는 어쩔 수 없는 시간의 간극들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시간의 틈 사이로 스며드는 망각에 저항한다. ‘우리는 당신들을 잊지 않을 것이다. 당신들을 박제하며 기념하는 박물관이 아닌, 영원히 부패하지 않는 이미지로 재현해낼 것이다.’ 질 들뢰즈는 1985년 출간된 『시간-이미지』에서 앙리 베르그송의 이론을 부연 설명하면서, 페데리코 펠리니의 말을 인용한 바 있다. “우리는 기억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는 동시에 유년기이고 청소년기이며 노년기이고 성년기이다.” 전입신고의 영화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1995), <칠수와 만수>(1988)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칠수와 만수> / © 예성일, ㈜동아수출공사 (사진: 박광수필림) 흥미롭게도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에서 전태일( 홍경인 )의 평전을 집필하는 영수( 문성근 )는 수배 중인 신분 때문에 전입신고를 하지 못하는, 주소를 가지지 못한 인물로 그려진다. 그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한국 사회가 제대로 정착시키지 못한 전태일의 일대기를 기록하는 아키비스트이다. 박광수의 리얼리즘은 잊힌 이름들을 프레임 안으로 전입시키면서 성립하곤 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으로 전 세계의 이목이 한국으로 집중된 해, 감독은 < 칠수와 만수 >를 공개한다. 장칠수( 박중훈 )와 박만수( 안성기 )는 실제로는 다른 성을 가졌지만, 아버지(국가)로부터 배척당한 공통의 역사를 지닌 배다른 형제처럼 그려진다. 당시 초등학교 교과서에서는 철수와 영희라는 두 허구적 인물이 사이좋게 지내며 새 나라의 어린이로 성장하는 동안, 영화의 허구적 인물 칠수와 만수는 같은 해 서울올림픽이 마련한 수많은 시상대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못한 채, 건물의 옥상 위로 내몰린다. 영화는 칠수와 만수의 시점 숏으로 그들을 우러러보는 경찰과 언론인, 구경꾼들을 비춘다. 손에 손을 잡고 올림픽 시상대에 올랐던 한국의 메달리스트들을 응원했던 그들이 칠수와 만수를 우러르며 기원했던 것은 그들의 안전일까 추락일까. <칠수와 만수>는 희뿌연 서울에서 길을 잃은 채 추락한 인물들을 잊지 않겠다는 저항적 선언이자, 한국 역사에 메달리스트들의 이름과 함께 장칠수와 박만수의 이름을 제목으로 기입하는 전입신고의 영화이다. 두 개의 날: <바람불어 좋은 날>(1980), <기쁜 우리 젊은 날>(1987) <바람불어 좋은 날>, <기쁜 우리 젊은 날> / © ㈜동아수출공사, ㈜태흥영화 (사진: 영화진흥위원회) 정성일 은 『1980년대 한국영화: ‘서울의 봄’부터 코리안 뉴웨이브까지』(2023)에서, 이장호 에 대해 한쪽으로부터는 외면을 당하고 다른 한쪽에게는 환대를 받은, 두 세대의 중개인으로 묘사한다. 그러나 이장호가 중개한 것은, 비단 그의 등장을 전후로 활동했던 한국영화의 두 시대뿐만이 아니다. 그는 < 바람불어 좋은 날 >에서 결합되기 어려운 남녀들을 잠시나마 중개한다. 주연을 맡은 안성기의 영향 때문인지, 유사한 제목의 구조 때문인지 내게 배창호 의 < 기쁜 우리 젊은 날 >의 영민과 <바람불어 좋은 날>의 덕배가 유독 한 사람처럼 느껴진다. 마음에 드는 여성에게 쭈뼛대며 말하던 영민과 덕배는 두 영화의 제목처럼 좋고도 젊었던 날을 보냈을까. 두 영화는 인물들이 누렸어야 마땅한 젊고도 좋았던 나날들을 제목으로 제시하면서 비극과 희극 사이의 간격을 좁힌다. 부패한 유산들: <지리멸렬>(1994), <꽃잎>(1996), <나쁜 영화>(1997) <지리멸렬>, <꽃잎> / © (재)한국영화아카데미발전기금, ㈜미라신엔터테인먼트 (사진: 영화진흥위원회) 90년대 초반, 문민정부의 출범으로 한국은 변혁의 물결 위에 서게 된다. 1993년 대전에선 세계박람회가 열렸다. 모두가 한국의 국가적 위상을 드높이는 일에 동참했다. 그 일환으로 개최됐던 ‘엑스포93 국제영화제’에선 장선우 의 < 화엄경 >(1993)이 상영됐다. 다음 해, 봉준호 는 한국영화아카데미 졸업작으로 < 지리멸렬 >을 완성한다. 기성세대의 무능을 드러내고 부패한 지식인들의 세계를 해부하는 단편이었다. 같은 해, 12월 31일 주간으로 송출되던 <대한뉴스>가 제작을 멈춘다. 국가는 그렇게 영화 창작 주체의 자리를 반환한다. 2년 후인 1996년 장선우는 < 꽃잎 >으로 1980년 5월의 광주를 소생시킨다. 으레 ‘꽃’은 피는 것으로, ‘꽃잎’은 떨어지는 형상으로 표현된다. 그러나 꽃은 짧은 봄 동안 만개하고, 떨어진다. <꽃잎>은 지면에 닿아 낙엽이 되기 전, 낙하하는 꽃잎과 같았던 광주의 역사를 어슴푸레 내비춘다. 감독은 엑스포와 같은 국가가 내세운 꿈에 동참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그 장막을 걷어내고 당시 세대가 물려받은 부패한 유산들을 여과 없이 쏟아내는 임무를 부여받은 듯했다. 이어서 연출한 < 나쁜 영화 >는 이른바 ‘한강의 기적’을 배반하는 비뚤어진 저항의 표현이었다. 그해 일본에서는 구로사와 기요시의 < 큐어 >가 개봉하였다. 도쿄에는 근원을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서울의 길거리에는 회생이 어려워 보이는 좌절감이 배회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세기말을 이야기했고, 1997년 12월 한국은 IMF 외환위기를 맞이한다. <나쁜 영화> / © ㈜미라신엔터테인먼트 (사진: 영화진흥위원회) 되살아나는 목소리들: <낮은 목소리 –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1995), <낮은 목소리 2>(1997) 망각에 저항하며 매장된 시간들을 현재로 소환한 영화의 목소리들도 있었다. 변영주 가 연출한 두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우리는 일제강점기 시절 젊음을 짓밟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늙어버린 초상을 뒤늦게 발견한다. < 낮은 목소리 2 >에서 관객은 강덕경의 장례 장면을 지켜보며, 그녀의 조문객으로 자리한다. 그에게 가족이란 나눔의 집으로 모여든 또 다른 위안부 피해자들이 전부였다. 영화가 우리와 작별시키는 것은 그의 육체뿐만이 아니다. 어쩌면 우리는 그가 강탈당한, 젊고도 좋았어야 했던 지난날들과 영원히 이별한 것이다. 여전히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채로. 그러나 영화는 멈추지 않고 무지에 저항한다. 새로운 세기의 첫 해, 변영주는 < 낮은 목소리 3 - 숨결 >(1999)을 발표하며 시리즈를 마무리한다. <낮은 목소리 –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 <낮은 목소리 2> / © 변영주 (사진: 영화진흥위원회) 90년대의 마지막인 1999년, 영화 속 인물들은 주유소를 때려 부수고(< 주유소 습격사건 >), 내일이 없는 것처럼 불안한 미래에 저항하며 오직 실패하기만 했다(< 세기말 >). 마찬가지로 1999년 미국에선 폴 토마스 앤더슨의 < 매그놀리아 >가 세상 밖으로 나왔다. 영화의 오프닝, 기묘한 내레이션이 흘러나온다. “우리는 과거를 잊었지만, 과거는 우리를 잊지 않았다.” 비록 우리가 과거를 잊더라도, 영화는 과거를 잊지 않고 계속해서 저항한다. 잃어버린 위패들을 끊임없이 생산하면서. <세기말> / © ㈜태흥영화 (사진: 이한나) 문주화(영화평론가,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프로그래머) l 영화평론가. 2024년 《씨네21》 영화평론상을 통해 등단했다. 영화 이론과 미학으로 박사과정을 수료했고, 비평을 비롯한 연구, 스크리닝 기획 등 동시대 예술의 여러 영역에서 실천적 비평을 수행하고 있다. 2025년 서울독립영화제 개막작 < 무관한 당신들에게 >를 기획했으며, 현재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의 프로그래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