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년 1학기
- 감독
- 이상엽
- 제작년도
- 2003
- 출연
- 조연호, 이승희, 최수한, 김윤식, 김민지, 좌성한, 김혜옥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내가 죽던 날 >(박지완)은 메타영화, 즉 ‘영화에 대한 영화’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여성서사의 구축과 동일시의 과정을 탐색하는 ‘여성영화’에 대한 영화이다. 물론 이 영화는 자살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시체를 찾을 수 없는 세진(노정의)의 진실을 찾고자 탐문수사를 벌이는 경찰 현수(김혜수)를 중심으로 한 추리물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일반적인 메타영화가 갖는 현학적 모호함이나 전위적인 표현 양식과는 거리가 있다. 그러나 <내가 죽던 날>은 분명 탐정느와르 장르영화이면서, 또한 여성의 ‘서사’를 발견하려고 하는 어느 한 여성의 여정에 대한 영화이다. 이 영화가 왜 ‘(여성)영화에 대한 영화’인지를 본격적으로 해명하기 전에, 잠시 에둘러 여성영화라는 용어부터 짚고 넘어가 보자. 최근 한국에서 전문 비평가뿐만 아니라 관객과 마케팅도 자연스레 사용할 만큼 대중화되고 있는 이 용어는, 씨네-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도 정의하기 어렵기로 악명이 자자하다. 그 이유가 학문적 혹은 비평적 난해함 때문은 아니다. 그보다는 누가, 언제 어디에서, 어느 목적을 위해 사용하느냐에 따라 다층적 차원에서 경합하며 내용과 범주가 역동적으로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 용어는 마케팅을 위한 알트 장르(멜로드라마나 로맨틱 코미디 같은 여성 관객을 주요 타겟으로 한 장르)처럼 이용되거나, 여성 창작자나 여성 주도 서사에의 주목을 이끌어내기 위한 산업·정책적 용어로 지칭되고, 페미니스트 미학이나 담론을 강조하기 위한 폭 넓은 개념이 되기도 하며, 큐레이팅을 위한 실천적 범주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영화학자 테레사 드 로레티스가 「여성영화를 재사유하기: 미학 및 페미니즘 이론」(1985)에서 논의했던 개념에 기대고자 한다. 그것은 바로 (가부장제 이성애중심적인) 기존 주류 서사에 대항하면서도 서사 자체를 포기하지 않고 페미니스트 환상성을 길어내는 말 걸기(address)의 미학이다. 말 걸기의 미학은 송신자 및 수신자의 위치성과 신체성을 드러낸다. 보편자나 표준적 정체성을 가정하지 않으면서, 동일시의 욕망과 차이 속에서 타자를 인식하는 현실을 동시에 각인한다. 여성 정체성의 재현 역시 마찬가지로 접근한다. 여성의 동일성만을 강조하면 남성과의 대립적 이분법에 고착되고 의도치 않게 남성이라는 기준을 계속 상정하게 되는 효과를 낳는다. 그래서 드 로레티스는 여성영화(women’s cinema)는 추상적인 대문자 여성(Women)이 아니라 복수적인 여성들 간의 그리고 한 여성 내의 교차적 정체성을 표현하며 다양한 관객들에게 말을 건넨다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 드 로레티스는 이러한 여성의 서사는 기존 재현에서 탈각되고 배제되어온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이미 스크린 위에 보이는 것(space-on)뿐 아니라 프레임 바깥에 비가시화되어 있지만 분명 존재하는 그리고 (카메라의 운동을 통해) 곧 도래할 이미지와 서사의 공간인 ‘스페이스-오프(space-off)’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한다. <내가 죽던 날>에서 현수는 세진의 죽음을 쉽게 확정짓지 않는다. 현수는 세진이 남긴 흔적에서 죽음이 아니라 삶에 대한 의지를 읽어내고 말을 건넨다. 당신은 정말로 죽었는가, 이렇게 살려고 애썼으면서도 왜 죽었는가? 현수는 세진에게서 행동의 이유, 즉 서사를 발견하려 한다. 더 나아가 현수는 세진이 살아있기를 바란다. 이는 자기 경험과 욕망의 투사다. 현수와 세진의 관계는 형사와 실종자인 동시에, 여성인물과 여성관객 간의 동일시 과정을 수행하는 것처럼 보인다. 차이와 간극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희박한 서사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삶과 마음을 읽어내려는 의지 속에서 동일시가 발생한다. 심지어 현수는 섬에 도착해 자신을 낯설어 하는 섬 여자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거꾸로 이 과정을 이용한다. 남편의 불륜이라는 자신의 취약점을 드러내며 여러 차이에도 불구하고 섬 여자들의 공감대를 얻어 세진을 이해할 정보를 수집한다. 이러한 과정은 (여성)영화적으로 말하면 스페이스-오프에 눈길을 주는 것이고, 문학적으로 말하면 ‘결을 거슬러 읽는(reading against the grain)’ 방식이다. 현수는 수사를 진행할수록 누구 하나 세진의 마음을 돌보고 이해하려 하는 이가 없었음을 알게 되면서 더욱 세진에게 빠져든다. 현수/관객은 세진의 서사를 발견할 마지막 보루가 된다. 현수는 출동 중 접촉사고를 내고 팔에 자해를 해 징계위에 회부된 상태다. 게다가 몰래 바람을 피운 남편은 이혼재판을 유리하게 가져가기 위해 현수 회사에 악성 소문을 퍼트렸다. 완벽해 보였던 현수의 삶은 사생활과 경력 모두에서 그야말로 나락으로 떨어진다. 한편 부유한 집안에서 자라며 부족한 것 없어 보였던 세진은 아빠가 죽고 그의 범죄사실이 밝혀지면서 자기가 살던 삶이 완전히 거짓에 근거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떻게든 삶을 회복하려 하지만 한번 추락한 삶은 원상복귀 되지 않고 악화될 뿐이다. 흥미롭게도 현수와 세진은 모두 남편의 불륜과 아빠의 범죄 사실 그 자체보다 자신이 그들의 부도덕함을 ‘몰랐다’는 사실을 가장 괴로워하고 자책한다. 가장 친밀한 이들에게 배신을 당한 피해자인 그녀들에게 주변 사람들은 ‘어떻게 모를 수 있었냐’고 힐난한다. 현수는 단순히 사생활에 대한 비난을 넘어서 경찰로서의 직업적 수행능력까지 의심 받는다. 새엄마가 있어도 집안 살림을 책임져왔던, 똑 부러지고 어른스러운 세진은 갑자기 세상물정 모르는 순진한 아이가 된다. 그녀들은 자신이 보지 못한 사각지대에서 타인이 그린 ‘그림’에 갇혀 일순간 자신의 삶의 주도권을 잃게 된 것이다. 자신이 속해있던 그림이 허상이라는 사실은 그 자신의 정체성마저 빼앗기는 일이 된다. 그래서 세진은 유서에서 자신의 가장 큰 죄는 ‘바보처럼 아무 것도 알지 못한 것’이라며 아빠와 오빠의 죄까지 대속하려 한다. 그것만이 다시 주도권을 되찾을 유일한 방법인 것처럼 말이다. ‘무지의 죄’는 도덕이 아니라 파워의 문제이다. 현수도 유사한 고통을 겪고 있기에, 세진이 애써 살아보려는 흔적을 발견하고 성긴 증거들을 연결해 서사를 구해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 흔적들 사이의 구멍을 채우는 것은 현수의 삶과 경험이다. 누구의 시점에서 누구를 위해 그리고 누구에게 가닿기 위해 그린 그림인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현수도 깨닫는다. ‘개연성’과 그럴듯한 그림에 대해 우리는 끈질기게 질문해야 한다. 그것은 다분히 편향된 것일 수 있다. 풍경조차 누군가의 시선에 의해 포착된 것이다. 현수는 마침내 경찰조직이 보기에 좋은 ‘그림’에 다시 자신을 넣는 것을 거부하고, 세진과 순천댁(이정은)이 그린 진실의 그림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현수 덕택에 세진의 얼굴은 더 이상 미스터리로 남지 않는다. 남성중심적 서사, 특히 느아르나 스릴러 장르에서 여자의 얼굴과 표정은 미스터리이기 때문에 매혹적이다. 그 미스터리는 모호한 욕망의 대상으로서 스핑크스의 수수께끼처럼 남성영웅이 풀어야하는 문젯거리이자 남성중심의 서사를 추동시키는 동기가 된다. 남성 관점에서 만든 서사와 그림을 위해, 남성들이 해결할 때까지 여성들은 계속 미스터리로 남아있어야 한다. 그래서 기존의 남성중심적 그림에서 여성의 서사는 희박하거나 행동의 근거가 잘 주어지지 않는다. 잘 납득되지 않는 그녀의 행동은 손쉽게 ‘민폐’ 캐릭터로 낙인찍힌다. 경찰이 설치한 CCTV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분노에 찬 얼굴을 하고 카메라를 움직여 사각지대를 만드는 세진의 행동은 기존의 ‘그림’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의지이다. 현수 역시 이러한 세진의 얼굴에 빠져든다. 그러나 그 얼굴은 해결해야할 문젯거리나 매혹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이해하고 공감하며 서사를 불어넣어줄 동일시의 대상이다. 순천댁과 세진은 CCTV의 사각지대, 즉 스페이스-오프에서 교류하고 그들만의 서사를 쌓아간다. 순천댁이 세진의 죽음을 위장하고 그녀를 빼돌렸다는 진실은, 동시대 한국 장르영화에서 점점 더 핵심적인 장치로 사용되는 충격적인 반전효과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순천댁의 계략과 세진의 생사 그 자체가 장르적으로만 소비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죽음 이후 원한을 풀어주는 멜로드라마를 지향하지도 않는다. 박지완 감독이 한 인터뷰에서 "너무 커서든, 너무 작아서든 누구나 입 밖으로 꺼내기 힘든 자신만의 고통을 가지고 살아가는데 누군가 보이는 걸 봤다고 얘기해 주면 서로에게 위로가 되는 것“이라고 밝혔듯, 중요한 것은 행동에 대한 이해와 공감 그리고 세진의 ‘내일’이다. 영국 감독 샐리 포터의 영화 <스릴러>(1979)는 푸치니의 오페라 <라 보엠>을 재해석하며 ‘낭만적인 희생자’로서의 재봉사 미미가 정말로 병으로 죽은 것인지, 아니면 남성 예술가의 시적 소재와 동기가 되기 위해 살해당한 것인지를 묻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미미는 ‘나는 왜 죽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남성 예술사 내에서의 여성살해를 비판하고 <라 보엠>에서 악녀로 그려진 또 다른 여성 무제트와 남성이 제외된 새로운 관계를 맺는다. 둘은 결말에서 남성이 그린 그림에서 문자 그대로 창문을 통해 탈출하며 여성의 서사를 발견하고 써내려갈 가능성을 맞는다. 마찬가지로 현수도 세진의 죽음의 이유를 질문하며, 순천댁과 세진이 그린 새로운 그림을 만나게 된다. 현수는 순천댁이 세진을 빼돌렸을 것이라 거의 확신한 후 기존의 자신의 삶으로 되돌아가지 않고 ‘굳이’ 세진의 안녕을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이미 현수와 관객 모두 진실을 알아냈기 때문에 이러한 꽉 닫힌 엔딩은 재확인에 불과한 군더더기처럼 보일 수 있다. 왜 진상이 거의 드러나 장르적 완결성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안녕이 그렇게 중요한 걸까? 통쾌한 반전과 자기충족적인 문제해결을 넘어서 이 영화가 정말로 궁금해 하는 것은 세진의 서사가 계속 이어지고 있는지, 그녀가 정말로 안녕한지, 그녀가 원하던 ‘해가 지는 그림’ 속에 자신을 놓고 있는지 이기 때문이다. 여성영화가 관심 있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이것은 진부한 군더더기가 아니라 오히려 페미니스트 환상성을 길어내는 장면, 기존 서사에 대항하면서 서사와 함께 가는 양상이다. 그래서 클리셰 같은 이 해지는 이국적 풍경은 고착되고 고정된 그림이 아닌 앞으로 더 다양하게 그려질 ‘여성서사’의 시작이다. 그런 이유로 카메라는 그 그림 속에 현수와 세진을 남겨두고 멀어진다. 그것은 여성들의 해방적 공간의 그림을 끝까지 그리고 시각해보고자 하는 마음, 그녀들의 서사를 발견하고 그 서사 속에 ‘너’가 있고 ‘너’의 내일이 있기를 바라는 순천댁의 마음이기도 하다. 순천댁이 쓴 것처럼 말이다. “니가 남았다.” (관련글) 1. 소진과 이상한 기운 - <아워 바디>(2018), 2021.04.23. 2. 의심의 씨앗과 취약한 영웅들 - <도희야>(2013), 2021.05.21. 3. 여름밤 초록색 전구불빛이 가만히 당신을 응시할 때 - <남매의 여름밤>(2019), 2021.06.18. 4. 당신의 안녕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 - <내가 죽던 날>(2019), 2021.07.16. 5. 피해와 가해의 알레고리 - <소리도 없이>(2019), 2021.08.13. 6. 돌봄의 정동 - <우리집>(2019), 2021.09.10. 7. 유년과 재난 - <벌새>(2018), 2021.10.22. 8. 목격의 시간 - <휴가>(2020), 2021.11.19. 9. 한평생 이야깃거리가 된 삶을 찢고 나온 웃음소리 -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2019), 2021.12.17. 10. 이름을 불러 닿는 시간 - <윤희에게>(2019), 2022.01.14. 11. '혼자'의 정동 - <혼자 사는 사람들>(2021), 2022.03.15. 12. 억압의 체제와 닫혀있는 여자들의 세계 - <궁녀>(2007), 2022.04.13. 13. 소원성취, 환상, 실재 사이의 어딘가에서 - <팬지와 담쟁이>(2000), 2022.05.18. 14. 몫과 값 그리고 경계물 - <82년생 김지영>(2019), 2022.06.24. 15. 실종의 감각과 징크스의 미학 - <오마주>(2022), 2022.07.21. 16. 레즈비언 편집술, 혹은 시계가 된 여자 - <연애소설>(2002), 2022.08.19. 17. 탐정-엄마의 각성하는 모성 - <비밀은 없다>(2016), 2022.09.16. 18. 시간과 정념의 지층을 찾아서 - <누에치던 방>(2018), 2022.11.04. 19. More or Less - <모어>(2021), 2022.12.09. 20. 이름을 지우고 살아남기 - <안나-감독판>(2022), 2023.01.09. 21. 우리에겐 따뜻한 국물과 유머가 필요하다 - <수프와 이데올로기>(2021), 2023.02.07. 22. 아직 끝나지 않은 - <미망인>(1955), 2023.03.10.
시작부터 알 수가 없다. 개들의 사진을 비추며 주인공 니나가와 스미무라씨는 ‘개는 주인을 고를 수 없다’는 알 수 없는 말로 시작한다. 영화는 일본 어촌의 작은 마을 쿠로시오쵸의 장을 뽑는 선거를 따라간다. 김지영 감독의 프로듀서 경력이 있는 니나가와 스미무라씨는 살고 있던 교토에서 이사하여 선거에 출마한다. 지역 유지 출신의 두 후보에 맞서 제3의 후보를 자처하며, 자칫 뻔할 수 있는 투표 전 변수로 등장하며 선거 결과를 오리무중에 빠뜨린다. 쇠락한 지역 경제를 위해 새로운 청사를 짓자는 상대 후보의 공약을, 스미무라씨는 건설업자의 이권 챙기기로 단언하며, 자신은 의원 정수를 200명으로 10배 늘려서 젊은이들을 고향에 되돌아오게 하겠다는 뜬금없는 공약을 내세운다. 선거전을 취재하는 기자에게 스미무라씨는 ‘똥고집에, 제멋대로에, 여자 좋아하고, 일 처리 방법이 엉망이긴 해도 어떻게든 결과는 낸다는 특징이 있는 트러블 메이커’로 보인다. 어찌 됐건 본격 선거로 접어들어, 후보 등록부터 유세까지 스미무라씨는 능숙하게(?) 혼자 해낸다. 그는 여러 지역의 선거에 출마한 경험이 있어, 복잡한 선거운동 절차와 방법에도 꿋꿋이 선거운동을 해 나간다. ‘선거는 즐거워야 한다’는 지론대로 노인들과 (투표권이 없어 보이는)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유세를 한다. 스미무라씨는 ‘고령자투성이의 멸망한 지역`인 쿠로시오쵸에 왜 출마했을까? 왜 ‘선거는 남자의 로망’이라고 하는 걸까? 그는 ‘미래’를 만들고 싶어했다. 예전엔 젊은이들이 타지로 돈 벌러 나갔지만 경제불황인 지금은 타지로 나가봤자 일자리가 없다. 젊은이들이 타지에서 미래 따위는 없다고 생각했을 때, 고향인 이곳을 떠올리게 하고 싶다고 했다. 쇠락한 마을엔 신축건물이 아니라 젊은이가, 젊은이의 힘이 필요한 것이다. 바로 이 젊은이들에게 투자해 되돌아오게 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정치가가 되고 싶었던 것이다. 스미무라씨의 ‘미래’ 만들기는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영화 말미, 선거 때 보낸 엽서가 무더기로 반송되어 온 장면은 의미심장하다. 노인만 남은 마을에 엽서를 받을 사람들이 이미 죽고 이 세상에 없었기 때문이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인가? 아니면 보스가 이끄는 대로 투표하는 ‘개의 선거’에 불과한가? 스미무라씨는 민주주의는 최악의 시스템이라고 생각하는 쪽이다. 스미무라씨가 노인을 좋아하지 않은 이유도 알게 된다. ‘노인은 꿈을 꾸지 않기 때문이다.’ 감독은 스미무라씨의 좌충우돌 선거 출마 과정을 연출, 촬영, 편집, 사운드, 자막, 번역하며 한편의 블랙코미디로 완성해 냈다. 이 영화는 한국의 DMZ 다큐멘터리 영화제, 프랑스 asian connection film festival in Lyon, 이탈리아 ASIATICAFILMMEDIALE, 콜롬비아 Muestra Internacional Documental 등에서 소개되었다.
서울독립영화제에서 몇 개의 영화를 추천받고 보게 되었다. 그 중 단연 눈에 띄었던 < 투 올드 힙합 키드 >. 영화를 보는 내내 나오는 힙합 음악도 즐거웠지만, 래퍼를 꿈꾸는 이들의 이야기는 영화가 끝나고 난 후에도 한동안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이 영화가 전해준 뜨거운 에너지 때문이었을까? 첫 상영 후 인사하느라 정신없는 감독에게 불쑥 배급 제안까지 하게 되었다. 힙합에 빠진 중학생이었던 감독은, 10년후 대학 복학생이 되어 마이크 대신 카메라를 든다. 10년전 함께 했던 힙합 키드들은 지금 무얼 하며 살고 있을까? 언더씬의 힙합 가수가 되기도 하고, 대학원생으로, 회계사로, 공무원으로 서로 다른 길을 가고 있는 다양한 인물들의 모습을 감독은 카메라에 담는다. `힙합`이라는 단어가 친근하게 다가온다면, 이 영화는 특별한 재미를 안겨준다. 힙합 언더씬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주인공들의 홍대 클럽 공연부터 길거리 프리스타일 랩 배틀 장면이 이어진다. 하나의 곡을 만들어내기 위해, 가사를 만들고 녹음을 하는 모든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회계사가 된 이는 잠자는 시간을 쪼개 앨범을 프로듀싱하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이는 한국 최초 ‘공무원 래퍼`를 꿈꾸며, 대학원생이 된 이는 함께 힙합의 꿈을 꾸었던 친구들이 모두 행복하기를 바란다. 20대가 된 그들은 꿈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한다. ‘난 음악을 사랑해. 하지만 돈도 사랑해’라고 외치는 주인공이나, ‘꿈을 쫓는다고 해서, 불안한 삶을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라는 감독의 말은 이 시대 청춘들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다. 청춘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나 많지만, `88만원세대`라는 말이 보여주듯, 요즘은 취업을 위한 스펙 쌓기 등 회의적인 모습으로 많이 다뤄지는 것 같다. 그만큼 현실이 어렵기 때문일까. 그렇지만 `청춘` 아니던가, 청춘은 열정과 패기와 항상 함께 하기 마련이다. 이 영화에는 `청춘`의 에너지가 꾹꾹 눌러져 담겨있다. < 투 올드 힙합 키드 >는 제 37회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첫 상영되어 우수 작품상과 관객상을 수상하며 관객들에게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후, 인디다큐페스티발에서 관객상을 연이어 수상하고, 제천국제음악영화제, EBS 국제다큐영화제 등 여러 영화제에서 초청 상영되었다. 그리고 9월 13일, 극장 개봉으로 관객들을 만나길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