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에 취해 헤퍼진 참한 여자
- 감독
- 다자이 친포
- 제작년도
- 2025
- 출연
- 아야세 텐
오래전에 시청하고 뭐라고 표현하기 어려운 감동을 경험케 했던 애니메이션이 한 편 있다. 장편이라고 할 수도 없는 47분의 짧은 러닝타임으로 만들어진 일본 애니메이션이다. 이 작품은 사이클 선수인 주인공 페페가 스페인에서 개최되는 세계 3대 사이클 경주인 ‘부에타 아 에스파냐 (Vuelta a Espana)’에 참가하여 결승선을 향하는 이야기를 안달루시아라는 지방을 중심으로 보여준다. 그냥 보기에는 사이클 경주에 관심이 있는 감독이 자신의 관심사를 애니메이션으로 이야기한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도 감독은 사이클을 즐기며, 각종 대회에 나가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 나스 안달루시아의 여름 >의 매력은 눈을 통해 전달된 애니메이션의 시각정보와 스토리가 단순한 오락만을 보여준 것이 아니고, 가슴을 뜨겁게 데우는 감동을 주었다는 것에 있다. 기본 줄거리는 이렇다. 주인공 페페는 사이클 경주 선수지만 팀의 에이스는 아니다. 에이스의 우승을 위해 다른 팀 선수들의 컨디션을 흔드는 작전을 성공적으로 풀어나가기 위한 역할을 맡고 있다. 하지만 이 또한 오래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과거 에이스의 우승을 방해했다고 볼 수 있는 행동으로 스폰서의 눈에서 벗어나 경기가 끝나면 팀에서 퇴출당할 위기인 상황이다. 또한 이날은 자신이 사랑했던 한 여인이 형과 결혼을 하는 날이기도 하다. 최악의 날 주인공 페페는 두발로 힘차게 페달을 밟고 결승선을 향할 뿐이다. 사이클 경주로 포장한 이 작품은 거칠고 척박한 환경의 안달루시아 지방을 통해 한때 좌절을 겪었던 주인공 페페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한 개인의 모습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 성장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꿈을 포기하거나, 사랑하는 여자를 떠나보낸 경험을 갖고 있는 우리의 청춘을 투영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청춘의 과정을 경험하고도 묵묵히 자신의 꿈을 향해 앞으로 달려나가야 하는 ‘나’를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응원하는 가족과 마을 사람들의 사랑을 ‘나스’ 즉, 절인 ‘가지(なす)’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감독은 작품의 곳곳에서 자신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을 지속적으로 보여준다. 최신형 고글을 통해서 안달루시아라는 지역이 젊은이들에게 얼마나 척박한 지역인지 계속 말을 건다. 그중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장면은 주인공 페페가 경기가 끝난 후 몸을 풀기 위해 자신이 성장했던 안달루시아 도로를 달릴 때 그의 가족과 지인들이 그의 뒤를 따르는 장면이다. 몇 마디 말을 나누고 모두들 저 멀리 앞으로 향해 달려가는 페페를 바라보고 있을 때, 나이 든 남자가 반주 없이 홀로 안달루시아를 노래한다. 이는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청춘을 위로하는 노래로 들린다. “뜨거워진 바람도, 석양을 맞아 멈춘다. 그대를 기다린다. 아무것도 없는 고향. 안달루시아, 안달루시아, 안달루시아, 척박한 토지도, 초록빛은 움튼다. 그대를 기다린다. 축제는 가깝다.” 부르는 노래와 함께 주인공 페페를 사랑했던 사람들은 따스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본다. 각자 주인공 페페의 성장을 감사히 여기며 대견스럽게 바라본다. 그가 지금의 자리까지 오기에 얼마나 많은 고통과 인내를 통해 성장했는지 알고 있는 이들은 따스한 시선을 통해 주인공 페페를 사랑하는 가족임을 아무런 말없이도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을 연출한 감독의 연출력, 2D와 컴퓨터 3D를 적절하게 사용하면서 작품의 퀄리티를 극대화한 시각적인 영상, 그리고 너무나 적절하게 표현된 음악이 < 나스 안달루시아의 여름 >을 더욱 빛나게 하였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점은 애니메이션이 기존 실사 영상과 어떻게 다르게 연출하고 제작되어야 하는지 알 수 있게 해 준 점이 개인적으로 무척 좋았다.
다양한 플랫폼이 등장하고 콘텐츠를 소비하는 공간과 시간의 모형이 급변하고 있다. 기존 유선 플랫폼 중심의 한정적인 콘텐츠소비에서, 이제는 소비자중심의 맞춤형 콘텐츠를 시간과 공간의 구분과 한계 없이 언제나 어느 곳에서든지 소비할 수 있도록 다양한 모바일콘텐츠가 무차별적으로 공급되고 있다. 그러다보니, 기존 애니메이션의 배급모형 또한 채널의 특성화를 넘어선 새로운 틈새시장의 가능성을 찾게 되었고, 새로운 소비자를 만들어내야 하는 한계에 이르게 되었다. 즉, 2012년 스마트플랫폼의 일반화와 소비자중심의 소비모형이 일정한 접점을 형성하기 시작하면서, 애니메이션의 기술적 진화와 장르적 다변화는 융합콘텐츠로서의 애니메이션 혁신을 요구하게 된다. 기존 극장용 장편애니메이션(평균 80분-100분의 러닝타임), 지상파중심의 TV시리즈 애니메이션(30분물기준 13부작이상), DVD용으로 제작되는 특화된 애니메이션(특성화된 장르 혹은 마니아용 전문콘텐츠) 등의 한정적인 배급창구로 고착화되어 있던 애니메이션시장은 2000년대를 넘어서면서 일본애니메이션의 생산과 소비가 주춤하고, 미국 헐리우드중심의 3D애니메이션이 4D상영시스템과 입체애니메이션 등으로 기술진화를 선도하면서 기획 및 제작의 독과점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결국, 유아와 어린이, 10대 청소년들을 주소비대상으로 기획제작되었던 애니메이션의 한계시장이 명확해지면서, 헐리우드 중심의 가족용 콘텐츠, 즉 기존 실사영화와 차별화되지 않는 동일한 시장지향성 콘텐츠가 블록버스터로 제작되는 상황을 제외하면, TV시리즈의 제작물량 또한 급감하는 한계상황이 전 세계적으로 일반화 되고 있다. 또한, 애니메이션 상품의 독특한 소비특징인 재활용율(평균 7년 주기의 재구매 및 상품수명주기 재가동)이 높아지면서 기존 제작되었던 상품의 데이터물량이 이미 소비시장의 임계치를 초과하게 되었고, 주소비계층의 경제적 규모가 정체되면서 TV시리즈를 중심으로 한 소비시장이 정체 혹은 축소되기 시작한 것이다. 국내 애니메이션시장 또한 기획 및 제작 물량이 급감하고, 제작되는 애니메이션 또한 대부분이 영유아대상의 캐릭터 애니메이션으로 편향되면서, 가족용 콘텐츠로서의 확대가능성 및 비즈니스 효율성이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전 세대가 함께 소비할 수 있는 캐릭터의 지속적인 등장 및 시장진입 자체가 어려워지면서 국내 캐릭터비즈니스 또한 나름대로의 혁신필요성을 모색하게 되었다. 애니메이션의 기획제작이 이제 ‘세대’와 ‘장르’중심에서 ‘스마트플랫폼’과 ‘소비모형의 탐색’으로 급변하는 트랜드에서 새로운 애니메이션의 기획제작모형이 제안되고 실험되어야 할 시점이다. 즉 영유아 애니메이션의 배급일반화로부터 시작된 5분-10분물 애니메이션 시장이 더욱 단편화되고, 극장과 TV중심의 배급창구에서 스마트폰, 스마트패드 등의 모바일 플랫폼중심으로 소비모형이 바뀌는 시점에서 애니메이션의 스토리텔링과 캐릭터디자인의 인지도 생성전략 역시, 다른 차원의 정교한 기획을 필요로 하게 된 것이다. 애니메이션 상품은 이제 기존 ‘브랜드위주의 스토리텔링’에서 ‘캐릭터위주의 신화생성(myth making)전략’으로 전환되었으며, 독특한 소비지향점이 형성되도록 캐릭터의 인지도와 신뢰도 생성을 신화적 내러티브와 연계되는 지점에서 찾게 되었다. 결국, 애니메이션은 캐릭터를 위한 스토리보드 역할과 신화생성창구 기능으로 특화되고 있으며, 스마트기기를 중심으로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융합콘텐츠로서의 소비연계모형을 추구하게 되었다. 구체적인 사례로는 콘텐츠테라피의 다양한 치유모델, 혹은 힐링모델로서의 애니메이션이 다양하게 개발되고 있고, 카카오톡과 같은 SNS 맞춤형 1분이내의 초단편 애니메이션이 기념일, 혹은 특정주제의 메일링과 더불어 첨부되고 전달되는 콘텐츠로서 기능하게 된다. 결국, 애니메이션은 최종적인 소비모델을 어떤 방식으로 찾고, 실질적이고 주기적인 안정적 재원(cashcow)의 확보가 필요한 시점인 것이다. 그렇기 위해서는 캐릭터의 인지도와 신뢰도를 실시간으로 형성시키고 확대하기 위한 배급모형의 개발이 더욱 필요한 것이다.
< 보물섬 >은 지금까지도 데자키 오사무가 연출한 역대 최고 걸작으로 평가되고 있는 TV 애니메이션으로, 당시 후지 TV의 경쟁 프로(똑같이 매주 일요일 저녁 시간대에 방영)였던 `니폰세계명작극장` 시리즈가 원작을 충실히 옮겨냈던 경우라면 데자키 오사무의 <보물섬>은 감독에 의해 원작이 얼마나 새롭게 해석될 수 있는지를 제시했던 작품이었다. 일찍이 데자키 오사무가 생명력을 부여했던 캐릭터들은 만화(혹은 소설)가 만화영화화 되면서 보여지는 단순히 움직인다는 개념의 애니메이션이 아닌, 그 이상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기 위한 스스로의 의지까지 함께 불어 넣어왔다. < 에이스를 노려라!> 의 오카 히로미, < 내일의 죠 >의 야부키 죠, < 집 없는 아이 >의 비탈리스 할아버지, 그리고 < 베르사이유의 장미 >의 오스칼. 이들은 모두 자신들의 운명을 거슬러 스스로의 삶의 이유를 찾으려 했던 캐릭터들로 원작에서 보여진 이미지들이 몇배는 증폭되어 애니메이션 속에서 더욱 강한 잔상을 남겨 놓게 된다. 데자키 오사무의 다음 타겟은 존 실버라는 남자였다. 스티븐슨 원작의 < 보물섬 >에는 단지 해적의 신분을 숨기고 배후에서 음모를 꾸미는 전형적이고 악당스런 이미지의 실버가 등장한다. 하지만 데자키 오사무는 이 캐릭터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본다. 그리고는 악역이지만 카리스마가 살아있고 해적이지만 어딘가 모르게 인간적인 캐릭터로 실버를 재창조해 낸다. 그 결과 일본 애니메이션사에 어쩌면 가장 특별한 유형의 캐릭터가 창조되게 되는데, 이전까지 애니메이션들의 주인공은 하나 같이 어린이였다. 심지어 단순히 상상해 봐도 아무나 조작할 수 없어 보이는 그 복잡한 거대 로봇의 조종사들 조차 대부분 어린이이거나 청소년 연령 이상을 넘지 못했다. 그렇다면 어린이에게 주인공을 빼앗긴 애니메이션 속 어른들의 모습은 어땠을까? 비중적으로도 조연의 범주를 넘지 못하고 있었지만 애니메이션 속 어린이 주인공의 눈에 비친 어른들의 모습은 대개 사욕에 눈이 먼 추악한 얼굴들로 묘사된 경우들이 많았다. 심지어 가장 현실적인 애니메이션 속 어른상을 보여주었다는 <기동전사 건담>의 브라이트 노아 조차 아무로 레이의 눈에는 한심한 기성세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어쩌면 이러한 어른들의 모습들 때문에 애니메이션에 대한 사회적 편견(어린이들만의 전유물)의 벽이 오랜 기간 허물어지지 않았다고 볼 수도 있는데, <보물섬>의 외다리 해적 존 실버라는 캐릭터는 너무나도 달랐다. 물론 그 역시 껍질 안에는 악을 품고 있는 캐릭터였지만, 적어도 짐 호킨스의 눈에 실버는 동경의 대상이자 나중에 커서 자신이 되고 싶은 남자의 모습으로 비춰 진다. 주인공 짐의 그러한 바람은 시청자들에게도 똑같이 전달 되었고 이는 이전까지 어린이 주인공에게만 거의 일방적으로 할애되었던 캐릭터의 성격 배분 판도를 뒤집어 엎는 매우 의미있는 표본이 만들어진 것이었다. 하지만 데자키 오사무의 캐릭터 성격 배분은 실버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었다. 그는 <보물섬>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캐릭터들에게 하나하나 성격을 만들어 나누어 준다. 리브시 선생과 스몰렛 선장과 같은 인물들은 물론 해적이었지만 변심해 아군이 되는 그레이 같은 캐릭터는 조연임에도 방영 당시 실버 만큼의 지지를 받게 되며, 그밖에 검둥개, 키잡이 한스, 앤더슨 갑판장, 갈매기 빠삐 등 어느 한명도 잊을 수 없을 만큼 이들은 분명한 성격을 부여 받은 캐릭터들이었고 이에 자극을 받은 성우들의 호연까지 더해져 데자키 오사무의 <보물섬>은 진정한 명작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작품의 영상미를 담보해 주고 있는 것은 데자키 오사무 특유의 스타일쉬한 연출과 그의 명콤비 스기노 아키오의 작화력. 결정적인 순간에 화면이 정지 화면으로 바뀌는 하모니 기법의 완성자 미술감독 코바야시 시치로, 그리고 하모니와 함께 데자키 감독의 트레이드 마크인 입사광 기법의 창시자 촬영감독 타카하시 히로카타의 황금 조합에 의해서 TV 시리즈임에도 매우 높은 퀄리티를 유지해 냈다.) 데자키 오사무의 < 보물섬 >에 대한 재해석은 최종회에서 최고의 빛을 발한다. 원작에는 없는 10년 후의 짐과 실버의 재회 장면을 에필로그로 추가한 것이다. 성인이 된 짐을 모른 척 외면하며 술집을 나가 버리는 실버. 더이상 그의 눈에는 꿈이나 미래의 빛을 찾아 볼 수 없는, 그저 늙고 병약한(짐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이다. 하지만 실버는 기합을 넣어가며 힘차게 말한다. 마치 뒤에서 자신을 보고 있는 짐에게 말하듯 땅바닥에 떨어져 있는 늙은 앵무새 플린트에게 다시 한번 날아 보라고 힘주어 말한다. 어디에 가더라도 어떤 일과 맞부딪치더라도 그런 마음만 있으면 우린 아직 얼마든지 날 수 있다고 의연하게 웃으며 실버는 마지막에 짐을 돌아 본다. 마치 저 마지막 한 커트를 보여주기 위해 이 작품을 만든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의 엄청난 감동의 잔상. 변하지 않았어. 나의, 나의 실버는! 제목: 보물섬 제작년도: 1978년 감독: 데자키 오사무 목소리출연: 와카야마 겐조( 박상일 ), 시미즈 마리( 김순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