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의 기적
- 감독
- 이혁상
- 제작년도
- 2010
- 출연
- 소준문, 장병권, 최영수, 정욜
해가 바뀌었다. 동서양이 만들어 놓은 새해의 유예기간도 음력 설이 찾아오며 끝나버렸다. 5년을 견뎌야 할 새 정부도 출범했고, 어느덧 찾아온 봄날은 초여름 수준이 되어버렸다. 바야흐로 2013년의 1/4이 술술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새 출발의 봄기운이 살랑거리는 탓일까. 만나는 사람마다 특정 질문이 많아진다. 모든 창작자가 부담스러워하는 바로 그 질문. “다음 작품은 언제 보여주실 거예요?” 물론, 막역하지 않은 감독에게 건네는 만만한 인사치레였을 것이다. 마치 “잘 지내시죠?” 와 같은 관용적 표현이었으리라. 하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부담스런 말이 아닐 수 없다. 딱히 차기작 제작에 돌입하지 못한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렇다면 정말, 나는 지금 무얼 하고 있는 건가. 차기작 구상이라는 핑계로 여기저기 들쑤시고 있기는 하지만, 큰 진전은 없다. 전작의 후유증이 아직 남아 있어 좀 더 쉬어야 한다는 변명이 이젠 부끄러울 때도 됐건만, 여전히 남용하고 있다. 남들 눈에는 딱 봐도 천하태평 한량이겠지 싶다. 그렇다고 이 나이에, 10여 년을 해왔던 다큐멘터리 작업 말고 할 수 있는 것도 딱히 없다. 세월은 유수와 같이 흐르고, 인생의 궤도를 바꿔 탈 수 있는 여지도 줄어간다. 무슨 배짱이었을까? 무슨 깡이 있어 이렇게 영화 한답시고 살게 되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는 이유는 뭘까? ‘나는 왜 찍는가’에 대한 상념에 빠져있던 중, (남몰래 흠모했던) 친한 선배가 영화 잘 봤다며 선물로 준 책이 생각났다. 영국 작가 조지 오웰의 에세이집 <나는 왜 쓰는가>. 스스로 ‘MTV 영상 세대’라며 활자와는 담을 쌓고 지낸 나였지만, 거장인 조지 오웰에게 무언가 답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책을 읽으며 그 선배를 향한 연정을 되새겨 보고픈 마음도 한몫.) 나는 대체 왜 찍는 걸까? 조지 오웰은 글을 쓰는 동기로 남들과 달라 보이고 싶은 ‘순전한 이기심’과 아름다움을 향한 ‘미학적 열정’을 꼽았다. 그러고 보면 나 역시 대의명분보다는, 유명한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던 유년 시절의 꿈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물론 훌륭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의지도 있었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남들과 다른 삶을 살고 싶었던 지극히 개인적인 욕망이었던 것 같다. 물론 당시 생각했던 다른 삶의 롤모델이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었다는 점에서 몹시도 허황한 것이긴 했지만. 하지만 내 눈을 사로잡은 이 선지자의 창작 동기는 ‘역사적 충동’이었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진실을 알아내고, 그것을 후세를 위해 보존해두려는 욕구”로서의 충동. 이런 충동 덕분에 조지 오웰은 수많은 역사적 사건을 다양한 형식의 글로 남겼을 것이다. 그가 글을 쓰며 역사를 남겼다면, 다큐멘터리스트는 영상을 찍으며 역사를 보존하는 사람들 아닐까. < 종로의 기적 >을 만들며 그 누구도 기록하지 않는 종로 게이들의 역사가 다큐를 통해 남겨지길 바랐다. 2010년의 한국에서 성 소수자가 이렇게 생존했음을 후세에 남기고 싶었다. 어디에나 있는 삶이지만,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역사였으니까. 남성중심주의 속에서 외면당했던 여성의 역사가 여성주의자들을 통해 새롭게 발굴되었듯, 성 소수자의 역사를 성 소수자의 시선으로 다큐멘터리에 담아내고 싶었다. 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여전히 배가 고프다. 한술 밥으로 해결되지 않을 것이었다. 남겨야 할 성 소수자들의 삶은 무수한데, 엄혹한 시대를 가로질렀던 선배 성 소수자들의 인생을 그들이 사라지기 전에 꼼꼼히 기록해둬야 하는데, 인제야 역사적 충동을 느끼기 시작했다. 결국 차기작에 대한 열쇠는 내 첫 작품이 쥐고 있었으니, 에둘러 왔지만 이제라도 정신 차렸으니 다행이지 싶다. 꽃샘추위가 지나가면 카메라를 들고 다시 종로 골목을 어슬렁거려야겠다. 아! ‘나는 왜 쓰는가’에 대한 조지 오웰의 마지막 동기는 바로 ‘정치적 목적’이다. 무슨 군말이 더 필요할까. 그저 조지 오웰 작가님의 말씀을 오롯이 인용하는 게 낫지 싶다. “내가 맥없는 책들을 쓰고, 현란한 구절이나 의미 없는 문장이나 장식적인 형용사나 허튼소리에 현혹되었을 때는 어김없이 ‘정치적’ 목적이 결여되어 있던 때였다.” 새 정치로 어수선한 봄날이다. 황사가 불어와도 꽃은 필 터이니, 우리 모두 충동 느끼며 정치하게 영화 찍으며 살아 봅시다.
< 두 개의 문 >이 6만 명의 관객과 만났다. 제작진의 한 사람으로서 몹시 기쁘다. 하지만 동시에 참 낯설다. 독립영화를 개봉하는 모든 이가 꿈꾸는 1만 관객을 훌쩍 넘기다니, 낯설 수밖에. 때로는 비현실적 상황인 요즈음, 그 안에서 ‘어떤 현실’과 마주하게 되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흥행 현상을 경험하면서 < 종로의 기적 >의 ‘소박했던’ 개봉 때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절대적 매커니즘을 목격한 기분이다. < 두 개의 문 > 개봉 첫 주의 높은 관객 점유율과 뜨거운 반응 덕분에 우리 모두는 상영관 확대를 기대했었다. 특히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확보하고 있는 대형 멀티플렉스 극장을 통해 ‘독립영화 음영지역’에서도 개봉할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두 개의 문>의 기록적인 흥행에도 불구, 멀티플렉스의 독립?예술영화 전용관인 ‘무비꼴라쥬’나 ‘아르떼’ 밖으로 나가긴 쉽지 않았다. 이미 수용 한계에 다다른 전용관이 아닌 일반 상영관에서도 상영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극장 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말하자면 < 두 개의 문 >은 멀티플렉스의 2부 리그 소속이었다. 일반 상영관과 독립?예술영화 전용관은 철저히 분리된 시스템이었다. 물론 견고한 극장 문이 열리는 순간도 있었다. 그러나 그 문으로는 스파이더맨이나 배트맨이 날렵하게 치고 들어왔다. 전용관의 상영작들이 문 밖을 나서는 것은 1부 리그 진출이 아닌 종영을 의미했다. 가끔 지역의 멀티플렉스 극장이 먼저 상영을 요청, 일반 상영관에서 짧게나마 개봉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시혜’는 멀티플렉스 본부의 지시가 아닌 현지 관객들의 끊임없는 상영 요청 덕분이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2부 리그는 박 터질 수밖에 없었다. 사이좋게 멀티플렉스에 진출한 독립영화와 예술영화들은 전용관 안에서 곧 서바이벌 오디션의 상황으로 내몰렸다. 우열이 정해졌고, 순번이 매겨졌다. 전국 멀티플렉스 좌석 수의 1%도 안 되는 전용관을 수십편의 독립?예술영화들이 나눠가졌다. 그러다보니 전용관의 동료들이 괜스레 미워지기까지 했다. 유수한 영화제를 석권한 거장들의 아트하우스 작품과 스타급 명배우를 기용한 작가주의 영화들과도 한 배에 올라 경쟁해야 하다니, 이건 좀 불공정하지 않은가? 이왕 전용관을 운영할 거라면 국내파와 해외파, 독립영화와 예술영화의 섬세한 구분과 안배가 필요하지 않을까? 이런 복잡다단한 생각에 이르자 억하심정에 갑자기 분노가 터져 나왔다. “다양한 영화들에게 극장 문을 열면 될 것을, 왜 이런 구별 짓기까지 해야 하는 거냐고!” 포화 상태에 이른 가두리 양식장에 있으려니 스트레스가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놀라운 변화가 시작되었다. 여름 블록버스터의 파상공세가 시작되고, < 두 개의 문 >의 관객 점유율이 떨어지는 시점부터 그 분노는 서서히 안도감으로 바뀌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전쟁터 같은 여름 극장가에서 이마저도 없었다면 어찌 되었을까! 고마워라, 멀티플렉스 전용관이여!’ 이 지경에 이르니 조삼모사가 따로 없다. 순간 <돈의 맛>에서 쌍용자동차 진압 장면에서 재벌가의 아들이 이죽거렸던 대사가 떠올랐다. “싸구려 아파트 하나 줘서 중산층입네 하고 살게 했어야 하는데.” 아주 독한 가정이지만, 나는 극장 재벌의 머리 속엔 분명 이런 대사가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멀티플렉스가 전용관 하나 던져주면 그 안에서 아웅다웅 독립영화 개봉합네, 예술영화 합네 하며 살겠지.” 전국적인 네트워크, 다양한 관객을 염두에 둔 빼어난 접근성, 최신의 쾌적한 시설의 풍부한 자원을 확보한 멀티플렉스. 장사의 이치에 통달한 극장 재벌들은 자신의 멀티플렉스에서 개봉이라도 할 수 있는 상황에 자족하도록 매트릭스를 펼쳐놓고 있는 건 아닐까. 어쩌면 그들은 ‘두 개의 문’을 절묘하게 배치하여, 영악하게 이용 중인지도 모른다. 하나의 문을 열어 다양성을 존중하는 척하며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뽐내고, 다른 한 쪽 문은 굳게 닫은 채 그 뒤에서 게걸스럽게 긁어모은 돈의 맛을 탐닉하고 있을 것만 같다. 이런 엄혹한 상황에서도 특별한 감격의 순간은 찾아온다. 머지않아 독립영화 전용관 인디스페이스에서 < 두 개의 문 >의 1만 번째 관객을 만나기 때문이다. <두 개의 문>의 총 6만 관객 중 15% 이상이 인디스페이스를 찾았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경쟁 논리가 아닌 조화를 바탕으로 한 다양성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가짐, 흥행 스코어에 따라 난잡하게 시간표를 바꾸지 않고 관객들과 충분히 만날 수 있는 꾸준한 상영 회차를 안배하는 고집, 무엇보다 독립영화를 향한 응원의 마음과 무한한 믿음이 왜 중요한지 일깨워준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 두 개의 문 > 개봉을 앞두고 개봉을 통해 자력갱생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것을 작은 바람이라 했는데, 개봉을 경험하며 아주 큰 바람이 생겼다. 내가 만든 영화로 큰 수익을 얻는다면 극장을 하나 만들어야겠다는 꿈. 물론 독립영화 전용관으로! 모두들 치기 어린 장래희망이라 했던 영화감독의 꿈도 25년 만에 이뤘으니, 극장을 짓는 꿈은 20년 정도면 가능하려나. 아차, 그러려면 일단 영화를 잘 만들어야겠구나. 자! 그럼 저는 이제 차기작 준비하러 갑니다.
가난한 독립 다큐멘터리스트에게 1월과 2월은 보릿고개다. 그나마 안정적인 수입원인 대학 강의료는 방학과 함께 사라지고, 계절 탓인지 영화 관련 아르바이트도 다소 뜸해지기 때문이다. 바닥을 드러낸 보릿고개 시기의 통장은 외풍으로 서늘하다. 그런데 2012년의 보릿고개는 서늘하다못해 다소 싸늘하다. 아무런 일감이 없는 것이다! 원인을 곰곰 따져보니 아무래도 내 위치의 변화 때문인 것 같다. 작년 < 종로의 기적 >을 개봉하며 얻게 된 ‘감독’이라는 직함 때문에 편하게 일을 맡기기엔 부담스러운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몇몇 사람들에게 다짜고짜 물어보았다. 혹시 예전에 하던 알바거리 없냐고. 역시나 돌아오는 대답들이 한결 같다. “어휴, 감독님께 어떻게 그런 알바를 시켜요?” 나는 겸손한 마음으로 일의 품격 따지지 않고 열심히 벌어서 정승 같이 쓸 수 있는데, 어느새 정승 나리처럼 일을 부탁하는 것조차 부담스런 사람이 된 것인가. 그렇다고 사람들마다 붙잡고 ‘저는 꽤 저렴한 사람이랍니다’라며 광고를 하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니 답답하다. 나와 함께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있는 연분홍치마의 다른 감독들도 아마 비슷한 처지일 것이다. 이런 와중에 연분홍치마는 용산 참사에 관한 다큐멘터리 < 두 개의 문 >의 극장 개봉을 결정했다. 곧바로 우리 눈 앞에 펼쳐진 것은 어마어마한 지출 항목들. 통장의 잔고가 줄어들수록 빚더미와 다크 써클만 늘어간다. 늘 개탄스러워하던 영화계의 임금 체불과 외상 거래를 우리 스스로가 자행하며 한숨은 더더욱 깊어진다. 고개를 넘으면 또 고개가 있으니, 이 정도면 참으로 혹독한 보릿고개가 아닐 수 없다. 이쯤되면 ‘대체 우리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이러고 있나?’라는 회한이 밀려온다. 춥고 배고픈데 수중에 돈은 없으니 당연히 그럴 수밖에. 그러다보니 꿈꾸게 된다. ‘내가 만든 다큐로 수익을 창출해 생계를 해결하고 차기작 제작비를 확보’하는 지당한 과정을. 그러나, 꿈은 이루어지긴 개뿔, 전설이나 신화처럼 아득하기만 하다. 대체 생존과 다큐 제작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기나 할까. 결국 안정적인 제작 예산 확보가 가장 시급할 텐데, 비빌 언덕으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영화진흥위원회의 독립영화 제작 지원 정도다. 하지만 정권의 눈치를 보셔야 하는 그 분들께 무언가 기대하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정부를 비판하는 입장의 다큐멘터리라면 더더욱. 영화진흥위원회가 운영하는 독립영화전용관에서 제주 강정마을의 해군기지 반대 투쟁을 담은 이 한동안 상영되지 못했던 사건은, 정부를 향해 날을 세우는 독립영화에 대한 그들의 입장을 파악할 수 있는 좋은(?)기회였다. 게다가 이후 새롭게 들어설 정권이 더 나으리란 보장도 없으니, 정부 지원 덕분에 보릿고개를 넘기는 건 로또 맞을 확률과 비슷할 수도 있겠다. 물론 각종 영상 관련 단체와 영화제 등에서도 다양한 제작 지원 사업을 시행하고 있지만, 이런 경우일수록 주최측이 요구하는 조건이 더욱 까다로워지는 경우가 태반이다. 게다가 요즘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피칭’은 멋진 그림이 필요한 주최측의 장단에 맞춰 재주만 부리다 팽 당하게 되는 야속한 결과를 낳기도 한다. 그래, 어디 남의 돈으로 먹고 사는 게 쉬운 일이겠냐만은, 참으로 구차한 삶이다. 그래서 나와 연분홍치마는 2012년의 모토를 ‘자력갱생’으로 정했다. 비록 정부 비판적인 다큐이지만, 그래서 무슨 불이익을 당할 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 두 개의 문 >의 개봉에 총력을 기울일 참이다. 개봉 과정을 통해 용산참사와 공권력에 대한 우리의 고민을 더 많은 대중과 함께 나누며, 동시에 경제적 자립을 도모하는 기회를 만들어내고 싶다. 물론 이미 많은 독립 다큐인들이 앞서 걸었던 길이다. 실패담은 차고 넘친다. 예산 규모는 너무나 초라하여 출발부터 불리하다. 쓸 돈은 없으니 마케팅에는 결국 몸을 써야할 것이다. 하지만 결국 자력갱생, 이게 가장 확실한 방법 같다. 되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보자. 시도때도 없이 엄습하는 가파른 보릿고개, 이제는 수월하게 넘고픈 이 뜨거운 욕망을 승화시켜 그럴듯한 자력갱생의 사례를 만들어보고 싶다. 하지만 도박 같은 개봉, 어찌될 지 모르는 일이니 보험 삼아 한 마디만 덧붙여야겠다. “여러분, 저는 꽤 저렴한 사람이랍니다. 무슨 일이든 일단 맡겨만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