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영화
- 감독
- 허정
- 제작년도
- 2009
- 출연
- 백수장, 박선민, 이종무, 오상호
그때가 아마 6-7년 전쯤이던가, 단편영화를 많이 봤다. 장편의 긴 시간을 버틸 만큼의 정신적 체력이 부족한 때였다. 단편 영화제에 가서 보고, 영상 도서관에서 빌려서 보고, 단편 모음 DVD도 사고 그랬다. 세상도 단편영화에 주목하던 시절이다. 어떤 영화 잡지에선 따로 그해의 단편을 뽑기도 했다. 2010년, 2011년 즈음에 조현철 감독의 < 척추측만 >과 함께 이 영화를 뽑는 사람이 많았던 거로 기억한다. 허정 감독의 < 저주의 기간 > 말이다. 영화가 시작하면 암전이다. 불길한 음악 위로, 여자아이 목소리가 들린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그런 말을 불길하게도 한다. 화면 열리면, 교복을 입은 여자아이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전단지를 나눠주는 광경. 전단지 좀 돌린다고, 뭐가 그렇게 죄송할까? 중학생 남동생은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 2년 전에 잃어버린 강아지를 찾고 있다는 누나의 뒷모습은 기묘하다. 한 어른이 묻는다. 2년이나 지난 걸 지금 와서 그걸 어떻게 찾냐? 누나는 울먹인다. 그래도 우리 쫑쫑이, 꼭 찾아야 한다고. 지난 2년을 돌아본다. 이 기간에 동생은 키가 자라지 않았고, 누나는 성적이 떨어졌다. 키가 자라지 않는 동생은 그렇다 치자. 책을 아무리 외워도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누나의 사연은 기구해 보인다. 병원도 다녀봤다. 종교의 힘을 빌리기도 했다. 그러나 어떤 방법으로도 저주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땅값이 떨어지는 등, 이 집 안 전체가 저주에 걸리고 말았다. 아빠는 마지막 수단을 내려고 무당을 찾아간다. 무당이 말한다. “녹색을 가까이하라.” 이제 영화는 소품, 배경, 미술, 의상 모든 것을 총동원해 초록의 세계를 보여준다. 온통 초록이 가득한 세상에서 길을 잃은 채 남매가 떠돈다. 초록은 수술실의 수술복처럼 불길하다. 그건 메스를 들이대 마구잡이로 인체를 헤집어 놓은 다음 다 고쳤으니 돌아가라고 미소를 짓는 사이코패스 의사의 수술복이다. 그 세계 깊은 곳까지 나아가던 남매는 불현듯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우리에게 묻는다. “개들도 원망 같은 거 하나요?” 그런 다음, 남매는 지금까지 중 가장 초록인 세계로 걸어 들어간다. 다리 밑을 지나면 새 아파트 단지가 보인다. 초록색 공사 구조물로 덕지덕지. 그 아파트를 지나니 드디어 무너지기 일보 직전인 과거의 집이 나온다. 낡은… 지나간…. 허물어진 세계… 거기서 남매는 쫑쫑이를 발견한다. 그건 그때의 쫑쫑이는 아니다. 쫑쫑이에겐 너무너무 녹색 같은, 괴상한 비밀이 있다. 영화를 다시 보는 내내 지금의 세상을 떠올리게 됐다. 예언 같다. 아무래도 저주에 걸린 것 같다. “죄송합니다”를 연신 외치던 소녀의 목소리가 아직 귀에 맴돈다.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이제 어떻게 하죠? 그래서 온통 녹색이다. 작은 녹색에서 큰 녹색까지 나아간다. 녹색 옷을 입고 녹색 가방을 멘 남매가 녹색의 공간으로 떠나는 여정 속에 우리의 얼굴이 보인다. 결국은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지금 여기’에 집중할 수 없는 시간. 그 시간의 저주를 풀기 위해서, 무엇을 돌아봐야 할까. 죄송할 만한 나의 과거, 그걸 풀어줄 나의 초록은 어디에 있을까.
올해 극장에서 본 한국 영화 중 가장 좋은 인상을 받은 작품 중 하나는 이요섭 감독의 < 범죄의 여왕 >이었다. 싱거운 유머와 심각한 범죄가 공존하는 이 작품은 씁쓸한 현실에 대한 사실적 묘사와 스릴러 장르의 클리셰가 적절한 조화를 이룬다. 또한 각자 고유한 개성을 부여받은 캐릭터들이 뛰어난 앙상블을 펼치고 고시원이라는 한정된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한 연출도 보는 즐거움을 준다. 여기에 박지영, 조복래, 허정도 배우의 연기는 부족하지도 과하지도 않은 적확한 캐릭터 해석으로 이야기에 색을 더한다. 이런 많은 장점 중 특히 좋았던 건 박지영이 연기한 미경의 캐릭터였다. 드센 ‘시골 아줌마’의 모습으로 등장한 그녀는 상투적인 ‘아들 바보’이자 ‘오지랖 넓은 아줌마’이지만 이야기의 진행과 함께 자신에게 덧씌워진 선입견들을 격파하듯 하나씩 깨나간다. 그녀는 하고 싶은 말을 거침없이 하고 생각을 즉시 행동으로 옮기는 인물이지만 잘못을 인정해야 할 때는 바로 사과하고 물러설 줄 안다. 남의 사생활에 필요 이상으로 귀찮게 개입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런 행동들이 타인의 상황에 대한 깊은 공감이 바탕에 깔려있음도 암시된다. 또한 비굴해 보일 정도로 아들의 뜻을 따르던 미경이 처음으로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말할 때는 어떤 쾌감까지 만들어낸다. 더구나 이 모든 사건을 겪은 후에도 미경은 어떤 엄청난 심경의 변화를 겪은 사람처럼 새로운 삶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원래 삶으로 바로 돌아간다. 즉 영웅 흉내를 내지도 않고 ‘변호사 자식을 둔 엄마’로서 다른 삶을 꿈꾸지도 않는다.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일상으로 복귀해 미장원에서 친구들과, 애인과 수다를 떨며 살아간다. 주인공이 어떤 큰 사건을 겪은 뒤 새로운 인물로 태어나는 건 물론 매력적인 서사이지만 < 범죄의 여왕 >의 미경은 지금까지 열심히 만들어온 자신의 삶에 굳이 큰 변화를 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 보인다. 사흘 동안 겪은 비일상적인 사건 하나로는 그녀의 단단한 일상에 균열을 낼 수 없는 것이다. 이처럼 자신의 평범한 생활에 자연스럽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 긍정적인 기운의 캐릭터는 그 자체로 드물고 귀한 존재로 느껴진다. 게다가 미경은 ‘엄마’라는 하나의 역할에만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 속에서 복수의 정체성을 순간순간 만들어나간다. 미경은 개태( 조복래 )와 있을 때는 성적 매력이 넘치는 성숙한 여인이며, 고시원 사장이나 폭력 남편과 맞설 때는 프로페셔널한 싸움꾼이다. 그런가 하면 진숙( 이솜 )과 대화할 때는 나이를 잊은 좋은 친구처럼 보이고 덕구( 백수장 )를 바라볼 때는 마음 따뜻한 선배처럼, 자식을 찾는 다른 어머니를 도와줄 때는 남의 아픔에 공감할 줄 아는 또 한 명의 어머니로 보인다. 한 명의 사람이 자신이 속한 사회 속에서 여러 가지 역할을 동시에 수행한다는 건 너무 당연한 얘기이지만 그런 기본적인 사실을 영화 속 캐릭터를 통해 재확인하는 경험은 의외로 감동적이다. 자신의 원래 성격을 거스르지 않는 범위 내에서 유연하고 능숙하게 제 역할을 바꿔나가는 미경은, 상투적인 표현을 쓰자면, 정말 존경할만한 어른처럼 보인다. 결과적으로 < 범죄의 여왕 >은 미경이라는 독보적인 캐릭터에 힘입어 깊은 인상을 남긴다. 나아가 연쇄 살인이라는 소재 속에서 웃음의 순간을 만들어내고 최소 여섯 명 이상의 캐릭터를 동시에 다루어야 하는 숙제를 풀면서 이런 흥미로운 인물을 만드는 데 성공한 이요섭 감독의 이름을 기억하게 만든다. 단순하고 명쾌한 인물을 제시하면서도 이처럼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이야기 구성과 연출은 분명 주목해야 할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이요섭 감독의 다음 영화가 빨리 보고 싶다.
“무엇이든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 주인공 ‘주희’가 자신의 신체를 훼손하면서까지 외우는 주문이다. 함께 주술놀이를 하는 살갑지 않은 친구들도 그녀가 무엇을 위해 그렇게 간절히 주문을 외우는지 알지 못한다. 그녀들에게 주희는 그저 누군가를 따라 하는 이상한 아이일 뿐이다. 하지만 주희는 돌연 사라지고 또래들 사이에서는 그녀를 둘러싼 괴담이 떠돈다. 허정 감독의 < 주희 >는 아이들 사이에 떠돌 법한 도시 괴담을 소재로 하면서 단편영화로는 흔치 않게 공포영화 장르를 구현해 낸다. 영화는 경쾌하면서 경박하기까지 한 음악과 함께 쇼핑을 하는 모습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그들만의 파티를 즐기기 위해 ‘민지’의 집으로 간다. 그곳에서 무엇이든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주술놀이를 한다. 연예인을 만나게 해달라는 소박한 친구들의 바람과 달리 주희는 처절한 소망을 마음속으로 이야기한다. 그녀를 당혹스럽게 지켜보는 친구들. 소문을 남기고 갑작스럽게 사라진 주희. 그녀가 떠나고 남은 폐허의 자리를 불안한 듯 지켜보는 카메라의 시선. 한 아이의 간절한 소망과 그 소망을 비웃는 듯한 표정들. 전혀 다른 그들의 표정은 폐허가 된 재개발 지역의 풍경과 도시에 우뚝 서 있는 고층 아파트의 풍경처럼 상반되게 표현된다. 이런 이질적인 표정의 대비는 영화가 잡아내려는 시대의 모습이며, 누군가의 고통을 표현하는 방법일 것이다. 또래들이 누리는 안락한 삶을 동경한 주희의 꿈은 자신을 지워내야 이룰 수 있다. 철저히 자신을 버리고 누군가가 되어야만 비로소 이룰 수 있는 꿈. 주희는 행복해 보이는 민지가 되려고 노력한다. 그 노력은 너무 처절해서 주변에서 보기 무서울 정도이다. 그녀의 꿈이 확실히 이루어졌는지 불확실하지만, 그녀는 또래들에게 확실한 공포감을 남겼다. 민지는 “꿈에서 내가 나왔는데 내가 내가 아닌 거야.”라고 한다. 자신의 안락함을 빼앗길지 모른다는 불안감. 이것은 주희의 저주일까? 갖지 못한 자의 간절한 욕망과 가진 자의 불안과 공포가 뫼비우스처럼 뒤엉킨 도시의 풍경을 영화는 서늘하게 그려낸다. 이처럼 한편에 드리운 욕망과 분노를 반대편의 불안과 공포로 정확하게 대비해서 보여주는 경우는 흔치 않다. < 주희 >는 재개발의 광풍 속에 사라져가는 집들처럼 우리 주변에 사라지고 있는 누군가를 소환하며, 그들이 사라진 자리를 바라보고 있다. 그들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떠도는 소문을 지나간 일처럼 담담히 이야기하는 내레이션 역시 감독의 인장처럼 영화에 올곳이 새겨져 있고, 아역 배우들의 연기 역시 인상적이다. 허정 감독은 이미 전작인 < 저주의 기간 >에서 아이에게 가해지는 압박이 어떻게 강박증과 함께 공포를 불러오는지를 효과적으로 보여주었다. 이어 장편영화 데뷔작 < 숨바꼭질 >을 통해 자신의 자리를 빼앗길지 모르는 중산층의 불안과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도시빈민의 처절함을 그려낸 바 있다. 단편영화의 주제의식과 스타일이 상업영화에서도 굽혀지지 않고, 잘 구현된 경우였다. 공포영화 장르를 활용하면서도 사회의 이면에 드리운 그림자를 소재로만 한정하지 않고, 명확한 주제의식을 가진 이야기로 끌어올리는 감독의 시선은 충분히 주목할 만하다. 이후 계속될 허정 감독의 다음 작품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