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 흑장미 대 흑장미
- 감독
- Jeffrey Lau
- 제작년도
- 1992
- 출연
- Lawrence Ah Mon, Man-Biu Bak
소실된 영화에 대한 글을 쓰면서 나는 최대한 이들의 원래 모습 그대로를 상상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김기덕 의 1969년 작 < 흑장미성의 미녀 >에 대한 글을 쓸 때는 그게 잘 안 된다. 김기덕 자신도 그게 쉽지 않을 것이다. 강조원이 쓴 이 영화의 오리지널 각본은 척 봐도 해머 호러 영화나 로저 코먼의 에드거 앨런 포 영화에 나올 법한 장엄한 유럽의 대저택이나 고성을 요구한다. 제목부터 보라. <흑장미성의 미녀>! 빰, 빰! 빠! 5, 60년대 해머 영화의 컬러풀한 세트가 떠오르지 않는가? 오프닝 크레디트에 깔리는 음악으로는 이런 걸 상상하시면 되겠다. James Bernard - Vampire Rhapsody 아쉬워라. 이 영화엔 흑장미성이 안 나온다. 대신 나오는 건 흑장미관이라는 시골집이다. 야심 차게 제목에 성이라고 박아놨는데 조국의 현실이 못 따라준다. 만족스럽지 못하지만 가지고 있는 걸 모아 대신 쓸 수밖에. 물론 피터 쿠싱이나 잉그리드 피트 대신 김희라 와 남정임 , 윤소라 를 캐스팅할 수밖에 없었던 거고. 기영욱과 한지숙이라는 20대 청춘이 주인공이다. 영욱은 신문사 사회부 ‘민완’ 기자이고 지숙의 남자친구이다. 척 봐도 지숙은 영욱보다 몇 단계 위인 부잣집 딸이다. (이런 커플링에 대해서는 저번 연재분을 참고하시길.) 지숙은 다음과 같은 애절한 편지를 받고 여학교 때 단짝친구였던 민혜련을 방문하려는 중이다. “지숙아 지숙이밖에는 아무도 호소할 데가 없기에 이 편지를 써! 지숙이 나를 구해 줘! 나는 지금 어떤 생명의 위협 앞에 벌벌 떨고 있어! 자세한 얘기는 밝힐 수 없지만 너무나 무서운 사실이 내 주변에 일어나고 있어. 지숙이 나를 도와 줘! 아 불쌍한 혜련이를 구해 줘! 아 무서워! 흑장미관 혜련이로부터” 옛 단짝친구에게 이런 편지가 왔다면 귀찮은 남자친구 없이 혼자 가야 하는 건데 말이다. 하지만 당시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에게 그런 생각이 떠올랐을 리가 없다. 당연히 영욱은 지숙을 따라나선다. 지문은 흑장미관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두 사람의 시야에 석양의 역광을 받아 검게 우뚝 솟는 삼 층 건물. 지붕은 화재로 내려앉고 기둥만이 솟아 있다. 어떤 귀기마저 감돈다.” 김기덕 과 그의 미술팀이 작가의 야심을 얼마나 만족시켰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냥 해머 영화의 한 장면을 상상하련다. 계속 이어지는 장면도 마찬가지. ‘어둠 속에 백발 흑의의 노인이 서 있지 않은가. 마치 중세기 서양의 고성에 사는 사람과 같은 풍모다’같은 지문을 보라. 감독을 대신해서 작가에게 괜히 미안해진다. 지만이란 이름의 그 노인의 안내를 받아 흑장미관으로 들어간 두 주인공은 ‘하얀 까운에 긴머리를 바람에 날리며 돌아서 있는 여인’이며 ‘창백한 얼굴에 가끔 경련이 스치고 우수 깃든 눈에 어떤 슬픔이 잠겨져 있는’ 민혜련을 만난다. 편집자가 밑에 윤소라의 사진이라도 한 장 박아주었으면 좋겠다. 잉그리드 피트 이름을 들먹이며 투덜거리긴 했지만 이국적이고 선이 굵은 미인이었던 윤소라는 지숙 역의 동글동글 남정임과 비교해보면 확실히 임팩트가 있었을 것이다. < 특별수사본부 김수임의 일생 >의 윤소라 혜련의 사연은 무엇일까. 집에 귀신이 나온다는 것이다. 입에서 피를 흘리며 나타나는 머리를 푼 여인. 이 정도면 같은 학교를 다닌 단짝 친구가 이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을 거라는 이상한 믿음 자체에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저택엔 막 교도소에서 나왔다는 혜련의 먼 친척인 달수가 산다. 평판 나쁜 남자랑 같이 사는 외딴 집에 단짝 친구를 불러들인다? 한밤중. 지숙과 영욱이 ‘드라큐라 엄마 같은 심부름하는 할멈’, 하얀 유령처럼 생긴 빨래, 사람 다리처럼 생긴 나무떼기의 습격을 받으며 저택을 수색하는 동안, 고고하게 혼자 피아노를 치고 있던 혜련은 귀신과 마주친다. 바람에 꺼진 촛불을 다시 켜는 동안 뒤에서 피아노 소리가 들려서 고개를 돌려보니 피아노가 혼자 음악을 연주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물론 비명 소리를 듣고 두 주인공이 달려왔을 때는 피아노는 멀쩡하다. 아침에 수상쩍은 남자 달수는 의외로 여기서 정보전달자 역할을 한다. 달수 어머니가 이 저택에 살았을 때 억울한 일을 당해 독약을 먹고 죽은 여자의 유령이 나왔고 그 유령을 본 혜련의 할머니와 어머니 모두 미쳐 죽었고... 그날 밤은 더 파란만장하다. 드디어 같이 자다가 없어진 혜련을 찾아 나섰던 지숙은 영욱과 함께 혜련이 말한 산발한 여자 귀신을 목격한다. 귀신을 쫓아가던 둘은 기절한 혜련을 안고 나오는 노인과 마주친다. 잠시 뒤 검은 복면을 쓰고 지하실을 털러 내려간 달수가 커다란 검은 상자를 낑낑거리면서 여는데, 아까 본 여자 귀신이 그 안에서 튀어나와 달수를 덮친다. 달수 퇴장. 하지만 그리워하지 마시길. 달수가 남긴 빈자리가 그렇게 아쉬웠던지 작가는 다음 날 아침이 되자 곧 새로운 인물을 등장시킨다. 혜련의 어머니가 불쌍하다고 데려와 키웠다는 벙어리 꼽추이다. 포스터 다시 밤.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하는 여자 유령 때문에 지숙과 혜련이 기절하고 비명 지르고 달아나는 동안, 일 때문에 돌아간다 거짓말을 하고 혼자 떠났다가 몰래 흑장미관으로 돌아온 영욱은 지만 노인이 지하실에서 달수의 시체를 꺼내 땅에 묻는 걸 발견한다. 지만 노인은 혜련을 놀라게 해서 죽이면 전 재산이 자기 것이 될 거라고 믿고 귀신 흉내를 냈으며, 그 사실을 눈치챈 달수도 죽였다고 자백한다. 지숙은 아무래도 그 귀신은 여자 같았다며 영욱의 설명을 믿지 못하지만 영화가 사라져버렸으니 정말 그런지 우리가 직접 확인할 수는 없는 노릇. 줄거리를 요약하는 것이 점점 지겨워진다. 이야기가 재미없어서 그런 게 아니다. 반대로 필름이 발견되어 영상자료원에서 8월쯤에 호러 특집으로 튼다면 관객들 반응이 썩 좋을 거 같다. 호러 효과는 별 게 아니겠지만 뻔뻔스러운 유원지 스타일의 재미는 상당해 보인다. 하지만 아무리 직접 보면 재미가 있을 것 같다고 해도 귀신 나타났다, 여자들 비명을 지른다, 귀신 사라진다...를 끝도 없이 반복하다 보면 쓰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지치기 마련이다. 이런 이야기는 글로 요약하는 것보다 이 유튜브 클립을 소개하는 것이 더 이해가 빠르다. Scooby Doo Openings 내가 불평하는 동안 각본가는 서양 공포 영화와 추리 소설을 보고 읽으면서 품었던 마지막 판타지를 현실화시키고 있는 중이다. 아까 달수가 끙끙대며 열었던 상자를 기억하는가? 그 밑에 비밀통로가 있었다. 수색하러 들어갔던 지숙과 영욱은 그만 꼽추가 입구를 막아서 갇히고 마는데, 다행히도 다른 출구가 있어서 빠져나온다. 알고 봤더니 그 꼽추는 꼽추도 아니었지만 그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밤이다. 이번엔 짧게 끝난다. 영욱의 방에 꼽추가 칼을 들고 들어온다. 기다리고 있던 영욱이 반격한다. 혜련의 방에는 귀신이 칼을 들고 들어온다. 지숙을 찌르려는 귀신을 영욱이 막는다. 귀신은 달아나다가 떨어져 죽는다. 가면을 벗겨보니 혜련이다. 그러고 보니 혜련과 귀신이 같은 화면에 나왔던 적이 없긴 했다. 이 줄거리 요약을 읽은 독자들은 몰랐겠지만. 영욱은 혜련이 정신병을 앓고 있었고 화재도 혜련이 친척들을 내쫓기 위해 낸 것이고, 꼽추는 계속 혜련을 돕고 있었던 것이고, 귀신소동도 다 논리적으로 설명이 가능하다며 녹음기에서부터 피아노 줄에 이르는 온갖 장치들을 동원해 설명하는데, 그런다고 이 이야기가 설명이 될까? 성도 안 나오면서 < 흑장미성의 미녀 >란 제목을 씩씩하게 달고 나온 영화에게서 너무 많은 걸 기대하는 건 아니다. 그래도 정신병을 앓던 단짝 친구가 자기를 죽이려다 죽었다는 사실을 막 알게 된 여자가 “노 노 천만에 이제 모험하군 담을 쌓기로 했어요. 그저 겁많은 주부가 될래요” 따위의 대사나 읊으면서 남자친구에게 까르르거리는 걸 보면 이 여자, 신경이 좀 이상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류승완 감독의 < 다찌마와리: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 >(2008)라는 제목이 박노식 감독의 <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 >(1976)에서 온 것은 누구나 알 것이다. 미처 몰랐지만 이명세 감독의 < 인정사정 볼 것 없다 >(1998)와 최호 감독의 < 사생결단 >(2006)도 각각 과거 독고성 , 장동휘 주연, 이신명 감독의 < 인정사정 볼 것 없다 >(1965)와 이두용 감독의 < 사생결단 >(1975)이 있음도 알게 됐다. 그렇게 재미삼아 찾다보니 나홍진 감독의 < 추격자 >(2007) 이전 김수용 감독의 반공영화 < 추격자 >(1969)와 김선경 감독의 ‘짝퉁’ 합작 액션영화 < 추격자 >(1979)도 발견하게 됐다. 사실 류승완 감독의 경우처럼 장르적 자의식이 새겨진 제목 모방은 아니겠지만, 어쨌건 무척 흥미로웠다. 같은 제목 다른 영화 포스터들 그러면서 다소 덜 알려진 B무비 감독 김선경 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됐다. 특히 < 추격자 >는 사운드트랙 ‘Run and Run’은 물론 올리비아 핫세가 다소 육감적으로 등장하여, 올드팬들에게는 지금도 굉장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이탈리아 B무비 < 섬머타임 킬러 >(1972)의 주인공 크리스 미첨(로버트 미첨의 아들)이 출연한 영화이기도 하다. 소련에 있는 한 한국 과학자가 새로운 에너지를 개발하고, 미국 CIA 요원(크리스 미첨)이 그의 망명을 돕는다는 내용의 첩보액션영화였다. 멋진 태권 액션을 선보인 권부길이 크리스 미첨의 태권도 스승이었던 인연으로 캐스팅이 이뤄졌고, 재미교포가 제작자였기에 한미 합작영화라는 타이틀이 붙었던 것으로 보인다. 1939년 서울에서 태어나 동국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한 김선경 은 < 잘 살아다오 내 딸들아 >(1972)로 데뷔했는데 이형표 , 최영철 , 김시현 , 고영남 , 이혁수 , 김정용 감독의 경우처럼 장르를 가리지 않았던 한국 장르영화 감독 계보에 포함시킬 만한 인물이다. 조감독으로는 김시현 감독의 < 필살의 검 >(1969)에 참여하기도 했다. 데뷔 이후로는 만주를 배경으로 한 항일 액션영화 < 빌리쟝 >(1974)을 시작으로 < 흑룡 >(1975), < 밀명객 >(1976), < 흑룡강 >(1976), < 금호문 >(1977), < 무림대협 >(1978), < 노명검 >(1980), < 산동반점 >(1982), < 산동여자물장수 >(1983) 등 주로 권격 액션영화나 한홍합작 액션영화들을 만들었다. 가공할 뱀떼가 등장하는, 아마도 실제 동원한 뱀 숫자만으로 기네스북에 올라도 될 법한 동물 공포영화 < 인사대전 >(1983)도 떠오른다. 김선경 감독, < 밀명객 >, < 흑룡강 > 주로 트렌드에 편승한 액션영화들을 만들긴 했지만, 그의 영화들은 나름의 선 굵은 액션 연출과 이야기 전개로 독특한 매력을 풍겼다. 특히 호쾌한 발차기가 일품이었던 액션배우 왕호가 주연을 맡은 < 밀명객 >과 < 흑룡강 >이 그러했으며, 이를 통해 왕호는 홍콩 골든하베스트로 진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 영상자료원에서 영화제를 통한 필름 상영이 아닌 VOD나 DVD로 감상 가능한 김선경 의 액션영화는 < 특명 >(1976)과 < 산동여자물장수 >(1983) 정도다. 최근 TV 드라마를 통해 다시 주목받은 캐릭터 ‘각시탈’이 최초로 등장했던, ‘권격영화의 결산시대가 왔다’는 당당한 카피와 함께 김추련 이 각시탈로 출연한 < 각시탈 철면객 >(1978)도 그의 영화다. 영상자료원에 DVD가 있는 것으로 검색되지만, 영상자료실에서 재생해본 결과 왕우가 등장하는 엉뚱한 액션영화였다(자료원 담당자 분께서는 꼭 참고해주시길). 라호용 의 첫등장과 한참 후의 얼굴 공개 김선경 감독의 영화들 중 베스트 서너 손가락으로 꼽긴 아쉽지만, 어쨌건 < 특명 >은 그의 전체적인 스타일을 가늠할 수 있는 여러 단서들을 던져준다. 용( 라호룡 )은 독립군인 아버지 황대인을 잃고 한 도사 밑에서 자랐는데, 이제 그는 독립군의 지령을 받아 아버지가 목숨을 잃으며 탈취당한 불상을 찾으러 간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만나게 된 현주( 김정란 )가 자신의 정혼자였음을 알게 된다. 주인공 라호룡은 김선경 감독이 야심적으로 발굴한 배우로, 액션을 시작하기에 앞서 목을 쭉 빼고 자세를 낮춘 포즈가 독특하다. 하지만 역시 액션스타도 ‘얼굴’이 중요해서인지 <특명> 이후 그의 별다른 활약상을 들어본 적 없어 안타깝다. 현주를 연기한 김정란은 태권도 3단으로 홍콩 쇼브라더스로 진출해 < 여신탐 >(1976)을 찍기도 했으며 성룡이 한국에서 촬영한 < 사학비권 >(1978), < 오룡대협 >(1978) 등에 출연했다. <여신탐>에서는 홍콩경시청의 요청으로 홍콩으로 파견된 한국 여경이었다. 당시 ‘한 액션’했던 대표 여배우 중 하나였으며 < 애권 >(1980)에서는 사부(배수천)의 애권 연마를 도운 화류계 여자였다. 기본적으로 ‘불상’을 ‘금괴’로 바꾸면, < 특명 > 역시 당시 전세계적인 트렌드라 해도 과언이 아닌 셀지오 레오네의 < 황야의 무법자 >(1964), 그러니까 이만희 의 < 쇠사슬을 끊어라 >(1971)나 < 용호대련 >(1974) 등 이두용 감독의 태권액션영화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 ‘스파게티 웨스턴’의 변형에 가깝다. 가짜 불상이 판 치고, 서로 다른 세력들이 주인공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암투를 벌인다. 영화 속 누군가의 대사처럼, “불상을 노리는 사람이 많지만 불상이 하나뿐이라는 게 비극”이다. 그리고 당연히 이런 영화에서, 흑장미를 협박하며 “5분 안에 나타나지 않으면 흑장미가 똥장미가 될 줄 알아라!”라는 식의 언어유희도 빠지지 않는다. 무엇보다 <특명>은 이두용 감독의 영화들처럼 만주 독립군들이 가죽점퍼에 나팔바지를 입고 화려한 발차기를 구사하는 ‘무술 레지스탕스 영화’라는 점이 가장 매력적이다. 수원화성 표현주의, 아수라 백작, 꺽기도 스타일 수원 화성을 무대로 펼쳐지는 후반부 심야의 추격 결투신은 거의 표현주의적인 명장면이다. 불상을 찾으러 나타난 아수라 백작 스타일의 선글래스 쓴 금발 남자를 비롯해, 성곽 이곳저곳에서 총을 겨누고 뛰어내리며 옥죄어오는 악당들의 위압감도 좋다. 그런 가운데 주인공은 느닷없이 <개그콘서트>의 ‘꺾기도’ 스타일로 느닷없이 ‘대’자로 드러누우며 적들을 당황하게 만든다. 이후 현주가 자신의 오래전 정혼자임을 알게 된 순간 찾아오는 황당한 연애장면들(사이좋게 자전거 타고 가다가 괜히 쓰러지는 그런) 만큼이나 당황스럽지만, 어쨌거나 설득력은 있다. 실력도 없는 사람이 비현실적으로 승리를 거두는 것은 아니니까. 나중에 다나까( 박동룡 )의 본거지를 습격할 때의 활력도 좋다. 모터사이클을 타고 쫓고 쫓기는 가운데 느닷없이 ‘쌍부채’ 액션을 펼치고, 급기야 모터사이클에서 뛰어올라 악당( 권일수 )에게 날아 차기를 후려갈기는 장면은 단연 압권이다. 이때도 멈춘 오토바이의 돌아가는 굉음은 멈추지 않는다. 승부는 끝났으되 관객의 감각은 여전히 열려있다는 액션영화 연출의 장인적 감각인 것. 그렇게 모든 상황이 마무리되고서야 주인공이 사실은 멀쩡하고 의협심 강한 ‘태권인’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요즘 사람들이 래프팅 하러 많이 가는 동강 혹은 한탄강에서 작별하는 장면을 끝으로, 그때서야 영화 제목이기도 한 ‘특명’을 받들어 떠난다. 그러니까 영화는 주인공이 비로소 ‘특명’을 받기 전까지의 이야기인 것. 한 송이 특명을 받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안타깝게도 인용하고 보니, 영화의 정서와 반대로 서정주 시인의 친일 논란을 불러일으킨 시의 한 구절일세). 라호 룡 김정란 감독: 김선경 각본: 최영철
이 작품은 원래 애니메이션 시나리오 작가인 박지연 감독이 만든 단편인데 박지연 감독은 원래 EBS에서 방영했던 애니메이션 ‘레카’와 ‘흑장미 부인의 문방구’ 등의 시나리오를 썼던 작가이다. 사실 그녀는 그 전에 한 번도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본적이 없다. 이 작품은 문화센터 워크숍에서 만들어진 작품인데 그 워크숍의 담당 강사는 나였다. 그녀는 ‘버리는 것은 없다’ 방식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 그녀는 내가 ‘작화는 이런 방식으로 하면 됩니다.’라고 테스트로 그려 준 컷 까지 모두 화면에 넣었다. 그리고 부족한 것은 친구, 후배 그리고 엄마와 자신의 중학교 제자들까지 한 장씩 그리게 해서 작품을 만들었다. 그리고 작품은 종종 채색이 덜된 부분이 보이고 심지어는 화면의 픽셀이 깨진 부분도 있다. 감독이 포토샵을 잘 모르는데다가 픽셀이 깨진 것도 괜찮아 보인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완성이 되고 나서 작품을 보니.........너무 재미있었다. 두 연인이 대화하는 내용을 따라가는 애니메이션인데 두 사람의 대화는 옛날 방화에서 나오는 그것이다. 그러니까 ‘날 잡아 봐요~’해변에서 뛰어가는 두 남녀 분위기. 들장미 소녀 캔디 같은 분위기의 화면에 옛날 방화의 말투의 성우녹음의 간극이 큰 재미를 준다. 신선했다. 그리고 상영 할 때마다 관객들도 무척 좋아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이러한 제작 방식과 완성된 작품이 주는 재미는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만들면서 재미를 느끼고 어찌되었던 끝까지 자신의 목소리로 노래하는 작품. 마이클 두독 비트의 ‘아버지와 딸’도 훌륭하고 픽사의 단편들도 훌륭하고 앙시나 자그레브의 대상 작품들도 훌륭하지만 그것만 보고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있으면 왠지 올림픽 금메달을 따야하는 육상선수 같은 기분이 되어 버린다. 언제부터였을까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것이 스트레스가 되고 많은 준비가 필요해 진 것이......... 이런 작품들을 보면 준비가 없어도 되며 즐겁게 연주하는 거리 공연 같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이 일들이 엄숙하지 않고, 다른 사람도 즐겁고, 만든 사람 스스로를 위로해 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