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그림1.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의 경우는 프로덕션과정이 가녹음→촬영→가편집→합성→종합편집 등의 과정으로 이어지며 에피소드당 4주 정도 소요된다. ⓒCentral animation studios 프로덕션 과정이란 흔히 본격적인 제작 기간을 말한다. 프리 과정이 우여곡절 끝에 잘 진행되었다면, 제작과정은 그야말로 순조롭게 잘 진행될 수도 있다. 많은 제작사가 프리프로덕션 과정에 많은 공을 들이는 이유도 본격적인 제작 과정인 프로덕션 기간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돌발적인 변수들을 최대한 줄이기 위함이다. 그렇기 때문에 프리프로덕션 과정에서는 각 제작사의 PD나, 제작 담당들의 업무가 눈에 띄게 많아지는데, 제작일정, 인력 분배, 신규인원 채용, 외주 진행, 예산, 기타 행정 업무들이 모두 이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프로덕션 과정에 들어서면 제작팀 전반의 업무가 상대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일반적인 경우로 보자면, 프리프로덕션 과정에서 진행된 시나리오-디자인-콘티-애니메틱의 검토가 끝나면 이를 바탕으로 제작에 들어가게 되면서, 감독은 시리즈 연출에 대한 전반적인 과정을 담당하며, 미술 감독과 촬영 감독, 그리고 애니메이션 감독들은 각각의 제작 공정에 대한 책임을 담당하고 진행하게 된다. PD들은 제작과정 전반에 대한 행정관리, 인사관리, 예산관리, 일정관리 등을 담당하고, 수시로 발생하는 일정 변동과 마감관리를 진행한다. 각각의 회사와 제작되는 작품의 성격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국내 TV 애니메이션 시리즈는 11~15분 분량의 26부작 작품의 경우 제작 기간을 거의 1년 정도로 상정하고 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보통의 제작 지원 사업이 약 1년 6개월 정도의 기간이며, 배급과 관련된 다양한 상황, 방송국 일정, 그리고 투자사 등의 판단 여부 등이 주요하다 하겠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제작사 입장에서도 제작 기간이 길어지면 당연히 제작비가 인상되기 때문에 제작기간을 합리적으로 구성해야 하는 지점이 제일 크다. 따라서 프로덕션 과정에 있어서 많은 갈등 부분은 작품 제작의 일정과 작품의 퀄리티 컨트롤에 있다. 물론 다른 복잡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전제 조건 하에 말이다. 하지만 TV 애니메이션 시리즈의 제작 과정은 (어떤 일이든 마찬가지겠지만) 그렇게 녹록치 않다. 일반적인 TV 시리즈의 프로덕션 과정은 다음과 같다. 애니메틱을 바탕으로 씬 및 쇼트, 분리된 각각의 영상들이 애니메이터에게 전달된다. 이는 프리프로덕션 과정에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 제작의 기초 단위로, 움직임을 만들기 위한 영상이며 움직임의 궤적, 시간, 대사 등이 포함되는 일종의 에피소드별 제작 설계도이기도 하다. 애니메이터는 이를 바탕으로 할당받은 분량을 점검하고 매일 매일 움직임을 만들어낸다. 여기서 만들어진 쇼트 단위 또는 씬 단위의 영상들은 애니메이션 감독에 의해 ‘재작업’ 또는 ‘통과’ 결정이 내려지고, ‘통과’ 딱지가 붙은 분량은 촬영팀으로 보내진다. CG로 진행되는 경우는 씬 단위 전체를 각 단위에서 마무리 짓기도 한다. 스톱모션의 경우에는 촬영과 애니메이팅이 동시에 이뤄지며, 이 과정이 끝난 이후 필요에 의해 후반 CG 팀으로 넘겨진다. 일반적으로 감독은 이 과정에서 가편집을 통해 앞뒤 장면의 완성도나 움직임의 훅업, 감정이나 톤의 흐름을 파악하고 전체적인 편집 타이밍을 점검하기도 한다. 이후 CG 실로 넘어간 작업물에는 이후 컴포지팅과 같은 합성 작업이 이뤄지고, 별도의 이펙트 과정이 들어가기도 한다. 물론 이 작업 이후에는 성우더빙, 사운드 디자인, 효과음 등등의 기간도 진행된다. 제작 기간을 1년으로 잡는다는 것은, (간단하게 계산해서) 프로덕션 과정 만으로만 본다고 하면 한 달에 두 편 정도의 분량, 즉 한 달에 23분 정도의 촬영본 또는 영상본이 나와야 일정에 문제가 없다는 의미가 된다. 하지만 이는 수치 만으로만 그러하고 실제로는 한 달에 30분 이상의 분량을 만들어 내야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게다가 방영 일자가 정해지는 방식에 자비가 없다 보니, 프로덕션의 과정은 더욱 힘이 든다. 말하자면 TV 애니메이션의 경우도 100% 사전 제작이 없다. 흔히들 많으면 (26부작 중) 8편에서 10편, 적을 경우는 4편을 사전제작하고 방영에 들어가기도 한다. 예를 들어 2017년 하반기인 9월에 방영이 시작되는 TV 시리즈물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제작사가 8편의 작품을 사전에 만들어 두고 매주 한편씩 방영을 한다고 하면, 보통 4개월이 지난 12월 말 정도가 되면 제작 속도와 방영 속도가 거의 비슷해지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말하자면 에피소드 16편 정도가 방영되고 나면, 제작사는 제작 일정과 전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통 한 편의 시리즈 에피소드 제작 과정을 4~6주 정도로 보는데, 각 공정별로 2주 정도씩 구분하고, 업무를 연달아서 작업하게 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풀 3D 애니메이션의 경우는 블라킹-애니메이팅-조명/FX렌더링-합성을 6주 정도 사이클로, 2D애니메이션은 레이아웃-원화-동화-촬영-합성 등을,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은 촬영-가편집-합성-FX과정을 6주 동안에 반복적으로 진행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각 에피소드의 제작 과정은 1편이 완성되는 6주 동안 다른 두 편이 동시에 맞물려 진행되어야 방영일정을 소화해 낼 수 있다. 당연히 모든 과정이 유기적으로 돌아가야 되는데, 만약 하나의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한다면 이 모든 일정이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에 일어난다. 언제나 그렇듯 문제가 없는 곳은 없다. 모든 제작과정에는 일정이든, 퀄리티든 반드시 문제가 발생하기 마련인데, 프리프로덕션을 공고하게 하는 이유도 이를 줄이기 위해서이다. 그렇다면 제작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는 것일까? 가끔 업계의 선배들의 이야기처럼 전설 같은 해결사(문제가 생긴 작화와 동화를 불과 며칠 만에 해결해 버린다든지 뭐 그런 정말 전설 같은 이야기)가 등장하거나, 외주 특공대들을 이용한다든지가 있지만, 가장 대표적인 일은 부끄럽지만, 야근이다. 많은 업계가 바뀌었다고 하지만, 아직도 우리 애니메이션 업계에서는 야근이 부지기수다. 영상 관련 종사자들의 거의 모두가 이런 경험이 있는데 아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그러나 냉정하게 말하자면 이는 프로듀서의 잘못이며, 일정 계산의 착오라는 점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가끔 방송에서 지난 시리즈들의 이야기를 함께 묶어 방영하는 에피소드, 보통 총집편이라 부르는데, 이것이 방영된다면 사고가 난 것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우리는 야심이 있었다. 장난감이 아니라 아이들을 위한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TV 애니메이션의 현재를 쫓는 포기와 무성의를 벗어나고자, 건물은 허술했지만 스튜디오의 젊은 스태프는 우리의 의욕에 답하며 힘을 모아 주었다. 비상 걸린 1년이 시작되고 우리는 맹렬히 일했다. 수면 부족과 과로, 너무 긴장해 감기도 걸리지 않았다. (중략) 몸이 많이 망가졌지만 우리는 행복했다. 그걸 격려로 버티며 일을 끝냈다. (중략) 텔레비전의 무서움을 조금은 알게 된 것은 그때부터다. 반복해서 같은 것을 요구하는 것이 텔레비전이었다. 뭐든지 일상화는 탐욕. 비상사태를 일상으로 요구받으며 알게 되었다. 미야자키 하야오, 「TV시리즈」, 「아사히신문」 1987년 9월 21일 자에서 부분 인용 오래된 이야기지만, 미야자키의 고백(?)에도 언급된 것처럼 ‘비상 걸린 1년’은 지금 2017년의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최근 업계로 진출하고 있는 젊은 대표님들과 사장님들도 모두 이러한 상황을 겪어 왔기 때문에 무리한 일정과 비정상적인 과정을 타파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며, 점점 이런 관행(?)이 사라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현실성 있는 일정이, 또는 회사의 규모에 맞는 작품과 일정을 선택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일이다. 이것이 작은 스튜디오가 지속적으로 인력을 유지하고 다른 프로젝트로 이어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참고로 우리 스튜디오도 지난 3년 동안 공식적인 야근이 없었다. 아니 한 일주일 정도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야근을 하게 된다면 다양한 방식으로 보존을 해드리고 있다. 애니메이션 업계의 모든 스태프, 아티스트 분들에게 건강과 안녕을...) 그림2. 제작과정에 가장 많이 사용되는 시트 양식. 이는 2D, 3D, 스톱모션 등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하게 사용되는데, 보통 제작 과정에서 전달되어야 하는 상황들과 진행사항들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각 에피소드 마다 씬 단위로 의견과 전달사항, 진행과정등이 담긴다. 이어서 후반 작업이다. 제작되는 방식에 따라 다르기도 하지만, 거의 모든 후반 작업은 사운드, 성우녹음, 사운드 디자인, 그리고 납품과정까지 포함된다고 보면 된다. 에피소드 하나당 6주 정도의 사이클을 겹쳐서 진행된다고 본다면, 후반 음악 과정은 2~4주 정도로 소요된다고 할 수 있다. 보통 성우들의 녹음은 2주에 2~4편을 묶어서 진행하는데, 공중파에서 방영하는 경우에는 방송 1~2주 전에 심의를 진행해야 하므로 방송 일정 최소 한 달 전에 진행한다. 우리같이 작은 스튜디오의 경우 초기 몇 편 정도는 감독이 함께 녹음 과정에 참여하고, 나머지는 녹음 스튜디오에서 별도의 녹음 연출자의 책임 하에 진행된다. 음악의 경우는 보통 녹음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곳의 소속 작곡자나 대표가 진행한다. 주제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 외 캐릭터마다 테마곡들이 존재하는데, 시리즈 전반에 걸쳐 사용되는 음악의 경우는 20곡부터 많게는 40여 곡에 이른다. 많은 녹음 스튜디오들이 평소에 다양한 분위기의 음악을 제작해 두고, 애니메이션 감독과 작곡가가 에피소드의 톤을 확인하면서 음악을 선정한다. 성우 녹음과 음악, 그리고 효과음 등의 작업이 완료되면, 마지막으로 감독의 종합 검토가 이뤄진다. 감독은 최종적으로 취합한 영상과 사운드들을 점검하고, 종합 편집을 진행하는데, 이때 마지막 편집이 진행되거나, 재촬영 또는 재녹음 등이 결정되기도 한다. 하지만, 보통은 일정 문제 때문에 간단하게 넘긴다. 왜냐면 방송 심의에서 수정 사항을 요구하거나 불가 판정 등이 오기 때문이다. 특히 5세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작품의 경우에는 특히 조심해야 하는데, 대사나 행동, 묘사되는 캐릭터 등에 불필요한 요소가 있을 경우는 문제의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심의에서 별다른 지적이 없으면, 이제는 방송이다. 공중파에서 에피소드 1편이 방송될 때는 그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기쁘다. 하지만 마음에 남는 순간은 마지막 에피소드가 방영될 때이다. 업계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제작하는 작품은 방송에서 보기 힘들다. 시간도 없고, 이미 너무나 많이 봤고, 그리고 너무나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지막 편은 가능하면 다 함께 본다. 많은 아쉬움이 묻어나기 때문이다. 자본, 시간, 일정, 능력, 마니아 또는 오타쿠, 노동, 열정, 정당한 대가라는 단어들이 그 마지막 편이 방영될 때 주마등처럼 흘러간다. 그리고 마지막 편이 방영되면, 프로젝트의 종료를 알리고 프로젝트에 참여한 사람들이 떠나기도 하고,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오기도 한다. 매번 에피소드에서 올라가는 엔딩 크레디트이지만, 그거 하나 믿고 덤벼들었던 사람들이다. 사람은 바뀌어도 작품에 참여했던 분들의 이름은 같이 간다. 말은 안 해도 스태프들은 방송 마지막에 올라가는 엔딩 크레디트에서 자기 이름만은 크게 보고 빨리 발견한다. 부모님들이나, 친구, 친척, 할머니들에게도 보여준다. 그게 ‘1년 동안의 비상사태’에 대한 보상일지도 모른다. 눈물겨운 보상이다. 하지만 진짜 보상을 해줘야 한다. 그들의 열정이 허비되지 않도록 정당한 대가가 지불되도록 말이다. 짧은 기간 동안 짧은 지면을 통해 “대한민국에서 애니메이션 만들기”라는 이름으로 연재를 시작하였는데, 어느새 마지막이다. 처음에는 재미로 시작하였는데, 무게감과 중압감이 장난이 아니게 다가왔다. 글재주가 좋은 것도 아니고, 탈고도 하지 못한 글들이었다. 이글도 아마도 탈고조차 못 할 듯. 그러나 아직 풀지 못한 어마어마한 이야기들이 많다. 한국 애니메이션이라는 시장의 현실도 냉정하게 보여주지 못했고, 스태프들의 인건비 문제도 깊이 있게 다루지 못했다. 하지만 또 언젠가 기회가 있을 것으로 본다. 지금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시간이 부족하다. 우리도 다음 에피소드를 준비해야 하고, 다음 프로젝트를 또 준비해야 한다. 이 기간이 보릿고개라 스태프들의 고용유지를 위한 방안도 준비해야 하고, 은행 대출도 해야 한다. 그래야 다음 프로젝트의 앤딩 크레디트를 볼 수 있으니까. 다들 파이팅이다. 스태프들, 아티스트 분들, 해결사분들, 그리고 대표님들. 그리고 애니메이션 마니아 분들 모두. 우린 또다시 ‘1년 동안의 비상사태’를 준비하며, 좀 더 좋아질 거라는 믿음과 이를 실현하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한태식
2017-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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