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이야기
- 감독
- 김준기
- 제작년도
- 2011
신사의 봄은 역설적이게도 벚꽃이 만발한 완연한 봄기운으로 아름답기까지 하다. 거기에 고령의 어머님을 휠체어에 모시고 한 여인이 천천히 들어선다. 바람에 떨어지는 벚꽃 잎이 술잔 위에 떨어진다. 장면은 어느새 그 잔을 들고 둘러앉아 노래를 부르며 목숨을 거는 조종사들의 복종의식으로 바뀐다. 그들이 부르는 노래는 군가 ‘동기의 사쿠라’로 천황을 위해 목숨을 바쳐 나라를 구하는 특공대의 생을 벚꽃으로 비유한 노래다. 1. 너와 나는 동기의 사쿠라. 같이 훈련소(군사 학교)의 정원에 핀 꽃. 그렇다면 지는 것은 각오하자. 멋지게 지자 나라를 위해. 2. 너와 나는 동기의 사쿠라. 같이 훈련소의 정원에 핀 꽃. 혈육 나눈 사이는 아니지만 왠지 마음이 맞았지. 3. 너와 나는 동기의 사쿠라. 같이 항공대의 정원에 핀 꽃. 바라봅니다 노을 진 남쪽 하늘을. 아직도 돌아오지 않는 1 번 비행기를 기다리며... 4. 너와 나는 동기의 사쿠라. 같이 항공대의 정원에 핀 꽃. 그만큼 맹세한 그 날을 기다리지 못하고 어째서 죽어 떨어져야 하는지 5. 너와 나는 동기의 사쿠라. 그처럼 흩날릴지라도. 꽃의 도시, 야스쿠니 신사의 봄날. 그 가지에 피어 다시 만나자. 야스쿠니 신사는 1869년(메이지 2년), 군 희생자의 넋을 달래기 위해 설립한 초혼사가 그 전신으로 일본 천황을 위해 싸우다 목숨을 잃은 사람들을 신으로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일본 제국주의 침략의 상징적 공간이다. 한일 간 역사인식은 참으로도 그 출발부터가 다르다. 일제강점기의 강압적인 통치와 수탈에 이어서 2차 대전(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에 의해 운영된 위안부가 그렇고 강제징용이 그랬다. 김준기 감독은 위안부 문제를 다룬 애니메이션 <소녀이야기>를 제작 국내외적으로 피해여성의 육성 녹취록을 바탕으로 실상을 널리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두 번째 역사고발 애니메이션 <환> 은 실화에 픽션을 더해 보다 예술적으로 표현하고자 노력한 작품이다. 천황을 위한 죽음을 통해 신사에 ‘가미’ 즉, 신(神)으로 모셔진다는 사상은 일본 전통신앙에 국수주의와 군국주의 지배 사상이 결합하여 왜곡된다. 보잘것없는 민초가 위대한 전쟁의 영웅들과 함께 나란히 묻혀 숭배받는다는 것은 현생을 뛰어넘는 영생불사 신의 환생인 것이다. 가미카제 [kamikaze, 神風(신풍)]는 신이 되는 의식으로 기능하게 되고 여기서 개인의 인간성과 주체성은 말살되어 비참하게 산화하게 된다. 실제로 가미카제용 비행기는 착륙장치와 탈출장치가 없이 폭탄만 가득 싣고 목표지점에 겨우 갈만큼의 기름만 주고 나는 방법만 익힌 어린 조종사들이 강제로 태워졌다는 증언 속에 징용조선인이 육탄방어와 공격에 대부분 희생되었을 것으로 본다. 주인공 또한 당시 가족을 지키고자 강제로 조종석에 앉혀져 다음 생에서나마 조국의 가족과 함께하고자 하였을 것이리라... 야스쿠니신사와 일본항모 갑판 위에서 치러지는 출격 전 복종의식은 그들에게 개인에서 신이 되기 위한 경계를 넘는 숭고한 의식이지만 조선인으로 참전한 주인공에겐 망국의 식민지 노예나 다름없는 처지에 참담함은 이루 말로 표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의 제국주의 전쟁에 어쩔 수 없이 끌려가 희생당한 참전 조선인들의 넋이 야스쿠니 신사에 봉인된 체 70여 년이 넘게 매일 출격하는 악몽에서 그들을 자유롭게 해야 한다고 이 작품은 오늘날 우리들에게 애타게 호소하고 있다. 그네들이 애국심과 전우애로 목숨을 바쳐 사쿠라 가지에 다시 피어나길 염원하였듯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되어 오늘날도 끝나지 않고 계속 반복되는 순환의 전쟁터에서 산화한 징용 조선인의 넋이라도 구해오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익히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을 사실적인 이미지로 우리 앞에 강렬히 재현하되 감성적인 터치를 하고자 애쓴 스토리 설정은 마지막에 도달해 주인공의 넋마저 욱일기의 방어벽에 막혀 어머니와 부인과 만나지 못하며 더욱 간절하게 한다. 주인공에 좀 더 감정이입이 되기 위한 설명과 이야기가 부족한 점을 빼고는 민감한 역사적 소재를 예술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으며 단편이지만 스케일적인 면에서나 영상적 완성도 면에서 매우 훌륭한 작품이라고 본다. 이미 이탈리아에서 개최된 제17회 퓨처필름영화제에서 관객상을 받는 등 해외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단편이라 영화제나 특별 상영회에서나 만나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인터뷰가 중심이 된 다큐멘터리들은 많다. 인터뷰는 제작자와 등장인물이 서로 대화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다. 작품 속에서 대화가 온전히 다 드러나는 경우도 있고, 제작자의 목소리가 질문만 하는 경우, 제작자의 목소리가 배제되고 등장인물의 목소리만 들리는 경우가 있다. 어떤 것을 선택하든지 혹은 보여지든지 관객들은 등장인물과 제작자의 모습을 살필 수 있다. 다만, 제작자의 목소리나 모습이 등장하지 않는 경우에는 등장인물을 통해 제작자의 감정이나 태도를 짐작할 수 있게 된다. 김준기 감독의 < 소녀이야기 >, 태준식 감독의 <미안해요, 함께 할게요>는 등장인물의 목소리만 나온다. < 소녀이야기 >는 일본군 위안부로 아픈 삶을 살았던, 정서운 할머니의 이야기이고, <미안해요, 함께 할게요>는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상처를 나누려고 하는 정신과 의사 정혜신의 이야기다. <소녀이야기>는 정서운 할머니의 생전 육성을 바탕으로 과거의 역사를 애니메이션으로 재현했다. 공장에서 일하면 아버지의 옥고를 풀 수 있다는 말만 듣고 떠난 길이 일본군을 상대해야 하는 일인 줄은 몰랐다. 정서운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그녀가 겪은 비극적 사건을 현실로 다시 끄집어 낸다. 애니메이션으로 재현된 것은 그녀의 인터뷰에 근거한 ‘현실’이고, 이것은 현실을 기록하는 또 다른 표현이 된다. 관객은 인터뷰의 생생함과 애니메이션의 동화적 사이에서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지금 일어나고 있는 문제와 부딪히게 된다. 여기에 위안부 문제를 안고 먼저 세상을 떠난 그녀의 인터뷰는, 현재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지니는 역사적 책임감에 안타까움을 더하게 한다. <미안해요, 함께 할께요>는 정신과 의사 정혜신의 아픔과 미안함을 듣는다. 정혜신은 죽음의 긴장감이 없는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을 만나고, 그들의 고통 속으로 같이 했던 시간을 말한다. 이 과정에서 그녀가 이야기 하지 못한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정보가 제시된다. 그리고 다시 광화문 앞에 선 정혜신, 그녀의 인터뷰는 그녀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쌍용차 노동자들의 문제를 공감하고자 하는 이들의 목소리이다. 마지막 장면에 서 있는 다양한 연령대 사람들의 메시지는 공감하자는 일종의 제안이고, 극단적 고립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움직임이다. 다큐멘터리는 현실을 다루지만, 그 안에 일어난 사건과 인물은 언제나 과거의 기록들이다. 시간은 흘러가고 있고, 보여진 것들은 이미 과거의 것들이기 때문이다. 과거에 일어났던 일이 현실로 다가오게 만드는 힘 중에 하나가 인터뷰다. 인터뷰를 통해 관객은 ‘이런 일이 있었구나’ ‘정말 그렇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관객은 그 인터뷰를 신뢰한다. 단지 그 말을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이나 등장인물이 과거를 기억하는 현실의 태도는 현재이고,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 문제들 속에서 다큐멘터리가 발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두 작품은 그렇게 과거가 아니라 현재를 말하고 있고, 그녀들의 인터뷰를 통해 제작자들이 자신의 발언을 하고 있다.
3월이면 누이가 생각난다. 흰 저고리에 버선발이 드러나는 검은 치마를 입고 92년 전 거리로 나선 누이들... 일제의 폭거에 항거하던 조선 민중들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민족 존폐와 생존의 문제에 목숨을 걸고 항거하였던 그 시절 일본 제국주의의 팽창주의에 의해 치뤄진 대동아전쟁에 강제로 끌려가 성적 노리개로 희생당한 누이들은 아직도 먼 타국의 전장에서 명예회복을 통한 완전한 복귀를 하지 못한 체 구천을 떠돌고 있는 현실을 일깨우는 영화 한편이 있다. 김준기 감독의 < 소녀이야기 >는 이러한 위안부 문제를 다큐 형식의 애니메이션으로 묘사해내 국내외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는데.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의 협조와 이제는 고인이 된 정서운(1924-2004)할머니의 육성증언록을 바탕으로 실제 겪은 위안부 이야기를 애니메이션 영화로 구성함으로써 관객들에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당시의 생생한 현장감을 느끼도록 3D이미지로 잘 표현해 냄으로써 한국 애니메이션 사에서 역사다큐라는 장르개척과 더불어 새로운 시도로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영화의 줄거리를 살펴보면 위안부 할머니인 정서운의 목소리와 함께 시간은 일제치하의 조선 어느 농촌마을의 기와집에 일본 순사가 들이닥쳐 전쟁물자로 사용하고자 놋그릇들을 내놓으라고 요구한다. 그들의 요구를 거절한 아버지는 주재소에 갇히고 소녀와 어머니는 일본 공장에서 잠시 노역을 하고 오면 아버지가 풀려나고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하는 이장의 꼬임에 넘어가 소녀는 머나먼 타지인 에 배로 며칠을 걸려 도착하게 되고 이곳에서 공장일이 아닌 일본병사들의 성 접대부인 위안부로 끌려온 사실을 뒤 늦게 알게 되지만 도망칠 수도 어찌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목숨만을 부지하며 하루하루 치욕적인 생활을 하게 되다 일본군이 패하여 도망치며 모든 것을 소각하며 위기에 빠졌으나 다행히 현지인의 도움으로 기적같이 빠져나오게 되어 고향에 돌아오지만 아버지는 옥에서 죽음을 당하고 난리 통에 가족은 뿔뿔이 흩어져 집은 폐허가 된 체 소녀를 맞이하게 된다. 일제의 잔혹하고 파렴치한 제국주의의 모습을 한 소녀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잔잔하지만 큰 울림의 감동을 전해주는 이야기이다. 애니메이션으로 표현된 < 소녀이야기 >는 고도성장과 물질적 풍요의 시대에 잊혀져가는 우리 민족 누이들이 겪어야 했던 고초와 치욕의 역사를 영상기록으로 증언하여 오늘날까지 제국주의의 오만함에 빠진 그들의 만행을 고발함으로써 반성하게 하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데 이는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 앵글 경쟁부문 상영을 시작으로 독일 슈트트가르트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단편 경쟁부문 진출 등 국내외에서 큰 반향과 주목을 받고 있는 것으로 증명되고 있다. 감독과의 대화에서 김준기 감독은 굳이 다큐적 이야기를 애니메이션으로 하고자 했던 이유를 물었던 적이 있는데 그는 아주 자신감 있고 당연하다는 듯이 애기했다. “애니메이션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이 사실성과 객관성을 전달하는데 어려운 장르라는 편견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기록영화로 표현 할 수 없는 것들을 표현 할 수 있다는 장점 또한 있는 것이고 각각의 캐릭터를 표현 할 때 그 스토리 안에서의 역할을 고려한 디자인 설정이 되었다. 즉, 일본군이 선하게 표현되는 것은 이야기상 맞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좋지 않은 인상으로 표현되었다. 이것이 일반적인 다큐영화와 애니메이션으로 표현된 다큐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김준기 감독은 청강문화산업대학교 아티스트레지던스를 통해 이번 작품을 완료하여 새로운 제작시스템의 모델로 평가받았다. < 소녀이야기 >는 극장에서 만나긴 당분간 어렵겠지만 올 5월 완공되는 위안부박물관에 상시상영을 계획하고 있으니 기대해도 될 것 같다. 차기작으로 또다시 태평양전쟁 때 가미가제로 출격한 한인을 소재로 단편을 준비하고 있다. 사라지지 않는 일제에 대한 우리의 피해의식은 아마도 그들에 희생된 영혼들이 고향으로 돌아가 편안히 잠들 때라야 영원히 사라질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