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어머니
- 감독
- 김기덕
- 제작년도
- 1966
- 출연
- 심연, 이기홍, 박철, 김애라, 지계순, 윤신옥, 서정희, 이정수, 강계식, 추봉, 임동훈, 박병기, 박순이, 엄앵란, 남궁원, 황정순, 김승호, 한은진, 이민자, 최지희, 이낙훈, 고은아, 이향, 장훈, 김웅, 최삼, 최성, 김무용, 경윤수, 임성포
1.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한국고전영화를 보는 이유는 전부 비디오에세이 만들기와 관련이 있다. 한국고전영화를 ‘본다’기보다 다음 비디오에세이를 만들기 위해 ‘탐색’하는 것이다. 누가 들으면 ‘비디오에세이깨나 만드나 보다’라고 생각하겠지만, 부끄럽게도 그건 아니다. 재작년에 어도비 프리미어 프로그램을 구입한 이후 계속해서 결과물들을 산출하고 있기는 하나 누군가와 함께하는 작업이 아닌 이상 혼자 하는 것들은 다 재미를 위해 하는 것일 뿐이어서 그냥 폴더에 담아두기만 한다. ‘비디오에세이를 만들기 위한 목적으로 영화를 본다’라고 얘기하는 지점에서 이미 나는 ‘땡’ 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 수년 전 미디액트에서 ‘오디오비주얼크리틱’을 가르쳐주신 선생님들이 들으면 혀를 차실 얘기이기 때문이다. 영상을 영상으로서 비평하는 시도로서 ‘오디오비주얼크리틱’이 의미 있는 작업이 되려면 역시나 그 작업의 최종 목적지는 여러 영상을 짜깁기해서 그럴듯하게 붙여놓고 거기에 어울리는 음악을 깔아서 산출하는 mp4 파일이 아니라, 상대하고 있는 대상(물)과 그 대상(물)을 둘러싼 세계에 대한 적극적인 이해와 적절한 통찰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그 자체로 매혹적인 또 하나의 작품으로서 기능할 수 있는 시도여야 하기 때문이다. 즉, 영화를 이것저것 보다가 괜찮은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비디오에세이를 만든다고 하면 그건 자연스러운 흐름이지만, 비디오에세이를 만들겠다고 작정하고 그것에 걸맞은 영상을 탐색한다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행위이다. 하지만 그 수업에서 선생님들은 분명 이렇게 말씀하시기도 했다. ‘비디오에세이’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안 보던 고전영화들을 본다면, 그것 자체로도 좋은 일이라고. 사실 ‘한국고전영화’야말로 아도르노가 정리한 대로 “문화적으로 형성된 특수한 대상에 대한 고찰”1)이라고 하는 에세이적 방법론의 대상으로 삼기에 가장 좋은 소재다. 여튼 그런 불순한 목적으로 한국고전영화를 보는데, 최근에 관심을 갖고 있는 소재를 말하기 위해 내가 만들다가 만 한 편의 비디오에세이 <60년대 샐러리맨의 하루>를 말해보려 한다. 1959년작 < 여사장 >(한형모)부터 < 구봉서의 벼락부자 >(김수용, 1961), < 삼등과장 >(이봉래, 1961), < 월급쟁이 >(이봉래, 1962), < 골목안 풍경 >(박종호, 1962), < 두고만 보세요 >(김봉환, 1964), < 떠날 때는 말없이 >(김기덕, 1964), < 회전의자 >(이형표, 1966), < 억울하면 출세하라 >(심우섭, 1969) 등 50년대 후반에서 60년대 중반 사이의 영화에서 직장인들의 출퇴근, 회의, 월급날, 신입사원 채용, 면접, 점심시간, 사내연애, 근무 중 농땡이 부리기, 상사의 꾸지람 등의 장면들을 골라 붙여 만든 것이다. 부끄럽게도 어느 정도 만들고 나서 조금은 재밌지 않나 하는 생각에 몇 명에게는 보여주고 반응을 살핀 적도 있었다. 그중 몇 명으로부터는 냉철한 피드백을 받아 수정하려는 생각으로 처박아 두었다. 이 <60년대 샐러리맨의 하루>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 오발탄 >(유현목, 1961)을 갖다 쓴 부분인데, 바로 김진규의 직장 동료인 여성 타이피스트가 등장하는 두 장면이 그것이다. 첫 번째 장면은 계리사사무소에서 상사가 자리를 비운 사이 타이피스트가 분첩을 꺼내 찍어 바르며 “육시랄하게 시간도 안 가지”라고 말하고 김진규에게 상사 없을 때나 쉬지 언제 쉬냐고 말하는 장면이다. 그런데 곧바로 상사가 돌아오는 소리가 들려 타이피스트는 후다닥 분첩을 집어넣고 다시 바쁜 손동작으로 타자기를 친다. 두 번째 장면은 이들이 퇴근하는 장면으로, 타이피스트가 “월급도 받았는데 집에 그냥 가냐”며 김진규를 낚으려고 하다 김진규가 “월급을 아내에게 주는 것도 멋진 일이다”며 거절하니 “흥, 재~미없어”하고 사라지는 장면이다. 타이피스트가 쌩하고 사라지자 혼자 남은 김진규는 이가 아파 볼을 만지면서 제 갈 길을 가지만, 보기에 따라서는 ‘노잼인증’을 당해 겸연쩍은 느낌으로 빠르게 자리를 뜨는 느낌으로도 보인다. 원작을 읽지 않아서 이 장면이 원작에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김진규 같은, 즉 세상의 모든 고민을 다 짊어진 것 같은 매사 진지하기만 한 직장 동료에게 어떻게도 손쓸 수 없는 더없이 적절한 공격 타이밍으로 촌철살인의 일갈을 할 수 있는 젊은이 특유의 여유랄까,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오발탄>의 보석 같은 장면이었다. 심지어 ‘육시랄’이라는 욕설의 처리가 너무 자연스러워서 마치 그 대사엔 욕설이라곤 전혀 없었던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 외의 영화들에서도 사무공간을 배경으로 하는 장면에서 김숙일, 도금봉, 최지희 같은 여배우나 이름을 알 수 없는 단역 여배우들이 김승호나 김희갑, 주선태 같은 문제적 상사들에게 속 시원한 한마디를 날리는 모습은 꽤나 자주 볼 수 있었고, 대사뿐 아니라 존재 자체로도 전통적인 규범이나 집단으로부터 자유로운 전후 세대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일군의 여배우들 즉, 노경희, 양미희, 나애심, 안나영, 김의향 같은 배우들의 활약도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왔다. 이중에 < 서울의 휴일 >(이용민, 1956)과 < 화심 >(신경균, 1958) 등에서 너무나 매력적인 모습을 보여준 양미희의 팬을 자처하며 그녀의 필모를 깨기 위해 보게 됐던 홍성기 감독의 < 열애 >(1955)에서, 나는 한국고전영화에 대한 새로운 고찰의 국면을 만나게 되었다. 2. 한국고전영화를 가끔이지만 조금씩 보다 보니 어느 순간 한국고전영화에 점점 익숙해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영화를 보는 데에 익숙하고 안 하고 할 게 뭐가 있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나는 내가 한국 사람이기 때문에 한국고전영화를 픽션으로서 이해하기 어렵다고 보는 쪽이다. 바꿔 말하면, 한국고전영화에서 내가 목격하는 ‘과거의 한국’이나 ‘과거의 한국인’은 내가 아는 현실의 그것과는 너무 다르거나, 반대로 내가 아는 현실의 그것들을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내기 때문에 이들의 작용이 픽션으로 느껴지기보다는 ‘영화’의 외피를 쓴 무의식의 덩어리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잘 찍고 내러티브가 깔끔하게 떨어지는 영화를 볼 때도 뭔가 뒷맛이 씁쓸하고, 내러티브가 산만하고 완성하기에 급급했다 싶은 영화를 볼 때는 오히려 마음이 편해진다. 그런 면에서 한국고전영화는 내게 있어 재미가 있다/없다, 이해가 잘 된다/안 된다 하는 문제가 아니라 충분히 익숙한가 아닌가의 단순한 문제였던 것 같다. 다만 ‘익숙해진다’는 것은 한국고전영화의 ‘디폴트값’을 알아챘다는 뜻이어서, 익숙해지게 되면 익숙한 것들 사이에서 특이한 것을 구분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이 왜 특이하게 여겨질까를 생각하는 과정에서 가끔 의외의 재미가 찾아오기도 한다. 홍성기 감독의 <열애>를 본 후, 나는 내가 배우 ‘석금성’과 ‘복혜숙’을 혼동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열애>에 나오는 복혜숙은 출연뿐 아니라 영화의 시작과 끝에 등장하는 인상적인 내레이션을 담당하고 있기도 한데, 그 목소리가 석금성의 목소리인 걸로 착각이 되었던지 나는 <열애>의 그 인물을 한참이 지난 뒤까지도 ‘석금성’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사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가 닮은 꼴 배우를 헷갈리는 일은 흔한 일이다. ‘닮았다’ ‘안 닮았다’라고 하는 조형적 유사성에 근거한 판단조차 개인의 이미지 경험이나 레퍼런스에 영향받기 때문에 심지어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전혀 닮지 않은 배우들도 가끔은 헷갈림의 대상이 된다. 그런데 복혜숙과 석금성은 젊은 시절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동그란 얼굴에 눈이 새까맣고, 항상 깔끔하게 뒤로 빗어넘긴 머리를 하고 있는 게 약간 비슷하다. 심지어 음성도 걸걸하면서 중저음인 게 비슷하다. 하지만 내가 헷갈린 건 그 둘이 외양과 음성이 비슷해서가 아니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복혜숙’이란 배우가 있고 ‘석금성’이란 배우가 있는 것은 알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영화에서 할머니 역으로 많이 등장하는 그 사람을 나는 ‘한 명의 사람’으로 뭉뚱그려 생각했었다. 그 사람이 어떨 때는 착하게 나오고(복혜숙), 어떨 땐 고약하게도 나온다고(석금성) 생각했던 것이다. 왼쪽은 24세의 석금성이고 오른쪽은 26세의 복혜숙의 모습이다. 둘 다 토월회에 몸담고 있던 시절. 사진 출처: 석금성-1930년 1월 8일 자 《조선일보》, 복혜숙-1931년 8월 9일 자 《동아일보》 복혜숙과 석금성을 빠르게 구별하기 위해 찾은 김남석의 『조선의 여배우들』(국학자료원, 2006)은 연배마저 비슷한(복혜숙이 1904년생, 석금성이 1907년생으로 세 살 차이) 이 두 사람이 토월회라는 신극단체에서 함께 활동했던 인연이 있음을 알려주었다. 김수용 감독은 복혜숙과 석금성이 1957년 여름 < 배뱅이굿 >을 찍기 위해 충청도 온양에 머물렀을 때 사이가 굉장히 나빠 각기 다른 민박을 쓰면서 서로를 비방했다고 썼다. 2) 석금성은 워낙 동료 연예인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었고 3) , 실제로 모 배우가 석금성의 거친 성격을 증언하기도 했다고 영화사연구자 L선생님으로부터 들었다. 하지만 복혜숙이 남긴 ‘나의 교유록(交遊錄)’ 4) 을 보면 복혜숙의 성격도 만만치 않다. 토월회에서 활동하다 영화계에 들어왔고 영화에선 둘 다 주로 할머니 역을 했던 공통점도 있으니 거의 지척에서 서로를 봤을 텐데 사이가 안 좋았다는 이야기를 접하게 되니 두 배우에 대한 흥미가 더 커졌다. 3. 1904년생 복혜숙과 1907년생 석금성은 각각 10대 후반에 신극 단체인 토월회에 입단해 타고난 끼를 바탕으로 각각 인기 여배우로 거듭났지만 토월회 입단 전후로 기생 활동을 할 정도로 당시의 불안정한 쇼비즈니스계를 통과하고 있었다. 5) 20~30대 시절 영화에 단발적으로 출연했지만(복혜숙은 < 농중조 >(1926), 석금성은 < 심청 >(1937)) 본격적으로 영화를 시작한 것은 40대 전후의 나이였다(복혜숙은 < 수업료 >(최인규, 1940)에서 영달이 할머니로, 석금성은 < 마음의 고향 >(윤용규, 1949)에서 최은희 어머니로). 이들보다 불과 10살가량이 어린 문예봉, 김신재, 김소영 등이 당시 조선에 형성되기 시작하던 영화 저널리즘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현숙하고 정갈한 이미지로 전시 체제 프로파간다의 얼굴이 되어가는 동안, 복혜숙과 석금성은 현실 세계에서도 영화 속에서도 이미 ‘여성’보다는 ‘모성’을 수행하는 중이었다. 복혜숙은 <수업료>에 영달이 할머니로 출연했을 때 고작 37세였다. 그녀의 당시 나이를 알고 <수업료>를 다시 봤더니 그냥 할머니 분장한 젊은이여서 웃음이 절로 나왔다. 바로 그다음에 출연한 < 반도의 봄 >(이병일, 1941)에서만 해도 그는 치마 정장에 하이힐을 신고 라디오를 할부로 구매하는 활달한 커리어우먼으로 등장하는데, 그 후로 맡은 역할은 거의 다 온정적인 할머니나 어머니, 유모, 식모 같은 것들이었다. 마찬가지로 석금성은 <마음의 고향>에서 최은희의 완고한 친정어머니로 등장하는데 그 이후 < 그 여자의 일생 >(김한일, 1957), < 자유결혼 >(이병일, 1958), < 촌색씨 >(박영환, 1958) 등에서 표독스러울 정도의 거친 모성을 연기하거나 아예 무당(< 김약국의 딸들 >(유현목, 1963)이나 < 강화도령 >(신상옥, 1963), < 만고강산 >(최인현, 1968)) 같은 강렬한 역을 연기했다. 영화계에 본격적으로 들어온 이후 연거푸 전형적인 역할에만 캐스팅되었기 때문에 이들의 출중한 연기력은 안타깝게도 개점휴업한 상태로 있을 수밖에 없었다. 6) 내가 이들을 혼동한 데에는 연달아 비슷한 역(온정적인 어머니냐 완고한 어머니냐의 차이가 있을 뿐)으로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연유도 있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실생활에서 두 사람이 사이가 좋지 않았다면 그건 두 사람이 사람들과 교류하는 방식의 차이에서 기인했을 수 있을 것 같다. 복혜숙은 자신이 ‘연기’를 좋아하고 원한다는 사실을 일찍부터 알았기 때문에 연기를 지속하기 위해 기생 활동이나 다방 마담을 하는 것도 마다치 않았고 7) 대한영화배우협회, 성우협회 회장을 맡는 등 영화계 대표 ‘인싸’였다. 심지어 임화수도 복혜숙 앞에서는 꼼짝을 못 했다고. 8) 하지만 석금성은 데뷔 전 기생 이력을 잘 드러내지 않으려 하거나 9) 연예인 친구보다는 평범한 주부들이나 동네 부인들과 주로 어울리다가 흔히 말하는 '주부도박단' 사건에 두 번이나 연루되는 등의 사정으로 봤을 때 연예계에서는 전형적인 '아싸'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오부자>(권영순, 1958)에서 55세의 나이로 10대 처녀 시절을 연기하고 있는 복혜숙. 하지만 이 둘은 오히려 생애 말기에 연기자로서 활발한 모습을 보였다는 점에서 또 다시 공통분모를 형성한다. 둘은 토월회 50주년 기념행사에 나란히 참여해 연극 <이대감 망할대감> 공연을 같이 하기도 했고, 10) 복혜숙은 79세에 사망하기 전까지 약 10여 년간, 석금성은 89세에 사망하기 전까지 약 10여 년간 활발하게 활동했다. 76세의 나이로 < 사랑의 조건 >(김수용, 1979)에서 한겨울 눈밭 한가운데서 연기를 펼친 복혜숙이나, 80세 넘어서 출연한 TV문학관 <사평역>, KBS 설특집 드라마 <너도 늙어봐라>, SBS 드라마 <분례기>, <친애하는 기타 여러분> 등에서 엄청난 존재감과 명연기를 선보인 석금성을 보면 생애 마지막 나날까지도 꾸준한 자기 관리로 일을 해나갔던 커리어우먼으로서의 모습에 존경을 바치지 않을 수 없다. 유작인 SBS 드라마 <친애하는 기타 여러분>(1993)에 출연한 석금성의 모습. 4. "악역을 많이 맡아 욕을 무던히 먹어서인지 오래 살지요? 이제까지 살면서 한숨도 많이 쉬고 눈물도 많이 흘렸지만 이제는 오늘 일은 오늘, 내일 일은 내일 하는 식으로 산답니다.” 1983년의 인터뷰에서 석금성은 이렇게 말했다. 덧붙여 “지난해에 선배인 복혜숙 씨마저 타계하는 바람에 인생이 덧없다는 생각이 든다”고도 말했다. 복혜숙은 72년의 인터뷰에서 토월회의 가장 큰 성과로 1929년에 공연했던 <아리랑고개>를 언급하며 “처녀 봉이(석금성)가 일본인에게 농토를 빼앗긴 아버지를 따라 괴나리 봇짐을 들고 간도로 가면서 사랑하는 총각과 이별하는 구슬픈 장면이 나오는 것인데, 석금성의 눈물을 따라 온 극장 안이 울음바다가 됐으며 임검경관마저 같이 울었다”고 회고했다. 11) 이는 두 사람이 서로를 공식적으로 언급한 흔적으로, 내가 찾은 바로는 이 두 개가 유일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두 사람이 함께 찍은 사진도 한 장 발견했다. 《동아일보》 1981년 5월 14일 자 11면. 함께 찍었다기보다 단순히 한 공간에서 찍힌 사진 같기도 하다. 복혜숙과 석금성은 복혜숙의 남편인 김성진을 사이에 두고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다. 언제 찍은 사진인지는 미지수이지만 아마도 1973년에 있었던 토월회 50주년 행사 때가 아니었을까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토월회에서 데뷔했다는 것 말고는 사실상 별다른 연결고리가 없는 두 사람을 무리하게 묶어서 생각을 한다는 생각도 했지만 내가 두 사람의 행적을 파악하며 느낀 건, 진부하게도 ‘마지막에 살아남는 자가 승자’라는 문구이다. 두 사람은 그 어느 여배우보다도 길게 살았고, 길게 연기했다. 올해 40대에 접어들어 ‘위기의 중년’을 체감하는 나로서는 그 어떤 누구의 조언보다도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점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생각한 다음 비디오에세이에 대한 계획은 우선 여기까지이다. ※ '시청각연구인'이라는 바이라인에 대한 추가 설명: 지난해까지는 원고 쓸 일이 있으면 '한국영상자료원 직원'이라는 직함을 썼고 그전까지는 항상 '중앙대 대학원 박사과정생'이라는 표현을 썼었다. 그런데 지금은 한국영상자료원 직원도 아니고 중앙대 박사과정생으로서 뭔가를 수행하고 있지도 않아 이 원고를 다 써놓고 '영화연구자'라는 표현을 이름 옆에 달아두고는 있었지만 뭔가 찝찝했다. '연구자'라고 하는 표현은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영어의 researcher가 아닌 scholar와 거의 동의어로 쓰이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쓰기 부담스러웠다. 그러던 어느 날 영상자료원 4층 사무실의 복사기 앞에서 출력물이 나오길 기다리며 뭔가를 심사숙고 하고 있는 김기호 차장님을 봤다. 김기호 차장님은 복원팀에서 오랜 기간 아키비스트로 일했고 지금은 학예연구팀에서 조금은 다른 연구들을 수행하고 있다(고 알고 있다. 내가 팀을 떠났기 때문에 자세한 건 모른다.) 순간 그 어떤 연구자보다 자신의 일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성찰하는 김기호 차장님 같은 사람이야말로 ( KOFA Issue paper vol. 1 , vol. 2 ) '연구하는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대학원 따위(표준국어대사전에서 '따위'를 검색했을 때 나오는 1번, 2번 용례에 해당. 3번 아님)의 제도적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고 해서 저 사람을 '연구자'라고 부르지 못할 일은 없기는 하나 '연구자'보다 그럴듯한 표현이 없을까 하다가 '연구인'이라는 단어를 생각하고 거기서 더 나아가 '시청각연구인'이라는 말을 생각하게 됐다. 내 주변에는 확실히 '박사'라고 하는 학계에서 인증한 소위 '메이카'를 갖고 계신 연구자 선배님들도 많지만 내가 그들을 존경한다면 그건 '메이카'를 갖고 있어서가 아니라 그들이 항상 꾸준히 우리의 삶과 사회가 노출하는 모순들을 자신의 연구영역 안에서 이리저리 관찰하고 연구하기를 게을리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직은 '메이카'를 취득하지 못한 때문도 있지만 일단 나는 김기호 차장님 같은 '시청각연구인'을 표방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 말에 부합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앞으로도 계속 노력해보고자 한다. *** 1) Translated from the German by R. Hullot-Kentor and F. Will, 'The Essay as Form', New German Critique , No. 32. (Spring-Summer, 1984), p.151 2) 김수용, '드라마 분위기 설정해가는 역광 같은 배우, 복혜숙', "한국의 여배우들",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공식블로그, 2014. (https://siwff.tistory.com/503) 3) '77세의 원로여우 석금성 씨 20년 만에 <백구야...>로 컴백하면서 또 악역', 《경향신문》, 1983년 1월 29일 자. 4) 복혜숙이 1981년 4월부터 두 달에 걸쳐 《동아일보》에 연재한 '나의 교유록 - 원로여류가 엮는 회고'. 5) 석금성은 데뷔 전 기생이었고 데뷔 후에는 권번생활을 하지 않았으나, 복혜숙은 오히려 데뷔 후에 이름이 알려진 것을 이용해 권번에 적을 두고 기생 활동 및 기생 교육 활동을 했다. 복혜숙, '나의교유록 - 원로여류가 엮는 회고 <86> 복혜숙⑯: 권번시절', 《동아일보》 1981년 5월 11일 자; 김정은, 「일제시대 기생과 여배우의 관계: 대표적인 여배우를 중심으로」, 숙명여대 석사학위논문, 2007.; 이승연, 송지영, 「일제시대 인천권번에 대한 연구: 용동권번을 중심으로」, 『인천학 연구』 6, 2007.2. 6) 약간 예외적인 모습을 보여준 영화도 있기는 했다. <오부자>(권영순, 1958)에서 복혜숙은 55세의 나이에 10대 처녀 시절을 연기했는데 어딜 가나 사람들을 웃겼다는 복혜숙의 진가가 이 영화에서 조금이지만 발휘되고 있다. 석금성은 <고려장>(김기영, 1963)에서 그나마 전형적인 표독스러운 계모를 탈피한 연기를 할 수 있었는데, 그의 강렬한 이목구비가 오히려 이런 톤 다운된 역할에 잘 어울리는 것으로 봤을 때, 그가 다양한 역할을 맡지 못했다는 점이 정말 안타깝다. 7) 복혜숙은 권번 활동이 적잖은 돈벌이가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최성해, 이월화, 김소진 등 토월회 멤버들과 함께 권번을 드나들었으며, 권번에서 돈을 벌어 연극을 하자고 의기투합했었다고 한다. 복혜숙은 특히 권번에서 기생들에게 일본어와 현대무용을 가르치기도 하고 후에 판소리 명창이 된 박녹주와 콤비를 이뤄 손님들을 웃겼다고 한다. 복혜숙, '나의 교유록 - 원로여류가 엮는 회고 <82> 초창기의 여배우 복혜숙⑫: 초창기의 여배우', 《동아일보》 1981년 5월 1일 자; '나의 교유록 - 원로여류가 엮는 회고 <86> 복혜숙⑯: 권번시절', 《동아일보》 1981년 5월 11일자. 8) 복혜숙, '나의 교유록 - 원로여류가 엮는 회고 <96> 복혜숙 26: UN군 환영 연극', 《동아일보》 1981년 5월 25일 자. 9) 석금성은 1930년대의 언론 인터뷰에서 토월회 배우 데뷔 전 이력을 '개인 사정'이라고 표현하는 정도였고, 언론들도 '쓰라린 세파에 몸을 적시고 있었던' 시기 정도로 완곡하게 표현했다. 그러나 무슨 이유에선지 그녀의 생애 후반기 인터뷰들은 토월회 입단 전에 그녀가 진명고녀 졸업생이었다고 쓰고 있다. '대리석 같은 여인 - 눈물을 흘리는 역이 적역, 신흥 토월회 스타편 - 석금성', 《조선일보》 1930년 1월 8일 자; '석금성 여사 - 처녀와 귀부인이 적역', 《동아일보》 1931년 6월 17일 자; '77세의 원로여우 석금성 씨 20년 만에 <백구야...>로 컴백하면서 또 악역', 《경향신문》, 1983년 1월 29일 자. 10) '토월회 창립 50돌 기념 공연', 《조선일보》 1973년 10월 23일 자. 11) '내가 겪은 20세기 (25) 복혜숙 여사', 《경향신문》, 1972년 6월 23일 자.
2022년 현재 시점에서 < 82년생 김지영 >에 대해 무엇을 더 말할 수 있을까? <82년생 김지영>은 조남주 작가의 소설로 2016년 민음사에서 처음 출간되어 온라인과 오프라인, 대중과 지식인 담론을 가리지 않고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 냈다. 국내에선 2년 만에 100만부 판매를 돌파했으며 10개 언어권에 번역되어 30만부 이상 판매되었다. 특히 일본에서는 2018년 출간 이후 20만부 이상의 판매를 기록하며 하나의 현상이 되었다. 2019년에는 영화로 제작되어 관객 수 367만이라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더 나아가 <82년생 김지영>은 수적인 측면에서뿐 아니라 2015년 이후 이뤄진 페미니즘의 대중화와 매체 환경변화의 측면에서 시대를 대표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그런 면에서 <82년생 김지영>은 소설이나 영화 어느 하나를 선택해 집중적으로 텍스트 분석하는 방식을 본격적으로 거부하며, 어떻게 하나의 작품 혹은 텍스트가 분리되지 않고 여러 경계를 넘나들며 매체(개)적 역할을 하는지를 관찰할 수 있게 한다. 이 글 역시 어떤 텍스트를 하나의 현상, 심지어는 매체(개)로 보고 비평하는 방식을 고민하는 과정 중에 나왔다. <82년생 김지영>은 영화와 소설 모두 진부함과 새로움이 동전의 양면처럼 맞붙어 있는 양식을 취한다. 우선 소설의 작법을 보자. <82년생 김지영>은 디지털 시대의 대중적 페미니즘이 어떻게 구성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그것을 부추긴다. 이 소설은 관심(attention) 받은 정보를 수집하고 가공해 한국사회의 평균값 혹은 대표값을 재현하려 한다. 중산층 가족에서 태어나 대학교육을 받고 사무직으로 직장을 다니다가 결혼하고 육아를 하며 전업주부가 된 30대의 여성이 주인공이다. 이 소설이 수집한 주목의 정보는 누구나 쉽게 접근 가능한 뉴스 기사나 그 기사들에서 인용된 통계자료다. 소설은 종종 유엔과 한국정부의 통계 및 정책 보고서, 법과 제도의 변화를 각주로 달아 숫자와 공문서에 근거해 객관성과 대표성을 획득하려 한다. 여아낙태가 급증하던 1980년대를 대표하는 ‘82년생’과 그 당시 가장 흔한 여아의 이름인 ‘김지영’, 스토킹과 성희롱, 집안의 남아선호, 직장 성차별과 경력단절, 독박육아와 여성혐오 등의 뉴스가 주인공의 연대기 안으로 들어와 에피소드를 구성한다. 그러한 정보를 모아 만들어진 주인공 김지영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재확인시키는 익숙함으로 버무려진 개성 없는 캐릭터이다. 김지영은 기존의 익숙한 세계와 대립하며 자기 고유의 세계를 고집스럽게 구축해 나가려는 근대문학의 주인공과 완전히 정반대에 있다. 어떤 면에선 김지영은 마치 1인칭 슈팅게임의 블랭크 캐릭터처럼 텅 빈 인물이다. 일본과 미국 번역본 표지에 그려진 이목구비가 비어있는 여자는 내용과 형식 모두를 지칭하며, 빙의는 그러한 양식을 극대화하기 위한 설정이 된다. 또한 한국사회의 오래된 그리고 겉으로는 많이 변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여전한 성차별, 즉 여성들의 ‘몫 없음’을 은유하기도 한다. 김지영이라는 텅 빈 기호는 독자들을 기다리고 초대하며 누구든 그 자리에 들어가 볼 수 있게 한다. 독자들은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고 서사가 진행되며 인물의 심리에 점진적으로 동일시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김지영의 자리에 자신을 대입해 몰입한다. 주목 받은 정보를 모은 인물의 구성과 거리감 없는 몰입은 새로운 수용양식이다. 이것은 회귀, 빙의(특정 서사의 주인공이 되는 빙의), 환생이 주요 장르가 된 웹소설의 경향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독자들은 회귀, 빙의, 환생의 설정 속에서 정보를 독점할 수 있기에, 비판적이고 메타적인 동시에 ‘안전’하게 상황을 통제한다. 이것이 <82년생 김지영>의 진부한 새로움이다. 정보수집을 통한 평균값을 말하기에 집단을 대표하고 비어있기에 열려있는 구조는 가능한 다수가 이 텍스트에 참여할 수 있게 한다. 한편 김지영의 육아우울증 증상인 ‘빙의’는 페미니스트 고전단편 샬롯 퍼킨스 길먼의 <노란벽지>처럼 가부장제 억압으로 정신적인 병증을 갖게 되는 서구 근대여성문학의 전통에 닿아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울증, 히스테리, 광기는 가부장제가 여성들을 열등한 존재로 낙인찍기 위해 창조한 병인 한편, 여성들의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증은 남성중심적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억압의 고통을 표현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그러나 김지영은 그녀의 문학적 선조와 달리 정신병을 자신의 내면상태를 발화하는 수단이나 은유로 사용하지 않는다. 웹소설의 빙의처럼 그것은 안전하게 고통과 피해를 이야기하기 위한 설정이며, 외할머니, 친정어머니, 선배 언니로 빙의된 김지영은 매우 이성적이고 조리 있게 의견을 피력한다. 흐트러짐 없는 빙의된 몸은 ‘여성에 대한 가부장제 억압의 역사적 정보가 축적된 아카이브 혹은 플랫폼’이 된다. 빙의의 사용은 세대와 개별적 차이를 넘어 여성이라는 자리의 동질성을 만들어 내고 공감을 얻어 낸다. 이처럼 <82년생 김지영>은 주목을 받은 정보로 쓰인 몫과 자리의 이야기이고 열려 있는 이야기들은 다시 소셜미디어나 온라인 커뮤니티의 논쟁거리가 되고 소설은 다시 텍스트를 넘어 참여의 플랫폼이 된다. 그리고 그것은 소설 판매부수와 롯데컬처웍스의 투자로 정유미와 공유 같은 스타가 주인공인 상업영화로의 제작 가능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주목이 주목을 부르고 매체 간의 문화산업을 확장시키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이 책이 주목 정보를 통해 전하는 메시지는 텍스트와 컨텍스트를 넘나들며 매개, 재매개, 하이퍼매개를 순환하는 매개물이 된다. <82년생 김지영>은 자기 집단 내에서는 동질성과 공감을 강화하지만 점화된 논쟁의 선을 따라 여러 매체와 플랫폼을 넘나들며 우리 사회 내의 인식적 기준의 차이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그런 면에서 <82년생 김지영>은 수잔 리 스타가 그리스머와 함께 개념화한 경계물(boundary object)이라고도 할 수 있다. 경계물(Susan Leigh Star & James Griesemer, 1989)은 서로 다른 과학자 집단들이 협업을 할 때 그 의미를 공유하는 대상(object)이다. 이 대상은 공동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기여하는 한편 각기 다른 집단에서 서로 다른 의미로 해석되고 이용된다. 경계물이 되기 위해서는 해석적 유연성뿐만 아니라 지속적인 실험 속에서 정보의 수집과 검증이 가능한 공동의 인프라를 통해 합의 없이도 협력이 가능해야 한다. 경계물은 각자의 집단의 특정성에 맞게 적응하도록 유연하지만 동시에 각기 다른 집단들을 거쳐도 경계물의 정체성은 유지될 정도로 단단하다. 그렇기 때문에 경계물을 공유하는 각 집단들은 자신만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서로 앞뒤로 오고 가며 조정할 수 있다. 그것은 상이한 두 집단을 서로 맞닿게 하는(interface) 경계물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경계물로서의 <82년생 김지영>은 적대와 혐오로 가득 찬 전선이 그어지며 오염된 과잉정보로 사실검증이 어려운 온라인의 특성 상 협의가 불가능한 상황을 보여주기도 한다. 즉 <82년생 김지영>은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에 대한 개념이 집단에 따라 어떻게 완전히 달라지는지 드러낸다. 페미니스트를 남혐주의자로 왜곡되게 주장하는 온라인 안티 페미니스트들은 <82년생 김지영>의 독서여부로 페미니스트 감별을 시도하기도 했다. 특히 소셜 미디어에서 <82년생 김지영>을 읽은 (여성) 유명인이나 예술창작자를 검색해 그들을 공격할 뿐만 아니라 경력에 피해가 가도록 압력을 넣기도 한다. <82년생 김지영>은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이들과 다수의 여성들에게는 한국 사회에서 누구나 공감할 만한 온건하게 쓰인 성차별 보고서에 가깝지만, 안티페미니스트들에게는 왜곡된 가짜 뉴스로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여성의 고통을 전시하며 남성을 ‘차별’하는 과격한 페미니즘 사상을 전파하는 대표적 선전물이다. 동일한 책은 상이한 집단들에 의해 ‘페미니즘’이라는 사상 혹은 실천을 다르게 이해하게 하는 매개물이 되는 동시에,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페미니즘이 본래의 의미나 역사와는 상관없이 대중적으로 어떻게 이해되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지표가 된다. 처음 경계물을 개념화했던 당시와 달리 스타는 2010년에 쓴 논문 「이것은 경계물이 아니다: 개념의 기원에 대한 성찰」에서 경계물을 공유하는 두 집단 사이에 협의가 힘들 수 있음을 인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때 발생하는 간극 발생의 원인과 공유되는 표준 및 인프라, 즉 구조와 네트워크를 보다 적극적으로 성찰하고 경계물을 사회적이고 윤리적인 문제로 확장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육아로 경력단절 된 여성 연극배우의 오디션 과정을 다룬 단편 < 자유연기 >(2018)로 주목 받은 신인 김도영 감독이 연출하고 정유미와 공유가 주연한 <82년생 김지영>은 내용적으로는 소설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수용과 형식의 측면에서는 큰 차이가 있었다. 김지영이 상담 받는 정신과 의사의 보고서 형식으로 쓰인 소설과 달리 영화는 의사의 성별을 남성에서 여성으로 바꾸고 그의 역할을 축소시킨다. 소설에서 남자 정신과 의사는 김지영에 대한 묘사의 객관성을 담보하는 동시에 에필로그에서 한국사회의 성차별에 분노하던 언사와는 달리 자기 병원의 임신한 간호사를 차별하는 위선을 드러내며 전체 형식의 틀을 잡는 역할을 하지만, 영화에서는 여자 의사로 성별이 바뀌며 김지영과 남편 정대현의 고통을 들어주고 공감하는 역할로 축소된다. 이러한 변화는 영화가 소설과 매체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텍스트로만 드러나기에 빈 기호로 작동할 수 있었던 소설의 인물들과 달리, 영화는 구체적인 배우의 얼굴이 전면적으로 스펙터클화 된다. 특히 정유미와 공유라는 스타들의 얼굴은 더욱 친근하게 다가온다. 지영을 연기한 배우 정유미의 우울한 얼굴의 잦은 클로즈업은 내면성과 주관성을 표현하는 창구가 된다. 또한 소설에서 정신과 의사나 남편 같은 제 3자에 의해 관찰되고 기술되던 빙의나 과거 성차별/성폭력의 사건들은 영화에서 종종 지영의 주관적 시점으로 처리된다. 과거 성차별/성폭력의 사건들은 영화에서 지영의 플래시백으로 처리되고 빙의의 순간은 미세하게 흔들리는 카메라와 함께 주관적인 트라우마처럼 느닷없이 다가온다. 시청각적 구체화와 주관성의 물질화는 추상적인 구조보다 개체를 앞서 내세우며 이때 묘사된 개인의 경험은 더 쉽게 수용된다. 상업영화라는 제작조건과 멜로드라마라는 장르적 특징들이 소설이 의도했던 ‘진부한 새로움’ 즉 그 자리에의 몰입효과를 약화시키고 전통적인 심리적 동일시를 강화시켜 더 대중적으로 수용가능하게 만든다. 그런 면에서 영화는 덜 논쟁적일 수 있다. 심지어 영화는 지영이 프리랜서 작가로 성공해 육아와 일을 병행하며 가족과 개인의 갈등을 잠재울 것이라는 꽉 닫힌 해피엔딩을 선사한다. 이러한 결말은 조남주 작가와 김도영 감독의 실제 상황을 참조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잉여로 남아있는 불안한 순간들이 있다. 그 하나는 가족들이 모인 다인 쇼트를 촬영할 때 제 자리를 못 잡고 주춤주춤 구석으로 물러나 앉아있는 카메라이다. 구석에 숨어있는 것 같은 카메라는 접근 불가능하고 말하지 못한 것이 남아있는 느낌을 준다. 두 번째 순간은 엔딩이다. 갈등이 모두 해결된 것처럼 보이는 엔딩에서 지영은 오프닝처럼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는’ 노을 지는 시간에 베란다에 나와 있다. 노을빛을 받고 있는 지영의 뒷모습을 응시하는 카메라와 지나치게 인공적인 노을빛은 마치 < 트루먼 쇼 >의 세트장 같은 느낌을 준다. 지영은 여전히 고립되어 있고 영화의 해피엔딩은 임시적일 수밖에 없다. 소설은 재현/대표(representation)를 함에 있어 개성, 독자성, 구체성을 제거해 대푯값을 만들어 그 자리에의 몰입을 시도한다. 이 방식은 주인공이 대표하는 집단 내부의 동질성과 각 집단들 간의 차이를 확연하게 드러내도록 부추기고 논쟁을 만들어낸다. 여기서 설명되지 않거나 잉여로 남아있는 것들은 거의 없다. 텍스트와 컨텍스트, 가상과 현실, 매체들, 장르들의 경계를 넘어서고 그 범주들을 무화하는 오늘날의 문화수용자들의 요구에 들어맞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경계들을 넘나들며 비판과 성찰을 야기하기 위해서는 정보에 대한 선명성과 양식적 안전함이 필요하다. 영화는 오히려 주인공을 중심으로 한 고전적인 심리적 동일시를 추구한다. 소설이 ‘진부한 새로움’을 추구한다면, 영화는 ‘진부함의 반복’이다. 멜로드라마라는 고전 장르의 충실한 반복은 여전히 말해지지 못한 것들,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의 잉여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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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가 더 좋아 >는 1965년 6월에 개봉하여 약 18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당해 국산영화 흥행 2위에 올랐던 코미디 영화다. 그러나 대중이 이와 같이 호응했음에도 이 영화에 대한 당시 저널리즘과 평단의 반응은 혹독했다. 이 영화에는 “C급 저속 넌센스 소극”이라는 말이 붙어 다녔고, 1) 청소년 범죄를 부추기는 영화로 지목되었으며, 2) 주제가는 「동백아가씨」가 왜색조로 금지될 때 저속하다는 이유로 함께 금지되었다. 3) 이 영화를 제작한 이들은 “바로 오늘만을 살고 스스로 묘혈을 파는 어리석은 장사치의 대표적 유형”이자 심지어 ‘영화반역자’라고 비난받기도 했다. 이때 이 영화의 대척점에 놓인 영화들은 < 자유만세 >(1946), < 성벽을 뚫고 >(1948), < 순교자 >(1964) 등인데, ‘민족의식’과 ‘저항정신’을 지닌 ‘세계시장을 지향하는 좋은 영화’로 일컬어졌다. 그러니 <여자가 더 좋아>는 그 반대의 ‘나쁜 영화’인 셈이었다. 앙리 베르그송이 웃음을 논하면서 희극과 예술일반을 비교한 것에서 드러나듯이 일반적으로 예술은 비극이고, 희극은 비극보다 열등한 것으로 오랫동안 간주되어왔다. 식민지에서 분단으로 이어지며 근대 계몽에 대한 욕구와 당위가 비등한 데다 이분법적 인식이 공고했던 한국에서 그러한 경향은 한층 더했다. 검열에서 코미디에 대해 상대적으로 관대했다는 증언은 이를 역설적으로 증명한다. 경직된 규율의 눈으로 바라볼 때 코미디는 말이 안 될 뿐만 아니라 말할 가치도 없는 것, 그야말로 난센스(nonsense)였던 것이다. 그런데 말도 안 되는 것에도 위계가 있었다. 비현실적이고 개연성 없고 우발성과 과장으로 이루어져 웃음을 유발한다고 해도 마지막에 계몽이나 위로로 귀결될 때에는 희극으로 의미가 부여되었다. 그 웃음이 계몽에 닿으면 풍자가 되고, 위로에 닿으면 유머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4) 그리고 그러한 웃음은 미래지향적이고 건전하며 명랑한 웃음으로 웃음 중에서는 높게 평가되었다. 그러나 그러한 과정이 ‘엎치락뒤치락’ 소동으로 끝날 때, 말도 안 되는 일이 말도 안 되는 상태로 끝난다고 보일 때 그것이 유발한 웃음은 “최저속선까지 철저하게 타락시킨 웃음” 5) 으로 질타되었다. 그리고 그 영화는 희극에 못 미치는 ‘저속한 C급 소극’으로 평가되었다. 바로 그 대표적인 영화가 <여자가 더 좋아>였다. 이 영화를 시종일관 끌고 가는 것은 코미디언 서영춘 의 페르소나다. 1960년대 초 라디오 방송에서 만담으로 유행어를 연달아 만들어내며 인기몰이를 시작한 서영춘은 1965년에 영화 세편에 출연한다. < 청춘사업 >(4월 개봉), <여자가 더 좋아>(6월 개봉), < 출세해서 남 주나 >(11월 개봉)가 그것인데, 그 중에서 가장 흥행한 영화가 <여자가 더 좋아>였다. 제목에서 할리우드 영화 <뜨거운 것이 좋아 Some Like it Hot>(1959)를 연상시키는 이 영화는 1960년대 후반 한국영화계에 ‘여장 남자 코미디’ 유행을 견인한다. 이 영화 이전에 ‘여장 남자 코미디’ 영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61년에 <뜨거운 것이 좋아>가 한국에서 개봉하여 크게 흥행하고 1962년 마릴린 먼로의 돌연한 죽음으로 롱런을 하면서 <뜨거운 것이 좋아>의 번안영화가 제작되었다. 임권택 감독이 연출한 < 남자는 안 팔려 >(1963)가 그것인데 눈에 띄게 관객을 동원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2년 후에 <여자가 더 좋아>가 나와 크게 흥행하여 ‘여장 남자 코미디’의 유행을 촉발한 것이었다. 이 영화에서 서영춘이 분한 주인공 규철은 여자직업기술학교에 출강하는 음악 강사다. 그는 호리호리한 체격에 체모도 적은 데다 바느질과 요리를 즐기고 말도 얌전하게 하며 입을 가리고 웃는다. 일반적으로 여성의 특징으로 인식되는 이러한 행동 때문에 그는 ‘여성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는 기술학교 학생 영숙( 최지희 )과 엄연히 연인 사이다. 그는 결혼하기 위해 영숙의 부모님을 만나는데, 의학적으로 여성에 가까운 중성이라는 이유로 파혼을 당한다. 영숙은 박문기( 남궁원 )라는 밴드마스터와 곧바로 결혼하고 이에 상처받은 규철은 복수를 결심한다. 그는 여장을 하고 규화라는 이름의 식모로 영숙의 시집에 들어간다. 영숙의 시아버지( 김희갑 )는 성정이 ‘괴벽스러워’ 식모를 붙어있지 못하게 만드는 영감인데 규화의 ‘서비스’에 만족하여 규화와 잘 지낸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영숙은 규화(규철) 때문에 신경쇠약에 걸리지만 규화는 영숙의 남편 박문기와 악단주 선우광( 양훈 )까지 매혹한다. 규화(규철)가 불행한 영숙을 보며 자신의 복수에 대해 회의할 때쯤 선우광의 구애로 정체를 들킨다. 선우광이 규화(규철)에게 수작을 걸 때 현장을 덮친 선우광의 부인 때문에 그는 슈미즈 바람에 가발이 벗겨진 채 마침 나들이에서 돌아오던 영숙과 문기, 영숙의 친정어머니와 시아버지까지 모두 보는 가운데 뛰쳐나가게 되는 것이다. 현재 남아있는 프린트에서는 이 상태로 영화가 끝난다. 그런데 시나리오 상으로는 규철이 성전환 수술을 하여 결국 여성이 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이와 같이 여장 남자로서 남성과 여성을 넘나드는 전개는 서영춘의 규정을 거부하는 ‘난센스 페르소나’를 통해 이분법을 끊임없이 교란하며 웃음을 유발한다. 서영춘의 외양과 태도는 남성 아니면 여성으로 규정할 수 없는 분방한 모호성을 지니고 있으며 그의 행동거지와 거기에서 분출되는 에너지는 남녀로 분리된 젠더박스에 진동을 일으키고 균열을 낸다. 이는 1960년대 말 구봉서가 출연했던 ‘남자 시리즈’(< 남자 식모 >, < 남자 미용사 >, < 남자와 기생 >)와 비교해 보면 보다 명확하다. 이 영화들에서 구봉서 는 깔끔하고 자상한 남자로서 여자 흉내를 잘 낼 뿐이지 결국 남자다. 여자로 변장했을 때의 모습과 남자로서 연인과 있을 때의 모습이 확연히 구분되는 데서 젠더 이분법이 잘 드러난다. 그가 여장을 통해 수행하는 것은 발언권이 세진 여성들과 가정에 충실하지 못한 남성들을 동시에 비판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이 영화들은 가부장적인 젠더 질서를 공고히 하는 방향으로 안착한다. 이와 달리 <여자가 더 좋아>에서 서영춘이 표상하는 것은 남자도 여자도 아닌 독자적 섹슈얼리티다. 이에 대해 박선영은 “서영춘의 그로테스크한 신체는 회복되지 않은 남성성과 포기되지 않은 여성성의 기묘한 공존을 시각적으로 전시하는 것”이라고 요약한다. 6) 그런데 따져보면 규철은 영숙과 혼인신고만 안 했지 부부와 다름없이 지냈던 것으로 나온다. 그는 불량배를 만났을 때 그들을 물리적으로 물리칠 완력은 없지만 기지와 헌신으로 여성들로부터 떼어놓는다. 그가 다른 남자들처럼 밖으로 나돌지 않고 술 담배도 입에 대지 않기에 영숙은 그를 믿고 좋아했던 것이기도 하다. 이와 같이 남성으로 살아가는 데 문제가 없음에도 그의 취향이나 태도가 일반적으로 여성들의 것이라 하여 그는 선택을 강요받는다. ‘너는 남자니? 여자니?’ 라는 질문 속에서 경계의 지점은 용납될 수 없기에 그는 자신 그대로 사회에 존재할 수 없다. 그래서 그는 마지막에 성전환을 할 수밖에 없다. 이는 <뜨거운 것이 좋아>에서 마지막에 제리(잭 레먼)가 가발을 벗으며 “나는 남자야. I’m a man”라고 고백하지만, 필딩이 “완벽한 사람은 없지. Nobody is perfect”라고 받는 것과 갈라지는 지점으로, 당시 한국사회가 포용할 수 있는 난센스의 한계를 보여준다. 당대에 웃음으로 봉합될 만한 수위 차원에서 결말을 생각해보면 규철이 성전환을 해야 영숙이 오해를 받지 않고 결혼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물론 규철에게 매혹되었던 모든 인물의 행동이 정당화될 수 있다. 그래서 규철의 성전환은 선택이 아니라 다른 인물의 안전과 그에 따른 관객의 안심을 위한 사회적 거세에 해당한다. 이 영화는 1983년에 더스틴 호프만이 여장 남자로 분한 영화 <투시 Tootsie>(1982)가 흥행하면서 7) ‘남자 시리즈’의 심우섭 감독 연출로 리메이크된다. 8) 이 영화에서도 서사의 전개는 유사한데 결말은 오히려 더 계몽적인 양상을 띤다. 주인공 유경진(강태기)이 아파트에서 가정부로 일하며 젊은 부부들에게 건전한 생활을 유도하다 표창장까지 받고 여성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1960년대보다 1980년대가 민주적으로 진보했다고 여겨지나 서영춘이 보여준 난센스와 같은 경계적 특이점이 설 자리는 여전히 만만치 않았다. 서영춘은 <웃으면 복이 와요>(1969~1985)가 프로야구 붐으로 돌연 폐지 9) 된 이듬해에 간암으로 타계했다. 10) 그는 한동안 잊혔다가 21세기에 대중문화 장르와 다양성에 대한 논의가 진전되면서 비로소 ‘저질’에서 벗어나 ‘독보적인 코미디언’으로 재평가된다. <여자가 더 좋아>가 ‘말할 가치도 없는 난센스 소극’에서 벗어나, 난센스라는 요동으로 경직된 시스템에 파문을 일으키며 젠더 이분법을 일찍이 뒤흔든 영화로 재발견될 수 있는 것은 이러한 재평가와 맥을 함께 한다. >> 여자가 더 좋아 고화질 VOD 보러가기 << 1) 「만화조 넌센스 소극」, 《조선일보》, 1965.7.15.; 「소극붐 수준급 이하의 넌센스들」, 《조선일보》, 1965.11.11.; 「영화 황량한 질 안고 과잉생산」, 《동아일보》, 1965.12.27. 2) 「자극적인 영화제목과 소년범죄」, 《조선일보》, 1965.8.24. 3) 「왜색조를 추방」, 《조선일보》, 1965.9.7.; 「방송음악 日色調 일소키로」 , 《동아일보》, 1965.9.11. 4) 웃음의 유형에 대해서는 박유희, 「총론: 웃음의 서사와 한국 대중문화」, 『대중서사장르의 모든 것: 4.코미디』, 이론과실천, 2013, 22-23면. 5) 「만화조 넌센스 소극」, 《조선일보》, 1965.7.15. 6) 박선영, 『코미디 전성시대』, 소명출판, 2018, 529면. 7) 「추석 극장가 외화가 압도」, 《동아일보》, 1983.9.20. 8) 「방화에도 남성 치맛바람 강태기 여장하고 김환진과 주연」, 《경향신문》, 1983.6.15. 9) 「프로 감축 항의 MBC 코미디언들 파업」, 《조선일보》, 1985.4.25. 10) 「코미디언 서영춘씨 별세」, 《매일경제》, 1986.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