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혼 뉴스, 무제(회고 1950년)
- 제작년도
- 1950
<백룸> 중 (사진: IMDb / © A24) 기억에 남는 불안이 있다. < 1917 >(샘 맨데스, 2019)에서 데번셔 연대의 무모한 돌진을 막아낸 스코필드가 블레이크의 형을 찾아 야전병원 막사에 당도했을 때, 나는 영화가 쌓아온 서스펜스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불안에 사로잡혔다. 막사 저 멀리 나무 한 그루가 눈에 들어온 순간부터 고개를 가로저었다. 영화 내내 스코필드에게 밀착해 있던 카메라가 거의 유일하게 인물을 놓아두고 홀로 날아오르기 시작했고 끝내 그 나무 아래서 이야기의 문을 닫는다. 눈을 뜬 남자가 한바탕 소동을 끝내고 다시 나무 아래서 눈을 감는 이야기. 헛웃음이 나올 만큼 도식적인 수미쌍관 구성은 경탄스러운 카메라 무빙을 한 편의 허탈한 동화로 바꿔놓았다. 극장을 나서며 이렇게 적었다. “대체로 무용(無用)한 것들을 사랑하는 편이다. <1917>은 카메라의 쓸모, 자신의 효용을 수다스럽게 떠들어대는 것 같아 왠지 안쓰러웠다. 문득 침묵할 줄 알았던 카메라들이 그립다.” 당시 편협한 판단을 요약하면 이렇다. <1917>은 촬영 방식이 제일 앞자리에 놓인 영화다. 촬영감독 로저 디킨스 스스로 밝혔듯 이 영화에서 물리적인 아날로그 롱테이크는 최장 7분 남짓, 나머지는 교묘한 트릭으로 이어 붙인 착시다. 끊어지지 않는 카메라를 위해 서사가 설계됐는데, 결과적으로 이야기 구성은 기이하리만치 게임에 가까워졌다. 참호에서 트럭으로, 불타는 마을에서 강물로 이어지는 여정마다 이름난 배우들이 마치 게임 속 NPC처럼 배치되어 병사를 다음 구간으로 안내하는 방식이다. 요컨대 서사를 위한 카메라가 아니라 카메라를 위한 서사가 되어버렸다. 말하자면 <1917>의 연결은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의 결과가 아니라 ‘연결시키고야 말겠다’는 의지의 산물이다. 그 유려한 롱 컨티뉴이티 숏은 전장을 재현하는 대신 관객을 안전한 가상현실로 소환해 버린다. 영화적인 것, 영화만이 할 수 있는 것을 극한까지 추구한 결과가 역설적으로 영화로부터 멀어지는 기이한 종착지에 다다른 셈이다. 2020년 무렵의 나는 그 어긋남을 두고 ‘영화를 향한 향수병’이란 딱지를 붙였다. 한없이 가까워지고 싶지만 끝내 다다를 수 없는 곳을 바라보며 앓는 병. 향수병은 애초에 돌아갈 수 없음을 전제로 성립하는 상태이므로 그리움에 사로잡히는 순간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는 건지도 모르겠다. 뒤늦게 고백한다. 그땐 일말의 허세와 더불어 형식주의자를 향한 결벽 비슷한 감정이 작동했던 것 같다. 형식과 내용의 불일치에 유난히 위화감을 느끼는 편이다. 스타일에는 목적과 필연성이 있어야 한다고, 하고 싶은 말이 어떤 결과물로 이어진 형태가 곧 형식이어야 한다고 믿어왔다. 그렇기에 방향과 결과, 의지와 형태가 어긋난 순간들을 만나면 한참 생각에 잠기곤 했다. 왜 이렇게 된 걸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원래 하고 싶었던 게 뭘까. 시간이 흘러, 정확히는 새로운 세대의 물결을 겪으며 질문의 방향이 슬며시 바뀌는 중이다. 그렇게 마르고 닳도록 입에 올리던 ‘영화적인 것’이란 대체 무엇일까. 그런 고정불변의 대상이 있긴 한 걸까. 영화가 무엇인지 묻는 것만큼 본질적이고 동시에 바보 같은 질문도 없다. 그건 목적지라기보단 그저 지향에 불과하다. 본래 큰 질문에서는 답을 이끌어내기 어려운 법이다. 현 시점 내가 유일하게 확신할 수 있는 건 ‘영화적인 것’이란 지표에 절대성 따윈 없다는 믿음이다. 아주 협소한 경험에 근거하여, 영화적인 것의 실체는 ‘경험에 근거한 익숙함’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달리 말하면 한 시절의 관습이다. 심지어 이 관습의 수명은 길어야 20~30년, 대체로 한 세대보다 짧은 경우가 허다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신의 체험을 절대적인 것이라 믿는 경향이 있다. 1950년대에 완성된 몇몇 형식들을 ‘시네마틱’이라 일컫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거칠게 말해 오늘날 영화적인 것이라며 유통되는 상당수의 기법은 1950년대 이후, 좁게 잡으면 1970~80년대에 유행하거나 영향을 미친 스타일에 가깝다. 이를테면 슬로우 시네마가 롱테이크를 거쳐 시간을 활용하는 방식이 그렇다. <1917>의 롱 컨티뉴이티 숏이 증명하고자 한 ‘영화적인 접근’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어쩌면 로저 디킨스의 카메라도 그저 본인이 만들어온(그리고 지나온) 영화라는 영토에 대한 향수에 잠긴 게 아닐까 싶은 의심. <1917> 중 (사진: IMDb / © Amblin Entertainment, ㈜스마일이엔티, ㈜씨제이이엔엠) 의심을 심화시킨 건 < 남매의 여름밤 >(윤단비, 2019)이었다. 그 영화에 대한 글을 쓰는 내내 윤단비 감독의 심경을 상상했다. 이 젊은 창작자가 그리워하는 대상은 무엇일까. 윤단비 감독의 영화에는 지난 세기의 끝자락, 그 언저리의 여름이 고여 있다. 2층 양옥집과 낡은 선풍기, 대야에 담긴 수박, 한없이 늘어지는 오후. 흥미로운 건 영화가 재현한 그리움에 정확한 원본이 없다는 점이다. 적지 않은 시네필들이 직접 살아보거나 겪어본 적 없는 1980년대 대만 뉴웨이브의 골목을 그리워한다. 요컨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추억하기, 원본 없는 노스텔지어라고 해도 좋겠다. 엉뚱한 고백 하나 하자면, 나는 이 영화를 보다가 헤어진 적 없는 연인을 그리는 노래들을 떠올렸다. 최신 K팝, J팝을 들으며 애틋한 이별을 앓는 요즘 세대와 마찬가지로 돌이켜보면 나 역시 신승훈의 노래를 들으며 아직 겪은 적 없는 사랑을 먼저 배웠다. 그 감정은 가짜인가. 당연히 아니다. 경험의 원본이 없을 뿐, 패턴과 표현 방식을 공유하는 순간 감정은 실제로 발생한다. <남매의 여름밤>의 공간이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지만 인식 하에서 존재한다는 것처럼. 지정학적 시간에 얽매이지 않은 채 그리움의 새로운 층위를 만들어내는 것. 그리하여 그 여름밤은 감독의 것도 나의 것도 아니면서 결국 우리 모두가 지나온 무언가를 자극한다. 직접 겪지 않아도 향수병을 앓을 수 있다. 이 단순한 사실이 내게는 작지 않은 균열을 남겼다. <남매의 여름밤> 중 / © 오누필름 최근 영화감독으로 데뷔한 유튜버들을 보며 다시 생각에 잠긴다. < 백룸 >(케인 파슨스, 2026)과 < 옵세션 >(커리 바커, 2026)은 흥미롭게도 모두 고전적 문법의 영화다. 10대의 침실에서 태어난 유튜브 영상 <백룸>은 캐릭터도 서사도 없이 노란 방과 형광등 소음의 이미지를 가운데 두고 해석과 재창작을 댓글창과 위키트리에 맡긴 열린 텍스트다. 반면 영화 <백룸>은 오리지널 각본 위에 배우의 얼굴을 세우고 트라우마라는 주제를 정면으로 통과하는 닫힌 이야기다. 배우 중심의 단단한 서사, 처음과 끝이 닫힌 세계. 하지만 정작 케인 파슨스는 <백룸>을 영화화하면서 자신을 스타로 만든 유튜브의 작법을 따르지 않았다. 그런데도, 아니 그럼에도 젊은 관객들이 극장으로 몰려들었고 함께 집단체험을 공유했다. 누군가에게는 이 영화가 극장에서 본 인생 공포영화로 기억될 수도 있을 것이다. 장소가 주는 경험의 확산은 바야흐로 새로운 세대가 극장영화로 융합되는 신호처럼 보이기도 한다. 모든 것이 한 번에 변하는 경우는 없다. 어떤 것은 바뀌고 어떤 건 바뀌지 않으며 디졸브 된다. 기성영화는 크리스토퍼 놀란이 그러하듯 프리 프로덕션 중심의 예술이다. 현장에서 찍는다는 행위 자체에 무게가 실린다. 반면 디지털 미디어는 포스트 프로덕션 중심이다. 렌즈가 포착한 진짜보다 소프트웨어로 빚어낸 진짜를 신뢰한다. <백룸>의 VHS 질감이 아날로그 카메라가 아니라 무료 3D 소프트웨어의 후반작업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파슨스가 극장에 가져온 것은 유튜브의 문법이 아니라 유튜브의 프로세스였다. 문법이 아니라 프로세스의 융합. 무엇보다 그는 새로운 문법에 집착하지 않았다. 새로움을 향한 과도한 집착이 오히려 길을 가릴 수도 있는 법이다. 디지털 네이티브가 소프트웨어로 아날로그의 유령을 위조해낸 이 제작 방식이야말로, 겪지 않은 것을 그리워하는 우리 시대의 뒤틀린 향수에 대한 완벽한 은유 아닌가. <백룸>의 배경은 1990년, 화면의 질감은 VHS다. 주 관객층인 20~30대는 그 시대를 살아본 적이 없다. 하지만 나는 <백룸>의 모방된 질감이 의도와 달리 그들에게 기이한 안락함을 주었으리라 짐작한다. 왜냐하면 <백룸>의 리미널 스페이스는 연결로부터 완전히 격리된, 쓸모를 강요받지 않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디지털에는 그리워할 게 참 많다. 사진을 지브리풍으로 바꾸는 필터가 유행하고, 멀쩡한 고화질 영상을 VHS 질감으로 되돌리는 레트로 변환이 놀이가 된다.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아도 상관없다. 질감 그 자체가 그리움의 대상이, 마음을 눕힐 안정감의 원천이 될 수 있다. <남매의 여름밤>으로 대표되는 시네필 세대 창작자들과 본질적인 패턴은 다르지 않다. 사실 이건 봉준호 , 박찬욱 같은 앞 세대도 마찬가지였다. 비디오 가게와 시네마테크에서 자란 이들에게 영화는 태어나기 전의 시간까지 소급되는 고향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모두 영화라는 고향에서 시간을 초월해 만난다. 심지어 디지털은 이 영토를 무한정 확장해 우리 앞에 소환 중이다. <백룸> 중 / 사진: IMDb( 1 , 2 ) / © A24 <백룸>을 극장에서 본다는 건 시간의 때가 묻은 노란 벽지와 형광등 불빛, 낡은 카펫에서 안식을 찾는 세대가, 인류가 가장 오래 사용해 온 어두운 방에 모여 함께 악몽을 꾸는 일이다. 생각해보면 극장이야말로 현실에서 두 시간 동안 잠시 미끄러져 나가는 이행의 공간, 우리에게 남은 마지막 리미널 스페이스다. 그리하여 출구 없는 방은 무섭고, 동시에 그립다. 아무도 없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그 공간이 과잉 연결의 시대를 사는 세대에게는 지옥이면서 동시에 도피처가 되는 셈이다. 무서움과 그리움이 한 몸이라는 이 양가성이야말로, 겪지 않은 것을 추억하는 마음과 함께 한 세대를 극장으로 데려온 힘일 것이다. 그리하여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온다. 고전적인 영화는 그리워할 대상인가. 그럴 수 있다. 그럼 그 시절의 감각으로 돌아가야 하는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향수병에 빠진다, 고 생각했다. 지금은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향수에 빠진 사람들은 가만히 병을 앓는 대신 온갖 것을 시도한다. 로저 디킨스는 끊어지지 않는 카메라로, 윤단비는 원본 없는 여름밤으로, 파슨스는 위조된 VHS의 유령으로. 어쩌면 새로움은 바로 그 발버둥에서 비롯되는지도 모른다. 도달할 수 없지만 계속 향할 수밖에 없는 욕망. 일치할 수 없음에도 한없이 가까워지고자 하는 마음. 그것은 영화와 현실의 관계이기도 하고, 아름다움을 갈구하는 창작의 동력이 될 수도 있다. 돌이켜보면 <1917>을 향수병이라 명명했을 때 내 감정의 바탕은 안타까움이었다. 지금은 아니다. 겪어보지 못한 것을 얼마든지 추억할 수 있는 시대라면, 돌아갈 고향이 없다는 사실은 더 이상 병의 조건이 아니라 창작의 조건인지도 모른다. 달리 말하자면 애잔함보다는 멈추지 않는 도전과 활력을 느낀다. 그 시절 나는 극장을 나선 뒤에도 질척거리며 달라붙어 있는 영화를 더 보고 싶다고도 썼다. 어쩌면 그건 시대를 구분하며 벽을 치는 태도였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내가 실시간으로 마주하는 건, 매체 간 문법이 섞이면서 공유되는 확장의 순간들이다. 침묵할 줄 알았던 카메라들이 그립다는 문장은 지금도 유효하다. 다만 이제 그 그리움은 앓는 소리가 아니라 무언가를 빚어내는 소리로 들린다. 향수병은 나을 수 없다. 하지만 어떤 불치병은 도리어 불사의 동력이 되기도 하나 보다. 문득 윌 스미스 주연의 < 나는 전설이다 >(프란시스 로렌스, 2007)가 떠오른다. 이것이 절멸의 길인지 아니면 새로운 세계로 나가는 길인지 아직 단언할 순 없다. 내가 서 있는 장소가 구 인류의 땅인지, 신 인류에 편입될 수 있는 길인지도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건, 이미 무언가 변했고 부지런히 더듬어가며 뒤따르는 중이다. <백룸> 중 (사진: IMDb / © A24) 다시, 비평 과거에 봤던 영화가 요즘은 달라 보인다면, 관점은 언제부터, 어떻게, 어떤 이유로 달라진 걸까. 시간을 따라 서로 다른 형태와 색깔을 남긴 비평의 궤적을, 필자가 직접 뒤따라가 봅니다. 송경원(씨네21 편집장) l 영화 논문, 비평, 기자 글쓰기까지, 영화에 대한 서로 다른 리액션 사이에서 흔들리고 방황한지 15년. 이제야 영화 글쓰기가 나의 직업이라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2023년 《 씨네21 》 편집장이 되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할 때, 밤하늘의 별자리를 찾듯 영화를 보고, 읽고, 쓴다. 2009년 《씨네21》 영화평론상 수상, 2011년부터 부일영화상, 부천국제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서울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 심사위원 등 역임. 『프로듀서』(2019), 『만화 웹툰 작가 평론선―이충호』(2021), 『마음의 일렁임은 우리 안에 머물고』(2021, 공저), 『얼룩이 번져 영화가 되었습니다』(2024) 등 집필.
<해피엔드> / © ㈜명필름 *** 현재 한국영화박물관에서는 기획 전시 ‘ 제목전(展) – 텍스트, 타이포그래피, 무빙 이미지 ’ 가 진행 중이다. 1919년 < 의리적 구토 >로 시작해 2025년 개봉작까지 8,400여 편의 한국영화를 다루는 이번 전시는 100년이 넘는 한국영화 역사를 ‘영화 제목’의 관점으로 살핀다. 제목은 관객에게 한 편의 영화를 가장 인상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설계된 문장(혹은 단어)이지만, 이를 통시적으로 관통해 보면 제목 하나하나에 당대의 시대정신이 녹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영화 제목은 한 편의 영화를 설명하는 도구인 동시에 영화가 태어난 시대의 정서를 품고 있는 문장이다. KMDb는 이번 전시와 연계해 두 편의 글을 공유한다. 1970~90년대 ‘저항’의 움직임 을 다룬 문주화 영화평론가에 이어, 이윤종 영화 연구자가 1980년대 한국영화계에 발생한 ‘에로티시즘’ 영화의 붐을 제목에서 읽어낸다. *** 한국영화에서 에로티시즘이 최초로 표출되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 중반부터다. 잉그마르 베르히만 등 유럽 모더니즘 감독들과 전후의 일본 신세대 감독들이 기성세대와는 다른 실험적 영화를 만들기 위해 시각적 에로티시즘을 부각하기 시작한 것이 50년대 중반부터인 것을 고려하면, 한국영화는 물질적 제작 여건이 상당히 열악했던 50년대부터 세계영화의 흐름에 발맞춰 나갔던 셈이다. 영화의 제목에서 에로티시즘이 강하게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70년대 초반부터이지만, 에로티시즘의 조류는 50년대 중반 한국영화 최초의 키스 신으로부터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50년대부터 90년대까지 이어지는 영화적 에로티시즘의 역사를 살펴보며 제목에서는 그것이 어떻게 드러나는지 살펴보자. 에로티시즘, 세계영화의 문법 앞서 언급했던 1950년대에 등장한 한국영화 최초의 키스 신은 윤인자 가 주연을 맡았던 < 운명의 손 >(한형모, 1954)의 한 장면이다. < 쉬리 >(강제규, 1999)와 유사한 내용의 스파이 스릴러물인 <운명의 손>에서 그녀는 북한군 첩보원 역을 맡아 남한의 방첩대원과 사랑에 빠져 그와의 비극적 결전 장면에서 아주 짧은 입맞춤을 나눈다. 공교롭게도 윤인자는 한국영화 최초의 욕조 신에도 등장하게 되는데, 이광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 그 여자의 일생 >(김한일, 1957)에서 그녀는 성악가를 지망하는 고학생으로서 온천장에 여행을 가서 욕조 안에서 수건으로 가슴을 가리고 앉아 있는 장면을 촬영한다. <운명의 손>의 키스 신은 뽀뽀에 가까운 데다 다소 성(聖)스러운 느낌마저 들어 에로틱하다고 보기 어렵지만 그럼에도 이를 선정적으로 생각하는 관객들이 상당히 많았다고 하며, <그 여자의 일생>의 어깨 노출 장면은 당대로서는 상당히 파격적인 연출이었던 만큼 윤인자는 50년대 최고의 섹시 배우로 등극하게 되었다. <운명의 손> 중 한국영화 최초 키스 신 60년대에는 도덕적 엄격함을 강조한 군부 정권의 강력한 검열로 인해 에로티시즘의 표현이 불가능했을 것 같지만, 세계영화의 조류를 따르려는 한국영화계의 강렬한 몸부림으로 인한 것인지, 뒷모습이지만 여성의 누드 장면이 최초로 등장해 감독이 검찰에 기소되고 벌금형이 부과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한다. 유현목 감독의 1965년작 < 춘몽 >이 그것으로 일본의 실험적 핑크영화인 <백일몽>(다케치 테쓰지, 1964)의 대본을 번안해 일본적인 화면을 유럽 모더니즘, 특히 독일 표현주의와 프랑스 상징주의가 결합된 무대로 변형해 연출한 것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서사보다는 영상 실험을 중시한 <춘몽>에는 여주인공이 제목처럼 ‘봄의 꿈’을 표현한 추상화와 같은 텅 빈 백화점에서 누드로 에스컬레이터를 타는 장면이 뒷모습으로 카메라에 잡히는데, 여배우는 실상 살색의 의상을 입고 있었다고 한다. 사실 미성년자 관람불가 영화는 60년대에 상당히 많아서 문예영화의 다수가 지금의 기대치로는 매우 수위가 낮은 정사 장면을 포함하고 있었다. 대표적으로 김승옥 소설가의 「무진기행」을 원작으로 하는 < 안개 >(김수용, 1967), 오영수와 차범석의 동명소설을 각각 원작으로 하는 < 갯마을 >(김수용, 1965)과 < 산불 >(김수용, 1967), 이어령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 장군의 수염 >(이성구, 1968) 등을 들 수 있다. 정진우 감독의 청춘영화인 < 초우 >(1966)와 < 초연 >(1966)도 유사한 흐름 속에 있었으나, <춘몽>에 이어 검열의 레이더망을 피하지 못한 비운의 영화는 < 벽속의 여자 >(박종호, 1969)였다. D. H. 로렌스의 영국 모더니즘 소설 『채털리 부인의 사랑』을 연상시키는 서사의 <벽속의 여자>는 성 불구인 남자친구와 혈기왕성한 다른 남자 사이에서 갈등하는 젊은 여성( 문희 )의 방황을 내세워 박종호 감독이 외설 혐의로 불구속 기소되는 불운을 맞이하기도 했다. <춘몽>, <벽속의 여자> / © 세기상사(주) 70년대에 접어들면 < 해변의 정사 >(신봉승, 1970, 필름 소실), < 속 벽속의 여자 >(박종호, 1970), < 그날밤 생긴 일 >(이영우, 1971), < 벽속의 남자 >(박종호, 1972), < 몸 전체로 사랑을 >(홍파, 1973) 등의 영화 제목이 눈에 띈다. 60년대의 마지막 해에 감독이 불구속 기소되긴 했으나 제법 괜찮은 흥행을 거둔 <벽속의 여자>의 속편과 더불어 유사한 제목의 남성 버전 영화가 제작되고, 다른 영화들도 이 영화처럼 삼각관계를 앞세운 연애물로 제작된 것이다. 그러나 70년대의 영화적 에로티시즘은 크게 두 가지 흐름으로 집약된다. 첫째, 작가주의 감독인 김기영 감독과 하명중 감독이 에로티시즘을 모티브로 한 영화들을 70년대에 꾸준히 만든 것이 하나이다. 김기영 감독은 1960년작 < 하녀 >에 이어 < 화녀 >(1971), < 충녀 >(1972), < 육체의 약속 >(1975), < 이어도 >(1977), <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 >(1978), < 수녀 >(1979), < 느미 >(1980)에 이르는 ‘여자’ 시리즈를 통해 여성의 성적 욕망을 사회적 욕망과 엮어서 펼쳐냈다. 하길종 은 미국 유학 후 화려하게 데뷔한 만큼 여러 논란(표절이 아님에도 이탈리아 영화 표절론 및 동성애 묘사 논란 등)에 휩싸이기도 했던 < 화분 >(1972)에 이어 < 수절 >(1973)과 < 한네의 승천 >(1977)에서도 다소 높은 수위의 정사 장면을 선보이는 시도를 했다. <육체의 약속>, <한네의 승천> / © ㈜동아수출공사, 동국대학교 둘째, 70년대 중반에 접어들며 가장 눈에 띄는 흐름은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가난과 외압에 의해 성매매업에 종사하게 되는 젊은 여성들의 고난과 불운을 다루는 ‘호스티스 영화’의 등장이다. 이장호 감독의 데뷔작인 < 별들의 고향 >(1974)에 이어 김호선 감독의 < 영자의 전성시대 >(1975)가 젊은 호스티스의 방황과 좌절을 그리며 침체를 겪던 70년대 충무로에 촉촉한 단비와도 같은 대흥행으로 가뭄을 해소시키자 대다수의 감독들이 호스티스물 제작에 뛰어들었다. 홍파 감독의 <몸 전체로 사랑을>도 여자친구와 호스티스 사이에서 갈등하던 남자를 그리고 있고 하길종 감독도 < 속 별들의 고향 >(1978)을 연출했던 것을 감안하면, 호스티스 영화의 시작은 이미 1973년부터 예고되어 상업영화와 작가주의 영화의 경계마저 허물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신중현의 동명 히트곡을 소재로 만들어진 뮤지컬 호스티스 영화 < 미인 >(이형표, 1975)을 포함하여, < 여자들만 사는 거리 >(김호선, 1976), < 나는 77번 아가씨 >(박호태, 1978), < 미스양의 모험 >(김응천, 1978), < O양의 아파트 >(변장호, 1978), < 꽃순이를 아시나요 >(정인엽, 1979), < 가시를 삼킨 장미 >(정진우, 1979), < 속 O양의 아파트 >(변장호, 1979), < 아침에 퇴근하는 여자 >(박용준, 1979), < 죽음보다 깊은 잠 >(김호선, 1979)등이 70년대 호스티스 영화의 계보에 있는 대표적 작품들이라 할 수 있다. 이들 호스티스 영화의 제목들은 여성의 노동과 욕망을 비유와 은유를 거쳐 우회하지 않고 매우 직접적으로 서술한다. <영자의 전성시대>, <미인>, <꽃순이를 아시나요> / © ㈜태흥영화, 김미연 한국적인 ‘에로’가 꽃피다 1980년대에 접어들면 에로티시즘의 주체이자 대상이 되는 여성들이 호스티스에서 중산층 이상의 여성들로 확대되며 다양한 장르물 속에서 에로티시즘이 구현되기 시작한다. 이 같은 에로방화 [1] 의 본격적인 출발점은 1982년 초에 개봉한 정인엽 감독의 < 애마부인 >으로, 이 영화의 제목은 70년대에 전 세계적으로 가장 흥행에 성공한 프랑스 영화이자 작품성 있는 에로물로 유명한 < 엠마뉴엘 Ⅰ >(쥐스트 자캥, 1974)을 연상시키기 위해 지어졌다는 것은 매우 유명하다. 다만 ‘말을 사랑하는 부인’이라는 애초의 의도와 상관없이 정부에서 문제삼은, ‘애마’의 어감이 이상하다는 이유로 ‘말 마(馬)’ 자가 삼베를 뜻하는 ‘마(麻)’로 바뀌었다는 슬픈 비화 또한 항상 영화를 따라다닌다. 일반적인 편견과 달리 <애마부인>은 중산층 가정이 잘 유지되기 위해서는 남편이 커리어에만 너무 매진하여 아내와 가정을 등한시해서는 안 된다는, 시대를 앞서간 포스트모던한 주제의 영화다. <애마부인>의 등장 이전부터 < 아낌없이 바쳤는데 >(박호태, 1980), < 화려한 경험 >(이상구, 1980), <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정진우, 1981), < 색깔있는 여자 >(김성수, 1981), <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 >(정진우, 1981), < 육체의 문 >(이기환, 1981), < 피막 >(이두용, 1981)등의 영화에서 멜로드라마, 시대극, 스릴러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계급과 삶의 방식을 지닌 여성들의 이야기가 그려지기 시작했다. <애마부인> / © 최재용 에로방화는 크게 현대극과 사극으로 나눌 수 있는데, 현대극은 <애마부인>을 포함하여 < 사랑의 노예 >(고영남, 1982), < 반노 >(이영실, 1982), < 자유처녀 >(김기영, 1982), < 나비품에서 울었다 >(임권택, 1983), < 안개는 여자처럼 속삭인다 >(정지영, 1983), < 김마리라는 부인 >(정인엽, 1983), < 엑스(X) >(하명중, 1983), < 오마담의 외출 >(김수형, 1983), < 적도의 꽃 >(배창호, 1983), < 무릎과 무릎 사이 >(이장호, 1984), < 깊고 푸른 밤 >(배창호, 1985), < 색깔있는 남자 >(김성수, 1985), < 달빛 멜로디 >(이황림, 1984), < 밤의 열기 속으로 >(장길수, 1985), < 육식동물 >(김기영, 1985), < 장사의 꿈 >(신승수, 1985), < 여왕벌 >(이원세, 1985), < 달빛 사냥꾼 >(신승수, 1986), < 두 여자의 집 >(곽지균, 1987), < 레테의 연가 >(장길수, 1987), < 안개기둥 >(박철수, 1986), < 매춘 >(유진선, 1988), < 성공시대 >(장선우, 1988), < 성야 >(신승수, 1988), < 아메리카 아메리카 >(장길수, 1988), < 그후로도 오랫동안 >(곽지균, 1989), < 늑대의 호기심이 비둘기를 훔쳤다 >(송영수, 1989), < 불의 나라 >(장길수, 1989), < 서울무지개 >(김호선, 1989), < 추억의 이름으로 >(유영진, 1989), < 물의 나라 >(유영진, 1990) 등이 당대를 대표하는 작품들이다. 이들 현대극은 급속하게 산업화된 한국 사회에서 이전과 달라진 입지를 가진 여성들이 변화된 연애와 결혼, 생계와 직업 세계에서 갈등을 겪으며 한국적 근대화의 빛과 어둠에 적응해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사극은 <피막>을 포함하여 < 여인잔혹사 물레야 물레야 >(이두용, 1984), < 땡볕 >(하명중, 1984), < 내시 >(이두용, 1986), < 변강쇠 >(엄종선, 1986), < 뽕 >(이두용, 1985), < 태 >(하명중, 1986), < 씨받이 >(임권택, 1986), < 사노 >(엄종선, 1987), < 감자 >(변장호, 1987), < 사방지 >(송경식, 1988), < 아다다 >(임권택, 1987), < 업 >(이두용, 1988) 등을 꼽을 수 있는데, 이들 대다수가 칸, 베를린, 베니스는 물론이고 아시아태평양 영화제나 북미권 영화제에 초청되거나 수상하며 영화사상 거의 최초로 한국영화를 세계 무대에서 널리 알리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에로사극은 전근대 시대를 배경으로 양반 가부장제에 빗대어 80년대의 신군부 독재 정권을 혹독하게 비판한다는 특징이 두드러지기도 한다. (상) <무릎과 무릎 사이>, <그후로도 오랫동안> / © ㈜태흥영화 (사진: 양기주) (하) <여인잔혹사 물레야 물레야>, <뽕> / © 정지훈, ㈜태흥영화 (사진: 양기주) 보다 여성적인 관점에서 1990년대의 가장 큰 특징은 이미 80년대부터 드러나기 시작한 에로티시즘과 페미니즘의 결합이 세 가지 흐름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첫째, 에로티시즘을 차용하면서도 80년대보다 더 강한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여성들이 가부장제하에서 겪는 억압과 고통, 저항 등을 그리는 영화들이 등장한다. <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김유진, 1990), < 물위를 걷는 여자 >(박철수, 1990), < 수탉 >(신승수, 1990), < 우묵배미의 사랑 >(장선우, 1990), <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장길수, 1989), < 경마장 가는 길 >(장선우, 1991), <낙타는 따로 울지 않는다>(이석기, 1991), <서울, 에비타>(박철수, 1991), < 아그네스를 위하여 >(유영진, 1991), < 은마는 오지 않는다 >(장길수, 1991), < 그대안의 블루 >(이현승, 1992), < 개같은 날의 오후 >(이민용, 1995), < 네온속으로 노을지다 >(이현승, 1995), <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오병철, 1995), <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홍상수, 1996), < 산부인과 >(박철수, 1997), < 올가미 >(김성홍, 1997), < 생과부 위자료 청구소송 >(강우석, 1998), < 처녀들의 저녁식사 >(임상수, 1998), < 송어 >(박종원, 1999) 등의 영화들이 대표적이다. 둘째, 에로티시즘이 로맨티시즘으로 전환되기 시작하여 로맨틱코미디의 조류가 형성되며 미성년자 관람불가 로코물이 당대에 큰 흥행을 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작품이 < 결혼이야기 >(김의석, 1992), < 미스터 맘마 >(강우석, 1992), < 가슴달린 남자 >(신승수, 1993), < 그 여자, 그 남자 >(김의석, 1993), < 사랑하고 싶은 여자 & 결혼하고 싶은 여자 >(유동훈, 1993), < 마누라 죽이기 >(강우석, 1994), < 닥터봉 >(이광훈, 1995), < 고스트 맘마 >(한지승, 1995), < 코르셋 >(정병각, 1996), < 넘버 3 >(송능한, 1997), < 미스터 콘돔 >(양윤호, 1997)등이다. 코미디는 아니지만 < 접속 >(장윤현, 1997)과 < 정사 >(이재용, 1998)도 에로물과 로맨스물의 경계를 흩뜨려 놓은 작품들로 당대에 평단과 관객 모두에게 큰 사랑을 받았던 미성년자 관람불가 영화들이다. 마지막으로, 대중영화임에도 포르노에 근접한 에로티시즘을 표방한 영화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했다는 것이 90년대의 큰 특징이기도 하다. 80년대 <애마부인>의 대흥행 이후 <애마> 시리즈로 나온 영화들을 포함하여 <매춘> 시리즈 및 과일 이름을 딴 < 산딸기 >(김수형, 1982), <뽕>, < 빨간 앵두 >(박호태, 1982) 시리즈가 90년대에도 꾸준히 만들어진다. 80년대에 맨 처음 흥행에 성공했던 이들 영화의 1편은 대중영화의 선에서 만들어졌고 한국 산업화의 어두운 면을 비판하는 작품들이었으나, 90년대까지 이어지는 후속 시리즈들은 소프트포르노에 가까운 성애물로 변질된다. 그리고 80년대 에로방화와는 에로티시즘의 수위가 다른 본격 성인용 대중영화들이 개봉해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거나 흥행에 크게 성공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작품들로 < 성애의 침묵 >(정인엽, 1992), <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양병간, 1993), < 아담이 눈뜰때 >(김호선, 1993), < 너에게 나를 보낸다 >(장선우, 1994), < 너희가 재즈를 믿느냐 >(오일환, 1996), < 모텔 선인장 >(박기용, 1997), < 쁘아종 >(박재호, 1997), < 창(노는계집 창) >(임권택, 1997), < 물위의 하룻밤 >(강정수, 1998), < 실락원 >(장길수, 1998), < 죽이는 이야기 >(여균동, 1997), < 해피엔드 >(정지우, 1999), < 노랑머리 >(김유민, 1999), < 거짓말 >(장선우, 1999)등이 있다. <성애의 침묵>에는 <엠마뉴엘> 시리즈로 유명한 네덜란드 여배우 실비아 크리스텔이 출연했고, <너에게 나를 보낸다> <너희가 재즈를 믿느냐>, <아담이 눈뜰 때>, <거짓말>은 외설론에 휩싸였던 장정일의 소설 [2] 을 원작으로 하고 있으며, <해피엔드>와 <거짓말>은 이전의 한국영화와는 차원이 다른, 새로운 시대의 여성 캐릭터와 정사 장면을 선보여 평단과 관객으로부터 많은 논란을 얻기도, 매우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해피엔드>, <거짓말> / © ㈜명필름, 신씨네 한국영화 속의 에로티시즘은 남성 관객의 눈요기를 위한, 여성의 성적 대상화에 치중했다는 문제가 없지는 않았지만, 여성을 시각화하고 부각하는 과정에서 여성을 중심으로 서사가 전개되며 점차 여성영화로 진화했다는 이중성을 지니고 있기도 했다. 50년대부터 80년대 중반까지의 한국영화 속에서 정치적·경제적·사회적 억압하에서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자신의 성적·사회적 욕망을 억누르는 피해자로 그려지던 여성들은 8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로 접어들며 <해피엔드>와 <거짓말>에 이르러서는 여성 해방에서 더 나아가 개인적 쾌락을 위해 사회적 일탈도 마다하지 않는 새로운 욕망의 주체로 변모되기 시작한다. 2000년대 후반 이후 한국영화에서 에로티시즘은 거의 완전히 소멸되기 시작하여 2020년대에는 로맨스와 멜로드라마마저도 찾기 어려운 실정이 되었다. 로맨스와 멜로드라마가 부재하다는 것은 여성 캐릭터가 설 자리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남성의 연애와 결혼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면 여성이 영화 속에 등장할 자리조차 없다는 2020년대 중반의 현실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때이다. *** [1] ‘에로방화’는 비디오 출시 전용의 소프트포르노 영화인 에로비디오와 이 시대 35mm 극장 개봉용 영화를 구분하기 위해 필자가 만들어낸 표현이다. ‘에로’라는 단어 때문에 편견이 생기기 쉽지만, 당대에는 에로라는 표현이 항상 사용되던 것이고, 80년대까지 한국영화를 ‘방화(邦畵)’라 불렀기 때문에 이 역사적 용어를 소환해 당대에 극장에서 개봉한 미성년자 관람불가의 대중영화를 ‘에로방화’라 지칭하기로 한다. [2] 앞선 3편의 영화는 장정일의 동명소설을, 영화 <거짓말>은 그의 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봐』(1996)를 원작으로 한다. 이윤종(영화 연구자) l 1980년대 한국 에로영화 연구에 이어 1980년대 이후 한국 스릴러 장르에 대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학술연구교수로 활동. 저서로 『에로방화의 은밀한 매력: 1980년대 한국 대중영화의 진보적 양면성』(영화진흥위원회, 2024), 논문으로 「젠더와 계급 갈등 위에 교차된 인종화: <버닝>의 벤 캐릭터에 대한 재고찰」(아시아영화연구, 2023) 및 「한국영화의 은자적 코스모폴리타니즘: 배창호의 <적도의 꽃>을 중심으로」(2024) 등 집필.
지난해 12월 12일, 한국영상자료원(이하 ‘영자원’)은 “스크린 케미스트리: 스타로 보는 한국영화사”라는 제목으로 1950~1990년대 한국영화계 스타 커플의 관계성을 분석하는 시네포럼을 개최했다. 한국영화사 연구를 수행하는 아카이브로서, 영화연구자는 물론 관련 분야에 관심을 가진 참여자들이 한국영화사와 관련해 새롭게 논의될 만한 지점을 발견하며 대화하는 장을 마련하고자, 영자원은 매년 이와 같은 행사를 기획하고 있다. 이번 행사는 학술적인 분석 중심의 발제나 토론이 아니라 발표자들이 청중의 질문을 받아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는 시네포럼의 방식으로 진행됐다. 국내 주요 스타 커플이 등장한 시기를 네 구간으로 구분하고, 각 구간별로 등장한 스타 커플과 당시 한국영화나 대중문화의 특성 간의 상관관계를 조명했다. 시기별로 논의될 만한 스타들을 미리 설정해놓기는 했지만, 이들의 활동이 갖는 의미는 발표자가 스스로 고민한 후 관객에게 제안하도록 열어뒀다. 1950~1990년대 급변한 한국사회의 분위기와 영화산업의 지형을 참고하면서, 시대를 ‘풍미’한 스타들이 대중에게 남긴 여운을 발표자와 참여자가 함께 추적할 수 있었던 포럼 현장을 요약한다. 1950~1960년대 스크린 속 스타 커플 영화평론가·영화사가 김종원 김종원 평론가는 1950~1960년대 한국영화에서 커플로 등장한 스타들 간 케미스트리를 발견했다. 1950년대 스타 커플의 역사는 < 출격명령 >(홍성기, 1954)에서 처음 호흡을 맞추고 실제 부부가 되어 < 춘향전 >(이규환, 1955)에서 향단과 방자를 연기한 전택이 와 노경희 부터 시작한다. 배우 노경희는 < 내가 넘은 삼팔선 >(손전, 1951)을 비롯해 < 피아골 >(이강천, 1955) 등에서 해방 이후 스크린을 통해 강렬한 카리스마를 분출하는 여성 배우로 거듭나고 있었으며, < 아리랑 3편 >(나운규, 1936)으로 데뷔한 전택이와 여러 작품에 동반 출연하며 20세기 중반 한국영화사에서 함께 활약했다. 이후 김승호 와 황정순 이 강대진 감독의 < 박서방 >(1960), < 마부 >(1961), 김수용 감독의 < 굴비 >(1963)에서 돋보이며 또 다른 스타 커플로 주목받았다. 그런데 < 새로운 맹서 >(신경균, 1947)로 데뷔한 배우 최은희 는, 커플을 구성하는 인물들 간 관계가 남성을 중심으로 형성된다는 당시 시대적 한계에서 벗어나, 케미스트리를 주도하는 여성 인물로 떠올랐다. 김진규 와 신영균 의 상대역으로 등장한 신상옥 감독의 < 동심초 >(1959), < 상록수 >(1961), < 산 >(1967)과 같은 작품들에서 이러한 측면이 두드러진다. 한편, 스타 커플의 일원으로 거론된 적은 드물었지만 멜로드라마 위주의 문예영화 영역 밖의 상업영화 작품들에도 다수 출연하며 입지를 다진 김지미 배우의 행보도 독특했고, 그의 활약은 < 골목안 풍경 >(박종호, 1962), < 불나비 >(조해원, 1965)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후 1960년대에 등장한 ‘트로이카’의 구성원으로, 김종원 영화사가는 배우 엄앵란 , 윤정희 , 문희 를 꼽았고, 그들과 배우 신성일 의 긴밀한 관계를 설명했다. 엄앵란은 < 청춘교실 >(김수용, 1963), < 맨발의 청춘 >(김기덕, 1964) 등에서 그와 함께 연기하며 ‘청춘영화’의 전성기를 불러왔으며, 두 배우의 호흡은 한국영화계에서 ‘스타’의 존재를 부각함과 동시에, 이전까지 외화에 치중됐던 국내 관객의 관심이 한국영화로 선회하는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했다. 윤정희는 데뷔작 < 청춘극장 >(강대진, 1966)부터 < 안개 >(김수용, 1967), < 장군의 수염 >(이성구, 1968) 등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며 1960년대 한국 예술영화의 주축을 구성하는 배우로 자리매김한다. 문희 역시 이만희 감독의 < 흑맥 >(1965)과 < 돌아오지 않는 해병 >(1963) 등에서 신성일의 상대역을 연기하면서 트로이카의 구성원으로서 영화계에 두각을 드러냈다. 그리고 이러한 신성일 중심의 트로이카 구도로 대표되는 1960년대 한국영화의 스타 커플 구조는, < 결혼교실 >(정인엽, 1970) 속 신성일과 윤정희, 문희, 남정임 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막을 내린다. 윤정희 X 신성일: 1960~1970년대 개발독재시대의 ‘밀고 당기기’ 영화평론가·영화연구자 금동현 금동현 평론가는 1960~1970년대 대표 배우이자 청춘스타였던 신성일과 윤정희가 동반 출연작에서 연기한 인물들의 관계를 ‘밀고 당기기’라는 용어로 재해석했다. 극중 그들의 배역이 점하는 위치는 1966년부터 1980년까지 함께 출연한 87편에 달하는 작품들에서 거듭 역전되고, 둘 간의 케미스트리가 두드러진 <안개>와 < 야행 >(김수용, 1977)에서 이 점이 선명히 관찰된다. 배우 신성일은 비교적 젊은 나이에 < 아낌없이 주련다 >(유현목, 1962)로 데뷔한 이후 유수의 작품에서 줄곧 주연을 맡았고, 특유의 소년미로 ‘청춘의 영원한 아이콘’이자 현대사회에 완전히 정박하지 못한 무책임한 어른의 모습을 보여줬다. 반면 도회적이고 지적인 여성 인물을 대표했던 배우 윤정희는 1972년 석사 논문 「영화사적 측면에서 본 한국여배우 연구: 1903~1946년을 중심으로」를 발표하면서, 배우이자 여성인 자신의 위치를 성찰하는 면모를 보이며 ‘멜랑콜리’한 정서를 중심으로 스타 이미지를 갱신했다. <안개>와 <야행> 중 신성일, 윤정희 / © ㈜태흥영화 일례로, <안개>에서만 해도, 윤정희는 주변 소품이나 인물들 사이에 갇혀있고 신성일과의 관계에서 주도적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인물로 나타났다. 하지만 <야행>의 몇몇 장면에서 윤정희는 자신을 향한 관객의 시선을 의식하는 연기를 수행함으로써, 1970년대 한국영화가 관객의 시선을 활성화하는 성취를 이루는 데 기여한다. 신성일과의 케미스트리를 일으킴과 동시에 한국영화사의 흐름을 따라가며 구축된 윤정희의 스타 이미지를 참고하면, 금동현 평론가는 그가 ‘보여지는(보이는) 여성’에서 ‘보여주고 보는’ 여성으로 변화했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1960~1970년대 한국고전영화 중 빼놓을 수 없는 걸작인 두 작품의 영화사적 의미가 제대로 파악되기 위해서는, 당대 형성된 두 배우의 스타 이미지를 반드시 경유해야 한다는 관점도 공유했다. 더불어, 두 사람이 우울하지 않은 명랑한 얼굴로 콤비를 이룬 작품 < 아파트를 갖고 싶은 여자 >(정인엽, 1970), < 모범운전사 갑순이 >(이형표, 1972) 역시 언급하면서, 둘의 케미스트리를 다른 방식으로도 재조명하고 싶다는 소회를 밝히며 발표를 마쳤다. 장미희 X 안성기 1980년대 한국영화의 황금 커플 영화연구자 이윤종 이윤종 영화연구자는 1980년대를 대표하는 배우 장미희 와 안성기 를 다루면서, 당대 한국영화 주요작에 출연하며 강력한 케미스트리를 발휘한 이들을 ‘황금 커플’로 지칭했다. 안성기는 김기영 감독의 1957년작 < 황혼열차 >에서 아역 배우로 데뷔해 연기 활동을 지속하다가 < 애수의 언덕 >(김대희, 1969) 이후 10여 년간 휴식기를 보내고 < 병사와 아가씨들 >(김기, 1977)로 복귀했다. 이때부터 < 바람불어 좋은날 >(이장호, 1980), < 적도의 꽃 >(배창호, 1983), < 고래사냥 >(배창호, 1984), < 깊고 푸른 밤 >(배창호, 1985) 등 1980년대 화제작의 주연으로서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인물을 연기하며 ‘국민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같은 시기 장미희와의 동반 출연이 특히 빛났다. 장미희는 < 성춘향전 >(박태원, 1976)으로 데뷔하고 흥행작 < 겨울여자 >(김호선, 1977)에 출연한 이후, 1980년대에 접어들어 당대 여성 배우 트로이카에도 합류한다. 이후 <적도의 꽃>, <깊고 푸른 밤> 등에서는 안성기와 상대역으로 만나 열연함과 동시에 흥행까지 거두면서 두 배우 모두 영화계 입지를 굳히게 된다. <적도의 꽃>와 <깊고 푸른 밤> 중 장미희, 안성기 / © ㈜동아수출공사 그런데 이들이 동반 출연한 1980년대 작품들에서 각자가 욕망의 주체(안성기)와 대상(장미희)으로 설정되면서 둘 간의 케미스트리가 ‘파국’의 결말을 통해 발휘된 점이 인상적이다. 안성기는 순수함부터 비열함에 이르기까지 중·하층민 남성의 변화무쌍한 얼굴을, 장미희는 세련된 외관을 지닌 채 심리적 결핍을 겪는 부유한 여성 인물을 자주 연기했다. <적도의 꽃>에서는 중년 사업가에게 착취당하는 오선영(장미희)에게 반한 미스터 M(안성기)이 그를 구출하려 하지만 결국 화합에 실패한다. < 황진이 >(배창호, 1986)에서 황진이(장미희)에 대한 마음을 전하지 못한 갓바치(안성기)는 극단적 선택을 감행하고, <깊고 푸른 밤>에서는 미국 영주권과 돈벌이에 집착하는 백호빈(안성기)이 계약 결혼을 통해 제인(장미희)을 이용하며, 두 인물이 파멸로 치닫는 과정에서 아메리칸 드림의 허상이 드러난다. 1980년대를 대표하는 두 배우는 이렇게 산업화와 군부 독재의 한가운데 드리운 감정 소외나 우울감의 그림자를, 불행의 케미스트리로 스크린에 옮겨왔다. 김혜수 X 한석규: 1990년대 소비문화와 트렌드 신화, 도시의 얼굴 영화평론가·성결대학교 교수 정민아 이전까지 언급된 배우들의 활동이 과거 한국사회의 시대별 흐름에 맞춰 전개됐다면, 정민아 평론가는 1990년대에 두각을 드러내 현재까지도 활발히 필모그래피를 갱신하고 있는 배우로서 배우 김혜수 와 한석규 를 조명했다. 시대를 대표하는 스타였지만 그들이 함께 출연한 작품은 사실 많지 않다. 로맨틱 코미디의 전성기였던 1990년대 < 닥터봉 >(이광훈, 1995)에서 처음 협업한 후 20년이 지난 시점에 < 이층의 악당 >(손재곤, 2010)으로 다시 만났다. 그래서 그들이 한 작품에서 발생시킨 케미스트리보다는, 1990년대를 배경으로 각자의 역량을 개발한 시간을 되돌아보며 오늘날까지도 강력하게 유지되고 있는 두 배우의 존재감을 분석했다. (상) 영화 <쉬리>, 드라마 <신사장 프로젝트> 중 한석규 / (하) 영화 <첫사랑>, <내가 죽던 날> 중 김혜수 © ㈜필름쿡플러스, tvN 1990년대 국내에서 외환위기가 발생하기 전까지, 민주화와 세계화가 본격화되며 대중문화 산업의 규모 역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대중의 취향과 ‘트렌드’에 부합하는 다양한 콘텐츠나 인물이 주목받았던 때로, 이때 등장한 스타들은 대체로 산뜻하면서도 세련된 분위기로 팬덤을 확보했다. 그중에서도 김혜수와 한석규는 외모와 목소리, 연기, 스타일 등 모든 면에서 당시 대중이 선망한 ‘세련됨’을 구현했고, 데뷔 이후부터 현재까지 작품 속에서 쉼 없이 대중과 호흡해왔다. 한석규는 지성과 인품을 겸비한 도시 남성의 이미지를 표방했지만, 드라마 <서울의 달>(1994)에서처럼 냉정한 현대사회에서 불운을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처연한 청년의 모습으로도 기억된다. 이는 최근까지 그가 TV 드라마에서 보여준 ‘소시민적’ 영웅의 리얼리티와도 맞닿아있다. 또한 감독에 의해 ‘선택받는’ 배우를 넘어 자발적인 비전에 따라 작품과 장르를 선택하고 신인 감독의 성장까지 견인하는 흥행보증수표 영화인의 시초 격이기도 하다. 한편, 김혜수는 활동 초기에 드라마 <한지붕 세가족>이나 영화 < 첫사랑 >(이명세, 1993)을 통해 젊고 발랄한 청춘스타의 면모와 특유의 건강미로 호응을 얻었다. 200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는 보다 다채로운 배역을 맡아 연기 스펙트럼을 확장했으며, 특히 2020년대 즈음에는 < 굿바이 싱글 >(김태곤, 2016)과 < 내가 죽던 날 >(박지완, 2019), < 밀수 >(류승완, 2023) 등을 통해 독립된 여성 자아가 돋보이는 씨네페미니즘의 상징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비디오 에세이 “기쁜 우리 젊은 날 그리고 안성기” 비디오 에세이스트 이무언, 한국영상자료원 학예연구팀 연구원 윤서연 비디오 에세이스트 이무언 과 영자원 학예연구팀 윤서연 연구원은, ‘비디오 에세이’라는 작업의 의미를 소개하며 포럼 주제에 맞는 작업 결과물 한 편을 직접 제작해 선보였다. 이무언은 관객이나 연구자로 하여금, 각자가 작품에서 발견한 특별한 지점을 중심으로 연출과 편집을 주도하면서 영화와 한층 더 친밀해지는 기회로 비디오 에세이를 인식했다. 윤서연 연구원 역시 비디오 에세이가 주제가 되는 대상(물)과 이를 둘러싼 세계를 “적극적으로 이해하고 통찰”한 결과이자 “매혹적인 또 하나의 작품으로 기능”한다는 논의 [1] 를 인용하며, ‘오디오 비주얼 크리틱’으로서 비디오 에세이의 영역이 지닌 비평적이면서도 창의적인 측면을 소개했다. 이날 소개한 작업은 영자원이 올해 ‘우수영상물 다국어자막 DVD 제작 및 배포 사업’을 수행하던 도중 두 사람이 기획하게 됐다. 우수영상물 다국어자막 DVD는 영화사적·예술적 가치를 지닌 한국영화 몇 편의 공통 소재를 제목으로 하여, 작품별 본편 영상과 각국의 언어로 번역된 자막, 그리고 코멘터리 영상 등을 수록한다. 영화를 통해 한국의 역사와 문화 전반을 해외에 소개할 목적으로 매년 해외 공관이나 문화원 등에 비영리적으로 배포되고 있다. 작년에는 “영화와 남성: 영화로 보는 스타 페르소나”라는 제목의 DVD에, 한국사회의 일면과 시대의 감성을 머금고 있는 남성 인물들이 인상적인 한국영화 6편을 수록했다. 그리고 감상자들이 한국에 대해 간략히 소개받을 수 있는 짧은 콘텐츠를 기획해 부가 자료로 함께 수록하고자, DVD에서 다루고 있는 남성 배우 6인 중 한 명에 대한 비디오 에세이를 기획했다. 내부 논의 끝에 최종 선정하게 된 에세이의 주인공은, 순정과 헌신, 소시민의 나약함, 일그러진 욕망 등 다채로운 감정을 표현한 국민 배우이자 고전과 동시대를 아우르는 스타로 기억되는 한국영화의 얼굴, 안성기였다. 실제 연령대로 비춰볼 때, 안성기는 에세이를 제작한 이무언의 아버지 세대이면서 작품 촬영 당시에는 그(이무언)와 같은 또래였다. 또한 안성기가 극중 인물을 형상화하며 선보인 특유의 ‘얼굴’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한국사회의 각기 다른 국면을 관통함에 따라, 1980년대의 시절이 하나로 통합되는 듯한 느낌 역시 받았다고 이무언은 전했다. “이미지들의 느슨하고 싱거운 연결”을 통해 이러한 인상이 에세이를 감상하는 이들에게도 전달되기를 바랐다고 한다. 반면 윤서연 연구원은 안성기가 각기 다른 영화에서 선보인 대사들 중 인상 깊은 부분들을 모아 1980년대 시대정신과 같은 특정 의미를 강조하여, 작품과 쇼트들의 의미를 비교적 명료하게 전달하고자 했다. 이 두 가지 입장은 작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조화를 이룰 수 있었다. 2017년 시네마테크KOFA에서 그에 관한 특별전을 개최했을 때 제작된 영상 “한국영화의 페르소나, 안성기전”을 참고하고, 구술채록 사업 진행 중 그의 구술 내용이 녹음된 파일들을 다시 들어봤으며, 그가 출연한 수많은 작품 중 10편을 골라 실제로 삽입할 쇼트를 신중히 선택했다. 쇼트마다 배어있는 정서를 자막과 음악으로 배치하기도 했다. 특히 서로 다른 작품에 속한 장면을 소품이나 장소 등을 매개로 연결하며 안성기가 작품과 작품 사이를 유기적이면서도 자유롭게 오가는 듯한 느낌을 자아냈다. 그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연출 중 하나는, < 기쁜 우리 젊은 날 >(배창호, 1987) 중 덕수궁의 벤치에서 각각 아내( 황신혜 )와 딸에게 자상함을 베풀지만 냉대를 받고 마는 두 장면을 한 화면에 나란히 배치해 동시에 재생한 대목이다. 같은 장소를 배경으로 아내와 딸을 향한 그의 행동이 중첩되는 순간들이 보이는데, 이는 필름이 아닌 디지털 영상이 보편화된 시대에 두 개의 영상을 2채널로 나란히 배치하며 가능해진 실험이라고 윤서연 연구원은 덧붙였다. 한국고전영화 에세이 - ‘기쁜 우리 젊은 날 그리고 안성기’ (이미지 클릭 후 재생) 관객과의 대화 (질문1) 1980년대까지 한국영화의 ‘스타’들에게는, 할리우드 스타들로부터 충족되지 못한 국내 관객의 욕망이 투사되는 측면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개인적인 관점에서 1990년대부터는 이들만의 영역이 독립적으로 구축됐다는 느낌을 받는데, 한국영화의 각 시기가 할리우드 스타 시스템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에 대해 발표자분들의 의견을 듣고 싶다. (답변_이윤종 영화연구자) 고전 할리우드 시기 영화산업은 몇몇 주류 영화 스튜디오가 제작과 배급, 상영을 전담하는 방식으로 운영됐고, 배우들 역시 각 스튜디오에 소속된 채로 활동했다. (하지만 1948년 미국 대법원에서 이러한 영업 활동이 ‘독점’에 해당한다고 판결하면서 여러 스튜디오가 해체됐고, 여기에 소속됐던 배우들이 개별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다.) 같은 시기 한국에서는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적 상황으로 인해 불가능했던 측면도 있지만 이러한 스튜디오 중심의 스타 시스템 자체가 확립되지 못한 상태였고, 할리우드의 방식을 모방하려는 시도도 있었지만 성공적이지 못했다. 해방 이후 신상옥 감독이 이끄는 신필름이 당시 국내 영화산업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게 되면서 스튜디오 시스템에 근접한 운영 양태를 보였는데, 1970년대부터는 이마저도 쇠퇴했다. 그리고 이전과 같이 감독과 배우, 영화 스태프들 모두가 독립된 개인으로서 활동하게 된다. 1980년대까지는 1990년대 이후에 비해, 영화를 비롯해 여기에 출연한 배우들 역시 대중에게 큰 파급력을 얻지는 못했던 시점인데, 와중에 안성기와 같은 ‘국민 배우’가 탄생했다는 점이 더욱 특별하게 느껴진다. (질문2) 20대 관객의 입장에서는 < 라디오스타 >(이준익, 2006)나 < 실미도 >(강우석, 2003) 등의 2000년대 이후 작품을 중심으로 안성기 배우를 기억하게 되는데, 과거의 다양한 출연작들을 통해 그의 활동을 한국영화사의 맥락에서 돌이켜볼 수 있어 뜻깊은 시간이었다. 비디오 에세이를 제작하면서, 여러 출연작 중에서도 중요하다고 인식되는 장면들을 구분해내고 이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작업이 쉽지만은 않았으리라고 예상된다. 작업 도중 겪게 되신 고충 이 있다면 듣고 싶다. (답변_이무언 비디오 에세이스트) 감상을 공유해주셔서 감사드린다. 인상 깊은 장면을 선정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장면을 확인할 때마다 영상의 일부를 이미지로 캡처해두고, 작품 안에서의 타임코드와 함께 그 장면이 인상적이었던 이유를 메모했다. 에세이에서 다룰 모든 작품에 대해 이 작업이 완료되면, 캡처된 이미지들을 훑어보며 관련 장면을 어떻게 연결할지를 고민했던 것 같다. 각 이미지를 연결하는 과정에서는, 안성기의 연기를 통해 전달되는 여러 가지 인상들(‘아버지’, ‘남성’ 등)이 쇼트들의 유기적인 연결을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지각되기를 바랐다. 그리고 안성기 개인의 삶이 연상되거나 관객 스스로가 처한 ‘현실’ [2] 과 작품 속의 ‘허구’가 연결되는 것처럼 느껴져서 흥미로웠던 장면들도, 어렵지만 제시하고 싶었다. 또한 관객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밖에 없는 안성기의 ‘얼굴’ 외에 다른 요소들도 활용하려고 노력했다. 잔을 부딪치며 건배하는 이미지, 수면 위에 반사된 이미지, 극중 시계를 비춘 이미지 등이, 매 장면 돋보이는 그의 다채로운 ‘얼굴’들을 연결해줬다. 한국고전영화 에세이 - ‘기쁜 우리 젊은 날 그리고 안성기’ 중 시계와 잔이 등장하는 쇼트 (질문3) 1960년대 한국영화의 멜랑콜리적 지식인 주체성에 대해 연구한 바가 있는데, 금동현 평론가의 발표에서 <장군의 수염>과 <안개>가 다뤄져서 반가웠다. 1960년대 한국영화에서 배우들이 담지하고 있는 멜랑콜리적 주체성 이 무엇일지에 대해 여쭙고 싶다. (답변_금동현 영화평론가) 오늘 분석한 작품들에서는 멜랑콜리를 자아내지 않고 ‘체현한’ 인물들이 등장했다. 물론 1960년대에는 멜랑콜리를 재현하는 몇 가지 요소가 발견될 뿐 멜랑콜리라는 감수성 자체가 이 시기에만 두드러졌던 것은 아니다. 그래도 멜랑콜리의 흔적이 관찰되는 1960년대 한국영화의 한 대목을 꼽자면, ‘코미디’라는 장르라고 생각한다. 1960년대 한국 코미디영화에서 웃음은 모종의 이유로 ‘경직되어버린’ 무언가를 조롱할 때 자주 발생했던 것 같은데, 이렇게 웃어야 하는 데 웃지 못하는 순간( 이봉래 감독의 영화에서의 몇 가지 장면이 예가 될 수 있다)이 어떻게 보면 멜랑콜리한 상태에서 받는 느낌과 연결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질문4) 오늘 언급된 배우 중, 배우 김혜수가 유독 눈에 띈다. 1990년대 당시 그는 확고한 ‘무비스타’로 자리매김한 상태가 아니었고, 광고나 드라마를 통해서도 아직 다른 스타들만큼의 파급효과를 일으키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1990년대를 대표하는 스타로 김혜수 가 자연스레 떠오른다는 것이 독특한 지점이다. 이 시기 스타로서 김혜수의 부상을 분석하실 때 다른 배우들과 비교하여 어떤 접근법을 적용하셨는지가 궁금하다. (질문5) 2000년대 이후부터 최근까지 배우 김혜수와 한석규가 선보인 연기 스타일이, 그들이 1990년대에 수행하던 방식과는 달라졌다고 말씀해주셨다. 배우들이 선보이는 연기의 방향성이 재정립되는 데는, 영화에 대한 관객의 욕망이 변화하는 현상이 상당 부분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시대별로 이념이나 정치성, 관객의 욕망 등의 변화가 배우들의 연기 스타일 변모에 어떻게 작용할 수 있을지 를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면 좋겠다. (답변_정민아 영화평론가) 두 질문에 대해 한 번에 답변 드리고 싶다. 말씀하신 대로 김혜수 배우가 영화계 스타로서 두각을 나타낸 시점은 비슷한 시기에 데뷔한 다른 배우들에 비해 다소 늦다. 하지만 1990년대 화보와 예능, TV를 포함해 대중매체 전반에서 그가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하며 성장한 여정을 고려하면, 그리고 이 시기 관련 콘텐츠를 향유했던 경험을 되새겨보면, 1990년대를 대표하는 스타가 김혜수라는 점은 분명한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이는 오늘날 스타가 탄생하는 과정과도 유사하다. ‘영화’와 그밖의 영역(방송 등)이 명확히 구분됐던 과거와 다르게, 2000년대 이후부터 현재까지는 ‘배우’의 활동 분야가 대폭 확장됐고 분야 간 경계도 거의 사라졌다. 영화, 드라마, 뮤지컬 등 분야에서 연기 활동을 이어가는 이들은 모두 ‘배우’로 호명되며, 그들이 연기를 선보이는 분야 역시 한 가지로 국한되지 않는다. 따라서 스크린을 통해서만 스타로 거듭나기보다, 1990년대 본격적으로 파급된 각기 다른 매체에서 강렬한 영향력을 발휘해 자신만의 스타 이미지를 구축한 김혜수가, ‘멀티 플레이어’로 활약하는 복합적 차원의 배우상을 1990년대부터 선구자적으로 확립한 이로 평가될 수도 있을 것 같다. * 현장 BEHIND CUT * *** [1] 박진희, “ 복혜숙과 석금성을 헷갈려하다 ”, KMDb 영화글, 2023. 7. 27. [2] < 개그맨 >(이명세, 1988) 중 이발사가 이종세(안성기)에게 “어렸을 때부터 그 방면에 재능이 많으셨죠?”라고 물어 아역 배우 시절 안성기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거나, < 칠수와 만수 >(박광수, 1988) 중 “우리 쳐다보는 거 아니에요?”라는 대사 이후 배우 박중훈과 함께 카메라를 응시하는 장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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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이전 조선・한국 관련 기록영상 컬렉션 | 166건 | 2025-02-17 | 2023-01-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