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사는 남자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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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상자료원의 '영화인 구술사' 시리즈를 바탕으로, 자료가 없어 실체를 알기 어렵던 사건과 인물,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를 영화인의 입을 빌려 흥미진진하게 전달합니다. 박: 애니메이션영화제 했었을 때, 아까 <에반게리온> 얘기했었지만. <에반게리온>이나 < 공각기동대 >, 뭐뭐 < 에스카플로네 > 이런 거 했었거든요. 근데 잘 됐었어요. [1] 해당 구술채록문을 읽다 보면, “아까 <에반게리온> 얘기했었지만”이라는 말에서 이상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말이 나오기 이전까지 구술에서 단 한 번도 < 에반게리온(新世紀エヴァンゲリオン) >(안노 히데야키, 1995)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여기서 말하는 ‘아까 한 이야기’는 인터뷰 사이 잠시 쉬는 시간 동안 나눈 대화를 말하는 것이다. 구술담당자로서 인터뷰에 참관하면서 구술자의 이야기를 듣다가 개인적으로 궁금한 것이 생기면 이렇게 쉬는 시간에 살짝 물어보곤 한다. 그리고 당시 구술자에게 <에반게리온>에 대해 물어본 것은, 내가 에바팬이라거나 그래서 그런 것은 절대로 아니다. 그 이유는 이제부터 천천히 풀어갈 것이다. 닫힌 영화, 열린 영화제 사실 광주 ‘ 영화로 세상보기 ’ 운영자였던 박상백 구술(2024년 10월 17일 진행) 이전에 그와 관련된 재미난 이야기를 들은 바 있었다. 황: 일본영화 같은 경우는, 사실은 광주 기획을 좀 본따고 그랬는데. 광주 ‘영화로 세상보기’에서 그때 돈을 막 많이 벌었더라고요. 한: 재패니메이션으로? 황: 그래서 액정도 바꾸고. 이게 그때 ‘소년 탐정’인가? <에반게리온> 시리즈. 저는 뭐 내용도 아직도 모르는데, ‘야, 저런 매니아층이 또 있구나.’ 그래서. 저희도 해보니까 아닌 게 아니라 사람이 꽤 오더라고요. [2] 대전 ‘ 씨네마떼끄 컬트 ’의 운영자였던 황규석 (2024년 6월 29일 인터뷰 진행)에게서 이 이야기를 듣고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에반게리온> 상영으로 ‘돈을 많이 벌었다’라는 사실보다도 ‘저런 매니아층이 있다’라는 깨달음에 있었다. 이러한 관객층을 지금의 관점에서 그냥 ‘오타쿠(オタク)’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에반게리온>이 등장했던 시기만 해도, 국내에서는 ‘오타쿠’에 대한 뚜렷한 사회적 인식도 없었고, 특정 애니메이션 작품에 대한 열렬한 지지층의 활동이 눈에 띄지도 않았었다(존재는 하고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적어도 외연적으로는 드러나지 않고 있었다). 따라서 구술자가 이들을 ‘저런 매니아층’이라고 표현한 데에는, 어느 정도 오늘날 재패니메이션 ‘오타쿠’에 대해 사후적으로 형성된 느낌도 내재되어 있다. 그러나 어쨌든 이 사후적인 인식을 제외하더라도 평소 이상의 어떤 관객층들이 <에반게리온> 상영 당시 몰려왔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들은 누구이고 왜 여기 왔을까? 정: 제 세대뿐만 아니라 바로 윗세대들도, 제 바로 다음 세대들도 너무나 보고 싶었던 영화가 있었어요. 너무나 보고 싶었던 영화. 일본영화. … 유학을 가지 않으면 그건 접할 수가 없는 거니까. 사실은 프랑스영화・독일영화에 대한 갈증보다 일본영화에 대한 갈증이 훨씬 컸어요. [3] 한: 혹시 그런 건 없었나요? 선호하는 영화 통계 같은 거. 조: 있었죠. 한: 아, 있었어요? 조: 네. 일본영화, 뭐 (사이) 제일 많이 봤던 영화가 아마 < 러브레터 >. 수입되기 전에. 그리고 피터 잭슨 < 데드 얼라이브 >, < 천상의 피조물 > 이런 게 공식적으로 소개 안 됐었거든요? … 되게 압도적으로 피터 잭슨 영화하고 일본영화하고 미국의 인디영화들, 이런 영화들이 사람이 많이 왔었어요. [4] 영화평론가 정성일 과 1990년대 문화학교 서울 의 운영자로 일했던 조영각 은 당시 시네마테크를 찾아오는 관객들은 근본적으로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영화를 보고 싶다는 욕구를 갖고 있었다고 말한다. 당시에 한국 극장에서는 보기 힘든 프랑스영화, 독일영화, 미국의 인디영화들을 실제로 보고 싶다는 마음도 강했지만, 이 영화들이 수입자유화와 함께 쏟아지는 미국영화들 속에서 틈새를 찾아 소규모의 예술영화전용관들을 채울 때조차도 들어오지 못했던, 원천적으로 수입 자체가 금지되어 있던 일본영화, 그리고 일본 애니메이션에 대한 욕구는, 그것이 문화적・심리적 거리가 가까울수록 더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여기에 시네마테크의 운영자들의 근원적인 고민 역시 있었다. 시네마테크를 찾는 관객들이 원하는 것이 한국사회로부터 ‘닫힌 영화’들 이기 때문에, 이들의 자료 확보와 상영 활동은 불법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한: <러브레터>는 처음에 어느 쪽에서 구하셨어요? 곽: (목소리를 낮춰서) 어디서 구했을까요? 어디서 구했을까. [5] 후지이 이츠키 스트레이트 플러쉬! 조: 영화를 보려면 무조건 회원가입을 해야 돼요. 그게 저희 문턱이었고. 저희는 그렇게 운영해야지 여기가 안전하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사실 불법이잖아요. 비디오를, 영화를 트는 게 심의를 받은 것도 아니고 우리도 저작권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회원제라는 규정을 만든 거고. … 그런 규칙들이 있어서 내부 결속력은 되게 탄탄했던 반면에 다른 데서 보기에는 “좀 폐쇄적이다” 이런 얘기들도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6] ‘회원제로 운영되는 폐쇄적 시네마테크를 통해 극장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영화들을 본다’라는 것이 어쩌면 ‘특권’처럼 읽힐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정반대였다. 음지화된 공간에서 불법적인 방법으로 들어온 작품을 보고 있다는 사실, 즉 ‘ 모두 함께 모여 허락되지 않은 것을 보고 있다 ’라는 비밀(?)은 시네마테크를 찾는 관객들의 소속감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여기에 이들의 응집력을 높이는 것이 하나 더 있었다. 개인용 컴퓨터 통신전용망을 이용해 취미와 관심이 같은 사람 또는 전문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온라인으로 정보를 교환하거나 토론을 벌이는 개인용 컴퓨터 통신동호회들이 많이 결성돼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 동호회 회원들은 시간을 정해놓고 특정 주제에 대하여 온라인 토론을 벌이는 외에도 전자게시판 기능을 이용, 알리고 싶은 소식을 회원 모두에게 공개하거나 공동 자료실을 만들어 쓰고 있다. - “PC통신 동호인 모임 활발”, 《한겨레》 1990. 8. 14. 8면 기사 “이 영화가 < 미져리 >보다 무섭다는 ‘ PC통신 ’을 보셨습니까?” (《조선일보》 1994. 6. 10. 18면 광고) 1990년대 초 PC통신 이 본격적으로 국내에 도입되면서,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겨났다. 사실 이 새로운 공간은 서로의 존재를 확인시켜주고 정보를 준다는 것 그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었다. 김: ‘이제 그런 영화들이 인정받는 세상이다’ 이런 부분에 대한 어떤 각인? 취향을 드러내게 되는 거죠. … 팬과 마니아라는 거에 대한 나의 소속감 ? 그게 굉장히 컸던 거 같아요. [7] 이 온라인 공간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취향을 더욱 공고히 하는 동시에,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영퀴’를 풀면서 소속감을 다져갔다. 이러한 소속감이 커질수록, 각자의 취향은 숨기거나 혼자만 누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와 함께 즐길 수 있는 것이라는 인식이 생겨났고, 그렇게 자신들이 보고 싶은 영화를 어디에 가면 볼 수 있는지 정보를 공유하며 시네마테크로 자연스럽게 모이게 되었다. 다시 처음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나는 쉬는 시간을 빌어 구술자 박상백에게 ‘영화로 세상보기에서 <에반게리온>을 상영했을 때 정말 많은 사람들이 왔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그렇게 많은 관객을 동원할 수 있었는지’를 물었다. 그는 본 인터뷰 때 이야기한 것처럼 그 시기가 “닫힌 시대이기는 했지만 좀 알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미 다 알려져 있던 것들”이었고, 소문만 무성한 그 ‘화제작’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모여들었을 뿐이라고 겸손하게 답했다. 그리고 덧붙여 ‘왜 <에반게리온>에 당시 관객들이 그토록 열광했다고 생각하냐’라는 질문을 이어 했고, 이에 대해 “<에반게리온>은 이야기할 거리가 많은 작품이라 당시 시네필뿐만 아니라 많은 대중들이 열광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답했다. 확실히 <에반게리온>은 지금까지도 말도 많고 해석도 다양한, 참 어려운 애니메이션이다. <에반게리온>에 대한 세기말 관객들의 관심이 상당 부분 이 ‘해석놀이’에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또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에반게리온>만 특별한 관심의 대상이었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 시기 재패니메이션의 인기를 이끌어가는 또 다른 한 축으로는 ‘지브리 애니메이션’이 있었다. 구술자 송정환은 평택의 ‘ 시네마드리밍 ’에서 <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平成狸合戰ポンポコ) >(다카하타 이사오, 1994)을 상영했을 때 많은 관객들이 영화를 보러왔고, 특히나 평택시민아카데미로 공부를 하러 오던 청소년들이 애니메이션 영화들을 재미있어했으며, 이에 같은 공부방에 있던 아이들끼리 상영 프로그램을 직접 기획하고 함께 감상을 했던 일을 인상 깊게 기억하고 있었다. [8] 누가 뭐래도 지브리 최고 남주는 ‘ 아시타카 ’다. (필자 개인 의견임) 뿐만 아니라, 시네마테크 운영자들은 애니메이션에 대한 관심과 호응을 한국 단편 애니메이션 쪽으로 이끌고 갔다. 지금도 사정이 크게 다르진 않지만, 단편 애니메이션의 경우 영화제가 아니면 일반 관객에게 상영을 할 수 있는 기회가 극히 드물었다. 시네마테크는 자신들이 갖고 있는 전국적인 시네마테크 배급망(전국씨네마떼끄연합은 1997년 결성되었다)을 이용해, 각 지역에서 활동하는 애니메이션 창작자들의 작품을 모아 순회상영을 하거나 장편 사이에 단편 작품들을 끼워 넣어 함께 상영하는 등 프로그램을 다양화했다. 박: 그때 해외에서 들어온 독립영화하고 국내 독립 애니메이션을 붙여 가지고 긴 독립영화, 해외 독립영화 장편에 앞서서 마치 인트로를 열듯이, 국내 단편 애니메이션을 상영하고 그다음에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영화가 딱 이렇게 된다든가, 데이비드 린치의 < 이레이저 헤드 >를 상영하는 데 앞서서 나기용 감독의 단편이 상영된다거나, 이런 식으로 하는 시도들도 있었고. 그리고 독립영화협회하고도 좀 같이하는 활동들이 있었고. 문화학교 서울이라고 지금은 없어졌는데 거기하고 저희랑 같이 해서 상영회를 조그맣게 한다든가 이런 활동들이 더러 있었죠. [9] 손: 저기 문화학교 서울인가, 정말 하꼬방 같은 그런 극장에서. 기억나네. 완전히 다락방 같은 극장이었는데, 거기서 < 생존 > 틀고 이랬을 때 무렵이었거든요? 그러면서 교류를 하게 된 거죠. 그러니까 저는 모션&픽쳐에 있으면서 독립영화, 시네마테크 이런 쪽 하는 사람들 하고 교류가 되기 시작한 거죠. … 자체 영화제가 이런 때 서울에 있는 작품들 가져올 때도 지역 뭐 같이 해서 틀기도 하고. 그러면서 교류가 많이 일어나기 시작했죠. …그러니까 전체적으로 시네마테크 활동하던 분들이 독립영화협회를 만들기 시작한 시기가 맞물린 거죠, 대구도 . 그래 가지고 대구에서도 원승환 이라는 친구하고 이렇게 해서 협회를 만들어보자라는 분위기가 있었어요 … 그렇게 이제 모션&픽처하고 독립영화 하는 친구들하고, 시네마테크 하는 사람들하고 이렇게 해서 ( 대구독립영화협회를 ) 만들게 되었죠. [10] <생존>(손영득, 1997)의 한 장면 물론 < 아키라 >(오토모 가츠히로, 1988)나 <공각기동대>(오시이 마모루, 1995)를 보러 왔던 관객들, <에반게리온>의 팬들, ‘지브리 애니메이션’이나 한국 단편 애니메이션을 보던 관객들이 모두 같은 성격의 관객층이라고 뭉뚱그릴 수 없다. 심지어 <에반게리온> 상영회를 보러 왔던 관객들조차도 하나의 성격을 가진 집단으로 묶을 수 없다. 개중에는 정말 <에반게리온>을 좋아하는 오타쿠도, 그저 심도 깊은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시네필도 있을 것이고, 혹은 ‘워낙 화제가 되는 작품이라니 나도 구경이나 한번 해볼까’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네마테크를 찾는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너무 보고 싶지만 좀처럼 볼 수 없는 작품이 상영되는 곳 , 그런 작품을 찾는 이들이 편안하게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며 모일 수 있는 곳, 배급 경로를 찾지 못한 창작자들이 자신의 작품을 들고 관객과 만날 수 있는 곳으로서 시네마테크가 다양한 관객층을 끌어모으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렇게 형성된 관객층들이 2000년대 초반, 흔히 ‘한국영화의 화양연화’라고 이야기되는 시기를 불러오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는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킹덤>의 팬덤 1990년대 가장 ‘힙한’ 공간이었던 이 민간 시네마테크들은 어떻게 사라지게 되었을까. 결론을 대신하여 2024년 주제사에서 가장 핫했던 작품 < 킹덤(Riget) >(라스 폰 트리에, 모턴 안프레드, 1994)과 < 킹덤 2(Riget II) >(라스 폰 트리에, 모턴 안프레드, 1997)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를 짓고자 한다. 두 작품의 상영과 관련된 에피소드들은 시네마테크의 관객층이 갖는 응집력의 폭발 인 동시에 이들이 주류의 문화 안으로 흡수되는 과정 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1996년 부산국제영화제가 개최된 이후로, 부천의 판타스틱영화제・서울여성영화제・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영화제(SICAFF) 그리고 2000년 전주국제영화제에 이르기까지 각자의 개성을 가지고 만들어진 영화제 들은 영화팬들에게 또 다른 놀이터였다. 영화제는 ‘합법적’으로 새로운 영화를 제공했고 관객들은 그곳에서 마음껏 놀았다. 그리고 영화제에 참여하지 못한 이들에게도 신문 기사나 PC통신 동호회 등등을 통해 참석자들의 뜨거운 후기는 전해졌다. 수보다 중요한 것은 관객들의 열기. < 브레이킹 더 웨이브 >의 감독 라스 폰 트리에가 연출한 무려 4시간 반짜리 영화 <킹덤>이 대표적인 경우. 지난달 30일 자정에 열린 첫 상영에는 4백여 석 극장에 2천여 명이 몰려 급히 다른 극장을 잡아 시차를 두고 두 곳에서 상영했으며 그러고도 수백 명이 발길을 돌려야 했다. - “시네마 부천, 9만 관객 갈채”, 《동아일보》 1997. 9. 6. 26면 기사 영화제가 끝난 뒤에도 <킹덤>과 심야영화 의 붐은 계속 이어졌다. 당시 <킹덤>과 심야상영을 찾던 관객 안에는 좋은 작품을 찾아 헤매는 시네필들도 있었지만, 단순히 심야상영 문화를 즐기고 그 열기에 섞이고 싶은 젊은이들도 모여들었다. 최근 들어서는 심야시사회로 일반화되는 추세.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던 예술영화의 재상영 기회 로도 그 몫을 한다. 심야상영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우선 값이 싸기 때문이다. 일반영화 한 편 값으로 서너 편의 영화를 볼 수 있는 IMF형 문화상품. 단순한 영화관람에만 그치지 않고 젊음과 영화를 매개로 한 일종의 공동체 의식을 형성한다는 것도 한 이유. 여대생 박진아 양(22)은 “영화관에 있으면 한배에 탄 사람들처럼 느껴진다. 이심전심으로 통하는 전율과 긴장, 공포와 웃음으로 밤을 지샌 뒤 인적없는 새벽거리로 나설 때의 쾌감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고 말한다. - “값싸고 젊음・마니아 상징에 만원사례, 심야상영 신세대문화로 뿌리”, 《경향신문》 1998. 5. 29. 22면 기사 상대적으로 수도권에 비해 문화적 전파가 더딜 수밖에 없는 지역에서도 뒤늦게 <킹덤>과 심야상영을 즐기려는 관객들이 자신의 지역에 위치한 시네마테크에서의 재상영을 찾았다. 박상백은 “전라도의 모든, 이런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들이 다 왔던 것 같다”라고 당시의 분위기를 표현했는데, 이런 엄청난 관객 동원은 기존 시네마테크를 찾던 시네필들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 것이었다. 박: 그때 부천영화에서 이미 상영을 했었고, 필름으로. 저도 그때 가서 봤고. 열기를 봤었고. 자연스럽게 볼 수 없는 상황이 되니까 비디오테이프로 그거를 작업해서 돌았었어요 . 그래서 그거를 가져다가 이제 상영을 한 건데. … 심야 문화가 없었기 때문에 그게 또 사람들은 새로운 거에 대한 호기심이나 그런 걸 경험해보고 싶은 충동이 있잖아요. 그래서 그런 것들이 잘 이렇게 융합이 돼 가지고 아마 그렇게 많은 관객분들이 오시게 된 단초가 되지 않았나 싶은데. 잘되니까 다른 시네마테크에서도 했었던 걸로 알고 있고. [11] 원: 그중에서 관객들이 제일 많이 봤던 영화가 <킹덤>이라는 영화였어요. 그 영화가 97년도 부천영화제에서 매진이 되고, 그해 12월에 동숭씨네마텍에서 개봉을 했는데, 대구에는 이 영화가 내려올 일이 없다고 생각을 한 것죠. 그래서 2월쯤에 그 영화만 가지고 상영회를 했어요. 근데 어느날 배급사에서 연락이 왔어요. “우리가 그 영화 권리를 가지고 있는 회사인데 무단으로 틀었다고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지금 재산상 손해를 이렇게 봤으니까 만나자.” … “그러면 대구에서 <킹덤>이 개봉되는데 홍보를 하면 어떻겠냐”고 제안 을 주셨는데, … <킹덤>이라는 영화가 우리나라에서 흥행했던 영화들하고 다르게 전국 로드쇼를 했던 영화고. 서울 상영이 대박이 터지면서 부산 상영을 했고, 부산에서도 대박이 터지면서 대구로 이제 상영이 옮아온 거고. 그게 12월이었는데 대구가 2월이니까 한 3개월 뒤에 오는 거잖아요. 그래서 서울에서 홍보가 이미 다 끝났고 지역에서 개봉할 때는 지역 언론사에 별도로 홍보를 해야 되는 필요가 생겼는데. … 또 <킹덤 2> 할 때는 아예 처음부터 ‘지역에 있는 시네클럽들, 시네마테크들하고 홍보를 같이 하자’ 라는 계획을 세웠어요. … 대구에서는 그걸 제가 했던 거고, 광주에는 뭐 광주극장에서 워낙 잘하시니까 그걸 했던 거고. 부산은 뭐 부영극장에서 잘하시니까 그랬던 거고. 대전은 이제 ‘컬트’가 그거를 하게 된 거고. [12] 대전 씨네마떼끄 컬트에서 개최된 ‘킹덤 상영회 포스터’ ※황규석 기증자료 박상백이나 원승환의 말처럼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킹덤>을 향한 관객들의 뜨거운 열기를 확인한 시네마테크들도 앞다퉈 <킹덤> 상영회를 추진했고, 그 열기에 동참하고, 함께 즐기고자 하는 이들이 찾아오며 시네마테크에서도 연이어 흥행에 성공했다. 이들은 이듬해 <킹덤 2>의 상영회도 추진하고자 했지만 <킹덤 2>의 정식 수입사인 KJ엔터테인먼트에서는 이 시네마테크의 불법적 상영에 제동을 거는 한편으로, 오히려 이들이 갖고 있는 지역에서의 홍보 노하우를 적극 활용하여 전국 상영을 진행했다. 그렇게 <킹덤 2> 역시 흥행에 성공하기는 했지만, 이제 시네마테크들의 입장에서는 합법적 상영 공간에 자신들의 역할을 내어줄 때가 되었음을 깨닫게 되는 일이기도 했다. 그렇게 2000년대에 들어서서 일부 시네마테크 운영자들은 멀티플렉스에 자리를 빼앗긴 소극장이나 각 지역 대표 단관극장들과 손을 잡고 독립·예술영화전용관을 운영하거나, 자신들의 특기를 살려 독립예술영화 배급 쪽으로 자리를 옮겨 활발히 활동을 이어갔다. 그렇게 은밀한, 그래서 더 자유롭고 끈끈했던 관객들, 그리고 그들에게 아지트가 되어준 문화공간들은 사라져 버렸지만, 각 지역의 민간 시네마테크들이 남긴 유산은 여전히 한국영화 산업 내에서 여러 형태로 이어지고 있다. 이들이 지역의 영화문화와 독립・예술영화 산업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를 자세히 알고 싶다면, KOFA컬렉션을 통해 공개된 2024년 주제사 ‘1990년대 전후 지역 영화문화의 변화와 네트워크’ 에서 직접 확인해보도록 하자! *** [1] 공영민 채록연구, 『2024년 한국영화사 구술채록연구 시리즈 주제사 <1990년대 전후 지역 영화문화의 변화와 네크워크> 1권: 정희섭・박영정・박상백・송정환 편』, 한국영상자료원, 2024, 217~218쪽. [2] 공영민・한나리 채록연구, 『2024년 한국영화사 구술채록연구 시리즈 주제사 <1990년대 전후 지역 영화문화의 변화와 네크워크> 3권: 이진이・원승환・황규석・강민구 편』, 한국영상자료원, 2024, 192쪽. [3] 공영민・한나리 채록연구, 《2023년 한국영화사 구술채록연구 시리즈 주제사 <영화문화의 변화와 사설 시네마테크의 활동> 2권: 정성일・이하영・손주연 편》, 한국영상자료원, 2023, 37~38쪽. [4] 한나리 채록연구, 『2023년 한국영화사 구술채록연구 시리즈 주제사 <영화문화의 변화와 사설 시네마테크의 활동> 3권: 안정숙・곽용수・조영각・김영덕 편』, 한국영상자료원, 2023, 188~189쪽. [5] 한나리 채록연구, 앞의 책, 101쪽. [6] 한나리 채록연구, 위의 책, 147~148쪽. [7] 한나리 채록연구, 『2023년 한국영화사 구술채록연구 시리즈 주제사 <영화문화의 변화와 사설 시네마테크의 활동> 3권: 안정숙・곽용수・조영각・김영덕 편』, 한국영상자료원, 2023, 224~226쪽. [8] 공영민 채록연구, 『2024년 한국영화사 구술채록연구 시리즈 주제사 <1990년대 전후 지역 영화문화의 변화와 네크워크> 1권: 정희섭・박영정・박상백・송정환 편』, 한국영상자료원, 2024, 295쪽. [9] 이문주 채록연구, 『한국 애니메이션 구술채록연구 시리즈 생애사 18권: 박보경 편』, 한국영상자료원, 2021, 69쪽. [10] 유은정・박지윤 채록연구, 《한국 애니메이션 구술채록연구 시리즈 생애사 21권: 손영득 편》, 한국영상자료원, 2021, 95~96쪽. [11] 공영민 채록연구, 앞의 책, 한국영상자료원, 2024, 216~217쪽. [12] 공영민・한나리 채록연구, 앞의 책, 한국영상자료원, 2024, 142~147쪽.
‘오인용’은 2000년 초반 국내 플래시 애니메이션이 막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기 시작하던 시기에 <돼지> <연예인지옥> < 중년탐정 김정일 > 등 수많은 작품들을 통해 성인용 장르를 확장하려 고군분투하며 어린이용 애니메이션 이외에는 볼거리가 없는 한국의 문화적 빈곤함 속에서 엽기적이고 실험적인 작품에 목말라하는 성인관객들의 유일한 위안이 되었던 대표 창작집단으로 중간에 잠시 활동을 중단하기도 하였지만 오늘날까지 꾸준히 활동하는 유일한 독립 웹 애니메이션 창작자 그룹이다. < 만담강호 >는 오인용 원년멤버 정지혁 , 장석조 감독이 기획, 연출을 맡은 중국무협을 소재로 한 코믹액션 애니메이션으로 오인용의 첫 장편 개봉영화가 되었지만 사실 오리지널 장편 애니메이션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24편의 <만담강호> 웹 시리즈를 연결하여 한편의 장편으로 개봉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또한 처음부터 장편으로 제작하기 어려운 현실을 감안한다면 독립 장편 제작의 전략으로 좋은 사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 만담강호 >의 스토리는 고수들이 넘쳐나는 무림의 어느 객주인 ‘풍림객잔’에서 비급을 둘러싼 강호들이 비급을 서로 차지하려고 벌리는 한판의 약육강식과 비정한 적자생존의 법칙이 지배하는 세상에 등장인물 모두가 도덕적 정의와 인격을 내던지고 갖은 술수와 거짓, 사기와 비겁함과 잔인한 폭력성을 통해 이익을 취하려는 오늘날의 현실을 풍자하여 보여주는 듯하다. 무공보다 여자를 탐하는 난봉색남, 미친놈 ‘화화공자’. 강호 포커페이스 계의 절대 강자, 웃는 놈 ‘소소할배’. 깡다구 패거리의 비선실세, 이상한 놈 ‘점룡혈객’ 이들 앞에 운명처럼 전설의 절세무공 비급이 떨어지고, 그것을 차지하기 위해 숨넘어가는 삐-드립 혈투가 시작된다. 중국무협 하면 쿵푸 같은 전통무술을 겨루는 액션이 주가 되는 것이 상식이지만 여기서는 기대와는 다르게 19금 속사포 삐-드립(B급 욕설과 막말하기)으로 일관하며 직장에서, 학교에서, 부모 앞이라 착한 척만 하던 성인들에게 오랜만에 속 시원한 해방구를 만들어주어 감사할 따름이다. 이 작품을 보며 한 편에선 시대에 뒤떨어졌다거나, 너무 저질이다. 등 비판적인 목소리도 나오는 거로 안다. 성 소수자와 여성에 대한 인식이 세련되지 못하고 피가 낭자한 후반부의 집단적 살인은 애니메이션이라 그나마 수용 가능할 수 있었으리라. 그러나 추억어린 오마주와 패러디를 근간으로 한 캐릭터가 등장하는 장면연출, 싱크로율 200%인 속사포의 거침없는 목소리 연기 등은 이 영화만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예산을 수백억씩 들인 고급진 애니메이션을 보자는 것도 아니고 공중파와 멀티플렉스를 찾는 불특정 대중을 상대하지 않는 것이기에 소수 성인을 대상으로 한 이러한 시도는 계속되어야 한다고 본다. 최근 웹 애니메이션이 새로운 대안 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기존 애니메이션 업체들도 웹 기반의 콘텐츠들을 통해 마케팅함으로써 타깃을 세분화하고 상시적으로 노출을 함으로써 인지도를 높이고 실질적인 판매로 이어지는 구조의 새로운 소비패턴을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 만담강호 >를 서비스하는 웹 채널 ‘좀바라 TV’도 이러한 분위기에서 최근에 여러 작품들의 서비스를 시도하며 시장을 탐색하고 있다. 이들의 선구적인 노력들은 분명히 마중물이 되어 한국 애니메이션이 보다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즐기는 문화와 창작을 위한 최소한의 재생산 구조를 만드는데 일익 할 것이라 믿는다. 독립영화전용관 등 제한된 스크린에서 상영되어 상업적으로는 분명 아직 한계가 있을 것이지만 새로운 시도인 만큼 실패가 우리 사회의 자산이 될 수 있다면 우리는 더 빨리 성공할 수 있을 것이기에... 15년이 지난 지금 웹 애니메이션의 르네상스를 다시 꿈꿔본다. 만담강호 예고편 : https://www.youtube.com/watch?v=YoND2phXTWM 좀바라TV 채널 : https://www.youtube.com/channel/UCyjZzK1rjTWjxBXGYsGORUw
< 사이먼의 고양이 Simon’s Cat > 시리즈의 제작자 사이몬 토피엘드(Simon Tofield)는 영국의 아티스트로 우리에게 아직 낯선 이름이지만 이미 전 세계적으로 알려진 유명인이다.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애니메이터인 그는 2008년 < Cat Man Do >를 시작으로 7년간 1~2분 분량의 매우 짧은 애니메이션 시리즈 49편과 제작과정 영상 등을 제작하여 유튜브 채널에 게재하여 현재 구독자 370만 명, 조회수 7억 뷰를 기록하는 놀라운 실적을 쌓아나가고 있다. 초기 대표작품인 < Cat Man Do >는 브리티시 애니메이션 어워드British Animation Awards에서 베스트 코미디 상을 수상하고 브랫포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Bradford Animation Festival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하는 등 많은 영화제에서 작품성을 인정받으며 애니메이션 계에 주목을 받았다. 남자 주인공인 사이몬(Simon)과 그의 절친 애완동물 ‘Snow Cat’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일상이야기를 살짝 엿보면 당신도 바로 매료되어 팬이 될 것이다. < Cat Man Do >는 1분 37초 분량의 매우 짧은 애니메이션으로 스토리 또한 매우 단순하다. 어질러진 물건들 가운데 찢기고 허름한 침대가 있다. 한 남자가 깊은 잠에 빠져있고 이때 고양이 한 마리가 등장하여 주인인 남자를 깨우려는 귀여운 행동들 하다가 귀찮아하며 끝까지 안 일어나는 주인에게 야구방망이를 휘두르는 폭력을 행한다. 그리곤 잠을 자다 막 일어난 듯 기지개를 켜며 모른 척 아양을 떨곤 밥을 달라고 너스레를 떠는 고양이를 보고 웃지도 울지도 못한 채 하소연할 곳도 없이 억울해하는 남자의 표정으로 영화는 끝난다. Cat Man Do - Simon’s Cat 유튜브에서 감상하기 동물을 소재로 한 코미디 애니메이션 시리즈물은 많이 있다. ‘미키마우스’와 ‘도날드덕’, ‘톰과 제리’ 등 전통적으로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에서 단골로 삼은 소재이기도 하다. 그만큼 동물은 우리에게 친근감과 공감을 쉽게 불러일으키는 주인공들이다. 그러나 사람과 애완동물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상의 소소한 사건들로 이렇게 친밀하면서도 공감 가게 표현한 작품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이는 아마도 삶이 복잡한 그리고 외로운 현대인들의 감성을 터치하며 주인인 ‘사이몬’의 머리 위에서 노는 고양이 ‘Snow Cat’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코드를 조금은 과장되지만 있을 법한 에피소드를 단순한 선화만으로 심플하게 보여주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더구나 그 캐릭터가 호기심이 가득하며, 제멋대로이고, 능청맞게 애교가 넘치며, 꾀가 많고, 이기적이지만 사랑스러운 고양이로 그럴싸하게 연기를 한다면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 사이먼의 고양이 > 시리즈의 성공은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공감할 수 있는 초단편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유튜브를 통해 전 세계에 온라인으로 직접 관객과 만나는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서비스 방식으로 전통적인 마케팅과 배급방식의 제약조건을 타개할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유튜브와 연계한 홈페이지 운영, 페이스북 같은 SNS를 활용한 실시간 마케팅을 기반으로 다양한 캐릭터 부가사업으로 펼쳐지며 시너지를 얻고 있다. 이야기책을 출판하여 판매하고, 스티커, 인형 등 팬시용품, 애완동물 상품 등 수많은 상품화로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연령층과 고객들의 구매욕을 부추기고 있다. 국내에도 2000년대 초중반 한동안 플래시 애니메이션(Flash Animation)의 붐 이후 최근 다시 웹 애니메이션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동영상을 서비스하는 유튜브 등 전문 플랫폼이 등장하고 인터넷과 연동된 모바일 중심의 콘텐츠 서비스가 보편화되면서 홍보와 판매가 동시에 가능한 수익형 모델이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대규모 인력과 자본이 소요되는 큰 프로젝트보다 리스크가 적은 보다 가볍고 짧은 콘텐츠로 빠르게 변화하는 소비패턴과 스낵 컬쳐(Snack Culture) 라이프스타일을 따라잡기에 적합하다는 판단이 깔려있기도 하다. 초기에 플래시만을 사용하여 제작되던 방식에서 다양한 애니메이션 제작 툴을 다양하게 사용하여 만들어지는 웹 애니메이션들은 내용과 스타일 면에서도 다양화되고 있는 추세로 짧은 시간 언제 어디서나 가볍게 즐길 수 있고 미디어 환경에 최적화된 ‘숏 폼 애니메니션’(Short From Animation)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 중이다. 무엇보다 < 사이먼의 고양이 > 시리즈는 혼자서 제작하여 세계적으로 성공한 콘텐츠로 애니메이션 시장 상황과 개인 창작자들의 작품 배급을 통한 수익모델이 없어 녹록치 않은 국내 현실에서 향후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는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simonscat 유투브 채널 https://www.youtube.com/user/simonscat simonscat 홈페이지 https://simonscat.com
신사의 봄은 역설적이게도 벚꽃이 만발한 완연한 봄기운으로 아름답기까지 하다. 거기에 고령의 어머님을 휠체어에 모시고 한 여인이 천천히 들어선다. 바람에 떨어지는 벚꽃 잎이 술잔 위에 떨어진다. 장면은 어느새 그 잔을 들고 둘러앉아 노래를 부르며 목숨을 거는 조종사들의 복종의식으로 바뀐다. 그들이 부르는 노래는 군가 ‘동기의 사쿠라’로 천황을 위해 목숨을 바쳐 나라를 구하는 특공대의 생을 벚꽃으로 비유한 노래다. 1. 너와 나는 동기의 사쿠라. 같이 훈련소(군사 학교)의 정원에 핀 꽃. 그렇다면 지는 것은 각오하자. 멋지게 지자 나라를 위해. 2. 너와 나는 동기의 사쿠라. 같이 훈련소의 정원에 핀 꽃. 혈육 나눈 사이는 아니지만 왠지 마음이 맞았지. 3. 너와 나는 동기의 사쿠라. 같이 항공대의 정원에 핀 꽃. 바라봅니다 노을 진 남쪽 하늘을. 아직도 돌아오지 않는 1 번 비행기를 기다리며... 4. 너와 나는 동기의 사쿠라. 같이 항공대의 정원에 핀 꽃. 그만큼 맹세한 그 날을 기다리지 못하고 어째서 죽어 떨어져야 하는지 5. 너와 나는 동기의 사쿠라. 그처럼 흩날릴지라도. 꽃의 도시, 야스쿠니 신사의 봄날. 그 가지에 피어 다시 만나자. 야스쿠니 신사는 1869년(메이지 2년), 군 희생자의 넋을 달래기 위해 설립한 초혼사가 그 전신으로 일본 천황을 위해 싸우다 목숨을 잃은 사람들을 신으로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일본 제국주의 침략의 상징적 공간이다. 한일 간 역사인식은 참으로도 그 출발부터가 다르다. 일제강점기의 강압적인 통치와 수탈에 이어서 2차 대전(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에 의해 운영된 위안부가 그렇고 강제징용이 그랬다. 김준기 감독은 위안부 문제를 다룬 애니메이션 <소녀이야기>를 제작 국내외적으로 피해여성의 육성 녹취록을 바탕으로 실상을 널리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두 번째 역사고발 애니메이션 <환> 은 실화에 픽션을 더해 보다 예술적으로 표현하고자 노력한 작품이다. 천황을 위한 죽음을 통해 신사에 ‘가미’ 즉, 신(神)으로 모셔진다는 사상은 일본 전통신앙에 국수주의와 군국주의 지배 사상이 결합하여 왜곡된다. 보잘것없는 민초가 위대한 전쟁의 영웅들과 함께 나란히 묻혀 숭배받는다는 것은 현생을 뛰어넘는 영생불사 신의 환생인 것이다. 가미카제 [kamikaze, 神風(신풍)]는 신이 되는 의식으로 기능하게 되고 여기서 개인의 인간성과 주체성은 말살되어 비참하게 산화하게 된다. 실제로 가미카제용 비행기는 착륙장치와 탈출장치가 없이 폭탄만 가득 싣고 목표지점에 겨우 갈만큼의 기름만 주고 나는 방법만 익힌 어린 조종사들이 강제로 태워졌다는 증언 속에 징용조선인이 육탄방어와 공격에 대부분 희생되었을 것으로 본다. 주인공 또한 당시 가족을 지키고자 강제로 조종석에 앉혀져 다음 생에서나마 조국의 가족과 함께하고자 하였을 것이리라... 야스쿠니신사와 일본항모 갑판 위에서 치러지는 출격 전 복종의식은 그들에게 개인에서 신이 되기 위한 경계를 넘는 숭고한 의식이지만 조선인으로 참전한 주인공에겐 망국의 식민지 노예나 다름없는 처지에 참담함은 이루 말로 표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의 제국주의 전쟁에 어쩔 수 없이 끌려가 희생당한 참전 조선인들의 넋이 야스쿠니 신사에 봉인된 체 70여 년이 넘게 매일 출격하는 악몽에서 그들을 자유롭게 해야 한다고 이 작품은 오늘날 우리들에게 애타게 호소하고 있다. 그네들이 애국심과 전우애로 목숨을 바쳐 사쿠라 가지에 다시 피어나길 염원하였듯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되어 오늘날도 끝나지 않고 계속 반복되는 순환의 전쟁터에서 산화한 징용 조선인의 넋이라도 구해오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익히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을 사실적인 이미지로 우리 앞에 강렬히 재현하되 감성적인 터치를 하고자 애쓴 스토리 설정은 마지막에 도달해 주인공의 넋마저 욱일기의 방어벽에 막혀 어머니와 부인과 만나지 못하며 더욱 간절하게 한다. 주인공에 좀 더 감정이입이 되기 위한 설명과 이야기가 부족한 점을 빼고는 민감한 역사적 소재를 예술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으며 단편이지만 스케일적인 면에서나 영상적 완성도 면에서 매우 훌륭한 작품이라고 본다. 이미 이탈리아에서 개최된 제17회 퓨처필름영화제에서 관객상을 받는 등 해외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단편이라 영화제나 특별 상영회에서나 만나볼 수 있다는 것이다.
홍덕표 감독의 저예산 VOD 장편애니메이션 < 발광하는 현대사 >가 2014년 7월 10일 오픈 플랫폼에서 동시 개봉하며 그동안 한국애니메이션사에 없었던 새로운 시도가 이루어졌다. 새로운 시도란 본격적인 성인용 애니메이션이 극장이 아닌 IPTV나 VOD, 모바일을 중심으로 한 오픈 플랫폼에서 서비스되었다는 것이고, 드라마 형식의 상, 중, 하 3편으로 구성된 시리즈로 나누어 서비스되었다는 점이다. 홍덕표 감독은 단편애니메이션과 실사영화를 제작하며 연출력을 인정받아온 감독이며, 원작인 강도하 작가의 만화 < 발광하는 현대사 >를 저예산 독립 장편애니메이션의 선두주자인 연상호 감독이 프로듀서로 참여하며 한국의 유아용 애니메이션에 치우친 애니메이션 시장에서 본격적으로 성인층을 공략하는 애니메이션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제작하고자 하는 첫 번째 작품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극장이 아닌 IPTV와 VOD, 모바일 등의 다중 플랫폼에서 동시 오픈하는 서비스 방식을 채택한 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변화한 디지털 온라인 시장 환경에 발 빠르게 적응한 새로운 모델로 작품성 이전에 배급방식이 더 관심을 받았다. 원래는 드라마 형식의 11화로 기획되었으나 서비스 조건을 고려해 3편으로 구성되었다. 작품은 강도하 작가의 만화 원작 그대로를 재현하는데 많은 공을 들였으며 만화적인 재미를 애니메이션적으로 새롭게 연출하여 신선하게 살려내지 못했다는 평과 반대로 성인들이 보기에도 품격있는 애니메이션으로 그 가능성을 보였다는 평이 엇갈리는 편이다. ‘현대’와 ‘민주’라는 두 주인공 캐릭터의 위험한 사랑과 주변 인물들과의 엇갈린 성(性)적 관계망을 통해 한국 현대사의 일그러진 욕망의 사회학적 지형을 그려내며 기존 성인애니메이션이 단지 성적 욕구 해소의 오락영화에서 머물던 한계를 작품성으로 극복하고 있는 것이 또 다른 성과가 아닐까 한다. 극장이 아닌 안방에서 관객을 직접 만나는 이러한 배급방식은 성인물이라는 장르와도 잘 맞아 떨어지며 바쁜 현대인들에겐 쉽게 영화를 즐길 수 있는 환경이 이미 잘 갖추어져 있었지만 애니메이션은 언제나 유아용 TV 시리즈물이나 가뭄에 콩 나듯 가끔 잊혀 질만 하면 개봉하는 장편에만 매달려왔었다. 국민적으로 인기를 구가하는 투바엔테인먼트의 ‘라바’가 뜨기 전까지는 예전 배급방식에 올인하여 왔던 것이 업계의 현실이었지만 최근 IPTV 등 새로운 채널과 디지털 온라인 시장이 확대되며 수익 발생이 현실적으로 가능해지면서 업계도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추세로 앞으로 애니메이션 장르의 디지털 온라인 시장 변화를 이끄는데 어떻게 작용할지 주목할 만 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연상호 감독의 저예산 독립 장편애니메이션 < 사이비 >가 2013년 11월 21일 개봉하며 전국에 < 돼지의 왕 > 이후 다시 한 번 화제를 불러 모았다. ‘사회고발’, ‘리얼리티 잔혹 스릴러’ 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며 ‘쎈’ 영화의 대명사로 불리는 연상호 감독의 작품들은 그의 단편 < 지옥 > 시리즈에서부터 예고되었다. 주제에 대한 끈질긴 일관성으로 감독의 사회의식과 세계관이 기존 한국애니메이션들과는 차별성을 가지며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다. 작품을 보면서 애니메이션이라는 생각보다는 실사영화를 한편 보는 듯 색다른 느낌이랄까? 이러한 느낌은 < 돼지의 왕 > 때 아쉬웠던 작품의 미술적, 애니메이션적 완성도가 많이 보강된 점과 스토리와 캐릭터 설정의 탄탄함을 바탕으로 한 연출적 완성도에 의한 것이었다. 물론 아직도 동작이 뻣뻣하고 표정이 풍부하고 깊이 있게 표현되지 못하는 기법상의 문제가 눈에 거슬렸지만 저예산이라는 한계를 감안한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연 감독의 첫 번째 장편 < 돼지의 왕 >이 20개 관 내외였던 것이 비하면 < 사이비 >는 New의 투자배급으로 개봉관이 80개 관으로 늘어났으며, 그에 힘입어 한 달이 안 되는 기간에 관객 2만을 돌파했다. 3억 5천 정도의 제작비와 2억 정도의 마케팅비(영진위 개봉작 지원 포함)를 모두 다 합친다 해도 5억 내외로, 평균 제작비만 30억 내외의 기존 상업 작품의 6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초저예산 장편애니메이션으로서는 높이 평가할 수 있는 기록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낙관적인 평가는 아직 금물이다. 연 감독의 작품은 호불호가 명확히 갈리고 마니아층마저 비판적인 목소리를 서슴지 않는 적극적인 소수가 지지하는 영화이기에 초기 관객유입은 오래가지 못했고 상식적인 예상 성적표를 거두었기 때문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지르는 무모해 보이는 도전에 답답한 현실의 벽은 조금씩 무너질 수 있지 않을까. < 사이비 >는 이미 국내 개봉 전부터 해외 유수 영화제에서 주목을 받았는데 지난해 10월 20일 폐막한 제46회 시체스국제영화제에 초청되어 애니메이션 최우수작품상을 받았다. 또한 같은 해 스페인에서 열린 제51회 히혼국제영화제에서도 장편애니메이션부문 최우수상을 받았는데 11편의 경쟁작과 겨루어 < 치팅 >(미국, 빌 플림튼)과 공동 수상함으로써 국제적인 주목을 받을 수 있었다. 이뿐만 아니라 제86회 아카데미 장편애니메이션 부문 예비후보로 선정되는가 하면 최근엔 포르투갈 판타스포르토국제영화제 각본상 수상, 네덜란드의 권위 있는 애니메이션영화제인 제17회 홀랜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그랑프리를 수상하는 등 해외의 반응과 평가가 오히려 더 뜨거운 것 같다. < 돼지의 왕 >이 덜 정리된 듯한 스토리와 극 구성이라면 < 사이비 >는 보다 세련되고 매끄러운 극 구성임에도 힘이 넘쳐났다. 작품의 이야기와 캐릭터들을 살펴보면 단순한 주제의식과 주인공 캐릭터인 김민철( 양익준 )의 쎈 캐릭터가 돋보였으며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뼈가 사무치는 사투는 보는 이로 하여금 영화적 현실을 질리게 만든다. 상대역 최경석 장로( 권해효 )의 평범한 마스크 속의 전형적 죄질 나뿐 사기꾼 또한 영화를 더욱 드라마틱하게 만들어준 캐릭터다. 여기에 한배를 타게 된 젊고 매력적인 성철우 목사( 오정세 )의 막판 파국은 신의 전도자 이전에 인간의 나약한 본성에 들어선 사악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김민철의 딸 김연선( 박희본 )은 포악무도한 가부장의 전형인 아버지의 피를 뼛속까지 거부하며 처음으로 자신의 존재가치를 깨달으며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캐릭터다. 그 밖에도 무능하기 그지없는 공권력과 무지하고 허황한 사이비 종교에 빠져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수몰지역 주민들은 다소 과장되고 극단적인 인물들로 설정된 것 같지만 오늘날 대한민국의 굴곡진 현대사의 숨기고 싶은 어두운 자화상이 아닌가 한다. 종교적 소재를 다루지만 종교가 아닌 진실과 거짓에 대한 파헤침을 통해 결국 도달하는 것은 무엇이 진실이고 참인가 라는 질문이다. 우리가 맞이하는 일상의 사투가 무엇을 위한 것이었던가를 김민철의 캐릭터와 주변 인물들을 통해 성찰하게 하는 것이다. 마지막 김민철의 토굴 속의 이율배반적인 행위은 인간적 한계와 본질에 대한 관객에게 던지는 감독의 선문답과 같은 것이리라. 이러한 연 감독의 저예산 속도전을 통한 성공전략은 일찍이 세계 어느 스튜디오에서도 시도된바 없는 독창적인 전략으로, 시장기반이 좁고 허약한 한국에서 탄생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적은 예산은 스튜디오 규모의 최소화, 빠른 제작기간, 제작기술 효율성을 극대화, 지원사업의 적극 활용, 국제적 영화 무대의 공략이라는 전략 하에 산학협력을 통한 신진인력을 활용한 디지털제작시스템의 적극 활용 등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개봉 이후 얼마 안 돼서 벌써 세 번째 장편 프리프로덕션이 마무리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감독으로부터 전해 듣고 연상호 감독만이 할 수 있는 속도전에 혀를 내둘렀다. 차기 작품은 < 서울역 >이라는 장편으로 공포의 비판적 은유로 한국사회에 문제를 던지는 야심 찬 작품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의 애니메이션제작지원 제도는 그 규모나 지원방식에서 다른 나라에서 부러움을 살 정도로 막강한 지원을 하고 있다. 이러한 지원제도 덕분에 한국의 애니메이션 산업이 일정 정도 해외에서 힘을 발휘하고 인정받게 된 밑거름이 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반대급부로 부작용으로 작용하는 것 또한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현 정부가 창조경제라는 단어를 만들기 오래전부터 1994년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 시절 < 쥬라기 공원 >의 성공신화를 모델로 벤치마킹하며 도입한 문화산업의 육성과 영상산업의 부흥을 위해 시작된 지원제도는 1995년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SICAF)로 외화되었으며 이미 설립된 한국영화진흥위원회 외에 콘텐츠분야 지원기관인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이하 KOCCA)이 2001년 설립(서병문 초대원장) 이후 12년간 만화, 애니메이션, 캐릭터, 게임, 방송으로 확장하며 명실공히 한국을 대표하는 콘텐츠산업의 중추적 지원기관으로 그 위상을 지속해오고 있다. KOCCA가 중앙정부 산하의 대표 지원기관이라면 남산에 위치한 서울애니메이션센터(SBA), 부천에 위치한 경기디지털콘텐츠지흥원은 대표적인 지자체의 콘텐츠 지원 기관으로 서울애니메이션센터는 타 기관보다 일찍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산업 육성사업을 다각도로 펼쳐왔다. KOCCA의 경우 최근 연 1,200억 원(2009년)에서 게임과 방송진흥원이 통합되며 2,300억 원(2013년) 규모로 늘어난 예산을 운용하는 거대한 공룡이 되었으며 이는 콘텐츠 분야의 일원화를 통해 통합된 정책을 추진하고 균형 있는 예산 집행이라는 명분이 작용했겠지만 진흥원 간 상호경쟁과 예산 편성의 유리한 지점을 차지하기 위한 거대지표의 목표설정과 실적 위주의 사업진행에 문제점이 강화되는 지형을 만들고 있다. 더구나 대부분의 사업방향들이 CT 기술개발, 문화원형 디지털화 사업, 글로벌 킬러 콘텐츠 제작지원, 스타프로젝트 등 그 명칭에서 드러나듯 인력보다는 기술에 편중된 지원과 상업적으로 성공 가능성이 높고 해외에 경쟁력이 있는 프로젝트에 예산이 집중되면서 정부예산편성과 지원사업의 방향성에 많은 문제점이 노정되었다. 이는 진흥원 자체 평가에서도 나타나듯이 CT R&D 사업의 관리운영의 문제, 개발된 기술과 콘텐츠의 후속 사업화 및 연계성이 떨어지는 문제, 특정한 업체의 연속지원 혜택에 대한 문제, 해외 공동제작 시 하청제작 전락 우려 등이 지적되고 있다. 애니메이션 지원사업이 영화진흥위원회에서 KOCCA로 완전히 이관된 2004년 이후 영화적 관점의 작품성 있는 장, 단편 애니메이션 제작지원은 어려워졌으며 콘텐츠라는 틀에서 통합된 글로벌 경쟁력과 수익성을 담보하지 못하는 작품은 더 이상 발을 붙이기 어려워졌다. 이는 선진국의 문화 예술적 기반 위에서 만들어지는 산업화된 성공신화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정책적 오류에 비롯된 것이라고 본다. 성공한 콘텐츠의 모델은 각각 다른 유전적 특질을 가지고 있겠지만 공통적으로 본다면 자본과 시장, 그리고 중요한 문화 인프라의 유무다. 자본과 시장이 약소한 우리나라에서 < 쥬라기 공원 >이나 디즈니식 성공모델은 불가하다. 이를 보완할 수 있는 것이 문화 인프라이다. 우리나라가 가진 문화 유전자로 이는 문화에 대한 우리의 특질이며 사람이 문화를 생산하고 향유하는 가치의 사회적 수준이기도 하다. 한 나라의 문화 인프라는 이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건강성을 유지하는 시스템인 것이다. 최근 세계화니 무한경쟁이니 하는 이데올로기를 확산하는 곳은 어디인가? 기업과 언론이 앞장서고 정부가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며 재생산하는 것이다. 이는 시장 자유주의에 근거하는 것 같지만 시장규제는 대기업간 분배와 이익을 위해서만 작동하며 대기업과 중소기업, 개인 간 경쟁은 시장에 맡겨버리는 방임주의라고 할 수 있다. 정부가 말하는 창조경제가 제대로 이루어지려면 콘텐츠 분야 현장의 현실 문제를 더 정확히 들여다보고 제도적 보완과 지원방향을 설정해야 할 것이다. 이를 애니메이션분야로 적용해 볼 때 연간 매출액 규모가 100억 이상의 사업장 종사자 수는 200여명 내외로 100억 이하 규모의 사업장 종사자 수가 4,000여 명을 넘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국내 애니메이션업체는 50명 내외로 비정규직 고용이 30~40%에 육박하는 중소규모의 사업장이 전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해외 글로벌 기업과 경쟁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또한 하청산업(OEM)에 의존도가 높아 제작인력 기반에서 창조적 인력기반으로 변화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으며 다행히 최근 창작제작이 늘어나면서 하청제작을 넘어서 60%를 상회하는 것은 고무적이라고 평가할 만하지만 여전히 유아용 TV 시리즈에 의존하고 있으며 그나마 1%대의 저조한 시청률과 투자기피로 인해 제작비를 조달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으로 정부의 지원사업은 구멍 난 독에 물 붓기를 반복하는 실정이다. 이는 근본적으로 시장환경의 문제도 있겠지만 서두에 말한 문화 인프라의 형성에 미온적인 정부의 정책적 실패를 지적하고 싶다. 이는 유럽에서도 실시하고 있는 자국 애니메이션 의무방송과 쿼터제, 방송국의 공익성에 근거한 예술영화 및 마이너 한 영상콘텐츠의 제작투자 활성화를 통해 자국의 문화를 보호하고 정체성을 확보하여 자국민에게 이를 향유하도록 하는 사회적 선을 지키고자 하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필요한 때이다. 영화산업은 투자와 배급이 핵심적인 성공의 필요조건이라고 본다면 애니메이션은 이 둘이 다 허약한 산업이다. 영화에 의존적이며 더군다나 거대한 배급사와 극장을 소유한 대기업에 휘둘려 제대로 관객에게 선도 못 보이고 내리는 것이 당연시되어버린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관객은 자신의 볼 권리조차 인식하기 전에 마케팅과 배급과정에서 미래에 가능성 있는 작품들을 걸러낸 자신들만의 시장을 굳건히 유지하고 있다. 이의 근본적인 해결방안은 애니메이션에도 한국 영화산업의 성공 모델을 활용한 접근방식을 통해 청소년과 가족 등 다양한 연령층이 향유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 창작의 기회를 확대하여 작품성 있는 애니메이션과 걸출한 감독이 배출될 수 있는 창작기반을 조성하는 것이 절실하다고 본다. 2005년 KOCCA에서 3년간 시행했던 ‘애니메이션제작스튜디오’ 사업 모델도 자생력이 없는 가능성 있는 중소규모 프로젝트를 상용화 시키는 것은 여전히 유효한 사업 모델로 최근 다시 정책적 이슈가 되고 있다. 중소규모 창업 및 프로젝트의 제작비 및 스튜디오 공간지원과 매니징을 통해 시장의 논리에 맡기기 보다는 인큐베이팅 및 유통배급 지원을 통한 상용화까지 경험을 축적하게하고 자생력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 필요한데 이는 정부기관의 일방적인 직접지원을 보완한 민간이 참여하는 간접지원 방식을 도입하는 방향설정이 중요하다. 즉, 이미 자생력을 갖춘 민간기업의 기 검증된 대규모 프로젝트에 국민의 세금을 직접지원 방식으로 지원해주는 것은 국가산업 경쟁력 확보와 고용확대라는 면에서도 설득력이 약하며 지양해야 할 방식이다. 그보단 제도정비와 제작 및 유통배급 환경조성, 인력풀 구축, 문화 인프라 구축 등 간접지원 및 지원프로그램 등 소프트웨어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만약 10여년 동안 결과도 알 수 없는 기술개발 및 글로벌 콘텐츠 제작지원에 매년 쏟아부은 수백억원 규모의 예산으로 매년 십수편의 다양성을 지닌 저예산 창작애니메이션을 꾸준히 만들어 배급했다면 아마도 지금쯤 우리의 안방과 극장에서 지금보다는 행복하게 전 국민이 우리의 정서에 맞는 콘텐츠를 즐길 수 있을 것이며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 감독이 배출되었을 것이다. 창조경제를 말하는 요즘 새삼 지난 십수년간의 우리의 애니메이션의 현실을 떠올리며 다음시대에도 부끄럽지 않을 긴 안목의 문화창조 인프라 조성과 한국 창작애니메이션의 밑거름이 될 지원 시스템을 만드는데 정부 지원기관과 애니메이션계가 다함께 머리를 맞대고 풀어내길 기대해본다.
얼마 전 부천에서 개최된 부천국제학생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서 안시페스티벌에서 바쁜 스케줄상 보지 못한 < 르 타블로 Le Tableau(The Painting) > 작품을 만날 수 있었다. 장 프랑수아 라귀니(Jean-Francois Laguionie)감독의 4번째 장편으로 프랑스에선 2011년 11월에 개봉되어 까다로운 평론가들에게 좋은 호응을 얻기도 했는데, 일반적인 헐리우드 장편애니메이션과 다른 매우 독특한 매력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었다. 한 마디로 설명하자면 그림 속 주인공들의 이야기로 완성작과 미완성작, 실패작으로 구분된 이 세계는 플라톤식 국가론을 연상시키는 세 개의 계급을 형성하며 대립하고 갈등한다. 부르조아 계급인 귀족과 지식인과 소상인의 중간계층, 하인, 노동자의 하층민이 존재하며 자신들의 창조주인 화가를 찾아 이러한 계급을 만들어 놓은 이유를 찾아 해결을 하려는 모험의 여정을 움직이는 그림의 시각적 흥미와 극적인 이야기로 이끌어가고 있다. 자 그럼 그림 속에 잠시 귀를 기울여보자 “여러분! 화가는 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제발 부탁이에요. 완성되지 않은 부분이 이렇게나 작은데!” “저 천한 자들을 모두 이 그림 안에 두어야 합니까?” “낙서에 불과한 실패작들.” “혐오스러워. 화가가 저들을 지워버렸어야 했는데.” 이 세계의 기득권을 독점하며 호의호식하려는 귀족 계급은 완성작들로 미완성작과 스케치들을 자신들의 그림세계에 존재할 필요가 없는 천한 것들로 또는 실패한 존재로 취급하며 폭력과 노동을 착취하며 핍박을 일삼는다. 여기에 반기를 든 주인공 라모(Ramo)는 이렇게 외친다. “무슨 근거로 완성작이 더 우월하다는 거죠?” 주인공 라모는 완성작임에도 불구하고 미완성작인 사랑하는 여인 끌레어(Claire)를 도와주려고 미완성작들과 함께 화가를 찾아 그림을 완성시키고자 미답의 세계로 여행을 떠난다. 이렇게 자신들을 구원할 화가를 찾아 작업실에 놓인 그림들을 이리저리 넘나들며 벌어지는 모험은 명화 같은 장면하나, 움직임 하나까지도 놓치기 아쉬운 너무나 아름다운 영상이 되어 스크린 위에 펼쳐진다. 화가를 통해 구원 받으려던 미완성작들은 생사를 건 모험과 여행을 통해 스스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중요한 깨달음을 얻게 되고 작업실에 있는 물감들을 가지고 그림으로 되돌아와 화가의 그림이 아닌 자신들만의 색깔과 그림체로 더 뛰어난 완성작으로 태어나게 된다. 기존 지배세력이었던 완성작들 조차도 새로운 차원의 매력적인 창조과정에 합류하며 갈등은 사라지고 해방을 맞이한다는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여자 주인공 끌레어는 작업실 밖으로 혼자 나와 해변가에 그림을 그리는 화가를 찾아내 그림들을 왜 완성하지 않았는지에 대해서 질문을 던진다. 화가는 이야기한다. 이젠 너무 늙어 더 이상 힘든 작업을 할 수 없다고... 우리들은 누군가 이 어려운 현실을 타개할 구원자를 기다리며 창조주인 화가를 원망하는데 일상을 허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 애니메이션의 미덕은 아름다운 그림 속에 사는 주인공들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잃어버린 모험을 시작하라고 조용히 속삭이고 있는 것이리라. 우리에게 생소한 장 프랑수아 라귀니(Jean-Francois Laguionie) 감독은 세계적인 거장으로 이미 3편의 장편을 제작하였을 뿐만 아니라 지금은 고전이 되어버린 단편 애니메이션 < La Demoiselle et le violoncelliste(The Maid and the Cellist >(1965)로 안시 국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대상을 수상했고, 또한 1979년 칸 영화제에서 단편 < La Traversee de l`Atlantique a la rame(Rowing Across the Atlantic >(1978)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아쉬운 것은 한국 관객이 이 훌륭한 작품을 일반극장에선 만나 볼 수 없다는 것이다.
한국 장편 애니메이션의 르네상스는 두 개의 축으로 재도약 한다는 점이 이전의 경향과 크게 변별점을 가진다. 우선 가장 일반적인 접근 방식으로 사업적인 성공을 목표로 대중적 오락성과 작품성 두 마리 토기를 다 잡으려는 30억 이상의 장편 애니메이션과 작품성과 특정 매니아 층을 겨냥한 10억 이내의 저예산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구분될 수 있겠다. 오성윤 감독의 < 마당을 나온 암탉 >과, 100만을 넘긴 3D CG애니메이션 영화인 < 점박이 >가 첫 번째의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둘 다 나름 한국의 척박한 애니메이션 시장에서 성공한 모델로 꼽히고 있다. 이러한 작품들은 오랜 제작경험을 가진 스튜디오와 영화제작사와 투자배급사의 안정적인 결합으로 제작 및 마케팅비를 마련하고 100개관 이상의 상영관을 확보하며 관객몰이를 하는 전형적인 메이저 영화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조건을 다 갖춘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그리 쉬운 얘기가 아니다. 무엇 보다 검증 안 된 감독의 첫 번째 장편인 경우는 더욱 그렇다. 작년은 우리에게 저예산 장편의 가능성과 함께 한계도 명확히 깨닳게 한 해였다고 생각한다. 한혜진 , 안재훈 감독의 < 소중한 날의 꿈 >과 연상호 감독의 < 돼지의 왕 >이 극명하게 이러한 현실을 보여주었다. < 돼지의 왕 >은 부산국제영화제의 3관왕 수상과 칸국제영화제 감독주관으로 초청되며 언론의 집중조명과 호의적 국내외 여론형성으로 차기작 < 사이비 >의 투자결정과 일련의 과정이 지금까지의 한국애니메이션에서는 볼 수 없었던 분위기와 현상들은 메이저급 장편애니메이션이 펼쳐온 전략과 분명 차별화된 것으로 앞으로의 행보에 주목해야 할 이유이다. 최근 개봉한 이대희 감독의 첫 번째 장편 < 파닥 파닥 >과 아카데미 제작연구과정의 김선아 , 박세희 감독의 < 은실이 >는 이러한 면에서 다시 곱씹어볼 만한 작품들이다. 이대희 감독의 <파닥 파닥>은 < 돼지의 왕 >에 비하면 7억이라는 상대적으로 큰 제작비와 영화진흥위원회 프로모션 지원사업을 받아 개봉한 3D애니메이션으로 아마도 3D장편 중에는 가장 저렴한? 제작비로 완성한 애니메이션이라고 할 수 있다. 횟집의 어항에 갇힌 고등어인 ‘파닥 파닥’의 탈출을 둘러싼 어항 속 물고기 캐릭터들의 이해관계를 통해 인간의 세상사를 비판적이고 풍자적으로 그려낸 이야기로 다소 무거운 현실 이야기를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는 것이 다른 독립, 저예산 장편애니메이션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영화아카데미 장편 제작연구과정 작으로 올 겨울 개봉한 장편애니메이션 < 은실이 > 또한 한 마을의 정신지체장애를 가진 소녀를 둘러싼 성적 폭력성을 방관자와 가해자의 입장에서 우리사회의 약자에 대한 태도의 양면성을 그려낸 작품으로 최근 이슈화 되고 있는 집단적 성도덕성의 추락을 꼬집고 있다. 저예산 장편 애니메이션이 이러한 사회문제화 된 소재의 선택과 감독의 연출에 있어 좀 더 자유로운 건 메이저 영화들이 가져갈 수 없는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장편이라는 도전과 제작경험이라는 값진 이득 이면에는 많은 부분 잃는 것도 있는 것 같다. 즉, 감독이 추구하는 작품세계와는 별개로 무언가 안 어울리는 제작시스템과 배급환경에 지배를 받고 있는 것 때문이다. 이는 단순히 제작비 규모의 문제만이 아니라 제작에 상당부분을 외부인력으로 아웃소싱 할 수밖에 없는 저예산 장편 애니메이션 제작 현실에서 제작 스탭의 공감과 참여방식의 문제, 컨트롤의 범위와 한계에 대한 문제이다. 제작인력의 안정적인 확보만큼이나 적절한 노동력의 활용과 시스템의 지원에 대한 문제는 특히 독립 장편 애니메이션에 새롭게 부각될 문제이기도 하다. 또한 배급에 관련해서는 자본의 논리에 지배 받을 수밖에 없는 거대한 배급시스템에 표류하는 저예산 영화들의 통제하기 어려운 것이 가장 큰 현실적인 벽이다. 그나마 < 파닥 파닥 >이 CGV무비꼴라주상과 영화진흥위원회 지원이 없었다면 개봉조차 어려웠을 것을 생각하면 다양성 영화에 정부지원은 제작 및 마케팅 지원을 대폭 확대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해결 방안이라고 볼 수 있다. < 파닥 파닥 >은 50개관 상영 첫 주 5천명 정도의 저조한 성적에 그쳤지만 이는 여름성수기를 맞아 쏟아진 국내외 대작에 밀린 어쩔 수 없는 부분으로 무엇보다 어려운 제작현실에서도 끈기와 열정을 잃지 않고 견뎌낸 감독과 제작진에 큰 격려를 보내고 싶다. 긍정적인 평가로는 저예산에서 감히 디즈니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뮤지컬 장면으로 연출을 시도했고 영화를 좀 더 풍요롭게 만들고 이야기를 전달하는데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3D와 2D의 적절한 제작방식의 활용 등 새로운 도전도 눈에 띄었다. 마지막으로 저예산 애니메이션들이 해마다 한 두 편 개봉하는 것은 감독이 커나가고 시장을 다양화 하는 면에서 반가운 일이지만 아직도 한국의 저예산 장편 애니메이션은 갈 길이 많이 남아 있다. 작품으로서의 완성도와 함께 관객에 대한 재미를 다 줄 수 있는 작품이 나와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상업영화의 기본 생존법칙을 그대로 따를 필요는 없지만 관객이 외면하는 저예산, 독립 장편 애니메이션은 존재 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재미란 단순한 오락은 아닐 것이다. 메이저 작품이 잃어버린 독창적인 매력이라고 할까? 해답은 작품을 만드는 감독과 이를 기대하며 기다리는 관객에게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