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는 어떻게 신발을 신게 되었나, 『애프터 넷플릭스』
© 21세기북스 해외에서, 또는 한국을 찾은 외국인을 만나면 거의 같은 장면이 반복된다. 그들은 최근 본 K-드라마 제목을 줄줄이 대며 엄지를 치켜든다. 뉴스는 글로벌 플랫폼 톱10 순위표를 띄워놓고 한류가 사상 최고의 전성기라고 전한다. 정책 당국도 이 그림을 보며 별문제 없다고 낙관한다. 그런데 업계 단톡방의 풍경은 반대다. 올해는 제작에 들어가는 작품이 아예 없다는 말, 투자사가 지갑을 닫아 대본이 캐비닛에서 묵고 있다는 말이 시간을 가리지 않고 올라온다. 밖에서는 박수가 쏟아지는데 무대 뒤에서는 스태프가 일자리를 잃고 제작사가 문을 닫는다. 환호와 위기가 같은 시점에 나란히 흐른다. 이 간극을 두고 한탄이 터져 나온 건 친하게 지내는 형, 동생들과 술잔을 기울이던 어느 자리에서였다. 다들 현장에서 같은 답답함을 안고 살던 터라 이야기는 쉬 끝나지 않았다. 그러다 누군가 말했다. “이거 누가 좀 제대로 정리해주면 좋겠다.” 막연한 푸념이었지만, 그 한마디가 묘하게 자리에 남았다. 바로 그 자리에서 서우식 대표가 원숭이 이야기를 꺼냈다. 맨발로 숲을 누비던 원숭이들이 누군가 공짜로 나눠준 신발에 길들여져 굳은살을 잃고, 끝내는 신발값을 받아내는 장수에게 평생 매이게 된다는 우화다. 그는 이 이야기를 책 서문에 쓰면 되겠다고 했다. 정리해주면 좋겠다는 푸념과 서문에 쓸 비유가 한 술자리에서 만난 셈이다. 쓰는 일은 내 몫이 됐지만, 책의 씨앗은 그날의 술자리와 서 대표의 그 비유였다. 『애프터 넷플릭스』는 그렇게 우리들의 프로젝트로 시작됐다. 우화를 맨 앞에 세운 데는 이유가 있다. 다만 이 이야기의 핵심은 원숭이가 신발을 빼앗겼다는 데 있지 않다. 신발을 신은 것은 원숭이 자신이다. 누가 강요하지 않았고, 처음엔 그 신발이 편하고 달콤했다. 글로벌 OTT라는 자본이 들어왔을 때 우리도 그랬다. 제작비를 대주고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하는 그 길을, 우리는 위험을 피하려고 스스로 골라 걸어 들어갔다. 달콤한 허니문과 뒤이은 종속은 누군가에게 당한 결과가 아니라 우리가 선택한 길의 끝이었다. 그 사실을 직시하지 않으면 어떤 진단도 남 탓에서 멈춘다. 그래서 이 우화를 글 맨 앞에 세웠다. 쓰는 내내 붙들고 있던 과제는 현장의 오독을 바로잡는 일이었다. 사람의 마음을 끄는 이야기를 만들려면 인문학적 상상력과 창작의 수고가 든다. 그러나 그 이야기를 시장에 내다 팔아 수익을 내는 미디어 산업은 셈법과 거래의 영역이다. 우리 제작 현장은 이 둘을 자주 혼동했다. 창작에는 상상력이 필요하지만 비즈니스에는 계약의 원칙과 산업의 논리가 작동한다. 그런데 현장에는 그 자본의 논리마저 감성의 언어로 덮으려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자기 자본은 한 푼도 태우지 않고 확정 수익을 안전하게 챙긴 쪽이, 작품이 크게 되자 ‘IP를 글로벌 자본에 빼앗겼다’라고 억울해하는 식이다. 그러나 돈을 받고 IP를 넘긴 것은 계약이다. 빼앗긴 게 아니라 판 것이고, 그 계약에 서명한 것은 우리 자신이다. 문제는 IP가 플랫폼에 갔다는 사실이 아니라, IP를 끝까지 쥘 수 있는 계약 조건을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데, 그런 조건을 요구할 체력과 협상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데 있다. 하이 리스크-하이 리턴이라는 기본을 비켜선 채 리스크는 지지 않고 과실만 얻으려 한 태도, 그것이 우리를 글로벌 하청기지에 머물게 한 패착이었다. 이 피해의식을 걷어내고 자본의 셈법을 있는 그대로 복기하는 데 집중했다. 바로잡고 싶었던 오독이 업계 안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정책을 다루는 쪽의 인식은 더 위험했다. 한국 드라마가 세계 순위표 상단을 점령하고 있으니 이 산업도 잘 나가고 있다는 생각, 그래서 굳이 손볼 데가 없다는 판단이다. 그러나 화면에 비치는 흥행과 그 흥행이 누구의 주머니로 흘러드는가는 전혀 다른 문제다. 작품이 세계에서 1위를 해도 제작사는 정해진 제작비만 받고, IP도 수익의 상한도 글로벌 플랫폼이 가져가는 구조에서, 순위표는 산업의 건강을 말해주지 않는다. 흥행 지표를 산업의 체력으로 오독하는 순간 정책은 헛다리를 짚는다. 지원이 필요한 곳에 지원이 가지 않고, 손봐야 할 거래 구조는 방치된다. 잘나가고 있다는 착시가 가장 비싼 정책 오판을 부른다는 것, 이것이 위정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또 하나의 메시지였다. 2026년 1월, 넷플릭스 한국 진출 10주년 경과 / © Netflix 집필 방식도 술자리의 연장이었다. 챕터 하나를 끝내면 곧장 단톡방에 올렸다. 절망 어린 한숨이 오가던 그 방이, 이번엔 원고가 오가는 작업실이 됐다. 누구는 숫자가 틀렸다고 짚었고, 누구는 이 대목은 현장 감각과 다르다고 받아쳤다. 그렇게 한바탕 이야기를 거쳐 정리된 글은 다시 다른 지인들에게 보내 읽혔다. 받은 의견을 반영해 고치고, 다음 챕터를 또 올리고. 이 책은 그 왕복 속에서 한 장씩 쌓였다. 탈고가 가까워질 무렵 서글픈 일을 겪었다. 원고에 결정적인 도움을 준 이들의 이름을 정작 책 앞이나 감사의 글에 올릴 수 없었다. “이름이 나가면 넷플릭스나 큰 플랫폼 눈치가 보여 회사가 곤란해진다”라는 것이 거의 같은 거절 사유였다. 생태계의 밥줄을 쥔 자본 앞에서, 생존을 향한 고민조차 익명 뒤로 물러서야 하는 셈이다. 그래서 실명을 올린 소수의 이들은, 그 눈치를 무릅쓰고 한국 미디어 산업을 위해 이름을 내건 고마운 사람들이다. 이렇게 나온 『애프터 넷플릭스』는 다행히 의미 있는 반응을 얻었다. 한류를 문화 현상으로만 그리며 칭송하던 기존 책들과 달리 산업의 시각에서 시장의 이면을 들여다봤다는 점을, 독자들도 읽어주었다. 인문학적 상상력 쪽으로 기울어 있던 미디어 담론에 셈법과 거래의 언어를 들이댄 데 대해, 안팎에서 아프지만 필요한 지적이라는 공감이 모였다. 인식의 간극을 줄여보려던 처음의 의도가 어느 정도는 가닿았다고, 조심스레 안도했다. © Netflix 그 안도는 오래가지 않았다. 한동안은 분위기가 잡혀가는 듯했다. 흥행과 산업의 건강을 구분해서 보자는 말이 조금씩 자리를 잡는 것 같았다. 그러나 < 케이팝 데몬 헌터스 >(매기 강, 크리스 아펠한스, 2025)의 세계적 흥행을 지나며 상황은 빠르게 과거로 돌아갔다. 한국 콘텐츠가 또 한 번 세상을 호령했다는 환호가 모든 화면을 덮었고, 국뽕은 다시 넘쳐났다. 그 흥행으로 누가 얼마를 가져갔는지, 우리가 그 수익과 IP를 더 쥘 수 있는 구조였는지를 묻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계약대로 수익이 어디로 가는가는 따질 일이 아니다. 따져야 할 것은, 다음 흥행에서는 그 조건을 우리 쪽으로 끌어올 체력을 만들었는가다. 흥행 한 번에 그 질문이 통째로 묻히는 자리에서, 엄밀한 분석은 분위기를 깨는 잔소리로 밀려난다. 좁히려던 환호와 위기 사이의 간극은 줄기는커녕 더 벌어졌다. 글이라는 형식의 한계도 절감했다. 산업 구조와 셈법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이름조차 올리지 못한 채 현장에서 버티는 이들의 애환과 분투를 충분히 담지 못했다. 그 점이 오래 마음에 걸린다. 그럼에도 이 아쉬움은 다음 글을 쓰게 하는 힘이기도 하다. 미디어 산업의 구조를 다루는 전문서의 시장은 갈수록 좁아진다. 국뽕이 잘 팔리는 자리에서 불편한 진단을 담은 책은 출판사부터 출간을 주저하게 만든다. 그래도 누군가는 이 인기 없는 이야기를 계속 기록해야 한다. 우리가 열광하는 화면 너머의 세계가, 신발을 벗지 못해 숲을 통째로 내준 원숭이들의 결말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술자리에서 시작된 한탄을 책 한 권으로 묶었듯, 시장이 좁아지더라도 현장의 목소리와 산업의 셈법 사이에서 그 간극을 메우는 글을 멈추지 않을 생각이다. 조영신(미디어 연구자) l 『애프터 넷플릭스』를 썼다. 30여년간 미디어 시장을 연구했고, 얼마전까지 SK브로드밴드의 경영전략그룹장을 역임했으며, 지금은 동국대 영상대학원 대우교수다. 최근엔 『숏폼시대-무마찰사회』를 탈고한 후 출판 준비 중이다.